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 일제 강점기에서 한국전쟁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그날의 이야기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1
임기상 지음 / 인문서원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내 자신의 못난 모습을 회피하고 싶어지듯이 아프고 못난 지난날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 아프고 못난 지난날을 직시하는 것만이 오늘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인직이 누구인지 다 안다. 국어 시간에 최초의 신소설을 쓴 사람은 이인직, 무슨 수학공식 외우듯이 외웠으니까. 하지만 오늘에야 그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그가 이완용의 비서로 조선을 팔아먹은 비밀협상의 실무자였다는 사실을... 그런 사람이 국어교과서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리게 된 것은 해방 이후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 탓이다.

 

조선사편수회에 의해 만들어진 식민사관이 해방과 함께 자취를 감추지 않고, 이병도와 신석호 등의 친일사학자들을 통해 강단에 전파되면서 주류 역사학계가 황폐화되었다. -80-

 

일본학자들에 의해 식민사관을 교육받은 사람들이 서울대학교 같은 주류 학계에 그대로 남아서 그들이 배운대로 식민사관을 가르쳤고 그것이 오늘에 이어져 오고 있다. 일본학자에 의해 만들어진 식민사관이 정설로 인정되는 분위기에서 그와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가르치는 학자는 교단에 설 수 없었고 결국은 학교를 그만두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너무 놀랐던 것은 해방 이후에도 식민사관을 가르쳤던 교수들은 자신들을 가르쳤던 일본교수를 여전히 그들의 스승으로 받들고 있었고 학교는 여전히 일본인학자들의 영향 아래 있었다는 사실이다. 너무 어이가 없는 광경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해, 자신이 몸 담고 있는 단체에 비판적인 입장에 서야할 학계에서조차 이 모양인데 정치판이야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어렵게 반민특위가 결성된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이 권력을 잡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친일세력의 재력과 힘이 필요했으므로 친일파를 처단하려는 반민특위는 이승만의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반민특위는 해체되었고 이후 친일청산 작업은 요원해지고 말았다

 

사실 이런 것보다 더 안타깝고 읽어내기가 힘겨웠던 것은 제주 4·3사건과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일부 군인들에 의해 일어났던 여수순천 반란사건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잔혹하고 반인륜적인 행위들이었다. 우리 역사의 어두운 면뿐만 아니라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 지를 보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인간의 잔혹함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고, 인간성을 지키기 힘든 상황에서도 그 존엄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제 몫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 알게 된다. 김일성이 마오쩌둥과 스탈린을 만나 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물밑외교를 벌이고 구체적인 날짜까지 잡은 상태로 만반의 준비를 한 후 남침을 했을 때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낚시 중이었고 전쟁이 발발한 후에도 국방부장관과 작전국장은 연락도 되지 않는 코미디같은 상황이 연출된다.

 

지금이라고 해서 뭐가 다를까. 얼마 전 북한의 목함지뢰가 터져 하사관 두 사람이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은 상황에서 이런 일들이 대통령에게 보고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다음날 통일부에서는 북한에 남북고위급회담을 제안했다고 하니 손발 안맞기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어쩜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들은 반복되는 것인지... 아래 글을 읽어보고 섬뜩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조선인이 제 정신을 차리고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조선의 마지막 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가 한 말이다. 해방 70년이 되었다. 그들이 심어놓은 식민교육은 여전히 현재형이고 우리의 옛 영광(있기는 했어나 싶지만)은 요원하기만 하다. 앞으로 30년이 지나면 뭔가 달라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나는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의 인격을 의심한다. 그런데 헉, 시인이라는 사람이 쓴 글에 욕들이 자주 등장, 아니 도배되어 있었다. 불편했다. 많이. 처음에는. 하지만 읽다보니 소리내어 깔깔거리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뭔가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 욕이 목 안에 걸려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체질인 나는 이렇게 시원스럽게 욕을 배설해주시는 시인이 경이롭다.

