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한정 양장본) - 가장 작고 사소한 도구지만 가장 넓은 세계를 만들어낸
헨리 페트로스키 지음, 홍성림 옮김 / 서해문집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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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출간


세계적인 공학자가 쓴 연필의 ,연필에 대한, 연필에 의한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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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 가는 길 - 선진국 한국의 다음은 약속의 땅인가
조귀동 지음 / 생각의힘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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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9년 8월 서강대 사회학과에 재직 중인 이철승 교수의 <불평등의 세대>가 출간되었다. 계급이 아닌 세대 불평등에 주목해야 함을 세대사회학의 이론적 논의와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치하게 논증한 문제작이었다. 이 책이 주목하는 ‘불평등의 세대’, 즉 IMF와 신자유주의를 거치며 한국 사회에서 가장 혜택을 받은 세대 집단으로 86세대를 지목하며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임금피크제, 국민연금 제도 개혁 등 정책 개혁의 방향성까지 제시했다. 저자는 ‘58년 개띠’로 표상되는 산업화 세대가 IMF 외환위기 때 퇴직에 내몰렸다면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86세대, 민주화 세대는 산업화 세대가 떠난 자리를 채우며 승승장구했고, 2000년대 후반 금융 위기(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도 부동산 자산을 기반으로 오히려 부를 축적한 특혜 집단이라고 설명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86세대의 파워 엘리트들을 논하는 부분이 제일 재밌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에 86세대가 정치권, 시민단체, 공공기관 등 사회의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있고, 세대 집단으로서 응집력과 인구학적 규모, 동일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이익 집단의 화력 측면에서 강력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실상을 데이터를 통해 논증하니 설득력 있게 들렸다. 90년대부터 본격화된 세계화, 정보화, IT 혁명에 발맞춰 네이버의 이해진, 카카오의 김범수 등 파워 기업(인)들의 성장 배경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진진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 책은 오늘날 상위 중산층upper middle class에 오른 86세대가 누린 특혜와 특권을 지적하며 특히 민주당과 그 지지층의 위선과 허위의식을 공격하는 논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조국 사태,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 지목된 조국에 관련된 비리와 범죄의 정황이 전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한 정국과 맞물리며 화제성이 커졌던 것 같다.

조국 사태 이후 공정과 능력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국문학자 천정환이 지적했듯 능력주의의 탈을 쓴 상위 중산층 내부의 헤게모니 투쟁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마이클 영의 <능력주의>가 출간되고, <엘리트 세습>, <특권>, <공정하다는 착각> 등 수많은 책이 쏟아졌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책은 조귀동의 <세습 중산층 사회>였다. ‘세대냐, 계급이냐’ 양자택일에서 이철승이 전자를 지지했다면 조귀동은 계급/계층의 후자에 집중해 세대 간 불평등보다 세대 내 불평등이 더 심각함을, 이철승과 마찬가지로 각종 데이터를 통해 논증했다(조귀동은 경제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신기한 점은 이분이 (무려) 조선일보 기자였다는 사실이었다. 사회비평/칼럼 분야의 신진 작가가 출현했음을 독자들에게 각인하는 신호탄이었고, <전라디언의 굴레>, <이탈리아로 가는 길>까지 저술 활동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2

<이탈리아로 가는 길>이란 무엇인가. 이 제목은 한국 정치가 변하지 않으면 이탈리아와 같은 사회로 갈 거라고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좌파가 지향하는 독일의 사민주의나 북유럽의 복지 국가 모델, 우파가 지향하는 미국식 자유주의 모델에 근접하기보다 우리의 현실은 이탈리아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가부장제와 남성우월주의의 잔재로 인한 성 차별, 상위 중산층 계층과 노동자 계층의 불평등 심화, 남북 문제로 대변되는 지역 격차와 사회 갈등 등 이탈리아와 한국 사회는 비슷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

저자는 1980년대 GDP 기준 세계 5위권 경제 대국으로 승승장구했던 이탈리아가 정치권에서 비리 스캔들로 기존 정치 시스템이 붕괴되고, 이로 인해 산업 구조의 재편 같은 시급한 국정 과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서 성숙한 선진 사회로 발돋움하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사태의 근원은 정치의 실패에 있다고 강조한다. 미디어 재벌이었던 극우 정치인 베를루스코니가 장기 집권한 이후에 각종 포퓰리즘 세력이 난립하며 불안정한 정치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데 한국이 그 전철을 무섭도록 유사하게 밟고 있는 형국이라고 진단한다.

