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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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스럽고도 화려한 카니발의 한가운데를 지나온 느낌이다. 희생 제의의 핏빛 축제를 뚫고 살아나온 느낌이기도 하고, 현실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혼돈의 축제에 빠져 있다가 겨우 정신 차리고  나온 것도 같고. 작가가 펼쳐놓은 세계는 콜롬비아, 혹은 중남미의 역사가 그곳에 압축되어 있으면서도 우리의 세계, 혼돈으로 가득찬 이곳의 현실이 백 년이란 역사 속에 압축되어 있는 듯하다. 작가는 하나의 세계, 무질서와 혼돈으로 가득찬 세계를 창조했다가는 점차 혼란이 잦아들게 하면서, 혹은 부엔디아라는 성을 가진 인물들을 하나씩 세계 밖으로 사라지게 하면서 결국에는 그가 창조한 세계도 최초의 무로 돌려버린다. 언젠가 이 소설에 대한 나의 기억도 얼마 동안 지속되다가 바람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신기루의 도시, 마콘도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이 책을 손에 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전에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 전에 이 소설이 이렇게 강력하게 다가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줄거리를 잊어 버리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때의 인상마저 이렇게 깡그리 사라져 버린 게 다소 의아스럽기도 하다. 그때는 지금 같은 강렬함 혹은 놀라움을 못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복잡하면서도 결국에는 똑같은 세대의 반복인 듯한 이 소설은 독자에게 이성은 그냥 주머니에나 넣어두고 감성적으로 다가가길 원한다. 어차피 소설이 현실이 아닌 것은 독자도 이미 알고 있는 것. 이곳은 현실이되 현실이 아니다. 자연과 인간과 영혼이 분리되지 않은 원시의 세계이다. 인간의 육체적 결합이 자연에는 다산이라는 결과로 나타나는 곳이며, 죽은 자의 목마름을 위해 산 자가 물을 준비해두는 곳이고, 부끄러움과 인간의 욕망을 모르는 아름다운 처녀가 하늘로 승천하는 곳이며, 4년 11개월 2일 동안 비가 내리다 10년 동안 메마른 가뭄이 이어지는 곳이며, 부모의 죄로 돼지 꼬리를 달고 태어난 아기가  양피지의 예언대로 개미떼에 먹히는 그런 곳이다.

  작가가 어쩌면 창조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불경스럽기까지 한 생각을 이 책을 덮으면서 하게 된다. 무한한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선 나온 걸까 궁금하기도 하고, 중남미의 문화나 역사가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한 것인지 중남미의 문화나 역사에 대한 궁금증을 일게 한다. 시작에서 완결까지. 그 자체로 생성이 가능하고 소멸이 가능한 하나의 세계가 완성된 것 같다는 느낌이다.  

  우르술라 이구아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근친간에 결혼을 하면 이구아나도마뱀을 나을 거라는 가족들의 믿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감행하지만 가족들의 저주가 실현되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우르술라는 동침을 거부한다.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하는 푸르덴시오 아귈라라는 마을 사람이 그의 성적 무능을 놀리게 되고 우발적인 결투 신청을 하고 푸르덴시오 아귈라를 죽이게 된다. 죽은 사람의 영혼은 집안 곳곳에 나타나고 양심의 가책을 견딜 수 없어진 그들은 마을을 떠난다. 몇몇 모험심이 강한 친구들, 아이들, 여자들도 그들과 함께 바다로 통하는 길, 문명세계로 이어지는 길을 찾아 2년을 떠돌지만 끝내 바다로 이어지는 길을 찾지 못하고 끝없이 펼쳐지는 늪이 있는 곳에 마콘도라는 도시를 세운다. 이구아나도마뱀도 돼지꼬리가 달리지도 않은 아이들, 호세 아르카디오, 아우렐리아노, 아마란타가 태어나는 동안 단 하나의 무덤도 만들어지지 않은 마콘도에 언제부터인가 집시들이 찾아오면서부터 외부와의 접촉이 시작된다.

