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전체 - 개정신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지음, 김용준 옮김 / 지식산업사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 막 접하기 시작한 양자역학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 더 나아가 서구 과학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깨닫게 해 준 책이었다. 우리나라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머물러 있을 때 서구는 이미 우주의 비밀을 풀기 위한 과학적 노력을 끊임없이 경주하고 있었고 뉴턴의 역학,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에 이르는 길을 한 단계 한 단계 밟아가고 있었다. 과학적 업적이란 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보면 우리의 물리학 수준은 어디에 와 있는지 이미 수백년 전에 먼저 출발한 서구의 과학적 진보를 따라 잡을 수나 있을 것인지 아득해지기도 한다. 과학분야에는 문외한인 나로서는 쫓아가려는 노력을 하고나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오래 전에 읽어야지 했던 책이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다. 처음엔 내용에 집중할 수 없었고 두 번째엔 내용이 이해되었다기보다는 책 속의 장면들이 좀더 생생하게 다가온 느낌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물리학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그런 장면들에선 내가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는 듯 설레기도 했고 천재적인 학자들이 그들의 학문 뿐만 아니라 철학적, 정치적인 토론을 나누는 장면에선 세상을 이렇게도 진지하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구나. 그래서 그들이 위대한 학자들이구나 싶었다. 뭔가를 이루려면 이 정도의 진지함과 성실함과 세상에 대한 안목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난 얼마나 내가 성취하고 싶었던 것을 위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아파했나 돌아보기도 하고 후회되기도 했다.

  2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첫 장은  고등학교 졸업 시험을 앞두고 친구들과 산행을 하면서 원자의 상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들로 시작된다. 음악에도 소질이 있었고 한때 수학을 전공하리라 마음 먹었던 하이젠베르크는 조머펠트 교수를 만나면서 물리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는데 이 책은 물리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회상하면서 쓴 글이다. 대화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덴마크의 물리학자인 보어와 날카로운 조언을 해주던 친구였던 볼프강 파울리와의 대화였다. 원자의 입자로서의 특성과 파동적 특성에 대해서, 원자핵을 구성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여러 소립자들에 대해 토론하던 내용들을 자세히 전해줄 순 없지만 이론물리학자들이 하는 연구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었다. 물리학자들이 수학적인 방정식을 통해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소립자의 존재를 예측하고, 자연의 원리를 밝히는 완벽한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다른 학자들과 열렬한 토론을 벌이는 장면, 기존의 절대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뒤엎고 상대성 이론을 정립한 대학자인 아인슈타인조차도 양자이론의 통계학적인 특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 보면서 양자역학이 기존의 개념을 완전히 뒤엎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란 걸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범위내에서 이야기해보면 뉴턴의 역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태양계 같은 우주적 규모에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라면 20세기 초에 태동한 양자역학은 미시적 규모에 적합한 이론이다. 원자단위보다 더 작은 미시적 세계는 우리가 관찰하는 자연현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므로 지금까지(20세기초 양자론이 막 태두될 당시)의 언어로는 그 모습을 제대로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자연을 정확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실증주의 철학자들과 대립하게 되고 그들과 진지한 토론을 벌여나가는 장면도 인상깊었다.

  또 이 책을 통해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인의 국민성이나 전쟁이 일어날 당시의 독일의 분위기 등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1930년대부터 히틀러의 영향력이 커지고 젊은이들이 히틀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되는데, 이런 분위기가 독일인의 국민성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젊은이들이 단체를 만들어 산행을 하면서 여러 문제들에 토론을 하고 음악을 즐기는 그런 모습들이 참 낭만적이고 이상적이다 싶다가도 하이젠베르크와의 대화 중에 보어가 했던 말처럼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가치보다는 집단속의 한 사람으로서 규율이나 질서를 중시하는 국민성이 히틀러라는 광기어린 인물을 만나 폭발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독일국민들이 전쟁을 향해 치닫는 히틀러에 대해 얼마나  저항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하이젠베르크조차도 전쟁이 일어나는  건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전쟁 전 동료학자들이 독일을 떠나가는 걸 지켜보면서 하이젠베르크는 연장자인 막스 프랑크를 찾아가  학자로서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서 막스 프랑크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의 발발을 한 개인이 막을 수는 없는 일이고, 독일에 남아 있는 한 어떤 형태로든지 정부 당국과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 일이 전쟁 후에는 비판을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전쟁 후 독일의 재건을 위해서 이 땅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 후로 하이젠베르크는 전쟁에 질 걸 알면서도 독일에 남았고 실제로 전쟁 발발 직후 정부의 명령에 따라 원자에너지를 기술적으로 이용하는 연구에 다른 물리학자들과 참여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그 당시에는 원자에너지를 실제로 무기로 이용할 수 있을 거라고 물리학자들도 생각하지 못하던 그런 분위기였는데,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물리학자들은 만약 당국이 원자의 에너지를 무기로 만들라는 명령을 내리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진지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연구결과 하이젠베르크를 위시한 그 당시 독일의 물리학자들은 원자핵무기를 기술적으로는 만들 수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덴마크에 있는 보어를 찾아가 이 일에 대해 의논을 해보려했지만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하고 독일로 돌아온다. 당시 그 연구에 참여했던 물리학자들은 원자기술을 무기로 이용하기에는 독일 정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규모의 비용이  들거라고 예측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원자탄을 만들라는 지시는 내려지지 않았다. 만약 그런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원자폭탄을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원자폭탄이 독일에서 먼저 만들어졌더라면...

  하이젠베르크와 동료 물리학자들은 바다 건너 미국에서 원자폭탄이 만들어지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물리학자들이 그런 일을 위해 협력하리라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그들이 독일이 패한 후 영국에 포로로 잡혀 있을 때 일본 나카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믿지 못했을 정도였고, 그곳에 우라늄의 핵분열을 처음으로 밝혀낸 오토 한이 있었는데 주변 물리학자들은 그가 충격으로 자살하지나 않을까 걱정했을 정도였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일본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건 당연한 결과였다고 생각했는데 하이젠베르크의 말대로 이미 전쟁에 진 것이나 다름없는 일본에 그것도 민간인들이 사는 곳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린 건 힘의 과시에 불과했고 우리의 입장에선 원자폭탄을 떨어뜨리는 그 순간 일본을 전쟁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만들어 버려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었다. 그 때문에 일본이 자신들 또한 피해자라고 하는 뻔뻔한 말을 지금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후기를 대충 마무리하면서 이 책 속의 모든 것이 하나도 틀림없는 진실일까. 혹시 한 과학자가 지난 날의 자신의 행위에 대해 합리화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히틀러의 행동을 막기 위해 지식인들이 성명이라도 발표해야 한다는 다른 학자들의 말에 그런 작은 행동 하나가 아무것도 세상을 바꿀 수 없고 오히려 악용될 뿐이라는 태도에서 이 정도의 위치에 있는 학자라면 목숨을 무릅쓰고라도 양심적인 행동을 해야하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리고 하이젠베르크 자신의 말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미치오 카쿠가 쓴 '평행우주' 라는 책에는 보어와 주고 받았던 편지를 보면 하이젠베르크는 히틀러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고, 원자폭탄을 만들라는 히틀러의 지시를 의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보어를 찾아간 게 원자폭탄을 만드는데 그를 끌어들어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독일이라는 한 부분만을 생각하지 않은 세계라는 전체를 생각한 진실된 학자였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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