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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서재 - 진화하는 지식의 최전선에 서다
장대익 지음 / 바다출판사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선 제목부터가 눈길을 끈다. 그리고 책을 펼치면 그동안 익숙하게 들어왔던 과학분야의 고전들의 세계가 하나씩 펼쳐진다. 읽고 싶고 갖고 싶었던 책들이다. 하지만 이들 과학분야의 책의 단점은 책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내가 과학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과학책이 어느 정도는 세상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주기도 하고 통찰력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물리학을 통해서 우주의 기원, 나아가 인간의 기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물론 과학이 절대지식이 아닌 것처럼 우주의 기원에 대한 이해도 지금 우리 과학문명의 수준만큼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은 빅뱅 이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란 게 밝혀졌듯이 빅뱅 이론이 다른 이론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이 책은 대담형식의 책이다. 많은 분야의 책을 섭렵했다고 알려져 있는 다윈이 현대를 살고 있다면 그의 서재에는 어떤 책이 실려 있을까라는 상상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그리고 1부 다윈의 서재는 저자 장대익의 스승이라고 하는 인지철학자 대니얼 대닛과 여러 작가들과의 대담형식으로 진행된다. 물론 상상의 대담이다. 거의 이 책의 말미까지 진짜 대담인 걸로 오해했었다는... 이 대담을 통해 각각의 책을 쓴 저자들의 핵심주장을 알 수 있다.
1부 각 장의 제목은 도발적인 책, 우아한 책, 경계가 없는 책, 배후의 책, 내밀한 책이다. 이런 제목들만 봐도 작가가 글을 얼마나 매력있게 쓰는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 도발적인 책으로는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처음 등장한다. 작년엔가 재작년엔가 읽은 책인데 제목만큼이나 도발적인 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책의 전체적인 인상은 좀 산만했던 기억이 있다. 장대익 교수도 진화론자의 입장에서 이 책 '다윈의 서재'를 썼고 리처드 도킨스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 듯 하다. 아이들을 종교에 노출시키는 것은 정신적인 바이러스라는 주장은 역시나 도발적이다.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되는 주장이다.
2부 장대익의 서재는 나를 바꾼 책으로 '종의 기원', '눈먼 시계공',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을 소개한다. '생명, 그 경이로움에 관하여'는 스티븐 제이 굴드가 쓴 책으로 버지스 이판암에 새겨진 캄브리아기 대폭발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생명이 얼마나 우발적인 존재인지를 흥미롭게 보여주는 있는 책이다. 신의 설계에 의한 생명의 기원과 우발적인 생명의 기원 중 아직은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아무도 가르쳐줄 수 없다. 신의 설계란 단어는 매력적이긴 하다. 빅뱅도 신의 설계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면 빅뱅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 다 설명되는 것이니까. 신의 설계에 과학이 설 자리는 없다. 과학은 단순한 이론을 좋아하긴 하지만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론을 받아들일 수는 없을 테니까.
2부에는 유일하게 우리나라 과학자가 쓴 책이 한 권 소개되어 있다. 장회익 교수가 쓴 '온생명'이라는 책이다. 이 책에는 온생명과 낱생명이라는 생소한 개념이 소개되어 있다.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 유지될 수밖에 없는 의존적인 생명을 낱생명이라 부르는 반면 태양-지구계처럼 항구적인 자유에너지 원천을 그 안에 품고 있는 자족적 생명은 온생명이라 한다. 수많은 책들 중에 한국 과학자의 책이 한 권이라도 있어서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2부의 마지막은 제러미 리프킨이 쓴 '3차 산업혁명'을 소개하는 것으로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며 마무리된다. 3차 산업혁명은 화석 에너지를 수직적으로 공급받는 분배 방식에서 탈피하여 태양열과 같은 재생에너지를 각자 생산하고 수평적으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이다.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미래는 낙관적이다. 이 책을 소개하고 있는 장대익 교수가 정말로 낙관적인 미래를 예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에는 회의적이다.
금융자본에 의한 자본주의가 고도화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독점적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에너지의 평등을 수용할 것인가가 문제다. 자본은 어느 한 곳에 집중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반면 3차 산업혁명은 자본의 평등이 가능해진 후에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출 수 있겠는가.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이 가장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는 부유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 반면 오늘 같이 더운 날 에너지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더위를 참아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이 책에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거나 정확한 개념은 모르지만 어디서 들어보았거나 혹은 생소한 개념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 개념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도 이 책이 주는 또다른 재미다. 우선 요즘 많이 쓰이는 '통섭'이라는 용어가 그렇다. '통섭'이라는 단어는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 윌리엄 휴얼이《귀납과학의 철학》에서 썼던 용어로 학문의 큰 가지들이 몇몇 공통 원리와 설명체계들로 묶여서 통합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우리는 19세기의 용어를 최신트랜드라고 인식하며 쓰고 있었던 것이다.
'밈'이라는 단어는 최근에 익숙해진 단어이다. 영국의 생물학자 도킨스(Richard Dawkins)가 1976년 출간한 저서《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에서 만들어 낸 용어이다. 도킨스에 따르면, 문화의 전달은 유전자(gene)의 전달처럼 진화의 형태를 취한다. 밈은 모방을 통해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전달되면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면 우리 인간은 문화를 전달하는 하나의 기계이다. 우리가 책을 읽고 작가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도 일종의 밈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서평집이 유행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은 단연 돋보인다. 이 한 권으로도 과학의 전반을 훑어볼 수 있고 더 나아가 작가가 추천하는 책들을 한 권씩 섭렵하다보면 세상에 대한 인식이 더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