  뚱뚱한 텁석부리 집시 메르카아데스가 외부세계로부터 가져오는 온갖 물건들에 심취해서 실험실에서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결국에는 온갖 지식을 스스로 구해내지만 가족과의 대화마저 단절되어 밤나무에 묶인 채 죽음에 이르고, 남편과 자식들 손자들 그리고 마콘도의 번영과 몰락을 지켜본 우르술라는 작아지고 작아져서 바구니만한 관에 담긴 땅에 묻히고, 아르카디오란 이름을 가진 자손들은 거칠고 충동적이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 아우렐리아노란 이름을 가진 자손들은 보다 내면적이고 통찰력있는 인물이며 또한 욕망으로 고민하는 인물들로 세대를 반복하며 등장한다. 우르술라와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딸인 아마란타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남자에 대한 복수심과 그녀의 연적이자 자매인 레베카에 대한 복수심으로 평생을 혼자 살며 자신의 수의를 지으며 태어났던 몸 그래도 돌아가고, 레베카 또한 약혼자를 버리고 육체적 충동이 이끄는 대로 오빠인 호세 아르카디오와 결혼해서 그가 죽은 이후에는 가족들과 단절된 채 죽을 때까지 고독에 파묻혀 혼자 살아간다.

  이들 인물들은 조상으로부터 이어진 기질대로 성향대로 살아간다. 삶을 살아간다기보다는 충동혹은 욕망대로 움직인다고 보아야 할까? 인물들의 행동을 이성적 잣대로 판단해서는 이 소설을 읽어내기가 힘겹다. 이 마콘도라는 환상의 공간은 이쪽과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곳이다. 물론 이쪽의 현실이, 시간이 침투하기도 한다. 정부와 반란군 간의 싸움은 마콘도를 비롯한 나라 전체를 휩쓸었고, 미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바나나 농장이 마콘도에 번영을 가져왔다가 하루아침에 마콘도를 황량한 마을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이렇게 현실과 비현실이 서로 넘나들면서 낯설면서도 익숙한 새로운 시간이 생겨났다가 마치 존재하지도 않은 것처럼 사라져버린다. 카오스전의 세계로. 사실 작가가 창조한 세계가 어쩌면 카오스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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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플갱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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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보고 쉽게 덤벼들 수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 다른 누구도 아닌 주제 사라마구의 책이니 단단히 결심을 해야지만 초반의 지루함과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 그냥 목구멍을 넘어가는 문장들을 이겨낼 수 있다. 초반부의 역사교사의 입에서 나오는 지루한 말들, 꼭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작가의 사변들, 주인공과 상식이라는 내면의 대화들을 통과해야만 사건의 전개가 보이고 다음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놓고 싶지 않아지거나 너무 빨리 읽고 싶지 않아서 일부를 책을 덮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작가가 쓴 모든 문장에 엄청난 의미가 담겨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것들을 다 이해하려고 애쓰다가는 결국에는 초반에서 책을 덮어버리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해되어도 넘어가고 몰라도 넘어가다보면 재미 있는 순간이 오게 된다. 어차피 이건 소설이다. 꼭 이해해야 할 필요도 없고 이해가 안 된다고 해도 나의 이해력 부족을 탓할 필요도 없다. 재미없고 지루하면 지루한대로 재미있으면 재미있는대로 읽으면 그만이다.

  어쨌든 결론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재미의 정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무협이나 판타지물과 같은 재미는 아니다.)플롯을 따라가는 재미와 작가가 찾아낸 문장 하나하나를 맛보는 재미도 느껴진다.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라는, 인구 500만명이 사는 도시에 하나밖에 없을 것 같은 특이한 이름을 가진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 때문에 가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비웃음을 사기도 하지만 그 이름은 자신의 유일성을 증명하는 이름이었다.

  그는 6년 동안의 결혼 생활 후 이혼한 남자이며, 6개월 가량 만난 애인이 있지만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으며, 1주일에 한번쯤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역사교사라는 자신의 직업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는 30대 후반의 남자다. 그의 생활은 안정되어 있지만 활기차 보이지는 않는다. 어느 날 동료 수학교사로부터 비디오 한편을 보라는 권유를 받고 그 비디오를 빌려서 보게 되는데, 바로 그 비디오 속에서 자신과 닮은 사람, 아니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그날밤 자신의 집에 또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고... 그 순간 책을 읽는 나 또한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의 환영이 나의 집에서 나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은 결코 유쾌한 상상이 못된다.

  비디오를 본 후부터 그는 자신과 닮은 사람을 찾는 일에 매달린다. 어머니와 주변의 예언과도 같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누군들 그러지 않겠는가.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 아니 또 다른 자신이 이 도시 어딘가에서 자신과 똑같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데...

  이즈음에서 드는 생각, 내가 만약 역사교사라면... 난 내 삶을 또 다른 나에게 몽땅 주고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다. 아직 이 책을 다 읽지 않아서 그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도플갱어를 만난 후 그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읽어본 결과...

