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
공지영 지음 / 분도출판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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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사람들이 왜 신앙을 가지려하는지 알 것 같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은 책이다. 

 

  어제 '오 마이 갓'을 우연히 보았는데 대만의 자제공덕회라는 불교봉사단체를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그 프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 몇 가지가 있었다. 자연재해로 집을 잃을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이슬람사원을 지어주면서 그들에게는 이미 종교가 있으니 다른 종교가 필요한 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천주교에서는 기독교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벗어나는데 천 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는 신부님의 말씀. 마지막으로 그 생각에서 벗어나는데 아마 몇 천 년은 걸릴 것 같다는 개신교 목사님의 말씀. 아직 개신교에서는 내 종교만이 옳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으로 읽혔다.

 

  왜관수도원을 방문하는 것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베네딕도 수도원의 자급자족하는 일상이 소개되고  이후에는 미국의 뉴튼 수도원으로 방문이 이어진다. 뉴튼 수도원에서는 빅토리아호의 선장으로 만사천명의 목숨을 구한 후 수도자로 살아간 마리너스수사의 삶에서 숨겨진 우리 현대사와 잠깐 조우하기도 하고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 수도자로서의 삶을 선택한 마리너스 수사의 삶에 놀라기도 하고 작가처럼 그런 엄청난 일을 겪었다면 당연한 일이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아마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봉쇄수도원의 44년간 좁은 방안에서 기도하는 삶을 살다가 간 나자레나 수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우리나라의 사찰에도 3년이나 혹은 몇 달씩 스스로를 가둬놓고, 그 안에서는 절대로 말도 하지 않고 하루에 한 번씩만 구멍 같은 것을 통해 전달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도정진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보았는데 그때도 정말 끔찍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44년이라니. 신앙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나로서는 짐작이 되지 않는다. 나자레나 수녀는 사교계의 화려한 여인에서 어느날 느닷없이 들려온 사막으로 가라는 말씀에 스스로 봉인된 삶을 택했다. 나자레나 수녀의 기도는 두 가지였다. 교회의 쇄신과 정화, 한국의 평화. 그녀의 기도가 얼마만큼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베네딕토 16세교황도 교황청 안에서 스스로 봉인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이 번 책은 예전의 책보다 훨씬 신앙에 몰입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느껴졌다. 스스로 말하듯이 종교에 심취한 아줌마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작가가 이런 식의, 교회에서나 하는 간증 같은 고백을 해도 괜찮은가 싶을 만큼. 같은 신앙인의 입장이라면 돌고돌아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친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고 나같은 무신론자의 입장에서는 종교가 어떻게 사람들을 지배하는지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우연한 행운이나 별 것 아닌 단순한 일들에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하느님을 발견하는 모습들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어쩌면 작가가 유난히 자기 중심적인 사람인 것도 같고. 하느님이 자신을 사랑하신다는 믿음 없이는 견뎌내기 힘들만큼 삶이 고단했나보다 싶기도 하고.

 

  어쨌든 내게 믿음은 없지만 천주교는 그다지 낯설지 않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가 카톨릭계여서 고 2때까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종교 시간도 있었고 학교 안에 작은 성당과 수녀님들과 신부님이 계시는 사제관도 있었다. 예전에 배웠던 찬송가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고 같은 반에 몇몇 친구들은 카톨릭신자가 되기도 했다. 그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특별하게 여겨지던 수녀님들도 그냥 그렇게 특별하지만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었고 참 소박하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교장 수녀님은 좀 무섭기도 했지만. 다른 수녀님들은 심지어 재미있었다. 자신이 수녀가 된 이야기를 아주 무심하게 들려주셨고 시간이 나면 절에도 자주 놀러간다고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생각난다. 그런 수녀님들 덕분에 종교를 가지지는 않았지만 종교를 삶의 한 방식으로 이해하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작가의 신앙고백은 참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 예전의 수녀님들처럼 좀 무심하게 들려주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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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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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으로 튀어' 이후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아주 오랜만에 그것도 우연히 읽었다. '남쪽으로 튀어'도 참 독특하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생각했었는데 이번 책도 역시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역시 일본작가들은 말랑말랑하면서도 재미있게 잘 쓴다. 괜히 어렵게 쓰려고 하지 않고 신나게 혹은 스토리가 꽉 짜여 있어서 오밀조밀한 맛도 있게 잘 버무린다.

