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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만을 보았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5년 3월
평점 :
난 현재의 불행을 유년의 기억이나 체험에서 찾으려는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한다. 특히 중년이 지난 이후에도 그런 기억에 매달려 사는 사람은 더욱. 그런 사람은 현재의 자신을 책임지려하기보다는 불행한 유년의 기억 속으로 도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든 행동은 유년의 체험에 의해 변명되고 희석된다. 그렇기에 딸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앙투안이라는 인물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가 없다.
딸 조세핀에게 방아쇠를 당긴 이후 모든 생각과 말들은 내게는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프로이드에 의해 시작된 정신분석이 인간을 유년에 지배되는 의지박약한 인간으로 폄하시켜 놓았다. 모든 불행은 쌍둥이 여동생 안이 죽은 날 집을 나가 버린 어머니에게서 시작되고 그런 상황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고 아이들의 아픔을 방치하는 아버지에 의해 증폭된다.
그리고 반복이나 되듯 아내 역시 다른 남자와 살기 위해 떠나고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여지게 될 딸과 아들이 자신처럼 불행질 거라 믿었던 앙투안은 딸 조세핀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의 떨림은 방아쇠가 조세핀의 턱을 향하게 하고 조세핀은 살아남았다.
앙투안이 이런 선택을 한 건 그가 인생에서 행복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뭐 특별하지 않은 인생에 가끔 행복이 찾아드는 것이지 행복이 늘 만나는 일상처럼 우리 주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살아남은 쌍둥이 여동생 안나처럼 자신만의 행복을 찾았다면 앙투안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 방아쇠가 빗나가 조세핀은 살아 남았다. 비록 아버지가 왜 자신을 먼저 쏘았을까라는 의문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되고 턱을 관통한 총알로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소설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 사건 이후 앙투안과 조세핀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이 소설의 지향점이다. 앙투안에게는 과거와 화해하고 결별하고 그리고 정말로 행복을 찾을 마지막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앙투안은 멕시코에 자신이 묵었던 호텔의 청소부로 일하며 손해사정인이라는 옛날 직업을 이용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보험금 받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며 지낸다. 그곳에서 동생(실은 성폭행을 당해 낳은 아들이다)을 돌보며 혼자 지내는 마틸다라는 여자를 만난다. 그들과 만나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앙투안은 조금씩 변해가고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 정신적 안정을 되찾아간다. 그들과 바닷가를 거닐면서 앙투안은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특히 아이가 묻는 질문에서.
아저씨, 비는 왜 내려요?
그건 자신의 아이들이 그에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던 질문이었다. 그 질문을 통해서 앙투안은 비로소 행복을 느낀다. 어디에도 있지 않다고 여겼던 행복이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조세핀이 서 있다. 평화로워보이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조세핀은 오랜 질문 끝에 아버지를 찾아왔다. 그녀가 아버지를 찾아 그 바닷가에 있다는 것은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들은 다시 행복을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인생에 있어서는 행복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