 

나 역시 소년 시절엔 고만고만한 욕설에 길들여져 있는 촌놈이었을 터이나 중학교 2학년 무렵 '장래희망-시인'이 되고부터는 절대로 욕설을 입에 담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욕설을 거세했다. -244-

 

시인은 '장래희망 - 시인'이 되고부터 의식적으로 욕을 거세해왔으나 군대를 거치면서 거세된 욕에 대한 본능이 되살아난 것이다. 얼토당토 않는 상황에서 난무하는 욕들을 재미있어하지 않는 한, 적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한 맑은 영혼이라 자처하는 이들은 이 책을 읽어내지 못할 것 같다.

 

시인의 욕은 그저 위악적인 제스처로 읽혔다.

 

시인은 자신을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라고 칭한다. 누군가 말했단다. 시인의 시는 너무 쉽지 않냐고. 뭔가 좀 어려워야 품격있는 시 같은데 시인의 시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비꼬는 듯한 말투. 하지만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은 담담하다. 이것이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의 감성이다.

 

어제는 참을 수 없이 배가 고팠다. 이상하고 아름답게 배가 고팠다. 곰곰 돌이켜 생각건데, 원인은 어제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본, 어느 집 담장에 매달려 있던 호박넝쿨이었다.  -169-

 

시인의 산문을 읽고 있으니 이상하고 아름답게 마음이 움직였다.

 

이 책에는 시인을 압도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문청시절 시인에게서 니들이 문학이 뭔지나 아느냐는 엉뚱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김연수, 김중혁도 아니고, 예의 그 커다란 안경을 쓰고 다니다 시인의 눈에 띈 박민규도 아니고,  노래방에서 만원 주며 애창곡을 당신께 넘기라고 했다던 이윤기 작가도 아니다.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시인보다도 독특한 아우라를 내뿜는 사람은 여름철에 잠시 머물러 있었던 시골집의 주인 아저씨다.

 

 추석 연휴 동안 집을 비웠던 주인집 아저씨가 저녁 무렵 반송 엽서 같은 폼으로 귀가하셨다. 어딜 그렇게 오래 다녀오시냐는 글쓴이의 질문에 주인아저씨는 '글 쓰다 왔슈'라고 대답한다. 이 아저씨의 꿈은 시인이다. 노란 봉투에 자신이 쓴 시를 담아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으로 가서 봉투를 부치는 사람이다. 여자 축구 선수를 좋아해서 연애 편지를 쓰는 사람이고, 태풍이 부는 밤에는 뽕나무를 걱정하여 뽕나무밭에 가서 우는 사람. 어쩐지 현실 속 인물이 아니라 시인이 만들어낸 캐릭터 같은 인물이다.  

 

왠지 시인과 겹쳐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주변 사람에게 이 책을 쓴 사람이 역사저널 '그날'에 나오는 시인 류근이 맞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산문 속에 등장하는 시인의 이미지와 TV에 등장하는 류근 시인의 이미지와 도저히 맞질 않아서. 책을 읽는 동안 착각했나보다. 책 속에서 보여진 시인의 이미지가 시인의 전부일 것이라고. 어쩌면 TV 속의 반듯한 시인 대신 산문 속의 싸구려 통속 삼류 시인 하나 쯤은 이 시대에 살아남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중톈 중국사 5 : 춘추에서 전국까지 이중톈 중국사 5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춘추전국시대를 제대로 이해하기는 힘든 것 같다.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너무나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니까 잠깐 아, 그랬었구나 이해가 되었다가도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요즘 춘추전국관련 책들을 몇 권 읽다보니까 이 글들이 서로 섞이기도 하고 이해되기도 하면서 아직은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춘추전국을 이야기하려면 전설의 시대로 여겨지는 하나라, 그리고 본격적인 역사시대인 은나라, 주나라부터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춘추시대의 제후국들을 이해하려면 주나라 시대부터 이어진 방국제도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서주부터 동주 시대까지 중국에서는 이 제도가 실행되었는데, 천자가 제후를 봉하고, 제후는 대부를 봉하여 각자 하사받은 영지를 다스리게 하는 제도였다. 하지만 주나라의 천자가 힘을 잃자  제후국들 간의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그나마 춘추시대는 남만, 북적, 동이, 서융의 오랑캐로부터 주나라의 왕실을 지켜야한다는 존왕양이라는 대의명분을 내건 싸움이었다. 이 싸움에서 춘추오패가 등장한다. 먼저 제나라가 두각을 드러내고 이후 진(晉), 초, 오, 월이 춘추오패로서 다른 제후국들을 압도한다. 하지만 초, 오, 월 세나라는 한족이 아닌 만이(남만)에 속하는 민족이었다. 이들이 춘추새대의 제후국으로 편입되면서 중화의 영토는 더 넓어지게 되는 것이다. 반면 전국시대는 그 양상이 많이 달라진다. 

