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전체 - 개정신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지음, 김용준 옮김 / 지식산업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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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막 접하기 시작한 양자역학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 더 나아가 서구 과학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우리나라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머물러 있을 때 서구는 이미 우주의 비밀을 풀기 위한 과학적 노력을 끊임없이 경주하고 있었고 뉴턴의 역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에 이르는 길을 한 단계 한 단계 밟아가고 있었다. 과학적 업적이란 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보면 우리의 물리학 수준은 어디에 와 있는지 이미 수백년 전에 먼저 출발한 서구의 과학적 진보를 따라 잡을 수나 있을 것인지 아득해지기도 한다. 과학분야에는 문외한인 나로서는 쫓아가려는 노력을 하고나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오래 전에 읽어야지 했던 책이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처음엔 내용에 집중할 수 없었고 두 번째엔 내용이 이해되었다기보다는 책 속의 장면들이 좀더 생생하게 다가온 느낌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물리학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런 장면들에선 내가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는 듯 설레기도 했고 천재적인 학자들이 그들의 학문 뿐만 아니라 철학적, 정치적인 토론을 나누는 장면에선 세상을 이렇게도 진지하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구나. 그래서 그들이 위대한 학자들이구나 싶었다. 뭔가를 이루려면 이 정도의 진지함과 성실함과 세상에 대한 안목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난 얼마나 내가 성취하고 싶었던 것을 위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아파했나 돌아보기도 하고 후회되기도 했다.

  2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첫 장은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앞두고 친구들과 산행을 하면서 원자의 상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들로 시작된다. 음악에도 소질이 있었고 한때 수학을 전공하리라 마음 먹었던 하이젠베르크는 조머펠트 교수를 만나면서 물리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는데 이 책은 물리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회상하면서 쓴 글이다. 대화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덴마크의 물리학자인 보어와 날카로운 조언을 해주던 친구였던 볼프강 파울리와의 대화였다. 원자의 입자로서의 특성과 파동적 특성에 대해서, 원자핵을 구성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여러 소립자들에 대해 토론하던 내용들을 자세히 전해줄 순 없지만 이론물리학자들이 하는 연구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물리학자들이 수학적인 방정식을 통해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소립자의 존재를 예측하고, 자연의 원리를 밝히는 완벽한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다른 학자들과 열렬한 토론을 벌이는 장면, 기존의 절대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뒤엎고 상대성 이론을 정립한 대학자인 아인슈타인조차도 양자이론의 통계학적인 특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 보면서 양자역학이 기존의 개념을 완전히 뒤엎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란 걸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범위내에서 이야기해보면 뉴턴의 역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태양계 같은 우주적 규모에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라면 20세기 초에 태동한 양자역학은 미시적 규모에 적합한 이론이다. 원자단위보다 더 작은 미시적 세계는 우리가 관찰하는 자연현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므로 지금까지(20세기초 양자론이 막 태두될 당시)의 언어로는 그 모습을 제대로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자연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실증주의 철학자들과 대립하게 되고 그들과 진지한 토론을 벌여나가는 장면도 인상깊었다.

