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
아이작 아시모프 외 지음, 정영목, 홍인기 옮겨 엮음 / 도솔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에 읽었던 책인데 여름휴가동안 방콕하면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전후로해서 비슷한 SF단편집을 몇 권 읽었고 그 이후로 띄엄띄엄 SF소설을 읽어왔다. 단편집들은 중복되는 작품이 여럿 있었는데 아마도 이미 인정 받은 작품을 선별해서 소개하려다보니 여기저기에 실리게 된 것 같다. 대체로 이 책도 그렇고 단편들은 괜찮았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SF소설을 처음 접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는데도 어렵다거나 그렇지 않았고 비슷비슷한 단편 소설을 읽는데서 오는 지루함을 벗어날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며칠 전 중앙일보를 보니까 황순원 문학상에 박민규가 쓴 SF소설(제목은 기억나니지 않는데 해저 깊숙한 곳에 있는 어떤 물질을 캐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박민규 답지 않게 아주 진지한 문체로 썼다는데...)이 본심에 올랐다는데 결과가 사뭇 기대된다. 우리나라에서도 SF소설이 본격 문학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불현듯 생각나는 그가 자신의 작품을 본심에 오르게 한 평론가들에게  했다는 한 마디, "다들 왜 이러셔" 평론가들이 좀 오버했다는 뜻일까?

  이 책은 800페이지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만큼이나 읽을 거리가 다양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비싼 돈 주고 산 책이 페이지가 술렁술렁 넘어가버리면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책을 샀을 때 내용은 그렇다치고(?) 책이 두꺼우면서 활자가 촘촘히 박혀있어야 돈 값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물론 이 책은 분량만 돈 값을 하는 책이 아니다. 어느 분의 리뷰처럼 종합선물세트나 다름없는 다양한 읽을거리가 가득 실려 있다. 다른 분들의 리뷰처럼 사실 마니아를 위한 SF란 제목은 어울리지 않고 초보자를 위한 입문서정도로 생각하면 더 어울릴 것 같다. 25편이나 되는 작품을 다 소개하기는 무리고  순전히 나의 관점에서 인상깊었던 몇몇 작품만 소개하면...

  먼저 SF라는 형식을 빌려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다룬 소설로 "채소 마누라", "째째파리의 비법", 등이 있다. 채소 마누라는 한 남자가 아내를 얻기 위해서 종자회사에서 채소 씨앗을 구해서 집앞에다 심는다. 씨앗은 싹을 틔우고 연하고 푸른 살갗을 지닌 여자의 모습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남자는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채소 마누라를 강제로 범하고 자신의 집 안에 줄을 묶어 놓고 가둔다. 말도 못하며 순종적이며 여리고 푸른 채소마누라는 항상 창밖만 바라보고 있다. 어느 날 남편은 자신의 집을 찾아온 남자들을 채소마누라가 유혹했다면 매질을 시작한다. 여린 살갗에서는 녹색물이 나오기 시작하고 채소마누라는 여린 팔로 남편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남편의 몸은 힘없이 축 늘어지고 채소마누라는 자신을 묶어놓은 줄을 푼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소설이었다. "째째파리의 비법"은 훨씬 더 충격적인 소설이다. 콜롬비아에서 생물을 이용한 해충 퇴치 프로그램을 연구하던 앨런이 아내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아내는 공포에 떨며 편지를 쓰고 있다. 곳곳에서 여성을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집단적인 광증에 사로잡힌 남자들이 여자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며 심지어는 여자들의 시체를 묶어 뗏목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남자들은 이 세상에서 여자들이 없어져야 자신들이 깨끗해지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앨런은 아내와 딸에 대한 걱정 때문에 돌아가는 공항에서 아내와 사랑을 나누는 상상에 빠지고 되고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아내를 칼로 찌르는 환상에 빠지게 된다. 앨런도 그 광적인 질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남성의 성적인 충동과 폭력성을 아주 충격적인 방법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변하는 달" 오늘밤은 유난히 달이 밝게 빛난다. 유난히 밝은 달빛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는 여자 친구 레슬리에게 전화를 걸고 텔레비전을 켠다. 그러나 화면은 지지직거리며 점멸할 뿐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달빛은 더 밝아졌다. 나는 다시 레슬리에게 전화를 걸고 레슬리를 찾아간다. 나는 환희와 불안이 뒤섞인 상태에서 레슬리와 사랑을 나누고 레슬리와 함께 거리로 나온다. 들어간 가게들에서 사람들은 조용하게 음악을 감상하거나 누군가는 종말이 다가옴을 외치고 있다. 나는 레슬리도 이미 뭔가 불길한 일이 닥치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태양이 신성이 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미 지구 반대편에서는 아무도 살아남은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을 맞기 위해 음식을 사들고 레슬리의 아파트로 다시 향한다. 비가 퍼붓고 하늘에서 자갈이 떨어지고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하지만 뜨겁게 가열된 증기파는 발생하지 않았다. 온세상을 찢어발길 듯한 충격파는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뜨거운 바람과 폭풍우가 일어나고 있다. 천둥 번개가 연달아 치고 있다. 그렇다면 태양이 신성으로 변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최악의 플레어가 발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곧 태양이 뜨면 알게 될 것이다. 다시 태양이 예전의 모습이 되돌아올 지... 엄청난 홍수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이 높은 아파트에서 사온  얼마간의 음식으로 버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 오멜라스는 아주 평화롭고 누구나가 행복하게 사는 곳이다. 그런 오멜라스에 여름 축제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한다. 하지만 오멜라스에 있는 아름다운 건물 중 한  지하 방에는 정신 박약인 어린아이가 갇혀 있다. 동물처럼 자신이 싼 배설물 위에서 벌거벗은 채 사람들이 건네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며 우우 짐승같은 말만 내 뱉는 아이가 있다. 사람들은 아이를 구경할 뿐 친절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다. 처음 본 사람들은 이 아이를 보면서 충격을 받고 아이의 고통에 슬퍼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 뿐이다. 이 아이를 구해줄 생각은 하지 않는다. 만약 아이가 이 지하방으로부터 나온다면 자신들이 오멜라스에서 누리는 행복이 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꼭 필요하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 오멜라스 사람들 전체를 불행에 빠뜨릴 수는 없다.