여기서 중요하게 제시되는 개념은 ‘노무현 질서’의 붕괴다. 상위 중산층의 행동주의에 기반한 대중 동원의 정치 원리는 촛불 시위를 통해 표출되었고, 뿐만 아니라 국민경선제를 채택한 정당의 후보 선출 방식으로 한국 정치의 기본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원로 정치학자 최장집이 숱하게 지적했듯 정당 정치의 기반이 약한 한국 사회에서 노무현 질서는 정치의 문법을 바꿔놓았던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플랫폼 자본주의, 제조업의 쇠퇴, 메가 시티 대서울의 부흥과 지방의 소멸 등 변화 속에서 저자는 중산층으로의 ‘행복의 약속’(사라 아메드)이 파기되었음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한국 사회의 ’사회 계약‘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가 바뀌지 않으면, 중산층의 재생산 시스템을 새로이 구축하지 못하면 파국으로 치달을 것임을 설명한다. 포퓰리즘 정치가 판치는 판국에서, 정치적 부족주의의 형태(팬덤 정치)로 타 진영을 적대하고 혐오하는 형세에서 극단적인 강성 유권자의 눈치를 보며 민생 안정, 공공적 이익에 복무하지 못하는 정치를 어떻게 구제할 수 있을 것인가.

3

내게 작년 대선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20대 남자’였다. 거대 정당 소속의 대선 후보자 두 명이 각각 안티 페미니즘과 페미니즘으로 포지셔닝해 적대적인 정체성 정치의 전선을 구축했다. 결과적으로 ‘이대남 현상’은 선거의 판도를 뒤짚었다고 해석될 만큼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조귀동은 20대 남자 유권층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이준석의 정치적 생명력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는 듯했다. ‘목동 출신’이 말하는 공정과 능력주의, 안티 페미니즘을 통한 적대적 정체화의 집단으로서 20대 남성층의 지지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보는 것 같았다.

취업, 결혼, 내집마련으로 이어지는 정상적이고 구범적인 시민의 자격을 획득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탈리아로 가는 길>은 사회계약의 갱신을 통한 중산층의 복원을 역설하는데 현 사회가 ‘세습’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는 상위 중산층 계층과 노동자 계층 사이 격차가 심화되고 있고, 중산층을 위한 정치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진단 아래 내려진 처방이었다.

작년 대선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에 분노와 환멸을 느낀 중산층과 수도권 노동자층이 대거 이탈하며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고 조귀동은 지적한다. 민주당은 이렇게 상위 중산층의 정당으로 변모하며 호남 출신의 수도권 노동자 등 지지층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반면 정당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자영업자의 이익을 대변해줘야 하는 국민의힘(자유한국당, 새누리당 같은 이름만 생각나서 검색의 도움을 빌렸다…)은 이들을 잘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민생과 살림살이, 시민의 공공적 이익에 복무하는 정치는 실종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검찰 개혁 같은 일에 목 매다는 민주당이나 문재인 정 정부를 비판하며 네거티브 말곤 무능력을 여실히 드러내는 윤석열 정부 모두에 저자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모습이다.

저자는 정치를 정상화시키지 못하면 ‘뒤처진 사람들’, 부를 증식할 수 있는 사회적 사다리에 오를 기회를 박탈당한 이들의 열패감과 분노가 극단적 포퓰리즘과 만나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탈리아로 가는 길>이 내게 남긴 가장 중요한 문제 의식을 하나 꼽으라면 이걸 말하고 싶다.

4.