  두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혹은 폭력에 맞서는 두 여자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가나코는 미술관련일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백화점 외판부에서 부유한 사모님, 사장님 등을 상대로 비싼 물건을 파는 일을 한다. 나름 능력도 인정받고 있고 실적도 괜찮은 편이다. 유일한 친구라 할 수 있는 나오미는 은행에 다니는 조건이 괜찮은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 있다. 가나코보다 온순하고 여성적인 그녀의 성격에 맞게 평범한 가정주부로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던 그녀는 가정폭력의 희생자로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었다. 경찰에 신고라도 해야 할 것 같지만 나오미는 그렇게 하면 자신의 가족을 다치게 할 거라는 생각에 폭력을 그냥 참아내려고 한다. 가나코는 그런 나오미를 설득해서 그녀의 남편을 완벽하게 처리할 방법을 강구한다.

  나오미의 남편 다쓰로와 꼭 닮은 중국 남자 린류키를 발견한 건 그녀들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었다. 가나코의 완벽한 계획은 이렇다. 불법체류 중인 린류키에게 남편의 여권을 주어서(물론 그는 무슨 일인지는 전혀 모르는 채로 몇 년간 일을 해야 벌 수 있는 돈을 받고)  중국으로 보낸다. 다쓰로의 시신은 미리 물색해놓은 장소에 완벽하게 묻혀 있다. 다쓰로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중국으로 가버렸고 이후에는 영원히 실종상태로 머물게 된다.

  그렇게 끝나버렸다면 정말로 너무나도 완벽한 계획이었을텐데 린류키가 돈을 벌기 위해 다시 도쿄로 돌아오고 나오미의 시누가 흥신소직원을 고용해서 사건을 캐고 다니다 사건의 전말이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한다.

  절대 이 소설은 어두침침한 범죄이야기는 아니다. 살인이 아니라 폭력남편이  처리되는 것일 뿐이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나오미의 남편을 처리해야 하는 그들의 논리에 자연스럽게 설득되고 그녀들의 계획이 완벽하게 성공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런 폭력 남편 하나쯤은 이 세상에 없어도 별문제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비록 그에게도 그가 간절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부모와 동생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도 아들의, 오빠의 문제를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뭔가 대책을 세웠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자식놈은 없어도 돼.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연약한 여자 둘이서 한 남자를 완벽하게 처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빨리빨리, 좀더 힘내 라는 응원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자라서, 동질감을 느껴서 그런가? 만약 독자가 남자라면 좀 씁쓸한 기분이 들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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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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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이렇게 읽히지 않는 소설이었나. 처음엔 하루 저녁이면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분량도 많지 않고. 그런데 나의 예상은 완벽히 빗나가고 말았다. 정확히 며칠이 걸렸는지 모르겠으나 아주 느리게 읽은 것만은 분명하다. 소설을 읽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는 기이한 경험을 이 책을 통해서 하게 되었고 도저히 읽어지지가 않아서 책을 접었다 다시 펴면 그 부분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특히 전반부가 그랬다. 위대한 주인공 개츠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서술자인 닉의 주변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스케치하는 동안 나의 시선은 자꾸 쓰레기계곡에서 이스트에그에서 웨스트에그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닉이 개츠비를 만나고 케서린과의 관계를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읽는데 어느 정도 재미와 속도가 붙었던 것 같다.

 