  또 이 책을 통해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인의 국민성이나 전쟁이 일어날 당시의 독일의 분위기 등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1930년대부터 히틀러의 영향력이 커지고 젊은이들이 히틀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되는데, 이런 분위기가 독일인의 국민성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젊은이들이 단체를 만들어 산행을 하면서 여러 문제들에 토론을 하고 음악을 즐기는 그런 모습들이 참 낭만적이고 이상적이다 싶다가도 하이젠베르크와의 대화 중에 보어가 했던 말처럼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가치보다는 집단속의 한 사람으로서 규율이나 질서를 중시하는 국민성이 히틀러라는 광기어린 인물을 만나 폭발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독일국민들이 전쟁을 향해 치닫는 히틀러에 대해 얼마나  저항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하이젠베르크조차도 전쟁이 일어나는  건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쟁 전 동료학자들이 독일을 떠나가는 걸 지켜보면서 하이젠베르크는 연장자인 막스 프랑크를 찾아가  학자로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서 막스 프랑크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의 발발을 한 개인이 막을 수는 없는 일이고, 독일에 남아 있는 한 어떤 형태로든지 정부 당국과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 일이 전쟁 후에는 비판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전쟁 후 독일의 재건을 위해서 이 땅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 후로 하이젠베르크는 전쟁에 질 걸 알면서도 독일에 남았고 실제로 전쟁 발발 직후 정부의 명령에 따라 원자에너지를 기술적으로 이용하는 연구에 다른 물리학자들과 참여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그 당시에는 원자에너지를 실제로 무기로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물리학자들도 생각하지 못하던 그런 분위기였는데,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물리학자들은 만약 당국이 원자의 에너지를 무기로 만들라는 명령을 내리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진지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연구결과 하이젠베르크를 위시한 그 당시 독일의 물리학자들은 원자핵무기를 기술적으로는 만들 수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덴마크에 있는 보어를 찾아가 이 일에 대해 의논을 해보려했지만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하고 독일로 돌아온다. 당시 그 연구에 참여했던 물리학자들은 원자기술을 무기로 이용하기에는 독일 정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규모의 비용이  들거라고 예측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원자탄을 만들라는 지시는 내려지지 않았다. 만약 그런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원자폭탄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원자폭탄이 독일에서 먼저 만들어졌더라면...

  하이젠베르크와 동료 물리학자들은 바다 건너 미국에서 원자폭탄이 만들어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물리학자들이 그런 일을 위해 협력하리라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그들이 독일이 패한 후 영국에 포로로 잡혀 있을 때 일본 나카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믿지 못했을 정도였고, 그곳에 우라늄의 핵분열을 처음으로 밝혀낸 오토 한이 있었는데 주변 물리학자들은 그가 충격으로 자살하지나 않을까 걱정했을 정도였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건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했는데 하이젠베르크의 말대로 이미 전쟁에 진 것이나 다름없는 일본에 그것도 민간인들이 사는 곳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건 힘의 과시에 불과했고 우리의 입장에선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는 그 순간 일본을 전쟁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만들어 버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었다. 그 때문에 일본이 자신들 또한 피해자라고 하는 뻔뻔한 말을 지금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후기를 대충 마무리하면서 이 책 속의 모든 것이 하나도 틀림없는 진실일까. 혹시 한 과학자가 지난 날의 자신의 행위에 대해 합리화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히틀러의 행동을 막기 위해 지식인들이 성명이라도 발표해야 한다는 다른 학자들의 말에 그런 작은 행동 하나가 아무것도 세상을 바꿀 수 없고 오히려 악용될 뿐이라는 태도에서 이 정도의 위치에 있는 학자라면 목숨을 무릅쓰고라도 양심적인 행동을 해야하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리고 하이젠베르크 자신의 말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미치오 카쿠가 쓴 '평행우주' 라는 책에는 보어와 주고 받았던 편지를 보면 하이젠베르크는 히틀러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고, 원자폭탄을 만들라는 히틀러의 지시를 의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보어를 찾아간 게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그를 끌어들어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독일이라는 한 부분만을 생각하지 않은 세계라는 전체를 생각한 진실된 학자였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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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정신과학총서 2
폴 데이비스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198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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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는 신에 의해 창조되었는가? 이 책의 결론은 아직 우주가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증거도 그렇지 않다는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는지를 증명하는 책도 그 반대를 증명하는 책도 아니다. 지금까지 물리학자들이 발견한 지식을 통합해서 우주의 기원, 생명의 기원, 멀리는 우주의 종말까지 두루두루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아직은 과학의 지식만으로는 우주 창조의 원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과학으로 어떤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우주를 신이 창조했다고 설명하는 건 자기모순에 빠지는 결과만 낳을 뿐이다. 과학은 이제 막 우주의 비밀을 엿보기 시작했고 종교보다는 과학이 신을 발견하는데 더 확실한 길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종교인들은 우주 기원의 원인이 하느님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원인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주의 존재 원인은 바로 하느님(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은 원인이 없어도 물질이 탄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무에서도 물질이 생겨나올 수 있음을 양자역학이 증명했듯이 우주도 신의 설계와는 상관없이 무에서 우연에 의해서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종교인들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이런 주장을 믿는 편이다. 현대물리학에 관한 책들을 읽다 보니 그런 관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종교인들과 몇몇 과학자들이 말하는 현재 상태 이대로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란 너무 밋밋할 뿐만 아니라 생명의 본질과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우주란 생명체와는 다른 개념이라고 반박할지 모르겠지만 우주 또한 생명체처럼 탄생과 죽음을 겪는 존재라는 게 훨씬 자연스러운 이론으로 들린다. 현대물리학자들 또한 대부분 이런 주장에 동의하고 있지만. 원자만한 작은 것에서 출발한 우주가 시간과 공간을 함께 토해 내면서 별을 만들고 은하를 만들고 생명을 만들고 끝내는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생각해보면 참 장엄하다. 엄청난 팽창 끝에 모든 별들이 내부의 연료를 다 태우고 거대한 동결 상태로 종말을 맺을 건지, 아니면 다시 원자상태로 수축해 들어가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새로운 우주를 탄생시킬 건지, 혹은 끝없이 팽창을 계속해 갈 건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 어마어마한 시간의 거리를 생각해보면 나란 얼마나 작은 존재인가 새삼스레 깨달아지기도 한다. 