노무현 레짐과 박정희 레짐의 정치적 시효는 황혼을 지나고 있는 듯하다. 중도층을 움직일 만한 합리적이고 실효적인 정책과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정치 세력의 출현을 기대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 사회의 다음 종착지는 ‘약속의 땅’인가. 이 책의 감상을 정리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새로운 정치 질서를 확립할 만한 역량을 지닌 정치 세력을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혼란스럽고 이상한 정치 정국을 해석하고, 대안을 모색할 만한 혜안을 지니지 못한 탓에 책을 읽고도 머릿속이 복잡해질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어디에 와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밀하게 방향을 제시하는 저자의 뜻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지 않은 길’을 제시하는 정치 행위자의 꿈을 유심히 살피며 유권자-시민으로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을 다졌다. ‘논객 시대’(노정태) 이후의 정치 평론이 풍성하게 제기되길, 그렇게 좋은 정치 공동체에 대한 숙의 민주주의가 발현될 수 있길 소박하게 희망해본다. 이탈리아를 좋아하지만 이탈리아보다 좋은 정치 공동체를 형성하길 바라며 감상을 끝맺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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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문화정치 - 감정은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사라 아메드 지음, 시우 옮김 / 오월의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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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 편집장이란 분이 이런 책이나 추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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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bean0 2023-12-20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문제가 있나요?

nell119 2024-05-01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왜요?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 - 건설·거주·재건축의 40년 케이 모던 2
이인규 지음 / 마티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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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제작 <마이너 필링스>는 마티 출판사의 ’앳(at)’ 시리즈의 첫 권이다. ‘앳(at)’ 시리즈, ‘온(on)’ 시리즈에 이어 ‘케이 모던(k-modern)’이 새롭게 출범했다. 마티 출판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시리즈 설명은 다음과 같다.

한국이 만든 ‘현대성’을 묻다

마티가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와 함께 ‘케이 모던’ 시리즈를 시작한다. ‘케이 모던’ 시리즈는 한국이 만든 현대성(modernity)에 주목한다. 현대는 주어진 조건으로, 또는 서구나 일본이 한국에 미친 영향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왔으나 이런 시선으로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사태가 많다. 예를 들어 고층아파트의 기원은 분명 서구에 있지만, 한국의 아파트는 1960년대 이후 한국만의 정치-경제적 상황이 누적되어 빚어진 대단히 독특한 사태이다. 이제 우리가 서구와 일본에서 무엇을 참조했는지 묻는 데에서 나아가 그것을 바탕으로 무엇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이것들이 어떤 한국인을 만들었는지 묻고자 한다.

‘케이 모던’ 첫 번째 책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는 시리즈 번호 2번이다. 1번은 박철수 선생의 『마포주공아파트: 단지 신화의 시작』을 위해 남겨두었다.

한마디로 건축을 통해 한국이 만든 현대성을 탐구하는 시리즈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예고된 출간 목록을 보면 아파트를 중심으로 특수한 건축적 현대성을 구현한 한국사회를 논의하려는 시도인 것 같다. ‘아파트 한국사회’의 현대성 탐구랄까. 아파트 책은 꽤 많이 축적되어 있는 편이다. ’프랑스 지리학자가 본 한국의 아파트‘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발레리 줄레조의 <아파트 공화국>, 시각디자인 연구자이자 아파트 담론을 정력적으로 이끌었던 박해천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3부작‘(<콘크리트 유토피아>, <아수라장의 모더니티>, <아파트 게임>), 전상인의 <아파트에 미치다>, 건축학자 박인석의 <아파트 한국사회: 단지공화국에 갇힌 도시와 일상>, 얼마 전에 작고하신 고 박철수 교수님의 <아파트>와 <한국 주택 유전자>, 브랜드 아파트의 현장 연구를 진행한 문화인류학, 도시인류학 저술인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등 한국의 아파트는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을 제공해왔다.

그동안 발전국가 시기 근대화의 부정적인 산물로서,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투기의 대상(’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이 된)이 된 부동산 상품으로서, 획일화되고 집단주의적 심성을 주조하는 건축 양식으로서 아파트에 대한 부정적인 논의가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케이 모던‘ 시리즈는 그동안 축적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건축이 만든 한국의 현대성‘을 새롭게, 두텁게 이야기해보려는 도전이 아닐까 싶었다. ’디지털 네이티브‘처럼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아파트 네이티브’, ’아파트 키드‘가 특수가 아닌 보편적 주체가 된 시대 상황에서 오늘날 도시와 건축, 주거와 라이프스타일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한국의 건축적 현대성을 역사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 ’케이 모던‘ 시리즈는 1번 단지 신화의 시작을 알린 마포주공아파트이 아닌 2번 박철수 선생의 제자이자 ’아파트 키드‘로서 젊은 세대의 새로운 아파트 연구를 보여주는 이인규의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로 첫 선을 보였다.