  "두 번째 종류의 고독" 명왕성에서 수백만 마일 떨어진 곳에 우주 정거장이 있다. 태양도 다른 별들처럼 아스라한 점처럼 보이고 머리 위에도 발밑에도 무수한 별들만 가득하고 밤만 계속될 뿐인 이 곳에서 지구의 시간으로 4년 동안을 보냈다. 스스로 선택한 고독감을 매순간 느끼면서. 한 달에 몇 번 꼴로 찾아오는 우주선을 진공에 뚫린 구멍을 통해 저 깊은 우주로 보내는 일을 하면서. 이제자신과 교대할 다른 사람을 실은 우주선 카론이 이곳으로 4개월 전에 떠났다는 걸 알고 나는 매순간 그 우주선을 기다린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 교대자를 태운 우주선을 파괴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카론 우주선을 본 순간 두려워졌던 것이다. 지구에서 다시 살아가게 될 삶이... 이제 나는 4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 이 막막하고 별과 어둠 뿐인 우주 공간에서 매순간 닥치는 고독과 싸우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두껍질 속의 우주 까치글방 187
스티븐 호킹 지음, 김동광 옮김 / 까치 / 200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제목이 호두 껍질 속의 우주 일까? 우주가 호두껍질처럼 울퉁불퉁하게 생겼고 유한하다는 뜻일까? 책을 끝까지 읽어도 제목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역자 후기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우리 우주의 역사가 인간과 같은 지적 존재를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매끄럽지 않고 호두껍질처럼 약간 울퉁불퉁한 표면의 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 또한 이해불가능 수준.

 그냥 나 같이 대중물리학 책 몇 권 정도가 물리학에 관한 지식(?)의 전부라면 책을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읽는 건 포기하자. 멋진 그림과 도판들이 이해를 돕는다고 하지만 그 도판들조차도 나의 지식 수준을 비웃게 한다. 물론 그림은 한결같이 멋지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시간의 역사"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호킹의 책이 내가 읽었던 다른 대중서에 비해 어렵다는 느낌이다. 그건 이 책이 물리학에 관한 기본 지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 읽을 거라는 판단하에 쓴 책이 아닐까 싶게 물리학에서 등장하는 여러 용어나 개념에 대한 설명을 거의 하지 않고 넘어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기본적인 설명이 없기 때문에 책의 분량이 아주 짧다. 두 번 읽었는데 처음에는 며칠 걸려서 읽었고, 두 번째는 이틀이 채 걸리지 않았다. 빨리 읽는다고 해서 이해가 잘 된 건 아니었고 익숙한 용어여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냥 넘어갔기 때문이다.

