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세 가지 책과 지냈다. 최근 주문에서 얇은 순서로 책을 뽑은 것... 맞나 보다.
『마음사전』으로 만난 적이 있는 김소연의 벼린 언어를 짐작게 하는, 그 제목도 『수학자의 아침』이다. 눈물 흘리게 하는 슬픔이 아니라 아픔과도 닮은 서늘한 슬픔을 기대했고 과연 틀림이 없었다.
컵처럼 사는 법에 골몰한다
컵에게는 반대말이 없다 설거지를 하고서
잠시 엎어 놓을 뿐
모자의 반대말은 알 필요가 없다
모자를 쓰고 외출을 할 뿐이다
모자를 쓰고 집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게 가끔 궁금해지긴 하겠지만
눈동자 손길 입술, 너를 표현하는 너의 것에도 반대말은 없다
마침내 끝끝내 비로소, 이다지 애처로운 부사들에도 반대말은 없다
나를 어른이라고 부를 때
나를 여자라고 부를 때
반대말이 시소처럼 한쪽에서 솟구치려는 걸
지그시 눌러주어야만 한다
나를 시인이라고 부를 때에
나의 반대말들은 무용해진다
도시에서 변두리의 반대쪽을 알아채기 시작했을 때
지구에서 변두리가 어딘지 궁금한 적이 있었다
뱅글뱅글 지구의를 돌리며
이제 컵처럼 사는 법이
거의 완성되어간다
우편함이 반대말을 떨어뜨린다
나는 컵을 떨어뜨린다
완성의 반대말이 깨어진다
(『수학자의 아침』, 「반대말」)
‘술은 제 잔에’를 신조로 사는 내게 ‘컵처럼 사는 법에 골몰한다’는 무슨 마법처럼 착 달라붙었다. 반대말을 떨어뜨린 우편함이 이 변신의 과정을 기우뚱- 산산조각 내는 한 편의 단편영화 같은 시의 이 장면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수학적으로’ 볼 때는 우편물이 나를 어른이나 여자로 혹은 그 반대로 호명하고 있었겠다, 그러나 내겐 폭풍우 같은 ‘아니오’로 답해 온 어떤 거절의 편지가 연상되니, 허- 아픔의 경험이 슬픔을 가까스로 누른다.
슬프고 싶지 않아서 (‘슬픔은 또다시 나를 살아 있게 할 테니까요’, -『수학자의 아침』, 「그래서」중) 손에 든 책이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다. 아, 이 사람이 정녕 「조롱을 높이 매달고」의 그 사람 맞나. 뭐랄까, 독기가 가득하다. 『달에 울다』에 실린 작가사진이 차라리 이 책에 왔으면 훨씬 설득력 있었을 것 같다.
나는 칠십 가까이 살면서 절체절명, 고립무원, 사면초가 등의 궁지에야말로 명실상부한 삶의 핵심이 숨겨져 있음을 느꼈다. 그 안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과정에야말로 진정한 삶의 감동이 있다고 확신했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201쪽)
가족은 족쇄, 부모를 떠나 자립하라, ‘너를 키우는 자가 너를 파멸시키리니.’가 거의 전부다.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자칫 ‘꼰대’로 보일 여지가 농후한 문장들이라 옥 같은 작가경력에 티가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소설가는 역시 소설로 만나는 것이 좋을 거라는 판단과 함께, 슬픔을 싹- 씻어내는 독서여서 한편으로는 개운했다. 그런데.
세 번째 책이 다 망쳤다. 아슬아슬한 나의 이성놀이에 예상치 못한 소위 ‘결괴’를 가져온, 하물며 미리보기로 머리말을 읽은 게 다인 이것은 도대체.
마지막으로 언제나 내 가장 든든한 지원군 가족들에게 사랑을 전한다. 다시 태어나도 그들과 가족이 되고 싶다. (『독서 공감, 사람을 읽다』, 9쪽)
김소연의 수학자적 계산으로, 또 마루야마 겐지의 가차 없는 이성으로 쌓은 둑이 저 멘트에 무너지고 만다. 다락방 님의 따뜻한 감성을 이겨낼 재간은 없다, 두 손... 들다말고 일단 눈물부터 닦는다.
코기토: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에르고숨: (눈물을 닦으며) 맞는 말이지만 너무 냉혹해.
코기토: 수학자의 아침을 떠올려 봐.
에르고숨: (한숨) 말 잘했다. 그 시, 결국은 ‘눈물 따위와 한숨 따위를 오래 잊고 살았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수학자라는 거 알 텐데?
코기토: 그럼 난 잠깐 부재할게.
에르고숨: (코 푼다) 역시 눈치가 빠르구나, 하지만 곧 돌아와야 해. 너 없이는 나, 어찌 할지 아직은 모르겠으니까.
감정의 혼란, 혹은 어딘가에 털 날 페이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