2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로 이인규 저자를 처음 알게 되었다. 아직 책을 읽어보지 못했으나 어느 글에서 이 아카이빙 프로젝트의 존재를 접해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둔촌주공아파트 재개발 소식을 모르고 있던 터라 그의 작업이 어린 시절 추억을 보관하기 위한 실천이겠거니 짐작했을 뿐이었다.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는 ’아파트의 생애사‘를 기록하는 독특한 형식의 글쓰기를 표방하고 있었다. ’건설, 거주, 재건축의 40년‘은 둔촌주공아파트가 살아낸 생로병사의 시간인 셈이다. 식민지 근대와 발전국가 시기 압축적 근대화를 겪으며 한국사회는 시간의 더깨가 쌓인 역사성의 흔적을 파괴적으로 지우고, 그 위에 근대국가를 전투적으로 건설해 왔다. 한 세기 전만 해도 식민지의 시간을 살았던 한국사회에 역사적 기억을 다음 세대로 전수해줄 만한 ’기억의 장소‘, ’기억의 공간‘은 그리 많이 보존돼 있지 않다. 자본이 빠르게 움직이고, 재개발과 건설이 활발히 이뤄지는 서울에서 40년씩 오랜 수명을 살다 간 건축물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오랜만에 어느 동네를 방문했을 때 단골집이 사라졌음을 확인하고 헛헛함과 상실감을 느낀 적이 한 번씩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둔촌주공아파트는 호상을 치렀다고 할 수 있으려나. 아마 그렇게 얘기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둔촌주공아파트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의 내력이 그리 녹록치 않았기 때문이다.


둔촌주공아파트의 생애를 통해 단순히 ‘어떻게 하면 재건축사업에서 둔촌주공 사태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서 질문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까지 거대한 문제가 만들어진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원인과 문제가 일어난 과정을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랐다.

서문

이인규는 대단지의 생애사를 기록함으로써 앞으로 반복될 재개발 잔혹사의 오답 노트를 제공하고자 한다. 역사 쓰기를 통해 현실에 개입하기.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기억/상상력의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다가올 미래를 현재에 기입하기. 이곳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냈는지, 이곳이 어떻게 사라져갔는지 탄생부터 죽음까지 한 편의 전기(autobiography)를 작성한다. 단독 주택이라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 건물을 지은 건설사, 건물에서 산 주민 정도의 이야기를 담으면 될 텐데 둔촌주공아파트는 훨씬 복잡한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 놓여 있다. 그래서 저자는 “둔촌주공아파트의 생애를 살펴본다는 것은 콘크리트로 지어진 아파트 건물과 그 주변에 조성된 단지 환경을 넘어, 아파트 단지의 생애에 관여하는 여러 주체에 관한 관심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일이었다. 둔촌주공을 기획한 정책 결정자들, 설계하고 시공한 건축업 종사자들, 그리고 당시 아파트에 들어와 살았던 입주민들, 그리고 재건축 과정에 관여한 조합, 시공사 등까지. 그들의 생각과 활동, 상호작용과 그 결과로 나타난 변화를 두루 살펴보려고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둔촌주공아파트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이해하려면 발전국가 시기의 개발연대와 정림건축의 두 행위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정권은 1970년대에 정권에 친화적인 중산층을 육성하는 데 힘을 쏟았다. 주공아파트 건설은 이면에 “늘어나는 중산층의 내 집 마련 수요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체제 순응적이고 정권 친화적인 집단을 만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총과 칼의 무력을 통한 폭압적인 철권 통치의 한계가 명확했기에 시민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체제순응적인 시민 집단을 형성하고자 아파트를 대대적으로 건설하여 공급한다. 강남 개발로 서울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였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유치를 앞두고 사회 안정을 시행한다는 명목 아래 정상 시민과 비시민을 구분하고, 부랑아나 노숙자 등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 찍힌 소외된 자들을 배제하고 몰아내는 데 앞장 섰다. 둔촌주공아파트의 경우, 군인, 공무원, 서울대 교수 등 정권에 친화적인 기득권 세력이 특혜를 받았고(‘반공 국민’ 만들기의 일환), 입주권을 따내기 위해 현금을 많이 지불해야 했기에 고임금 전문직이나 대출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계층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건축신문’을 발행하는 ‘정림건축문화재단’의 정림건축이 본문에 등장해서 놀라웠고 반가웠다. 저자는 김중업, 김수근 등 스타 건축가에 집중돼 있는 기존 건축계의 한계를 지적하며 건축사의 빈 자리에 건축 집단의 퍼즐을 끼워맞추고자 한다. 분량이 좀 길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이라 그대로 인용해보려고 한다.