 대중과학서를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내가 우주를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거고 그저 과학자들의 연구가 어느 단계에 와 있나 정도를 구경하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평행우주" 같은 최신의 물리학 책을 읽은 후에 읽은 탓인지 전에 읽었던 내용을 한 번 더 확인하는 정도였다.

  이 책 또한 일반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시간 여행 같은 부분을 다루고 있는데 저자는 미시적 세계에서의 시간 여행은 가능하지만 거시적 세계에서의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유전공학을 이용한 향상된 인간을 만들려는 시도가 누군가에 의해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고 체외에서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지적능력이 높은 새로운 인류가 출현할 수도 있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미래의 우주 여행은 그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인간에 의해 가능하거나 아주 복잡하고 발달된 기계에 의해 가능할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브레인 세계(고차원 시공 속에 있는 4차원 표면 또는 브레인)라는 낯선 개념을 다루고 있다. 브레인 세계 가설에서는 나선 은하의 바깥쪽에 있을 거라 추정하는 암흑물질을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여분의 브레인 세계라고 설명한다. 이 다른 차원의 세계는 빛이 전파되지 못하므로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중력은 전파될 수 있으므로 그 중력이 나선은하의 회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브레인 세계에서는 홀로그래피가 중요한 원리로 등장한다. 저자는 말한다. 3차원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정보가 홀로그래피 이미지로 2차원에 저장되는 것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4차원(공간의 3차원과 시간의 1차원)표면은 5차원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한 것인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겐지 모노가타리 - 일본 고전문학의 최고봉 e시대의 절대사상 14
임찬수 지음 / 살림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겐지 모노가타리,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면서도 전 54권으로 된 방대한 분량에 엄두가 안나서 결국은 이 책을 먼저 손에 잡았다. 이 책은 겐지 모노가타리을 읽기 전 한번 쯤 봐두면 좋은 입문서 정도라고 하면 좋겠다. 1부는 겐지모노가타리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 작품 속 주요 등장인물, 주제, 겐지모노가타리와 다른 모노가타리와의 영향관계, 이 작품이 지금까지 어떻게 일본 문학등 여러 분야에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지 등을 설명하고 있다. 2부는 각권의 내용을 짧게 줄여서 담아 놓았는데 빠진 권도 있고 해서 줄거리를 이해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있다. 제대로 된 맛을 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전편을 다 읽어야 할 것 같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겐지 모노가타리는 무라사키 시키부라는 궁중에서 일하던 중인 계급의 여성에 의해 대략 1000년 전에 만들어졌다. 이 작품이 쓰여질 당시에는 한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일본의 가나문자가 발달을 해서 한문을 모르던 여성들에 의해 많이 읽히고 씌어졌다. 모노가타리(동식물이나 자연을 의인화한 이야기, 남녀 연애 이야기, 세상이야기, 옛날 이야기 등을 소재로 쓰여졌다.)는 원래는 남자들에 의해 여성의 읽을거리 정도로 쓰여졌는데 여성들이 가나문자를 통해 읽고 쓰기가 수월해지자 여성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읽혀지게 되었고 겐지모노가타리는 그 당시에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많이 읽혔다고 한다. 물론 남자들은 이런 류의 읽을거리는 여자나 읽는 이야기라 여겼고 대부분 한문을 통해 정형화된 글을 썼다. 이런 배경이 조선 시대에 남자들은 대개 한문만을 고집하고 여성들에 의해 수필이나 기행문, 가사 등이 쓰여진 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기는 하지만. 역시 우리말에 맞는 글이 얼마나 중요한가 실감하는 대목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문학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일본문학이 몇 번이나 노벨상을 받은 저력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여기 나오는 인물 중에는 실제 천왕을 모델로 한 것도 있고, 주인공인 히카루 겐지는  실존 인물이 투영되어 있다고 볼 때 이 작품이 쓰여질 당시 일본 사회나 궁중의 모습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주인공 히카루 겐지는 천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신하로 강등되었다가 권력있는 가문과 혼인을 하면서 온갖 영화를 누리고 다시 반대파가 권력을 잡자 교토를 떠나 외지를 떠돌다 다시 교토로 돌아와서 옛영화를 되찾지만 가족간의 갈등 속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후반부에는 호적 상으로는 겐지의 자식이지만 아내인 온나산노미야와 다른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가오루가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중요한 여성 등장인물로는 겐지의 어머니상이자 영원한 여성상인 후지쓰보(아버지의 후궁이다.), 냉담한 본처 아오이노우에, 후지쓰보를 닮은 무라사키노우에, 원령(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이 되어 정적을 죽이는 미야스도코로, 겐지와 똑같은 불륜을 저지른 아내 온나산노미야등이 있고 남성 인물로는 후지쓰보와 겐지와의 불륜의 자식인 레제인, 겐지의 인과응보라 할 수 있는 가오루 등이 있다. 

