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 이야기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35
버지니아 리 버튼 지음, 홍연미 옮김 / 시공주니어 / 199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림과 내용이 잘 어우러지는 책이다.

  데이지꽃과 사과나무가 꽃을 피우고 익어가는 푸른 언덕에 작은 집이 하나 있다.

  그 작은 집은 아침에는 떠오르는 해를 보며 저녁에는 지는 해를 보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낸다.

  작은 집은 도시의 생활이 궁금하다.

  작은 집 앞으로 도로가 생기고 주택이 생기고 전철이 생기고 땅 밑으로는 지하철이 다니고 커다란 건물이 작은 집을 에워싸듯 들어선다.

  이제 아름답던 작은 집을 눈여겨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복잡한 도시에서 작은 집은 작고 초라할 뿐이다.

  작은 집은 자신이 있던 언덕을 그리워한다.

  어느 날 작은 집을 지은 자손이 그 집을 발견하고는 들판의 언덕으로 작은 집을 옮겨간다.

  더 이상 작은 집은 도시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을 통해 변해 가는 세상의 모습이 짧은 이야기 속에 압축되어 있다.  잠깐 동안만이라도 작은 집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내가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이곳이 훼손되기 전의 자연의 모습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알게 될 것이다. 작은 집이 그렇게도 궁금해하던 도시 생활이 얼마나 작은 집을 볼품없게 만들었는지도. 도시가 나(작은 집)를 초라하게 한다는 대목에서는 정말 그렇구나 싶었다. 자연 속에서 사람은 자신이 볼품없다고 느끼지는 않을 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련하게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경쾌하며 재미있게 금방 읽히는 소설이다. 곳곳에 드러나는 생각이나 대사처리가 청춘 만화를 연상케한다. 책을 읽는 내내 곳곳에 포진해 있는 만화투의 대사들이나 독백을 보면서 어렸을 때 대사 하나하나에 가슴 떨리며 읽었던 순정만화가 생각났다. 순정만화보다는 인생에 대해 좀더 진지하지만 재미는 그에 못지 않다.

  가을 아침이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이제부터 전교생이 함께 하는 만 하루동안의 보행제가 시작된다. 고3인 도오루와 다카코에게는 마지막 보행제다. 드디어 1학년부터 교문을 빠져나가고 하얀 운동복을 입은 1200여명의 학생들이 길게 늘어선 줄이 도로를 따라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대열 속에 다카코도 친구들과 함께 걷고 있다. 다카코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으며 아버지란 존재를 모르고 자랐다. 어머니가 가정이 있는 남자를 사랑해서 낳은 아이가 다카코이기 때문이다. 바로 어머니가 사랑했던 그 남자의 아들이 같은 반에 있는 도오루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그들은 처음 얼굴을 보았고 다카코는 어린 도오루에게서 자신과 어머니에 대한  적대감을 읽었다. 도오루와는 아직 한 마디의 말도 나누지 못한 사이이고 아무도 그들이 이복남매라는 것을 모른다. 한편 도오루는 부정한 일을 저지른 쪽이면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다카코와 그 애의 어머니가 싫으면서도 그들을 싫어하는 자신의 상황도 싫기는 마찬가지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다가가기 힘들다는 인상을 주는 그이지만, 우리의 순정만화 주인공 답게, 알게 모르게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이 많다. 물론 다카코도 마찬가지다. 이 이야기는 그 둘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벌어지는 사건들, 섬세한 감정의 변화들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내게는 이야기 자체보다는 보행제라는 행사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정말 일본 고등학교에는 이런 행사가 있을까. 멋진 축제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있는 수많은 학생들이 모두 저마다의 고민, 미래에 대한 계획, 처음 맞는 보행제에 대한 떨림, 마지막 보행제에 대한 기대, 이번 보행제를 통해 누군가에게 꼭 마음을 전하고야 말겠다는 다짐 등 학생 수만큼이나 많은 생각들을 품은 채 길을 걷기 시작한다. 아침의 푸른 하늘 아래를 지나서 한낮의 따까운 햇살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해가 지는 저녁을 향해 걷는다. 때로는 침묵하며 때로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가며. 그러다 보면 해가 깜빡 넘어가고 주위는 사방이 어둠이다. 이제 길은 학생들이 들고 있는 손전등불빛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다. 불빛이 없는 산속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에는 말로만 듣던 은하수가 쏟아질듯 박혀 있다. 걷는다. 또 걷는다. 밤을 따라 걷는다. 함께 걸으면서 친구의 생일도 축하해주고 옆에 있던 친구에 대해 미처 몰랐던 이야기도 듣는다. 드디어 2시간 정도 잘 수 있는 곳에 도착해서 모두가 함께 짧은 수면을 취하고 일어난다. 몸은 천근만근이다. 아직 밤이다. 이제 보행제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금부터는 골인 지점인 학교를 향해서 달린다. 버스에 타지 않고 제 발로 골인 지점으로 도착하려면 처음에는 빨리 달려서 시간을 벌어두어야 한다. 달린다. 더 이상 달리기가 힘들다. 이젠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마지막에는 겨우 걷고 있다. 언덕만 오르면 골인 지점인 학교다. 거의 기다시피 언덕을 오른다. 조금씩 조금씩 골인 지점에 가까워진다. 드디어 우리들의 보행제가 끝난 것이다. 단 하루가 지났을 뿐이지만 우리 모두는 부쩍 달라져 있음을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늦은 가을에 푹 빠지고 싶은 사랑 이야기를 읽고 싶은 독자라면 먼저 읽은 사람으로서 권하지 않겠다.  이제 사랑을 시작하거나 사랑에 푹 빠져 있거나 혹은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한 번 읽어봄직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미 열렬한 사랑의 감정이 가물가물하기만 나에게는 책의 흐름에 푹 빠지기가 힘들었다.