  사실 처음엔 이런... 드디어 소설이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구나(?) 싶었다. 왜 이 이야기에 그토록 빨려 들어가기가 힘들었던 걸까? 우선 나의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요즘 개인적인 사정으로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 것이다. 어디가 불안하고 흥분된 내 마음은 활자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자꾸 소설의 영역을 벗어나서 나의 개인적인 영역으로 자꾸만 되돌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소설이든 어떤 형태의 책이든 책을 읽는 순간에는 잠깐의 현실도피란 것을 믿는 나에게 이 책은 결코 현실도피를 용인해주지 않았다. 자꾸만 현실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의 어떤 부분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혹은 나의 몰입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우선 주이공 제이 개츠비에게 몰입이 되지 않았다. 독자는 서술자인 닉을 통해서만 개츠비를 만나게 된다. 닉은 그들(캐서린과 그녀의 남편 혹은 부르조아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당신(개츠비)이 더 훌륭하다고 하는데 느닷없는 닉의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의 무엇이 훌륭하고 위대하다는 것인가. 가난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상류사회를 기웃거리는 졸부가 된 것. 개츠비는 그의 베아트리체를 잘못 골랐다. 개츠비에게 캐서린은 진정한 베아트리체도 아니고 그저  화려하게 빛나지만 싸구려에 불과한 것(상속자들에서 탄의 아버지 김회장이 탄의 엄마에게 한 말이다.)에 현혹된 것일 뿐이다.

 

  이 소설의 단점을 또 꼽자면 장편에서 느끼는 캐릭터의 무게감이 없다는 것이다. 주인공 개츠비조차도 이 소설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닉이 차지하는 존재감이나 주인공 개츠비가 차지하는 존재감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개츠비가 평생을 좇았던 캐서린 조차도 그저 평범한 상류 사회의 여인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정신적 수준은 화려함에 비해 열등해 보이고 개츠비를 만난 이후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이 개츠비인지 그녀의 남편인지도 잘 모르겠다. 캐서린의 태도를 애매모호하게 그린 게 작가의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불만인 것이 그녀의 존재가 너무나 미약했다는 것이다. 특히 개츠비의 뜻하지 않는 죽음 후에 소설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녀의 존재는 마치 개츠비가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존재가 환영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소설 밖으로 툭 튕겨져 나가버린다.

 

  아무래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결말이었던 것 같다. 개츠비와 캐서린이 타고 가던 자동차에 치여 톰의 정부가 죽고 그녀의 남편의 오해와 톰의 악의에 의해 총을 맞고 위대한 인생을 마감하는 장면은 어쩐지 얼키고 설킨 사건들이 한 발의 총으로 너무나 쉽게 무참히 해결되어 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지막에 충격을 가하는 단편 소설의 양식을 장편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 느닷없는 결말이어서 오히려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작가의 몫이니까. 독자는 뭔가 더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다음에 마음이 지금보다 평정을 되찾았을 때, 이 소설의 느낌과 줄거리가 거의 잊혀질 때 다시 읽는다면 이 위대한 소설(?)의 진면목을 다시 보게 될까? 가끔 책을 읽다가 남들과 같은 공감을 하지 못하면 어쩐지 불안해 진다. 나만 다른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고... 특히 시간과 함께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작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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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 사내들만의 미학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루디야드 키플링 외 지음, 이문열 엮음 / 살림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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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권 째의 주제는 "사내들만의 미학"이다. 사실 주제에서 썩 끌리지는 않지만 뭔가 내가 미처보지 못했던 또다른 영역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처음 사내들만의 미학이라는 주제를 듣자마자 어렸을 때 토요일 밤마다 TV를 통해 보았던 명화극장이 떠올랐다. 특히 미국 서부극이 많았던 걸로 기억이 되는데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서 약간 어두컴컴한 방안을 비추던 흑백의 화면들이 지지직거리며 명멸하던 생각난다. 아버지와 오빠들이 즐겨보았던 그런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보지 말아야할 세계를 몰래 엿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계속 눈을 뗄 수 없었고 하지만 끝내는 다보지 못하고 어느샌가 잠이 들고 말았던 그런 날들이. 나에게 있어 사내들의 세계는 서부영화의 세계로 먼저 다가온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 다시 엿본 사내들의 세계는 보르헤스를 통해 본 사내들의 세계였다.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의 근대사 속에서 이름을 드러냈던 가우초들의 삶을 작품 속으로 끌어오기도 했는데 서부영화에는 악에 맞서 정의를 수호하는 배우들의 멋진 포즈가 있다면 보르헤스의 작품 속의 사내들은 칼의 힘, 아르헨티나의 평원을 누비던 가우초들의 거친 삶에 굴복하는 사내들이 있고 세상에 이름을 떨쳤던 불한당들(사내 아주 간혹 여성도 있다)의 역사가 있다.