 

상류사회는 인의를 버리고 권모술수에, 각 나라는 양보를 멈추고 전쟁에 열중했다. 그 결과, 책략가들이 시운을 타고 출현했으며 불한당들이 단숨에 높은 자리에 올랐다. 그것이 바로 전국 시대였다. -239-

 

이 전국 시대를 마무리한 나라가 진(秦)나라로 시황제는 강력한 중압집권을 형성하며 비로소 최초의 중국통일을 이룬다. 이 시기에 합종연횡이란 말이 생겨난다. 태항산 동쪽의 여섯 나라인 연, 제, 조, 위, 한, 초가 북쪽부터 남쪽까지 세로 방향의 연합전선 혹은 통일전선을 이루어 공동으로 서쪽의 강력한 진나라에 대항하는 것이 합종이고, 동서 방향으로 6국 가운데 어느 한 나라와 진이 연합하여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연횡이다.

 

진나라가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상앙의 변법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상앙이 추진한 변법의 실제적인 의의는 중앙집권이었다. 이것은 진나라의 개혁에서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개혁 이후 토지, 백성, 권력이 다 군주에게 집중되었다. 춘추시대의 지방분권에서 벗어나 비로소 강력한 중앙집권이 형성된 것이다.

 

진시황제가 통일 이후 분서갱유 등의 잔혹한 일을 했지만 결국에는 지금의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는 진시황제 이후 더욱 공고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 책 한 권으로 춘추전국 시대를 이해하기는 힘들다. 저자는 시대의 큰 흐름에 따라 역사를 기술하기보다는 몇몇 나라와 인물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어서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의 지향점이 어떻게 달라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춘의 문장들+ - <청춘의 문장들> 10년, 그 시간을 쓰고 말하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금정연 대담 / 마음산책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아직 '청춘의 문장들'을 읽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이 먼저 내 손에 들어와버렸다. '청춘의 문장들'에 대해 들은 소문이 컸던 탓일까 기대만큼의 몰입은 없었다. 하지만 김연수의 글에서는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만이 느끼는 동질감이랄까 그런 것이 느껴진다.

 

작가의 고향 김천이 그에게는 자신만의 스트로베리 필드였듯이 나에게도 고향은 그런 곳이다. 그곳 김천은 작가에게는 중간 기착지같은 느낌이랄까. 작가에게 그곳은 머물러 있어야 할 곳이 아니라 언젠가는 떠나야 할 곳이었다. 내게도 고향은 머무는 곳이 아니라 늘 떠나야 하는 곳이라는 인상이 더 강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떠난 이후 그곳은 떠나왔다 돌아감을 반복하는 곳이 되었고 이제는 돌아가는 것이 어쩐지 불가능하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 되었다. 나도 변했고 우리들만의 스트로베리도 변했으므로. 우리들만의 스트로베리 필드에서 살았던 그 시절 고향에 머물겠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을까.

 

우리가 스트로베리 필드에서 살았던 시절 우리는 정치에 대해 몰랐지만 그냥 막연하게 느껴지는 분위기라는 게 있었다. 그 분위기라는 게 작가가 말하는 거대한 귀가 아니었을까 싶다. 작가는 대구고등법원 김천지청에 옥상에 산다는 거대한 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옥상으로 올라가 그것의 정체를 확인하려했던 행동들이 소설가가 되어 여러 권의 소설을 펴낼 때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8월이었고 내 기억에는 내가 살아왔던 날들 중에서 가장 더웠던 날들 중의 하나였다.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세 가지 일들이 동시에 일어났던 그날. 더웠고 혼란스러웠고 믿기지 않았다. 시간을 두고 벌어졌어야 할 일들이 그날 하루에 일어났던 그날은 왠지 시간이 뒤죽박죽이 된 것 같은 날이었다. 그날은 앞으로도 내가 맞이 할 세상은 그럴 것이라는 경고같은 것이었을까.

