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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평점 :
이 책이 이렇게 읽히지 않는 소설이었나. 처음엔 하루 저녁이면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다. 분량도 많지 않고. 그런데 나의 예상은 완벽히 빗나가고 말았다. 정확히 며칠이 걸렸는지 모르겠으나 아주 느리게 읽은 것만은 분명하다. 소설을 읽는데 진도가 나가지 않는 기이한 경험을 이 책을 통해서 하게 되었고 도저히 읽어지지가 않아서 책을 접었다 다시 펴면 그 부분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특히 전반부가 그랬다. 위대한 주인공 개츠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전까지 서술자인 닉의 주변인물들과 그들을 둘러싼 환경을 스케치하는 동안 나의 시선은 자꾸 쓰레기계곡에서 이스트에그에서 웨스트에그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닉이 개츠비를 만나고 케서린과의 관계를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읽는데 어느 정도 재미와 속도가 붙었던 것 같다.
사실 처음엔 이런... 드디어 소설이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구나(?) 싶었다. 왜 이 이야기에 그토록 빨려 들어가기가 힘들었던 걸까? 우선 나의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요즘 개인적인 사정으로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 것이다. 어디가 불안하고 흥분된 내 마음은 활자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자꾸 소설의 영역을 벗어나서 나의 개인적인 영역으로 자꾸만 되돌아가려고 했던 것이다. 소설이든 어떤 형태의 책이든 책을 읽는 순간에는 잠깐의 현실도피란 것을 믿는 나에게 이 책은 결코 현실도피를 용인해주지 않았다. 자꾸만 현실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의 어떤 부분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혹은 나의 몰입이 부족했기 때문일까?
우선 주이공 제이 개츠비에게 몰입이 되지 않았다. 독자는 서술자인 닉을 통해서만 개츠비를 만나게 된다. 닉은 그들(캐서린과 그녀의 남편 혹은 부르조아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당신(개츠비)이 더 훌륭하다고 하는데 느닷없는 닉의 말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의 무엇이 훌륭하고 위대하다는 것인가. 가난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상류사회를 기웃거리는 졸부가 된 것. 개츠비는 그의 베아트리체를 잘못 골랐다. 개츠비에게 캐서린은 진정한 베아트리체도 아니고 그저 화려하게 빛나지만 싸구려에 불과한 것(상속자들에서 탄의 아버지 김회장이 탄의 엄마에게 한 말이다.)에 현혹된 것일 뿐이다.
이 소설의 단점을 또 꼽자면 장편에서 느끼는 캐릭터의 무게감이 없다는 것이다. 주인공 개츠비조차도 이 소설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닉이 차지하는 존재감이나 주인공 개츠비가 차지하는 존재감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개츠비가 평생을 좇았던 캐서린 조차도 그저 평범한 상류 사회의 여인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정신적 수준은 화려함에 비해 열등해 보이고 개츠비를 만난 이후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것이 개츠비인지 그녀의 남편인지도 잘 모르겠다. 캐서린의 태도를 애매모호하게 그린 게 작가의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불만인 것이 그녀의 존재가 너무나 미약했다는 것이다. 특히 개츠비의 뜻하지 않는 죽음 후에 소설 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녀의 존재는 마치 개츠비가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존재가 환영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려는 것처럼 소설 밖으로 툭 튕겨져 나가버린다.
아무래도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결말이었던 것 같다. 개츠비와 캐서린이 타고 가던 자동차에 치여 톰의 정부가 죽고 그녀의 남편의 오해와 톰의 악의에 의해 총을 맞고 위대한 인생을 마감하는 장면은 어쩐지 얼키고 설킨 사건들이 한 발의 총으로 너무나 쉽게 무참히 해결되어 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지막에 충격을 가하는 단편 소설의 양식을 장편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 느닷없는 결말이어서 오히려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작가의 몫이니까. 독자는 뭔가 더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다음에 마음이 지금보다 평정을 되찾았을 때, 이 소설의 느낌과 줄거리가 거의 잊혀질 때 다시 읽는다면 이 위대한 소설(?)의 진면목을 다시 보게 될까? 가끔 책을 읽다가 남들과 같은 공감을 하지 못하면 어쩐지 불안해 진다. 나만 다른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고... 특히 시간과 함께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작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