 

  첫 번째 실린 단편이 가장 강렬했던 것 같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뭔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느낌이었달까. 메리메의 "마테오 팔콘느"라는 작품인데 7권의 전체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면서도 결말의 그 비정함이 무섭기조차 하다. 마테오 팔콘느에게는 내리 세 딸을 낳은 후에 태어난, 팔콘느 집안의 대를 이어갈 10살짜리 아들 포르튀나트가 있다. 마테오 부부가 집을 비운 사이에 범죄자가   군인들에게 쫓기며 포르튀나트 혼자 있는 집에 들어온다. 범죄자는 자신을 숨겨달라고 포프튀나트에게 애원하지만 아이는 동전을 받고서야 마른풀 더미에 그를 숨겨준다. 뒤를 이어 군인들이 들이닥치고 군인들 중 마테오 팔콘느 집안의 먼 친척인 남자가 자신이 가진 시계를 보여 주며 포르튀나트를 유혹한다. 범죄자가 숨은 곳을 대면 그 멋진 시계를 주겠다는 것이다. 결국 포르튀나트는 마른풀 더미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고 범죄자는 잡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마테오는 아들이 저지른 모든 행위를 알고 난 후 아들을 숲 속의 빈 공터로 데려가 총으로 쏜다.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고 비명을 지르는 아내에게 마테오 팔콘느는 담담히 말한다. 아이는 빈 공터에 있으며 지금 묻어러 가야한다고. 아이를 위해 미사를 드리자고.

 

  우리의 감각으로는 마테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마테오의 입장에서 그의 아들은 지금까지 그들에게 내려온 전통, 도덕을 어긴 것이었다. 마테오의 아들은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는 대신에 돈을 요구했으며, 나중에는 그를 팔아넘기기까지 했던 것이다. 어린 아들은 그 사회가 지켜야하는 불문율을 어겼고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동은 평생 족쇄처럼 그를 따라다니며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대로 살아가기 힘들게 만들 것이다. 이것이 마테오가 어린 아들의 목숨을 빼앗은 이유이다.

 

  헤르만 헤세의 "기우사"는 아직 모계의 전통이 남아 있던 원시시대에 기우사(비를 부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가 세상을,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감수자인 이문열의 말처럼 이 작품은 사내들의 미학이라는 주제에는 좀 안 어울리는 작품인 듯하며 자연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부족했던 고대의 사람들이 자연과 어떻게 하나가 되고 어떻게 이해해가는 지를 엿보기에 좋은 작품인 듯하다. 비록 주제와는 동떨어진 작품이지만 헤르만 헤세의 다른 작품처럼 시적이고 드러나기보다는 숨겨진 세계의 비밀에 근접하는 듯한 아련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아무래도 7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키플링의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가 아닐까 싶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 같은데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도 아주 강렬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 인도에서 소수 부족들을 속여가며 사는 두 영국 사내가 왕이 되겠다며 승려와 하인으로 변장하여 아프카니스탄의 산악지대로 들어간다. 그들은 운좋게도 숨겨간 총으로 여러 부족들을 제압하고 정말이지 운좋게도 그 산악지방의 사람들이 그들을 알렉산더의 후손이자 신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두 사람 중 드라보트라는 사내가 입고 있는 앞치마에 새겨진 문양과 신전의 돌에 새겨진 문양이 우연히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보트가 여왕을 맞이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뭔가 불길한 조심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러 부족과 그 지방의 사제들이 모인 결혼식날 두려움에 떨던 신부(그들은 신은 결혼을 하지 않으며 신과 결혼한 여자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가 왕의 얼굴을 할키는 바람에 피가 나게 되고, 사람들은 알렉산더의 후손이며 신이라고 믿었던 그들의 왕이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분노에 찬 사람들에 의해 왕은 천길낭떠리지에 걸린 다리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이하고 하인의 신분으로 위장했던 한 사람만 겨우 목숨을 부지해 도망쳐 왔지만 그 또한 인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이야기는 인도의 한 신문사에서 근무하는 기자가 우연히 기차에서 그들을 만나고 3년쯤 시간이 흐른 후 그를 다시 찾아온 남자(손목이 뒤틀리고 기어서야 겨우 다닐 수 있는 불구의 몸으로)로부터 두 사람이 겪은 일들을 듣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두 남자가 정말 왕이 되었는지는 그 남자의 진술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달려 있다. 이 단편은 식민지 인도라는 구체적인 현실과 아프카니스탄의 산악지대에 살고 있는 백인들처럼 얼굴이 하얗고 알렉산더 대왕의 잃어버린 후손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섞여 신비하고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반면 사기꾼, 불한당이나 다름없는 사내들이 총 몇 자루와 원주민들의 오해로 왕(혹은 신)이 되는 것을 보면서 죽어가면서 들려주던 남자의 이야기가 기자가 수집한 단순히 흥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아닌 서구 역사의 일부를 본 것 같은 씁쓸한 맛을 주기도 했다. 때문에 읽는 동안 불편하기도 우스꽝스럽기도 한 기분이었다. 어쩐지 사내들만의 미학이라는 주제로 해석하고 싶지가 않아진다. 작가 이문열은 드라보트라는 사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만은 진짜 왕으로 죽었다고, 당당한 사내로 죽었다고 주제에 어울리는 해석을 하고 있지만 작품 밑바탕에 깔려 있는 서구인의 정복욕, 우월의식을 모르는 척하고 읽을 수가 없었다. 불편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이 있는  단편이랄까.