김정철의 바람대로 둔촌주공은 ‘후세에 의해 평가’된다. 건축학자나 평론가 들이 아니라 그곳에서 나고 자랐던 이들에 의해 아파트에 대한 다른 평가와 이해가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둔촌주공아파트에 살았던 이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각자 마음속에 품고 있던 동네에 대한 애정을 공유했다. 사람들은 둔촌주공아파트가 낮은 밀도로 지어져 쾌적하고 여유로운 공간을 누릴 수 있었고, 섬세하게 설계된 단지의 여러 요소 덕분에 장소에 대한 좋은 감각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계절마다, 구역마다 다른 모습이었던 수목들과 넓은 녹지, 놀이터와 휴게공간을 유연하게 연결하던 보행자 전용로 등 주민들이 사랑했던 공간들은 설계자들이 특별히 더 신경 써서 설계하고 실현한 것들이었다.

거주민들은 안락하고 살기 좋은 거주 환경을 만들고자 했던 이름 모를 설계자의 이상과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읽어낼 수 있었다. 살기 좋은 집을 만들려는 마음이 정말로 살기 좋은 집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좋음을 사람들은 알아본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더 좋은 거주 환경을 고민하는 마음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69-70)

책 말미에 “둔촌은 강동이 아닙니다!” 파트는 재개발과 부동산, 자본과 정치의 모순이 집약적으로 녹아 있는 부분이었다. 대한주택공사의 과거 사훈대로, 김정철과 정림건축의 철학대로 살기 좋은 주택을 짓는 건축의 공공성 정신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아니 부동산을 중심으로 이익 집단이 헤쳐 모이고, 동일한 욕망을 공유하는 조직화된 집단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역학 속에서 공공적인 도시 정책이 어떻게 시행될 수 있을까. 이런 커다란 질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정작 마음속에 선명하게 각인된 이미지는 성인이 되기까지 자신을 키워낸 집-동네를 향한 애정으로 기록활동가에서 건축연구자가 된 저자의 궤적이었다. 집에서 동네로, 동네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국가로, 그리고 사적인 추억에서 공공적 기억으로, 사실에서 역사로 이동하며 집에 집을 지어 주었다. 성냥갑 같이 네모 낳고 단단한 책의 집을, 존재가 거주하는 언어의 집을. 여기서 누군가의 유년 시절의 노스탤지어를, 누군가는 아파트 공화국/한국사회의 역사적 단면을, 누군가는 재개발의 잔혹한 역사를 재현하지 않기 위한 지적 재료를 얻어갈 것이다. 한 생애는 이토록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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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
마민지 지음 / 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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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코인 광풍이 한바탕 몰아쳤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회귀물의 인기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의 정서에 기인한다고 말하면 너무 거칠고 불성실한 분석일까. 하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은 진양철 역으로 분했던 이성민 배우의 열연 외에도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상상을 대리실현한 데서 오는 통쾌함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생각한다. 분당이 '천당 위의 분당'이 될 거란 사실을 알고 미리 땅을 사들이고, 주식의 등락 흐름을 미리 파악해 저점에서 사서 고점에서 판매하고... 평균적인 소득 수준의 임금노동자가 서울 집 한 채(아마 주거 형식의 코리안 스탠다드인 아파트를 기준으로 삼았을)를 구하려면 30년 동안 돈을 모아야 한다는 식의 기사를 가끔 발견하곤 한다. '일확천금''한탕주의'까진 아니더라도 <21세기 자본>의 저자인 세계적인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유명한 공식,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는 사실이 상식이 된 마당에 재태크를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인문잡지 <한편 5호 : 일>에 실린 배세진의 '동학개미, 어떻게 볼 것인가'에도 관련 일화가 소개된다. <21세기 자본>을 읽고 주식투자를 시작했다고, 사회과학적으로 보면 주식 투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거나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경우라면 이 말에 설득력이 더해진다. 여기에 대해 진보적인 입장에서 '제로섬 게임'에서 홀로 생존 경쟁을 부추기는 이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바꾸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괜찮은 식사와 살 만한 주거 환경 및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권리를 다수가 누릴 수 있도록 사회의 공공성을 살려내야 한다고 말한다. 메시지는 가슴 깊이 공감하지만 현실의 차가운 벽 앞에 인간에서 (동학)개미로 '변신Metamorphosis'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지 고민이 든다. 왜 한국은 부동산에 미친 나라가 된 걸까. 서울의 집은 왜 이리 비싼 걸까. 수저계급론이 시사하듯 어쩌다 계층 이동성이 경직되고 중산층이 해체되고 신분제 사회로 회귀한 것 같은 신계급사회가 도래한 걸까...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현재를 비틀어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사를 들여다 보기. 세계가 왜 지금 모습이 되었는지 파악하고, 실현되지 못한 미래를 불러올 수 있는 틈새를 찾아내기. EBS 국제다큐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버블 패밀리>의 감독 마민지의 첫 책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은 버블이 꺼지듯 호황 뒤에 불황이 덮치면서 초래된 가족의 불행을 역사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며 자신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을 이해하는 과정을 담담히 풀어낸다.

