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5
토머스 모어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그곳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곳에 대한 이야기다. 더 정확하게는 토마스 모어가 살았던 16세기 영국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이름도 긴 라파엘 휘틀로다이우스라는 사람을 만나 그가 5년 동안 살았다는 유토피아라는 곳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누군가에게 들었다는 형식을 취하면 독자는 들려주는 이야기를 더 현실감있게 받아들이게 되는데 토마스 모어도 이 형식을 취하고 있다. 라파엘 휘틀로다이우스는 유토피아의 도시국가들의 이름이나 관직의 이름에서 유추해 볼 때 유토피아는 그리스 민족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고대문명의 부활을 꿈꾸었던 르네상스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유토피아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2년 동안 농촌 복무를 해야 한다. 이후 직업을 갖게 되지만 사유재산은 없다. 직업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고 아이들은 부모의 직업을 갖도록 길러진다. 하루에 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면 나머지 시간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식사는 공공식당에서 함께 하고 같은 종류의 옷을 입으며 여행허가증이 있어야 여행을 할 수 있다.

 

사신, 사제, 군수 트라니보루스와 총독 등은 학자 계급에서만 선출된다.총독은 독재 혐의가 없는 한 종신직이며 이웃나라와 전쟁도 벌인다. 계급이 존재하고 전쟁이 일어나는 사회가 유토피아라니 이런 점에서는 유토피아는 토마스 모어가 살았던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일탈을 꿈꾸는 누군가에게는 그곳이 디스토피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책을 현재의 시각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 토마스 모어는 16세기의 모순적 상황에 대한 대안(토마스 모어 자신도 말했듯이 불가능한 대안)으로 이 유토피아라는 곳을 제시하고 있다. 나와 라파엘 휘틀로다이우스와 나누는 대화에서 16세기 영국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는 범죄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국의 경우 사람들을 도둑질로 내모는 이유 중의 하나로 양을 기르기 위해 토지를 잃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데다 방목장 때문에 곡물 가격이 폭등하는 등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범죄에 대한 처벌보다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는 토마스 모어의 시각이 엿보인다.

 

또 토마스 모어는 라파엘 휘틀로다이우스의 입을 빌려 공평한 분배는 각자가 사유재산을 유지하는 곳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토지를 잃은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 빌려 빈민층을 형성하고 이로 인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상황에서 사유재산을 없애고 공평한 분배를 하는 것이 사회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인클로저 운동으로 형성된 값싼 노동력이 산업혁명의 밑바탕이 되는 사회에서 사유재산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위험하고 공허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토마스 모어가 그리고 있는 유토피아는 개성은 없고 질서만 있는 사회로 비쳐진다. 당시의 영국이 그만큼 혼란스러웠다는 반증일까.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은 더 나은 시대를 꿈꾸는 모양이다. 내가 사는 사회가 그런 대로 만족하며 살만한 사회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 그래도 잃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다. 바로 유토피아는 그 비판의식을 바탕으로 한발자국 더 나아가고자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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