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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나는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의 인격을 의심한다. 그런데 헉, 시인이라는 사람이 쓴 글에 욕들이 자주 등장, 아니 도배되어 있었다. 불편했다. 많이. 처음에는. 하지만 읽다보니 소리내어 깔깔거리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뭔가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 욕이 목 안에 걸려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체질인 나는 이렇게 시원스럽게 욕을 배설해주시는 시인이 경이롭다.
나 역시 소년 시절엔 고만고만한 욕설에 길들여져 있는 촌놈이었을 터이나 중학교 2학년 무렵 '장래희망-시인'이 되고부터는 절대로 욕설을 입에 담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욕설을 거세했다. -244-
시인은 '장래희망 - 시인'이 되고부터 의식적으로 욕을 거세해왔으나 군대를 거치면서 거세된 욕에 대한 본능이 되살아난 것이다. 얼토당토 않는 상황에서 난무하는 욕들을 재미있어하지 않는 한, 적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한 맑은 영혼이라 자처하는 이들은 이 책을 읽어내지 못할 것 같다.
시인의 욕은 그저 위악적인 제스처로 읽혔다.
시인은 자신을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라고 칭한다. 누군가 말했단다. 시인의 시는 너무 쉽지 않냐고. 뭔가 좀 어려워야 품격있는 시 같은데 시인의 시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비꼬는 듯한 말투. 하지만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은 담담하다. 이것이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의 감성이다.
어제는 참을 수 없이 배가 고팠다. 이상하고 아름답게 배가 고팠다. 곰곰 돌이켜 생각건데, 원인은 어제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본, 어느 집 담장에 매달려 있던 호박넝쿨이었다. -169-
시인의 산문을 읽고 있으니 이상하고 아름답게 마음이 움직였다.
이 책에는 시인을 압도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문청시절 시인에게서 니들이 문학이 뭔지나 아느냐는 엉뚱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김연수, 김중혁도 아니고, 예의 그 커다란 안경을 쓰고 다니다 시인의 눈에 띈 박민규도 아니고, 노래방에서 만원 주며 애창곡을 당신께 넘기라고 했다던 이윤기 작가도 아니다.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시인보다도 독특한 아우라를 내뿜는 사람은 여름철에 잠시 머물러 있었던 시골집의 주인 아저씨다.
추석 연휴 동안 집을 비웠던 주인집 아저씨가 저녁 무렵 반송 엽서 같은 폼으로 귀가하셨다. 어딜 그렇게 오래 다녀오시냐는 글쓴이의 질문에 주인아저씨는 '글 쓰다 왔슈'라고 대답한다. 이 아저씨의 꿈은 시인이다. 노란 봉투에 자신이 쓴 시를 담아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으로 가서 봉투를 부치는 사람이다. 여자 축구 선수를 좋아해서 연애 편지를 쓰는 사람이고, 태풍이 부는 밤에는 뽕나무를 걱정하여 뽕나무밭에 가서 우는 사람. 어쩐지 현실 속 인물이 아니라 시인이 만들어낸 캐릭터 같은 인물이다.
왠지 시인과 겹쳐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주변 사람에게 이 책을 쓴 사람이 역사저널 '그날'에 나오는 시인 류근이 맞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산문 속에 등장하는 시인의 이미지와 TV에 등장하는 류근 시인의 이미지와 도저히 맞질 않아서. 책을 읽는 동안 착각했나보다. 책 속에서 보여진 시인의 이미지가 시인의 전부일 것이라고. 어쩌면 TV 속의 반듯한 시인 대신 산문 속의 싸구려 통속 삼류 시인 하나 쯤은 이 시대에 살아남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