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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 사내들만의 미학 ㅣ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7
루디야드 키플링 외 지음, 이문열 엮음 / 살림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7권 째의 주제는 "사내들만의 미학"이다. 사실 주제에서 썩 끌리지는 않지만 뭔가 내가 미처보지 못했던 또다른 영역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처음 사내들만의 미학이라는 주제를 듣자마자 어렸을 때 토요일 밤마다 TV를 통해 보았던 명화극장이 떠올랐다. 특히 미국 서부극이 많았던 걸로 기억이 되는데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서 약간 어두컴컴한 방안을 비추던 흑백의 화면들이 지지직거리며 명멸하던 생각난다. 아버지와 오빠들이 즐겨보았던 그런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보지 말아야할 세계를 몰래 엿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계속 눈을 뗄 수 없었고 하지만 끝내는 다보지 못하고 어느샌가 잠이 들고 말았던 그런 날들이. 나에게 있어 사내들의 세계는 서부영화의 세계로 먼저 다가온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 다시 엿본 사내들의 세계는 보르헤스를 통해 본 사내들의 세계였다.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의 근대사 속에서 이름을 드러냈던 가우초들의 삶을 작품 속으로 끌어오기도 했는데 서부영화에는 악에 맞서 정의를 수호하는 배우들의 멋진 포즈가 있다면 보르헤스의 작품 속의 사내들은 칼의 힘, 아르헨티나의 평원을 누비던 가우초들의 거친 삶에 굴복하는 사내들이 있고 세상에 이름을 떨쳤던 불한당들(사내 아주 간혹 여성도 있다)의 역사가 있다.
첫 번째 실린 단편이 가장 강렬했던 것 같다. 우리의 이성으로는 뭔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느낌이었달까. 메리메의 "마테오 팔콘느"라는 작품인데 7권의 전체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면서도 결말의 그 비정함이 무섭기조차 하다. 마테오 팔콘느에게는 내리 세 딸을 낳은 후에 태어난, 팔콘느 집안의 대를 이어갈 10살짜리 아들 포르튀나트가 있다. 마테오 부부가 집을 비운 사이에 범죄자가 군인들에게 쫓기며 포르튀나트 혼자 있는 집에 들어온다. 범죄자는 자신을 숨겨달라고 포프튀나트에게 애원하지만 아이는 동전을 받고서야 마른풀 더미에 그를 숨겨준다. 뒤를 이어 군인들이 들이닥치고 군인들 중 마테오 팔콘느 집안의 먼 친척인 남자가 자신이 가진 시계를 보여 주며 포르튀나트를 유혹한다. 범죄자가 숨은 곳을 대면 그 멋진 시계를 주겠다는 것이다. 결국 포르튀나트는 마른풀 더미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고 범죄자는 잡힌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마테오는 아들이 저지른 모든 행위를 알고 난 후 아들을 숲 속의 빈 공터로 데려가 총으로 쏜다.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고 비명을 지르는 아내에게 마테오 팔콘느는 담담히 말한다. 아이는 빈 공터에 있으며 지금 묻어러 가야한다고. 아이를 위해 미사를 드리자고.
우리의 감각으로는 마테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마테오의 입장에서 그의 아들은 지금까지 그들에게 내려온 전통, 도덕을 어긴 것이었다. 마테오의 아들은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는 대신에 돈을 요구했으며, 나중에는 그를 팔아넘기기까지 했던 것이다. 어린 아들은 그 사회가 지켜야하는 불문율을 어겼고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동은 평생 족쇄처럼 그를 따라다니며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대로 살아가기 힘들게 만들 것이다. 이것이 마테오가 어린 아들의 목숨을 빼앗은 이유이다.
헤르만 헤세의 "기우사"는 아직 모계의 전통이 남아 있던 원시시대에 기우사(비를 부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가 세상을, 자연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는 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감수자인 이문열의 말처럼 이 작품은 사내들의 미학이라는 주제에는 좀 안 어울리는 작품인 듯하며 자연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부족했던 고대의 사람들이 자연과 어떻게 하나가 되고 어떻게 이해해가는 지를 엿보기에 좋은 작품인 듯하다. 비록 주제와는 동떨어진 작품이지만 헤르만 헤세의 다른 작품처럼 시적이고 드러나기보다는 숨겨진 세계의 비밀에 근접하는 듯한 아련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아무래도 7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키플링의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가 아닐까 싶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로도 만들어진 것 같은데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도 아주 강렬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 인도에서 소수 부족들을 속여가며 사는 두 영국 사내가 왕이 되겠다며 승려와 하인으로 변장하여 아프카니스탄의 산악지대로 들어간다. 그들은 운좋게도 숨겨간 총으로 여러 부족들을 제압하고 정말이지 운좋게도 그 산악지방의 사람들이 그들을 알렉산더의 후손이자 신이라고 믿기 시작한다. 두 사람 중 드라보트라는 사내가 입고 있는 앞치마에 새겨진 문양과 신전의 돌에 새겨진 문양이 우연히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보트가 여왕을 맞이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뭔가 불길한 조심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러 부족과 그 지방의 사제들이 모인 결혼식날 두려움에 떨던 신부(그들은 신은 결혼을 하지 않으며 신과 결혼한 여자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가 왕의 얼굴을 할키는 바람에 피가 나게 되고, 사람들은 알렉산더의 후손이며 신이라고 믿었던 그들의 왕이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분노에 찬 사람들에 의해 왕은 천길낭떠리지에 걸린 다리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이하고 하인의 신분으로 위장했던 한 사람만 겨우 목숨을 부지해 도망쳐 왔지만 그 또한 인도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 이야기는 인도의 한 신문사에서 근무하는 기자가 우연히 기차에서 그들을 만나고 3년쯤 시간이 흐른 후 그를 다시 찾아온 남자(손목이 뒤틀리고 기어서야 겨우 다닐 수 있는 불구의 몸으로)로부터 두 사람이 겪은 일들을 듣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두 남자가 정말 왕이 되었는지는 그 남자의 진술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달려 있다. 이 단편은 식민지 인도라는 구체적인 현실과 아프카니스탄의 산악지대에 살고 있는 백인들처럼 얼굴이 하얗고 알렉산더 대왕의 잃어버린 후손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섞여 신비하고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반면 사기꾼, 불한당이나 다름없는 사내들이 총 몇 자루와 원주민들의 오해로 왕(혹은 신)이 되는 것을 보면서 죽어가면서 들려주던 남자의 이야기가 기자가 수집한 단순히 흥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아닌 서구 역사의 일부를 본 것 같은 씁쓸한 맛을 주기도 했다. 때문에 읽는 동안 불편하기도 우스꽝스럽기도 한 기분이었다. 어쩐지 사내들만의 미학이라는 주제로 해석하고 싶지가 않아진다. 작가 이문열은 드라보트라는 사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 순간만은 진짜 왕으로 죽었다고, 당당한 사내로 죽었다고 주제에 어울리는 해석을 하고 있지만 작품 밑바탕에 깔려 있는 서구인의 정복욕, 우월의식을 모르는 척하고 읽을 수가 없었다. 불편하면서도 독특한 매력이 있는 단편이랄까.
대체로 7권에 실린 작품들은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작품들은 아니었다. 이 중에서 시간이 흐른 다음 다시 읽어볼 작품은 몇 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