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플갱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06년 9월
평점 :
제목만 보고 쉽게 덤벼들 수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 다른 누구도 아닌 주제 사라마구의 책이니 단단히 결심을 해야지만 초반의 지루함과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 그냥 목구멍을 넘어가는 문장들을 이겨낼 수 있다. 초반부의 역사교사의 입에서 나오는 지루한 말들, 꼭 필요할 것 같지 않은 작가의 사변들, 주인공과 상식이라는 내면의 대화들을 통과해야만 사건의 전개가 보이고 다음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놓고 싶지 않아지거나 너무 빨리 읽고 싶지 않아서 일부를 책을 덮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작가가 쓴 모든 문장에 엄청난 의미가 담겨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것들을 다 이해하려고 애쓰다가는 결국에는 초반에서 책을 덮어버리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해되어도 넘어가고 몰라도 넘어가다보면 재미 있는 순간이 오게 된다. 어차피 이건 소설이다. 꼭 이해해야 할 필요도 없고 이해가 안 된다고 해도 나의 이해력 부족을 탓할 필요도 없다. 재미없고 지루하면 지루한대로 재미있으면 재미있는대로 읽으면 그만이다.
어쨌든 결론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재미의 정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무협이나 판타지물과 같은 재미는 아니다.)플롯을 따라가는 재미와 작가가 찾아낸 문장 하나하나를 맛보는 재미도 느껴진다.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라는, 인구 500만명이 사는 도시에 하나밖에 없을 것 같은 특이한 이름을 가진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 때문에 가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비웃음을 사기도 하지만 그 이름은 자신의 유일성을 증명하는 이름이었다.
그는 6년 동안의 결혼 생활 후 이혼한 남자이며, 6개월 가량 만난 애인이 있지만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으며, 1주일에 한번쯤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역사교사라는 자신의 직업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는 30대 후반의 남자다. 그의 생활은 안정되어 있지만 활기차 보이지는 않는다. 어느 날 동료 수학교사로부터 비디오 한편을 보라는 권유를 받고 그 비디오를 빌려서 보게 되는데, 바로 그 비디오 속에서 자신과 닮은 사람, 아니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그날밤 자신의 집에 또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고... 그 순간 책을 읽는 나 또한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의 환영이 나의 집에서 나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은 결코 유쾌한 상상이 못된다.
비디오를 본 후부터 그는 자신과 닮은 사람을 찾는 일에 매달린다. 어머니와 주변의 예언과도 같은 만류에도 불구하고. 누군들 그러지 않겠는가.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 아니 또 다른 자신이 이 도시 어딘가에서 자신과 똑같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데...
이즈음에서 드는 생각, 내가 만약 역사교사라면... 난 내 삶을 또 다른 나에게 몽땅 주고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다. 아직 이 책을 다 읽지 않아서 그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도플갱어를 만난 후 그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읽어본 결과...
내가 상상했던 결말과는 조금 다른 결말이었다. 주인공이 죽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다른 인물들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또다른 도플갱어. 전에도 아주 잠깐 다른 도플갱어의 존재를 얼핏 보여주기도 했었다. 주인공이 전화번호부에서 자신과 똑같은 남자의 진짜 이름을 발견하고 전화를 걸었을 때 전화를 받았던 남자는 주인공과 똑같은 목소리의 남자가 전에도 그 이름과 같은 사람을 찾는 전화를 했다는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남자가 주인공에게 전화를 걸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