  우주의 종말을 지켜보는 지적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그 생명체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을 거란 것이다. 지구 상에 나타난 수많은 생명체가 멸종했듯이 긴 지구의 시간에서 인간 또한 분명히 멸종이라는 자연현상을 겪을 것이며 끈질긴 적응 끝에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분명 지금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진 않을 거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태양의 폭발과 함께 지구와 태양계 모두 태양 속으로 사라지고 말 테니까. 아니면 과학 소설처럼 태양이 폭발하기 전에 지구 탈출에 성공해서  태양계와 비슷한 조건을 가진 행성에 터를 잡고 계속해서 우주를 관찰하고 이론을 발전시켜 갈 것인가? 아주 먼 과거의 과학자들이 예언했던 대로 우주가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과학자들이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과거 신학자들의 생각을 비웃듯이 그 이론들은 이미 폐기처분된 상태일까?

  우주의 기원에도 종말에도 인간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인간은  내 존재의 기원을 찾아서 혹은 그 반대를 향해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지며 답을 구하려 한다. 정말로 우주는 몇몇 과학자들의 말대로 언젠가 자신의 존재를 찾고 우주의 원리를 발견하기 위해 애쓰는 생명체가 발견해주기를 바라며 설계되어진 것인가. 생각해보면 지적인 생명체 없이 그저 물질만으로 존재하는 우주란 거대한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양자역학에서 관찰자란 우주를 있게 하는 중요한 존재다. 정말로 우리가 있기 때문에 우주가 있는 것일까, 혹은 우주가 존재함으로써 우리가 있는 것일까? 과학자들은 무한한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원자보다 작은 단위의 세계를 유영하고 있다. 그 안에서 우주의 기원을 신의 역할을 찾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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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ock1 2023-08-22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결론은 모호함이 아니라 당연할 수 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겁니다. 또한 관측되는 대상이 미시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에 대한 양자역학에서는 우리가 당연시하는 인과율이 적용되지 않는 환경이라는 것과 이것 또한 우리의 한계라는 것을 나타내는 겁니다. 그러나 저자는 원인이 없이 저절로 생기는 우주를 생각할 수 있으나 이것 역시 양자역학을 설명하기 위한 확률의 법칙으로 나타남을 이야기합니다. 이 책 제목이 물리학을 통해서 발견한 창조주이듯이 그 내용에 동의 하든 하지 않든 이 책의 결론 또한 물리학을 통해서 창조주를 발견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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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으로 튀어'를 먼저 읽은 탓인지 그 작품만큼 흡인력 있게 읽히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장편이라하기에는 역부족인 듯한 형식 탓인 것 같다. 다섯 편으로 나누어진 각 파트마다 강박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뾰족한 걸 무서워하는 야쿠자, 낯선 파트너에게 손을 내밀 수 없는 공중그네 곡예사, 장인의 가발만 보면 벗기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는 정신과 의사, 송구 공포증에 시달리는 3루수, 새 작품을 쓸 때마다 등장인물이 전에 써 먹었던 인물이 아닐까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인기 여류작가가 등장한다. 그들은 우연히 어두컴컴한 지하에 있는 이라부 종합병원 신경과에 오게 된다. 그곳에서 끝내주는 몸매의 간호사가 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장면을 구경하는데 희열을 느끼는 듯한 엉뚱하고 뚱뚱한 정신과 의사 이라부를 만나게 된다. 이라부 만큼 독특한 인물인 매 회마다 강조하는, 가슴골이 훤히 드러보이는 간호사 유니폼을 입은 F컵의 간호사도 등장한다.

