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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루소를 읽는다 - 자유와 평등, 다시 시대의 광장에 서다
김기의 지음 / 다른세상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WTO 등의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오랜 세월 시장주의자로 살아온 저자는 이 시대의 해법을 루소의 '자유와 평등'에서 찾고자 한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모순점이 극에 달해가고 있는 시대에 다시 루소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루소가 살던 당시에도 이미 자본주의는 전 유럽에 퍼져 있었다. 그때 이미 루소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루소는 이 자본주의가 붕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본주의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평등한 시민사회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루소는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기보다는 이 자본주의 안에서 해결점을 찾고자 했다.
이전 시기의 홉스는 자연상태에서 사람들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에 있었으며 이 투쟁상태가 너무 큰 공포를 주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멈추기 위해 서로 계약을 맺어 권력을 군주에 넘겨주고 이로써 평화와 질서를 확보하고자 했는데 이것이 사회계약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루소는 인간의 자연 상태는 우정과 조화가 지배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이 자연상태를 회복할 것을 주장했다. 루소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운 존재이지 사회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했다. 가족은 자연발생적인 관계가 아니라 계약된 관계이다. 나아가 국가란 인위적인 것이며 불평등한 인간관계를 지탱하기 위해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루소는 불평등의 사회상태로부터 시민사회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회계약에는 구성원 전체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프랑스혁명의 불씨가 되었다. 하지만 루소는 사람들의 자연적인 능력의 차이에 따라 발생하는 불평등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이 지점에서 루소는 그다지 진보적이지 못한 사상가라는 생각이 든다. 능력의 차이를 인정해주되 타고난 능력이 부족해서 혹은 경쟁에서 밀려서 뒤지는 사람들을 위한 보완장치가 없는 사회는 평등한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이 책 뿐만 아니라 루소에 대한 글을 읽다보면 그는 참 모순적인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교육을 강조하는 사람이 자기 자식 모두를 고아원에 보낸 것도 그렇고 비록 그 당시에 고아원에 보내 아이들을 양육하는 방식이 그다지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도 하지만. 책 속의 루소와 현실의 루소와의 괴리는 그의 사상에 완전히 빠져들기 힘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