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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을 꿈꾸다 - 우리의 삶에서 상상력이 사라졌을 때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3월
평점 :
사진 한 장 실리지 않은 책 주제에. 희한하게 몇몇 이미지는 눈에 선하다. 무슨 글발이 이래. 묘사든 역사든 일화든, 고상하고 지적이고 다정하다. 주말에 부랴부랴 만나 반해버린 배리 로페즈 선생이다. (부랴부랴 읽을 책이 아니다. 곱씹을 문장투성이다. 울면서 쓰고 있다) 읽고 보니 원제 ‘Arctic Dreams’가 마침맞다 싶다. 북극 꿈들, 혹은 북극이 꿈꾼다. 북극이 제국의 팽창주의식 ‘정복 대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모험심, 지적 호기심, 비장함 넘치는 난파, 조난 이야기 등. 나아가 큰돈벌이 수단은 지금도 다르지 않아서 산업 개발, 광산, 석유시추시설이 들어선 현재 (아)북극 모습도 볼 수 있다. 바로, 형용사(arctic)+명사(dreams) ‘북극 꿈들’이다. 그러나 북극을, 땅과 얼음과 동물을 그렇게만 여겨서는 안 된다는 로페즈 선생의 역설(力說)이 주어(arctic)+동사(dreams) ‘북극이 꿈꾼다’에 깃들었다면... 억지스럽나?
음. 대지와 동식물을 존중한다고 걸핏하면 자연에, 그러니까 땅이나 하늘이나 햇볕이나 바다나 얼음에 절하는 (이렇게까지 절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느꼈음)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그렇지 않을걸? 겸손해진다. 더욱 겸손해지고 싶어진다. 우리, 인간들 말이야. 부자란 무엇인가. 앎이란, 삶이란, 살육이란, 죽음이란, 순환이란 또 무엇인가. (김영민 교수 아니다) ‘모순 한가운데를 살아내야 한다’(634)고, 답이 없는 질문을 견디는 게 아마도 삶이라고 한다만. 모순보다 먼저 무지, 무지의 이복동생인 알고자 하는 욕망, 그에 따라 쌓아놓은 책들, 그중 북극을 꿈꾸다가 어떤 고양감을 주었다고 할까.
북극 동물들과 빙하와 역사와 저자 일화가 아홉 장에 엮였다. 어쩜, 북극의 남쪽 한계 정의가 없다고는 하지만 (아)북극 정말 넓지 않나? 저자가 머물렀던 곳들이 주로 북아메리카 북극이다. 저 많은 섬, 반도, 해협 지명들에 이름을 준 사람들 이야기가 잠깐씩 소개되니 지리덕후들은 좋아하리라. 유명한 난센과 피어리 뿐 아니라 바이프레히트도 잠시 언급하는데 란스마이어의 소설 <빙하와 어둠의 공포>에서 봤던 이라 무척 반가웠다. 란스마이어의 작중 인물 마치니가 좇는 한 세기 전 탐사대 대장이 바이프레히트다.
기후 위기의 바로미터가 북극이라고 운을 띄우면 자동적으로 돌아오는 답이 있을 터다. (해보시길) ‘하지만 북극곰 개체수는 늘었다며(+피식)?’다. 그러니까 ‘잘’ 사는 북극곰과 따뜻해지는 북극 따위 잊어도 좋고 온난화는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니다(일회용 컵과 빨대 더 쓰자), 그만 뚝! 식이다. 하지만 곰곰. 개체수가 는 건 당연하다. 북극곰 사냥을 제한한 지 반세기가 넘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활동터 해빙이 없어지면서 왜 ‘바다곰’이 내륙에 출몰하는지, 물범을 잡는 대신 육지동물 순록을 사냥하거나, 마요네즈를 받아먹고 그토록 자주 관광객의 눈에 띄는지 생각해보라고 이어 물어보리라 다짐한다. 옳다. 북극곰 개체 하나하나에 동정심을 느낀다기보다(느끼기도 하지만), 북극곰 종조차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면 과연 다른 동물들은? 인간은? 지구는?이 이어지는 질문인 거다. 해빙이 사라진 검은 바다는 더 많은 열을 흡수해 해빙을 더 많이 녹이는 양의 되먹임 현상. 북극의 온난화로 인한 제트기류 약화, 그에 따른 우리나라의 한파와 폭염 및 장마 등 우리 삶이 북극과 연결돼 있다. 멀리 떨어진 곳의 기후가 서로 영향을 주는 걸 '원격 상관'이라 한다고 어디선가 보기도 했다. 빙하를 볼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우리일 거라는 사실도.
어쩌면 빙산 같기도 한 이런 아름다운 책을 써놓고 처음 만나는 독자가 아연하여 실색하게끔 2020년에 타계하신 저자시여. 동물, 땅, 인간에 대한 사색, ‘대지에 깃든 모든 것을 존중하는 태도’(24)가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우리는 지평선에서(<호라이즌>), 숲과 사막에서(<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또 만납시다. ‘빛에 다가가려 한 하나의 고귀한 표현’(634) 고맙습니다. RIP.
레이 슈와인스버그와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배로우 해협을 따라 날다가 남쪽을 향해 외로이 얼음을 건너는 북극곰 한 마리를 본 적이 있다. “저놈을 따라가면 좋겠어요.” 슈와인스버그가 엔진 소음 때문에 소리를 질렀다. “그냥 내려가서 저놈을 따라가고 싶어요.” 그는 눈알을 굴리며 자기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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