   곳곳에 드러나는 사랑에 대한 깊이 있고 철학적인 분석들은 생각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독서의 진행을 방해하기도 한다. 사소한 사랑의 행위들에 대한 통찰력 있는 사유를 함께 즐기며 나아가는 독자들에게는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일 것이고 빠른 줄거리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앞으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될 것이다. 나 역시 사랑에 관심이 없는 나이 탓인지 그의 생각들이 재기 발랄한 것으로 와 닿지는 않았다. 사랑에 대해 미지근해진 나이보다는 아마도 저자의 깊이 있는 사고를 따라가기가 벅찼던 탓일 것이다.

  두 남녀가 비행기에서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되는 건 평범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에게 그것은 극히 일어날 수 없는 확률로 운명지워진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감흥도 일으키지 못하는 심지어는 불쾌한 것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 그녀의 앞니의 벌어진 틈이 나(서술자)에게는 욕망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만약 그녀에게서 그 특징이 사라진다면 나의 욕망도 함께 사라질 수도 있다. 스페인의 여행지에서 그녀가 이유를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린다. 그녀에게 내려진 진단은 안헤도니아라는 병명이다. 행복이 실현된 순간이 온 것 같을 때 그것이 너무나 두려워서 나타나게 된다는 증상. 그 행복을 정점으로 그들의 사랑은 하강곡선을 긋기 시작한다. 그녀는 결국 떠나고 나는 온갖 혼란 속에 혼자 남는다. 그러나 혼란도 시간과 함께 사라지고 다시 사랑을 시작할 준비가 된다. 

  "낙타는 시간을 따라 걸어가면서 짐이 점점 더 가벼워졌다.

 계속 등에 실린 기억과 사진들을 흔들어 사막에 떨어뜨렸고 바람이 그것들을 모래 속에 묻어 버렸다."

   낙타는 또 다른 연인에게서 운명적인 사랑을 발견한다. 소설 속의 나처럼, 예전 사랑의 기억을 모래 속에 다 묻어 버린 낙타처럼 시간이 지나면 또다른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걸까.  정말로 한 사람을 사랑했던 기억이 그렇게 단순명쾌하게 정리되는지 모르겠다. 책 속에 나오는 것처럼 현대의 사랑은 서사적 비극을 잃어버리고 사소한 일상만 남은 것일까. 사랑이 끝났음에도 이 사랑은 비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희극적이다.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을 기대하며 먹은 알약들의 정체는 비타민 C일 뿐이다. 나의 입에서는 산의 화학작용으로 일어난 오렌지 색 거품들이 솟구쳐나와 공중에서 폭발한다. 지나간 사랑은 이미 그 거품처럼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저자는 진지하게 사랑에 대해 성찰하지만 사랑은 그렇게 운명적이지도 비극적이지도 절대적이지도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강명관 지음 / 길(도서출판)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편하게 쉽게 읽히는 책이다. 보다 깊이 있는 내용을 원하는 독자보다는 일정 수준의 교양과 재미를 함께 맛보기를 원하는 독자에게 어울릴 것 같다. 전체 7부로 나뉘어 있고 두세 페이지의 짧은 글들로 묶여 있다.  제목처럼 옛글 속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  시대의 유학자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면서 그 이야기를 통해서 현재의 우리 모습을 상기시킨다.