  뭐 쓸데없는 이야기긴 하지만 일본 만화를 보면 원령이라든지 악령를 물리치는 스님, 음양사 등 황당하면서도 기이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런 것들이 일본 문학이나 일본의 생활에서 비롯된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밥 낮은산 작은숲 1
김중미 지음, 김환영 그림 / 낮은산 / 200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괭이부리말 이후 김중미 작가의 작품이라면 어떤 이야기겠다 감이 잡힌다. 예상대로 우리 주변의 가난한 아이들 이야기다. 손에 잡히지 않는 환상의 세계도 아니고,  여름날 꽃밭처럼 싱싱하고 예쁜 이야기도 아니고, 내 집 건너 누구네 집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싶은 참 사실적인 이야기다. 너무 흔해서 이젠 식상해지기까지 하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그런 이야기다.

  마음씨 여리고 가난한 할아버지와 겉으로는 억세보이지만 속은 여린 할머니와 가끔 동생이 귀찮기도 하지만 동생을 무지무지 사랑하는 철이와 아직 갖고 싶은 것 사달라고 때쓰고 이따금 할아버지 안마도 해드릴 줄  아는  송이가 이야기속 인물들이다. 이야기속 인물이라기보다는 그냥 우리 옆집에 사는 사람들 같다.

  송이는 곰돌이 푸 가방을 갖고 싶어하고 학교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가끔 혼자 심심하거나 배고플 땐 밥풀 냄새나는 종이밥을 씹기도 하면서. 한편 어른스러운 철이는 걱정이다. 할머니가 송이를 평소 할머니가 다니던 절에 맡기기로 결심한 것 같아서. 할머니 말씀이 그곳의 스님이 송이 공부도 시켜주고 먹을 것도 주고 하니까 여기서 힘들게 사는 것보다 나을 지도 모른다고. 드디어 송이를 데려가기 전날 할머니는 송이가 그렇게 갖고 싶어하던 곰돌이 푸 가방을 사가지고 온다. 송이는 영문도 모른 채 그 곰돌이 푸 가방에 옷가지들을 챙겨넣고 할머니를 따라 집을 떠난다. 송이가 떠난 후 할아버지는 식사도 잊은 채 지내고 철이는 혹시나 송이가 돌아오지 않을까 골목을 서성인다. 며칠 후 정말로 송이는 곰돌이 푸 가방을 등에 멘 채 할머니와 함께 돌아온다. 힘들지만 가족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그 후, 아마 철이는 여전히 때로는 송이를 귀찮아 하면서도 등하교길을 지켜줄 것이고 송이는 아직은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사달라고 떼를 쓰겠지. 할머니는 아픈 다리로 여전히 화장실 청소일을 할 것이고, 마음 여리고 몸까지 약한 할아버지는 송이 신발 가방이며 군것질거리 등을 사주기 위해 시장에 싸구려 생필품을 파는 좌판을 벌여놓고 웅크리고 앉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날에는 송이가 동그랗게 주먹을 말아쥐고 할아버지 등 뒤에 서서 어깨를 두드리고 있겠지. 이젠 종이밥은  먹지 않겠지. 아주 가끔 먹는 거 말고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친구가 마녀래요 - 2단계 문지아이들 6
E.L. 코닉스버그 지음, 윤미숙 그림, 장미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며칠 전 아이들과 읽은 책은 개정판이었는데 여긴 아직 새 책을 올리지 않은 모양이다. 새 책의 표지 그림이 훨씬 좋은 것 같다. 그림에 흑인 여자 아이와 백인 여자 아이가 그려져 있는데 자신이 진짜 마녀라고 말하는 제니퍼가 흑인이라는 언급이 없어서 얘가 흑인인가 하고 그림을 보게 된다. 제목부터 진짜 마녀가 나올 것 같진 않았다. 말괄량이 삐삐처럼 자전거를 타고 하늘을 날거나 말 한 마리를 들어올릴 만큼 괴력을 가진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다.) 엉뚱한 아이가 나오는 좀 재미있는 괴상한 아이에 관한 이야길까.   