  내가 상상했던 결말과는 조금 다른 결말이었다. 주인공이 죽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다른 인물들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또다른 도플갱어. 전에도 아주 잠깐 다른 도플갱어의 존재를 얼핏 보여주기도 했었다. 주인공이 전화번호부에서 자신과 똑같은 남자의 진짜 이름을 발견하고 전화를 걸었을 때 전화를 받았던 남자는 주인공과 똑같은 목소리의 남자가 전에도 그 이름과 같은 사람을 찾는 전화를 했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남자가 주인공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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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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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먼 자들의 도시' 이후 두번째로 읽은 작가의 작품이다. 워낙에 첫 작품에 대한 충격이 컸던 탓일까. 이 작품은 눈먼 자들의 도시만큼 흡인력있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었다.

  백색실명이 있었던 4년 후, 선거일. 제14투표소에는 투표를 하러 오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그 빗속을 뚫고 투표를 하러 올리 만무하다. 우익정당의 참관인도, 중도정당의 참관인도, 좌익정당의 참관인도 초조하기는 마찬가지다. 오후 드디어 비가 그친다. 그러나 투표를 하러 오는 사람들은 가물에 콩나는 정도로 띄엄띄엄하다. 대규모의 기권 상태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간은 오후 4시에 다다른다. 그 순간 갑자기 수많은 인파가 투표소로 모이기 시작하고, 대규모 기권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초조감에 시달리던 정부는 환영의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투표함이 열리고 밝혀진 진실은 모든 정당을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우익정당이 13퍼센트, 중도정당이 9퍼센트, 좌익정당이 2.5퍼센트의 표만을 확보했을 뿐 나머지 70퍼센트 이상이 백지투표 다는 것. 혼란과 망연자실 속에 두번째 선거가 치러지지만 결과는 더 참담하다. 전체 유권자의 83퍼센트가 백지투표를 던진 것이었다. 정부의 입장에서 이러한 사태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부에 대한 도전행위였다. 이 도시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는 당국에 이 도시의 83퍼센트가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내어놓는데 결국 도시에는 계엄이 선포되고 도시 전체는 군대에 의해 둘러싸이게 된다. 그래도 무례한 도시의 시민들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에 기차역 폭파 같은 조작극(어느 나라의 권력이든지 간에 우매한 정권이 쓰기를 좋아하는 그런 뻔한 조작극말이다.)으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백지투표를 던진 사람과 정당한 선거권을 행사한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기를 기대해서 벌인 사건이지만 정부가 예상한 그러한 사태는 끝내 발생하지 않았다. 정부는 두번째 특단의 조치를 내어놓는데 지방자치기구와 소방공무원을 제외한 모든 정부 기구와 경찰력을 도시 밖으로 소개시켜버리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도시를 무정부, 무질서의 상태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무질서라고 부를 만한 상황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장의 편지가 정부관계자에게로 날아드는데 이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가 4년 전 백색실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 편지를 보낸 인물은 4년전 가장 먼저 눈이 먼 남자였고 그는 이 사건의 배후로 그 때 눈이 멀지 않은 유일한 여자를 지목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사실 난 여기서부터 이야기의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가는  처음부터 '눈먼자들의 도시' 후편이라는 생각을 갖고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겠지만 항상 새롭고 신선한 것을 원하는 독자로서는 특별히 새롭게 전개될 이야기가 없어서 이 부분을 끌어들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갑자기 '눈먼자들의 도시'편으로 돌아가버린 것 같달까. 백지투표라는 행위 뒤에 가려진 이야기를 찾기보다는 백지투표라는 행위에 대처하는 정부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라서 그런지 백지투표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의 표면만 건드리고 넘어갔다는 느낌이다. 백지투표를 던진 사람들의 속마음도 듣고 싶었는데 정작 이 도시 사람들은 배경이나 원경이 머무른 느낌이다.

