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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엘리자베스 키스 외 지음, 송영달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외국 여성의 눈에 비친 조선의 모습도 무척이나 흥미로웠지만 그 전에 바느질을 배우고 사교춤을 배우는 평범한 여성으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자신이 원하던 대로 그림을 그리며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일생을 산 그녀의 삶이 그녀가 그린 조선의 그림보다도 멋져 보였다. 8,90여년 전의 영국 여성도 조선의 여성 못지 않게 수동적인 삶을 살았을 테고 그런 삶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여행하면서 온전한 한 인간으로 자유롭게 살아간 한 여성을 책 갈피갈피에서 보게 된다. 일본 판화가가 그린 그녀의 초상을 보면 대단히 지적이고 반듯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녀의 그런 품성이 조선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찾게 한 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그림과 판화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진 해설들 그리고 여동생 엘스펫 키스의 글로 꾸며져 있다. 군데 군데 번역자의 해설과 함께. 결혼한 여동생의 초청으로 일본에 체류 중이던 엘리자베스 키스는 여동생인 엘스펫 키스와 함께 삼일운동이 일어난지 한 달도 안 되는 봄에 일본을 떠나 조선으로 여행을 오게 된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 동안 그들의 눈에 비친 조선의 풍경은 마치 조바위를 쓰고 서 있는 한국 여인의 차분한 얼굴 마냥 평안하고 조용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조선인들을 감시하는 일본 경찰들을 목격한다. 엘리자베스와 여동생은 선교사들이 머무는 곳에서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안내를 받아 스케치할 조선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조선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조선 사람들의 모습과 조선의 풍경, 일상들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남긴다.
일본에서 이미 몇 년을 산 그들이지만 그들은 일본인의 시각이 아닌 그들만의 시각으로 조선사람들을 그리고 글을 쓴다. 아마도 그들이 조선 사람들과 풍습에 대해 따뜻한 시각을 갖게 된 건 함께 지낸 선교사들의 시각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다. 사실 그 당시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종교를 떠나서 조선 독립을 지지했고 그 당시 조선 사람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건 사실이다.
화가 엘리자베스는 다양한 조선 사람들을 발견한다. 색동옷을 입고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높다란 언덕에서 연을 날리는 아이들,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우는 아이들, 무거운 빨랫감을 이고 등에는 아이까지 업은 여자들,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여자들, 대문가에 앉아 한가롭게 담배를 피우는 노인들, 좁은 방에 마주 앉아 학문을 논하는 노인들, 바느질 하는 여자, 양반집 규수, 고문에도 불구하고 꼿꼿한 조선 여인들,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면서도 꼿꼿한 조선 청년들, 꼼짝도 할 수 없는 감방에서도 의연한 조선의 여학생... 화가의 눈에 조선 사람들은 키가 크며 의젓하고 항상 꼿꼿한 자세를 가지면서도 온화하다. 조선 여인들은 온순한 듯 하지만 이들에게 새로운 문물을 강요한다든지 그들의 생각이나 생활 신조를 바꾸려든다면 차라리 서울을 둘러싼 산을 허물어 옮기는 것이 더 쉬울 만큼 완고한 구석이 있다고 말한다.
한편 화가는 조선의 나태한 면도 발견한다. 식사 후에는 늘어지게 아무곳에서나 한숨 잔다 든지, 아무데나 침을 뱉는다든지 하는 좋지 못한 생활 습관들 말이다. 화가의 눈에 조선 여성의 삶은 너무 힘겨워 보인다. 대를 잇기 위해서 열번이나 유산을 하고도 또다시 임신을 하고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빨래감을 다듬느라 다듬이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가정 생활의 책임은 온전히 여자 혼자 감당해야 할 몫으로 비쳐진다. 아마도 그런 의무를 벗어난 여성이니 조선 여성의 삶이 훨씬 더 고달파 보였으리라. 사실이 그랬지만.
그녀의 그림들은 이런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그림을 그렸는데도 조선적인 체취가 많이 배어난다. 서양인들 눈에 조선사람들은 모두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로 보일 텐데도 역시 화가 답게 인물마다 개성이 느껴진다. 얼굴만 봐도 조선 사람이구나 싶게 조선인만이 지니고 있는 표정이랄까 눈매가 느껴진달까. 그녀의 느낌대로 그가 그린 조선 사람들은 유약해 보이기보다는 강인하고 의젓해 보인다. 책을 읽는 동안 안타까웠던 건 그녀가 서울에서 보았던 두 아름다운 대문 중 하나가 불타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그린 동대문을 보면서 자꾸 숭례문이 불타 주저앉던 장면이 겹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