 

  대체로 7권에 실린 작품들은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작품들은 아니었다. 이 중에서 시간이 흐른 다음 다시 읽어볼 작품은 몇 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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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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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생각보다 별로. 최근에 읽은 책 가운데 가장 실망스러운 책. 예전에 찜해놓고 사야지 하다가 최근에 샀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화들짝 놀랄 만한 책은 아니었던 듯. 그저 작가가 그동안 어떤 분야의 책을 읽어왔고 어디에 관심이 있었는지 좀 짐작이 되는 정도...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분야는 신화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사실 그 분야가 제일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충분히 익숙한 소재일 테니까. 이 책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신화뿐만 아니라 수학, 음악, 물리, 동물들의 생태에 관한 실험, 역사적 사건... 등등 말 그대로 백과사전적인 지식들이 두서없이 나열되어 있다. 사전이란 제목에 딱 어울리게 잡다한 글들이 들쑥날쑥 배치되어 있다. 두께에 비해 책은 가볍고 내용도 그다지 실속있는 건 같지 않고 읽어도 남는 것은 별로 없다. 깊이 있는 책을 원하는 독자들에겐 실망감을 줄 수 있는 책이다. 그냥 책을 덮는 순간 모든 글들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다. 촘촘하게 짜여진 스토리가 아니니까. 아마도 작가는 혹은 어떤 독자는 사라져버리는 어느 순간을 포착해서 또다른 글로 혹은 책으로 혹은 이야기로 재탄생시킬 수도 있겠지만...

 

  장점이라면 책을 쓰는 일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것. 그동안  읽고 느낀 것들을 흘려버리지 않고 가두어두면 글이 되고 한 권의 책이 될 수도 있겠다 하는... 자신이 읽었던 책들에서 뭔가 자신만의 것을 찾아낼 줄 아는 안목, 짧은 단상이라도 꾸준히 기록하는 노력 혹은 습관이 글쓰기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는 것.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그걸 하지 못하고 저자는 오랜시간 꾸준히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기에 이 책뿐만 아니라 무수한 소설들을 창작할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저자의 다른 소설들에 비해 이 책은 조금 실망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래도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굳이 꼽자면... 난 책을 읽어도 문장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 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본다.

 

  "고양이와 개"라는 제목이다.

개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 먹여 줘. 그러니까 그는 나의 신이야.>

고양이는 이렇게 생각한다. <인간은 나를 먹여 줘. 그러니까 나는 그의 신이야.>

 

  나는 개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일까 고양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일까. 고양이의 그 당당하고 위엄있는 표정이 바로 위와 같은 생각에서 나온 것일까. 이제 고양이가 되어 보련다. 주인이 주는 밥을 얻어 먹으며 살면서도 자신이 세상의 주인인 체하는 그 도도한 고양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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