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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올해의 문제소설 - 현대 문학교수 350명이 뽑은
한국현대소설학회 엮음 / 푸른사상 / 2011년 2월
평점 :
문제소설이라는 개념이 뭘까 생각해보게 된다. 주제의식의 문제, 형식의 문제, 소재의 문제 아니면 모든 것을 통틀어 주목할 만하다는 것일까.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중에서 꼭집어 문제적이라고 할 만한 작품은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몇몇 소설은 아직 미숙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실린 작품들 중에서 문제적이라기보다는 집중해서 읽은 소설을 꼽으라면 김경욱의 '소년은 늙지 않는다', 박민규의 '루디'가 되겠고 주제면에서 공감하면서 읽은 작품이라면 염승숙의 '라이게이션을 장착하라', 최수철의 '페스트에 걸린 남자' 정도가 되겠다.
김경욱의 '소년은 늙지 않는다'가 역시 제일 소설적 재미와 주제의식이 잘 갖추어진 작품이었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작가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잘 드러난 작품이었고, 우선은 나의 취향과 잘 맞는 소설이었다.
물푸레나무 마을을 지나 버드나무 마을을 끼고 느티나무 마을을 에두른 뒤 벚나무 마을을 가로지르고 커다란 인공호수를 건너면 소년이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파트가 있다. 이미 오래전에 버려진 아파트다. 이 아파트를 떠날 여력이 남아 있지 않는 사람들만 간혹 소년과 할아버지처럼 이 아파트에 남아 있다. 한반도에 빙하기라도 닥친 것인지 소년이 사는 아파트와 주변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고 한떼 시베리아에서 살았다는 늑대의 울음소리만 들여올 뿐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떠날 여력을 갖춘 사람들은 풍문으로만 들은 따뜻한 남쪽섬으로 이미 거주지를 옮겼다. 소년의 가장 큰 걱정은 눈보라가 계속 되어 휴교령이 내리는 것이다. 그러면 학교에서 급식으로 주는 빵을 받을 수가 없고 그러면 소년의 삶의 목표인 '삶아남기'를 이룰 수가 없었다. 소년은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돈 벌러 바다를 건너 아마 남쪽으로 간 엄마를 기다려야 했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엄마는 소년이 한번도 본적이 없는 개나리가 피면, 혹은 목련이 피면, 혹은 아카시아가 피면 어쨌든 눈이 녹고 꽃이 피면 온다고 했다. 이제 열흘 뒤면 방학이다. 소년은 지나간 마흔여덟 번의 방학처럼 이번 방학도 얼어죽지도 굶어죽지도 않고 잘 버텨내리란 희망을 가져본다. 소년을 늙지 않는다. 아니 늙을 수가 없다. 눈이 녹고 꽃이 필 때까지 엄마를 기다려야 하므로.
박민규의 '루디' 는 한국소설 같지 않은 낯섦 때문에 끌리게 된다. 느닷없고 무자비하게 가해지는 폭력 앞에 독자 또한 무방비로 당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주인공이 왜 그런 폭력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고 그래서 누구든 그런 폭력 앞에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주인공이 루디란 이름의 폭력에 대항에 총을 쏘아대기 시작했을 때 통쾌하기는 커녕 주인공이 내뱉는 욕설과 함께 씁쓸하기만 했다. 사람냄새가 나지 않는 소설이랄까. 무미건조한 폭력의 나열. 아무 감동없는 폭력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염승숙의 '라이게이션을 장착하라'는 늘 가야만 하는 길 대신 때로는 다른 길을, 낯선 길을 가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누구나 낯선 것에 대한,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이 있다. 한 네비게이션을 만드는 회사에서 저조한 실적을 타개하기 위해 라이게이션이라는 신제품을 내놓게 되는데 라이게이션은 운전자에게 올바른 길 대신 엉뚱한 길을 제공함으로써 운전자가 가야할 길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그로 인해 어떤 이들은 행방불명이 된다. 그들의 행방불명이 라이게이션의 안내에 의한 것인지 자발적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라이게이션의 판매는 금지된다. 참신한 소재는 좋았는데 라이게이션을 만들어내기까지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이 조금 부족해보였다.
최수철의 '페스트에 걸린 남자'는 무게감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빈틈이 없어 보이는 작품이랄까. 소설가인 작가의 삶이 녹아 있는 자전적 소설 같은 느낌도 들고...
그 외의 소설들은 평범한 소설이었다는 느낌이다. 특별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소설들. 이게 자가들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