  워낙 많은 인물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 나오기 때문에 기억 나는 게 많지는 않지만 실학자 박제가가 '북학의'에서 우리말을 버리고 중국어를 쓰는 것이 문명화의 길이라고 주장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우리가 배운 실학자는 민족 의식이 강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소설의 주제를 정리하듯 한 문장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일관된 흐름이랄까 그런 건 느낄 수 있는데 저자는 거대담론이나 기득권을 가진 계층, 고전 등 다양한 분야를 비판적인 안목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백성들에게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려고 간행된 '삼강행실도'는 비합리적이고 잔혹한 내용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지배층의 지배를 공교히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는 말인 것이다. 과거 제도와 수많은 유교의 경전들도 마찬가지라는 말이 된다. 간혹 제대로 된 학문을 하는 선비의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지금의 수능도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차지할 계급의 위치를 결정짓는 장치라고 말한다.  전적으로 비판할 사람도 동의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저자가 비판적인 안목으로 옛글을 보고 지금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독자도 그의 글을 비판적 안목으로 읽어야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

  저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세상은 지배층의 욕망에 의해 좌우될 뿐 개인이란 정말 미미할 뿐이라는 자각. 이미 그런 줄 알지만 옆에서 자꾸 그런 세상이라고 말하면 왠지 그렇지만은 않을 거라고 도리질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그래도 공감하는 내용이 훨씬 많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활자 문화와 한글을 가진 우리가 정작 열심히 간행한 책은 지배층의 이념만 다져줄 뿐인 한문으로 된 유교경전이 절대 다수였으며 겨우 20세기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한글로 된 간행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는 건 참 씁쓸한 일이다. 지배층의 기득권에 대한 집착, 욕망이 얼마나 끈질긴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양한 사상을 지닌 한글 책들이 자유롭게 간행되고 읽혀질 수 있었으면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이탁오의 '동심설'에 나오는 내용을 저자가 인용한 부분이다. '자신의 참생각은 잃어버린 지 오래고, 밖에서 들어온 남의 생각, 곧 도리와 견문이 들어와 주인 노릇을 한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이 세상에 온전한 내 생각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혹 세상으로부터 주입된 생각을 내 생각인양 착각하고 살고 있지는 않았던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인 코드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덮는 순간 혼란스럽고 숨막히게 바쁘게 돌아가는 한국 사회를 며칠 만에 돌파한 느낌이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내다보는 바깥은 놀이터에서 떠드는 아이들의 소리만 들릴 뿐 조용하기만 하다.

  위의 서평에  이미 나와 있는 것처럼 이미 들어서 너무나 익숙한 우리 자신의 모습들을 압축시켜 한 권의 책에 담아 놓은 다음 독자들에게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라고 보여 준다. 어쩔 수 없이 수긍은 하지만 읽어가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이런 저런 특성을 들면서 그것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은 면을 동시에 설명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쩐지 긍정적인 면은 부정적인 면을 들춰내다가 그것을 조금 무마하기 위한 양념 같은 역할 정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을 올바르게 보고 제대로 연구하자는 본래의 취지보다는 이 글을 읽는 독자는 한국인이 그렇지, 하는 또 다른 냉소를 느끼게 된달까. 이것이 책 전반에서 느끼는 인상비평 정도일 뿐이지만 나 자신이 긍정적인 사람이 못 되는 탓인지 나름대로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은 보이지만 내게는 부정적인 면이 훨씬 더 강조되어 읽히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 거론된 한국인의 모습을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수도 없다. 대중 매체를 통해 그동안 우리는 이런 모습이라고 오랫동안 길들여져 온 탓인지 아니면 이것이 우리에게 내재된 진정한 모습인지 정확히 판단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대중 매체를 통해 익히 들어온 말인 탓에 독자의 관심을 끌만한 요소는 충분하다. 만약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면. 한동안 유행이었던 '너나 잘하세요' 라는 말을 통해서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인색한 냉소주의를 읽어내며, '최고,최대, 최초' 라는 말을 통해 그 말에 숨겨진 열등감을, '소용돌이' 라는 말을 통해서 어느 하나에 무조건적으로 몰입해버리는 냄비근성의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을 읽어낸다. 젊은 사람에게는 조선 시대의 임진왜란 만큼이나 먼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는 '6.25'를 통해 아직도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는 전쟁은 끝나지 않았으며 전쟁을 겪어내듯 위험을 무릅쓰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처럼 한국사회는 살아가기 피곤한 사회임이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은 그 피곤을 못 견디고 한국을 떠나는 방법을 택한다. 그럴 수 없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전쟁처럼 경쟁을 하고, 최고가 되기 위해 줄을 서고, 믿을 사람은 나밖에 없는 무시무시한 현실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 한국 사회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고 느리게 조용히 살아가야 할까. 그러나 내가 서 있는 이곳은 거대한 소용돌이 속의 한국사회다. 하루하루가 급변하는 한국사회다. 역동성이라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뛰어들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한국인의 모습이 보인다. 아직 우리는 덜 가졌다고 생각하고 있고, 우리 앞에는 우리를 앞서가는 많은 나라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한국인의 기질상 우리는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때로는 스스로를 돌아보자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