  겉으로 보기엔 초딩 수준의 정신연령을 가진 의사가 하는 처방이라고는 무조건 비타민 주사 놓기, 병원을 찾아온 환자들에게 떼쓰기 (예를 들면 공중그네를 배운다고 다짜고짜 찾아간다든가, 자기가 쓴 말도 안되는 작품을 책을 내게 해달라고 떼쓴다든가)가 전부다. 찾아오는 환자도 가뭄에 콩나듯 하다보니 모처럼  찾아온 환자들과 노닥거리는게 전부이다. 그렇게 환자들이 하는 일들을, 하고 싶어하는 일들을 함께 하다보면 그들이 갖고 있던  강박증은 조금씩 정도가 약해지고 환자들은 스스로를 치료하게 된다.

  제일 처음 고슴도치가 제일 재미있었고 나머지는 뻔히 보이는 설정이라 지루한 면도 있었다. 일본 소설답다, 아니 딱 일본소설이다 싶은 캐릭터와 줄거리들이 좀 식상하기도 하고... 사실 '남쪽으로 튀어'는 모처럼 정말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었는데. 그때는 이게 일본소설이지 하면서 재미있어 했는데.  가벼운 읽을 거리로는 추천할 만하다.

  근데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이 책이 '독서치료' 코너에 비치되어 있었다. 사실 이 책이 그 코너에 적당한 책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히히거리며 읽으면 그만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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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엘리자베스 키스 외 지음, 송영달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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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 여성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도 무척이나 흥미로웠지만 그 전에 바느질을 배우고 사교춤을 배우는 평범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던 대로 그림을 그리며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일생을 산 그녀의 삶이 그녀가 그린 조선의 그림보다도 멋져 보였다. 8,90여년 전의 영국 여성도 조선의 여성 못지 않게 수동적인 삶을 살았을 테고 그런 삶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여행하면서 온전한 한 인간으로 자유롭게 살아간 한 여성을 책 갈피갈피에서 보게 된다. 일본 판화가가 그린 그녀의 초상을 보면 대단히 지적이고 반듯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녀의 그런 품성이 조선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찾게 한 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그림과 판화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진 해설들 그리고 여동생 엘스펫 키스의 글로 꾸며져 있다. 군데 군데 번역자의 해설과 함께. 결혼한 여동생의 초청으로 일본에 체류 중이던 엘리자베스 키스는 여동생인 엘스펫 키스와 함께 삼일운동이 일어난지 한 달도 안 되는 봄에 일본을 떠나 조선으로 여행을 오게 된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동안 그들의 눈에 비친 조선의 풍경은 마치 조바위를 쓰고 서 있는 한국 여인의 차분한 얼굴 마냥 평안하고 조용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조선인들을 감시하는 일본 경찰들을 목격한다. 엘리자베스와 여동생은 선교사들이 머무는 곳에서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안내를 받아 스케치할 조선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조선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조선 사람들의 모습과 조선의 풍경, 일상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남긴다.

  일본에서 이미 몇 년을 산 그들이지만 그들은 일본인의 시각이 아닌 그들만의 시각으로 조선사람들을 그리고 글을 쓴다. 아마도 그들이 조선 사람들과 풍습에 대해 따뜻한 시각을 갖게 된 건 함께 지낸 선교사들의 시각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다. 사실 그 당시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종교를 떠나서 조선 독립을 지지했고 그 당시 조선 사람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건 사실이다.