  이게 작가의 의도인가. 정부의 입장에서 이 도시 사람들은 어느 집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남편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친구이기도 하고, 직장에서의 부하이거나 상사이기도하고, 매일 가는 단골 식당의 손님이기도 한 살아 있는 실체가 아니라 한 명의 투표용지, 하나의 투표 용지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래서 이 소설에서는 시민의 목소리는 백지투표로, 한밤중 정부와 경찰당국의 철수가 시작될 때의 창가에 반짝이는 불빛으로 대신하고 있다. '눈먼 자들의 도시' 가 카메라를 아주 근접시켜서 인물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표착해낸 방식이라면 이 작품은 카메라 도시 공중에 띄워놓고 도시 전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먼 각도에서 조망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 도시의 운명은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개개인에 의해 결정되는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도시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에 의해, 몇몇 인물들의 판단에 의해 결정되어 진다. 그러면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누구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가, 우리들의 나라에(혹은 민주국가를 표방한 모든 나라에) 민주주의 란게 존재하는 것일까, 정부란 진정으로 국민의 편일까 의심해 보게 된다. 이 도시의 사람들처럼 현실 속의 우리들도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정당성을 강화시켜주는 하나의 표일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한 개인으로서 고작할 수 있는 게 백지투표를 던지는 것일 뿐이라는 현실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는 의문 하나, 나의 눈은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인가. 이 세상엔 내가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진작에 인정해버리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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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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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소설적 재미와 감동을 함께 느끼며 읽은 책이다. 진작에 읽어야지 했다가 기억 저편으로 밀려나 버렸던 책. 사실 난 이 책을 쓴 작가가 남미쪽 작가가 아닐까 생각했었다.이름이나 스타일이 마르케스나 보르헤스를 떠올리게 했던 것 같다. 어쩐지 이들 작가의 스타일이 나의 취향과 잘 맞는다는 느낌이었는데 역시나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 역시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판타지적 재미와 깊이 있는 주제가 잘 버무러진 그런 작품이랄까. 사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가들의 작품이 아닌가.

  백색실명...

  어느 나라의 도시나 별반 다를게 없는 어떤 도시에, 한 여성(안과 의사 부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실명이란 전염병이 휩쓴다. 최초의 실명은 신호대기중이었던 어떤 남자에게서 시작된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신호등이 빨간불에서 파란불로 바뀌는 순간 눈앞에 뿌연 안개와 같은 백색실명이 한 남자의 운명으로 주어진다. 그리고 그 남자를 집으로 바래다 준 선한 사마리아인에게, 그의 아내에게, 그가 찾아간 안과 의사에게, 첫번째 실명자가 방문했을 당시 그 안과에 있었던 환자들에게... 그리고 그들과 접촉한 다른 이들을 통해서 그 도시 모든 사람들에게 백색의 전염병은 느닷없이 들이닥친다.

  그리고 내려진 정부의 대책, 격리수용. 이 세상 모든 정부가 내릴 만한 뻔한 대책을 이 도시의 정부도 쓰고 있다. 최초의 실명자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잔혹한 사건들은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유일하게 눈멀지 않은 한 여자는 세상을 내려다보는 전지전능한 신처럼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지만 눈뜬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녀는 차라리 자신도 다른 이들처럼 눈이 멀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을 포함한 최초의 실명자 그룹을 지키는 일을 자신의 사명처럼 받아들인다.

  어쩌면 모두가 눈먼 세상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그녀는 신과 같은 무한한 능력을 가진 존재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무리를 지키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작가는 왜 그녀에게 더 많은 사명을 부여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그 상황에서는 자신과 남편을 지키는 일조차도 엄청난 힘을 필요로 한 일이었지만... 하지만 눈뜬 유일한 존재로서 그녀의 존재는 미약하게 느껴졌다. 격리 수용된 정신병원에서는 성폭력이 자행되고, 겁에 질린 군인들은 눈먼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쏘아대고, 정신병원 바깥의 도시는 쓰레기와 똥이 가득차고, 심지어 거리에는 사람의 시체가 그대로 썩어 가고, 개들은 주린 배를 사람의 시체로 채우고, 굶주린 사람들의 무리가 음식을 찾기 위해 떠돌아다니는 끔찍한 현실 속에서 눈 멀지 않은 한 사람은 단지 그 모든 순간을 볼 수 있는 목격자에 불과했다. 목격자로서의 그녀에게서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눈먼 자들의 도시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현실을 내려다 보고 있는 신을 발견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그녀가 신과 같은 역할을 한 행동은 음식을 무기로 성폭력을 자행하는 무리의 우두머리를 죽인 일이었다. 그녀의 행동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는 힘들다. 이미 도덕이라는 것이 백색실명과 함께 사라져버린 후였으니까. 그녀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어느 순간 느닷없이 생명을 빼앗는 신처럼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기로 결심한 그 순간은 신의 역할을 자처했다고 할 수 있다. 그(목숨을 빼앗기는 자)가 어떤 종류의 인간이든지 도덕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처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의 영역을 넘보지 않고는... 다만 전쟁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는 다른 잣대가 허용되기도 한다.