  예상대로 진짜 마녀 얘기는 아이다. 오래 전부터 외톨이로 지냈을 것 같은 제니퍼라는 아이와 전학을 오면서 친구가 아직 없는 엘리자베스라는 아이가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을 마녀와 견습생이라는 엉뚱한 놀이를 통해 재미 있게 그려간다. 제니퍼는 자신이 마녀라고 말할 뿐 가족이나 개인적인 일은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제니퍼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게 없다. 아버지가 식물의 마법사라는 정도밖에는. 독자들은 나중에야 알게 되지만 학교에서 유일한 흑인인 제니퍼는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려 하기보다는 일주일에 한 번 수레가득 책을 빌려가 많은 양의 책들을 읽고 스스로 마녀라고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다른 아이들과 자신을 차별화시킨다. 새로 전학을 온 엘리자베스는 그런 제니퍼의 행동에 매료되어 제니퍼를 진짜 마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제니퍼의 마녀 견습생으로 들어가게 된다. 마녀가 되기 위해 견습생이 해야할 일은 다양하다. 잠자기 전에는 노래 부르지 않기, 금음하기(제일 좋아하는 음식 먹지 않기, 엘리자베스는 캔디, 제니퍼는 수박), 날계란 먹기, 생양파 먹기, 마녀나 마법사들의 필독서 읽기 등등. 그리고 진짜 마녀(제니퍼)를 위해서는 1주일은 매일 삶은 계란 갖다 놓기( 제니퍼와 엘리자베스가 처음 만났던 나무 위에) 등등.

  드디어 마녀임이 확실해지는 마지막 관문인 마법을 부리는 스프를 만들기로 한다.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기, 동물로 변신하기 등이 있는데 그 중 날 수 있는 마법을 부리는 스프로 결정을 보았다.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제니퍼는 마법에 효력이 있는 주문 알아오기, 스프에 넣을 두꺼비 준비하기 등이고 엘리자베스는 마법 스프에 넣을 손톱 발톱, 사자 젖 기타 등등. 이제 가마솥 가득 스프가 끓기 시작하고 드디어 제니퍼가 구해온 두꺼비를 넣을 차례가 되었다. 제니퍼는 두꺼비를 든 두 손을 높이쳐들고 넣을 준비를 하고 있다. 원래는 제일 처음에 두꺼비를 넣어야하는 거라고 제니퍼가 마법 비법을 알려 줄 때 말했었다. 엘리자베스는 안돼, 소리를 지른다. 그동안 그 두꺼비와 친해졌기 때문이다. 두꺼비만 넣었으면 진짜 마법을 부리는 마녀가 될 수 있었을텐데...

  그 사건 후 엘리자베스는 심하게 앓고 창밖을 보다 마주 보이는 넓은 농장에 있는 유리 온실을 보며 비로소 제니퍼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다. 아직 봄도 아닌데 제니퍼가 두꺼비를 구해 온 일, 크리스마스 금음 기간에 나무 밑에 수박이 놓여 있던 일, 아버지가 식물의 마술사라 했던 일 등등... 제니퍼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 엘리자베스는 이제 제니퍼의 견습생이 아닌  진짜 친구 된다. 이제 제니퍼도 마녀인 척 할 필요가 없고 엘리자베스도 마녀가 될 필요가 없다. 원래 가진 모습대로 친구가 되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