 

그날의 일은 정리되지 않은 서랍처럼 뒤죽박죽인 채로 남아 있다. 내가 아마 작가였더라면 그날을 글로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문장이 내 안에는 들어있지 않다.그러니 다른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김연수 작가의 문장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작가는 이런 문장이 좋은 문장이라고 말한다. 겸손한 문장,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는 자가 쓰는 문장,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 아래서 쓰는 문장. 문장을 쓴다는 것이 글을 쓴다는 것이 힘든 일임을 알고 있는 작가의 겸손이 엿보이는 문장이다.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움직였던 문장을 적어본다.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다른 모든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 한 권의 책을 선택하는 일이 중요해졌고 그래서 점점 고전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166-

 

다시 10년 지난 뒤 정말로 청춘의 흔적마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내가 어디에 서 있게 될지 궁금해지는 하루다. 아니 두려워지는 하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만을 보았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현재의 불행을 유년의 기억이나 체험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한다. 특히 중년이 지난 이후에도 그런 기억에 매달려 사는 사람은 더욱. 그런 사람은 현재의 자신을 책임지려하기보다는 불행한 유년의 기억 속으로 도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든 행동은 유년의 체험에 의해 변명되고 희석된다. 그렇기에 딸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앙투안이라는 인물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가 없다.  

 

딸 조세핀에게 방아쇠를 당긴 이후 모든 생각과 말들은 내게는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프로이드에 의해 시작된 정신분석이 인간을 유년에 지배되는 의지박약한 인간으로 폄하시켜 놓았다. 모든 불행은 쌍둥이 여동생 안이 죽은 날 집을 나가 버린 어머니에게서 시작되고 그런 상황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고 아이들의 아픔을 방치하는 아버지에 의해 증폭된다.

 

그리고 반복이나 되듯 아내 역시 다른 남자와 살기 위해 떠나고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여지게 될 딸과 아들이 자신처럼 불행질 거라 믿었던 앙투안은 딸 조세핀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의 떨림은 방아쇠가 조세핀의 턱을 향하게 하고 조세핀은 살아남았다.

 

앙투안이 이런 선택을 한 건 그가 인생에서 행복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뭐 특별하지 않은 인생에 가끔 행복이 찾아드는 것이지 행복이 늘 만나는 일상처럼 우리 주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살아남은 쌍둥이 여동생 안나처럼 자신만의 행복을 찾았다면 앙투안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방아쇠가 빗나가 조세핀은 살아 남았다. 비록 아버지가 왜 자신을 먼저 쏘았을까라는 의문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되고 턱을 관통한 총알로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소설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 사건 이후 앙투안과 조세핀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이 소설의 지향점이다. 앙투안에게는 과거와 화해하고 결별하고 그리고 정말로 행복을 찾을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앙투안은 멕시코에 자신이 묵었던 호텔의 청소부로 일하며 손해사정인이라는 옛날 직업을 이용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보험금 받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며 지낸다. 그곳에서 동생(실은 성폭행을 당해 낳은 아들이다)을 돌보며 혼자 지내는 마틸다라는 여자를 만난다. 그들과 만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앙투안은 조금씩 변해가고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 정신적 안정을 되찾아간다. 그들과 바닷가를 거닐면서 앙투안은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특히 아이가 묻는 질문에서.

 

아저씨, 비는 왜 내려요?

 

그건 자신의 아이들이 그에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던 질문이었다. 그 질문을 통해서 앙투안은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 어디에도 있지 않다고 여겼던 행복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조세핀이 서 있다. 평화로워보이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조세핀은 오랜 질문 끝에 아버지를 찾아왔다. 그녀가 아버지를 찾아 그 바닷가에 있다는 것은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들은 다시 행복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인생에 있어서는 행복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