  화가 엘리자베스는 다양한 조선 사람들을 발견한다. 색동옷을 입고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높다란 언덕에서 연을 날리는 아이들,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우는 아이들, 무거운 빨랫감을 이고 등에는 아이까지 업은 여자들,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여자들, 대문가에 앉아 한가롭게 담배를 피우는 노인들, 좁은 방에 마주 앉아 학문을 논하는 노인들, 바느질 하는 여자, 양반집 규수, 고문에도 불구하고 꼿꼿한 조선 여인들,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면서도 꼿꼿한 조선 청년들, 꼼짝도 할 수 없는 감방에서도 의연한 조선의 여학생... 화가의 눈에 조선 사람들은 키가 크며 의젓하고 항상 꼿꼿한 자세를 가지면서도 온화하다. 조선 여인들은 온순한 듯 하지만 이들에게 새로운 문물을 강요한다든지 그들의 생각이나 생활 신조를 바꾸려든다면 차라리 서울을 둘러싼 산을 허물어 옮기는 것이 더 쉬울 만큼 완고한 구석이 있다고 말한다.

  한편 화가는 조선의 나태한 면도 발견한다. 식사 후에는 늘어지게 아무곳에서나 한숨 잔다 든지, 아무데나 침을 뱉는다든지 하는 좋지 못한 생활 습관들 말이다. 화가의 눈에 조선 여성의 삶은 너무 힘겨워 보인다. 대를 잇기 위해서 열번이나 유산을 하고도 또다시 임신을 하고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빨래감을 다듬느라 다듬이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가정 생활의 책임은 온전히 여자 혼자 감당해야 할 몫으로 비쳐진다. 아마도 그런 의무를 벗어난 여성이니 조선 여성의 삶이 훨씬 더 고달파 보였으리라. 사실이 그랬지만.

  그녀의 그림들은 이런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그림을 그렸는데도 조선적인 체취가 많이 배어난다. 서양인들 눈에 조선사람들은 모두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로 보일 텐데도 역시 화가 답게 인물마다 개성이 느껴진다. 얼굴만 봐도 조선 사람이구나 싶게 조선인만이 지니고 있는 표정이랄까 눈매가 느껴진달까. 그녀의 느낌대로 그가 그린 조선 사람들은 유약해 보이기보다는 강인하고 의젓해 보인다. 책을 읽는 동안 안타까웠던 건 그녀가 서울에서 보았던 두 아름다운 대문 중 하나가 불타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그린 동대문을 보면서 자꾸 숭례문이 불타 주저앉던 장면이 겹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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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 13세기에서 21세기까지 그림을 통해 읽는 독서의 역사
슈테판 볼만 지음, 조이한.김정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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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책이란...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짧은 도피가 아닐까 싶다. 책을 들여다 보고 있는 그 순간 세상은 내 시야로부터 멀어지고, 나 자신조차도 나로부터 멀어지고 오직 책만이 내가 보는 세상이 되며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높은 지대에 지은 고층 아파트라 주말동안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채 아파트 거실에서 제법 멋진 산능선과 하늘만 바라보다 월요일 출근을 위해서 밖으로 나가면 갑자기 현실세계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하는데 바로 책을 덮는 순간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고 한다.

  한 권의 책조차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부터 책이 소비품이 되어 돌아서면 쓰레기나 다름없이 버려지는 시대까지 책과 함께 한 여성의 이야기를 저자는 그림과 함께 들려준다. 책을 읽고 있거나, 막 책 읽기를 마쳤거나, 책을 옆에 두고 있는 여성들의 그림을 작가는 자신의 느낌대로 평가하고 해석한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별 부담없는 읽을 거리가 될 것 같다.

  여성에게는 고작 성경 읽기만 허락되던 시절부터 이제는 여성이 책을 쓰는 시대가 되고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책을 소비하는 시대가 되기까지 수백 년 아니 수천 년이 걸렸다는게 새삼스럽다. 책조차 공산품처럼 대량생산되고 소비되고 버려지는 시대에 살다보니 모든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된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책이라는 포장 속에 너무 쏟아대는 어지러운 생각들에 질려가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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