  작품 말미의 해설은 이 눈멀지 않은 한 여성이 작가가 끝까지 열어놓은 인간에 대한 희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는 모두가 눈 감아 버린 잔인한 현실을 온몸으로, 유일하게 보이는 두 눈으로 끝까지 본 사람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서 어둡고, 더럽고, 지저분하고, 불쾌하고, 탐욕스럽고, 부도덕하고, 잔인하고, 잔혹하고, 냉혹한 세상을 바라보아야 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의 존재는 인간에게 열어놓은 마지막 희망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심연을 온몸으로 들여다본 유일한 존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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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올해의 문제소설 - 현대 문학교수 350명이 뽑은
한국현대소설학회 엮음 / 푸른사상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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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소설이라는 개념이 뭘까 생각해보게 된다. 주제의식의 문제, 형식의 문제, 소재의 문제 아니면 모든 것을 통틀어 주목할 만하다는 것일까.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중에서 꼭집어 문제적이라고 할 만한 작품은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몇몇 소설은 아직 미숙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실린 작품들 중에서 문제적이라기보다는 집중해서 읽은 소설을 꼽으라면 김경욱의 '소년은 늙지 않는다', 박민규의 '루디'가 되겠고 주제면에서 공감하면서 읽은 작품이라면 염승숙의  '라이게이션을 장착하라', 최수철의 '페스트에 걸린 남자' 정도가 되겠다.  

  김경욱의 '소년은 늙지 않는다'가 역시 제일 소설적 재미와 주제의식이 잘 갖추어진 작품이었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작가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고, 우선은 나의 취향과 잘 맞는 소설이었다.  

  물푸레나무 마을을 지나 버드나무 마을을 끼고 느티나무 마을을 에두른 뒤 벚나무 마을을 가로지르고 커다란 인공호수를 건너면 소년이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파트가 있다. 이미 오래전에 버려진 아파트다. 이 아파트를 떠날 여력이 남아 있지 않는 사람들만 간혹 소년과 할아버지처럼 이 아파트에 남아 있다. 한반도에 빙하기라도 닥친 것인지 소년이 사는 아파트와 주변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고 한떼 시베리아에서 살았다는 늑대의 울음소리만 들여올 뿐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떠날 여력을 갖춘 사람들은 풍문으로만 들은 따뜻한 남쪽섬으로 이미 거주지를 옮겼다. 소년의 가장 큰 걱정은 눈보라가 계속 되어 휴교령이 내리는 것이다. 그러면 학교에서 급식으로 주는 빵을 받을 수가 없고 그러면 소년의 삶의 목표인 '삶아남기'를 이룰 수가 없었다. 소년은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돈 벌러 바다를 건너 아마 남쪽으로 간 엄마를 기다려야 했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엄마는 소년이 한번도 본적이 없는 개나리가 피면, 혹은 목련이 피면, 혹은 아카시아가 피면 어쨌든 눈이 녹고 꽃이 피면 온다고 했다. 이제 열흘 뒤면 방학이다. 소년은 지나간 마흔여덟 번의 방학처럼 이번 방학도 얼어죽지도 굶어죽지도 않고 잘 버텨내리란 희망을 가져본다. 소년을 늙지 않는다. 아니 늙을 수가 없다. 눈이 녹고 꽃이 필 때까지 엄마를 기다려야 하므로.     

  박민규의 '루디' 는 한국소설 같지 않은 낯섦 때문에 끌리게 된다. 느닷없고 무자비하게 가해지는 폭력 앞에 독자 또한 무방비로 당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주인공이 왜 그런 폭력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고 그래서 누구든 그런 폭력 앞에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주인공이 루디란 이름의 폭력에 대항에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을 때 통쾌하기는 커녕 주인공이 내뱉는 욕설과 함께 씁쓸하기만 했다.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 소설이랄까. 무미건조한 폭력의 나열. 아무 감동없는 폭력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염승숙의 '라이게이션을 장착하라'는 늘 가야만 하는 길 대신 때로는 다른 길을, 낯선 길을 가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누구나 낯선 것에 대한,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있다. 한 네비게이션을 만드는 회사에서 저조한 실적을 타개하기 위해 라이게이션이라는 신제품을 내놓게 되는데 라이게이션은 운전자에게 올바른 길 대신 엉뚱한 길을 제공함으로써 운전자가 가야할 길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그로 인해 어떤 이들은 행방불명이 된다. 그들의 행방불명이 라이게이션의 안내에 의한 것인지 자발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라이게이션의 판매는 금지된다. 참신한 소재는 좋았는데 라이게이션을 만들어내기까지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이 조금 부족해보였다.   

  최수철의 '페스트에 걸린 남자'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빈틈이 없어 보이는 작품이랄까. 소설가인 작가의 삶이 녹아 있는 자전적 소설 같은 느낌도 들고... 

  그 외의 소설들은 평범한 소설이었다는 느낌이다. 특별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소설들. 이게 자가들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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