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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지영 지음, 이장미 그림 / 한겨레출판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의 트렌드와 잘 맞는 책이다. 공지영이 딸에게 주는 레시피 또한 백주부의 레시피만큼 쉽지만 설탕을 막 쏟아붓는 음식도 인스턴트를 활용하는 음식도 아니다. 작가가 딸에게 주는 레시피는 그 음식을 먹고 만드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느껴지는 레시피다.
작가는 자존심이 깎이는 날에는 안심스테이크를 추천한다. 그녀가 강조하는 언제나 간단한 요리법으로 안심스테이크를 구운 다음 커다랗고 깨끗한 접시에 스테이크를 담고 김치를 어떤 샐러드보다 예쁘게 곁들인다.
여기서 포인트는 '커다랗고'에 있어. 언제나 커다란 접시에 음식을 조금 담아 내거라. 백화점에 가봐, 옷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면 아무리 명품이라도 그저 그렇게 보이지만, 커다란 부티크 쇼윈도에 딱 한 벌 걸려 있다면 싸구려 티셔츠도 명품처럼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 -41-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커다랗고 예쁜 접시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책을 읽는 내내 뭔가 내 자신을 좀더 사랑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그녀처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감사해야 할 것 다섯 가지를 생각해봐야지 했는데 오늘 아침에도 늘 하던 대로 아무 생각없이 비몽사몽인 채로 머리가 띵 한 채로 일어났다. 다른 책을 읽다가 아참 오늘 내가 감사해야 할 것을 찾지 않았구나 싶었다. 내일 아침에는 될까 모르겠다. 해가 갈수록 건망증이 심해지고 그런 나를 이제는 당연하게 생각한 지 오래 되었으므로.
작가가 쓴 수도원 기행에서 스페인의 호텔에선가 가방에서 여행용 접시와 잔을 꺼내 거기다 음식을 담고 와인인가를 마시는 장면이 있었는데 뭐 대충 먹지 유난떠네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그게 작가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이고 자신을 존중하는 한 방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내내 말하는 마음이 아플 때는 마음보다 몸을 먼저 돌보아야 한다는 말도 크게 공감이 되는 말이었다.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맛있는 음식(먹으면서 기분나빠지는 음식이 아니라)을 먹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느낌이다.
괜히 울컥해지는 장면이 있다. 작가가 아픈 딸을 위해 차려낸 녹두죽과 애호박부침을 딸이 어떤 호텔 음식보다 맛있다고 했던 장면. 그때 엄마가 끓여준 흰쌀죽이 생각나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렸을 땐 아프면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입맛이 딱 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럴 때 아무런 간도 되어 있지 않은 흰쌀죽만은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나를 위해 흰쌀죽을 끓이는 수고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아픈 날에는 냄비에 밥을 깔고 누룽지를 만드는 것처럼 바닥을 조금 노릇노릇하게 한 다음 물을 부어 푹 끓이면 그때 맛을 조금 낼 수 있다.
다행히 오늘은 아픈 날은 아니니 흰가랙떡 대신 냉동해 두었던 인절미를 꺼내 후라이팬에 구운 다음 홈뒹굴링이나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