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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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련하게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경쾌하며 재미있게 금방 읽히는 소설이다. 곳곳에 드러나는 생각이나 대사처리가 청춘 만화를 연상케한다. 책을 읽는 내내 곳곳에 포진해 있는 만화투의 대사들이나 독백을 보면서 어렸을 때 대사 하나하나에 가슴 떨리며 읽었던 순정만화가 생각났다. 순정만화보다는 인생에 대해 좀더 진지하지만 재미는 그에 못지 않다.

  가을 아침이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이제부터 전교생이 함께 하는 만 하루동안의 보행제가 시작된다. 고3인 도오루와 다카코에게는 마지막 보행제다. 드디어 1학년부터 교문을 빠져나가고 하얀 운동복을 입은 1200여명의 학생들이 길게 늘어선 줄이 도로를 따라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대열 속에 다카코도 친구들과 함께 걷고 있다. 다카코는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으며 아버지란 존재를 모르고 자랐다. 어머니가 가정이 있는 남자를 사랑해서 낳은 아이가 다카코이기 때문이다. 바로 어머니가 사랑했던 그 남자의 아들이 같은 반에 있는 도오루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그들은 처음 얼굴을 보았고 다카코는 어린 도오루에게서 자신과 어머니에 대한  적대감을 읽었다. 도오루와는 아직 한 마디의 말도 나누지 못한 사이이고 아무도 그들이 이복남매라는 것을 모른다. 한편 도오루는 부정한 일을 저지른 쪽이면서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다카코와 그 애의 어머니가 싫으면서도 그들을 싫어하는 자신의 상황도 싫기는 마찬가지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다가가기 힘들다는 인상을 주는 그이지만, 우리의 순정만화 주인공 답게, 알게 모르게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이 많다. 물론 다카코도 마찬가지다. 이 이야기는 그 둘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되기까지 벌어지는 사건들, 섬세한 감정의 변화들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내게는 이야기 자체보다는 보행제라는 행사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정말 일본 고등학교에는 이런 행사가 있을까. 멋진 축제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있는 수많은 학생들이 모두 저마다의 고민, 미래에 대한 계획, 처음 맞는 보행제에 대한 떨림, 마지막 보행제에 대한 기대, 이번 보행제를 통해 누군가에게 꼭 마음을 전하고야 말겠다는 다짐 등 학생 수만큼이나 많은 생각들을 품은 채 길을 걷기 시작한다. 아침의 푸른 하늘 아래를 지나서 한낮의 따까운 햇살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해가 지는 저녁을 향해 걷는다. 때로는 침묵하며 때로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가며. 그러다 보면 해가 깜빡 넘어가고 주위는 사방이 어둠이다. 이제 길은 학생들이 들고 있는 손전등불빛으로 끝없이 이어져 있다. 불빛이 없는 산속에서 올려다보는 하늘에는 말로만 듣던 은하수가 쏟아질듯 박혀 있다. 걷는다. 또 걷는다. 밤을 따라 걷는다. 함께 걸으면서 친구의 생일도 축하해주고 옆에 있던 친구에 대해 미처 몰랐던 이야기도 듣는다. 드디어 2시간 정도 잘 수 있는 곳에 도착해서 모두가 함께 짧은 수면을 취하고 일어난다. 몸은 천근만근이다. 아직 밤이다. 이제 보행제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금부터는 골인 지점인 학교를 향해서 달린다. 버스에 타지 않고 제 발로 골인 지점으로 도착하려면 처음에는 빨리 달려서 시간을 벌어두어야 한다. 달린다. 더 이상 달리기가 힘들다. 이젠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마지막에는 겨우 걷고 있다. 언덕만 오르면 골인 지점인 학교다. 거의 기다시피 언덕을 오른다. 조금씩 조금씩 골인 지점에 가까워진다. 드디어 우리들의 보행제가 끝난 것이다. 단 하루가 지났을 뿐이지만 우리 모두는 부쩍 달라져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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