IMF 외환위기(이하 IMF)는 몇 년 전부터 대중문화의 소재(영화 <국가부도의 날> 등)로 등장할 만큼 이제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말할 수 있는 역사가 된 것처럼 보인다. IMF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IMF의 상징적 이미지는 두 종류로 구분된다. 긍정적인 이미지로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했던 '국뽕'의 이미지, 부정적인 이미지로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에서 배회하는 쓸쓸한 가장의 이미지, 서울역에 나앉은 노숙자의 이미지. IMF는 한국전쟁만큼이나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시스템을 뒤흔들고 재편한 결정적 사건으로 지목된다. 며칠 전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는데 비정규직이 최초로 도입된 계기가 다름 아닌 IMF였다. 노동시장의 이원화(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변화, 소득 불평등 및 양극화의 점진적 심화 등 IMF를 기점으로 한국은 '헬조선'으로 가는 헬게이트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파국적이고 엄청난 사건이었음에도 IMF에 대한 문화적 기억/재현은 여전히 빈약하다. 그런 의미에서 마민지의 작업은 'IMF 키즈'(IMF를 경험한 밀레니얼 세대 청년)로서 자신이 겪은 IMF가 무엇이었는지 증언하는 이야기로서 흥미롭고, IMF 재난/트라우마가 남긴 상흔을 치유하는 가족 드라마로서 감동적인 면모가 있다. 대학교 졸업작품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하겠다고 마음 먹고 "부모님을 인간 대 인간으로서 더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252)에서 인터뷰를 했다. 연을 끊다시피 하며 살았던 아빠가 왜 대낮에 종로를 거닐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고, 엄마는 하필 많고 많은 직업 중에 부동산을 파는 사람이 되었는지 궁금했다고(252). 여기서 자연스레 개인과 사회, 가족사와 역사가 겹치면서 질문은 확장된다. "중산층이었던 우리 가족은 왜 하루아침에 추락한 걸까? 부모님은 왜 부동산에 집착하는 걸까? 나는 왜 사춘기 시절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던 걸까? IMF 외환위기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걸까? 마음속에서 무수히 생겨났다 없어지길 반복했던 질문들"에 답하기 위한 시도로서 저자는 영화를 찍고 글을 썼다. 그렇게 저자의 시선은 자신들과 같이 "IMF 외환위기를 극복했다는 신화 뒤에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어린 시절 갑자기 좁은 평수로 집을 이사 가야 했거나, 양육자가 정리해고로 직업을 잃었거나, 중소기업 사업체를 운영하다가 부도가 났거나, 양육자 중 특히 어머니가 실질적 가장이 되어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기 시작한, 어떤 형태로든 정상가족이 해체되는 경험을 하며 자신의 속사성을 가까운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끝없이 치솟는 아파트값을 보며 더 이상 내 집을 가지지 못할 거라고 체념해버린 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조건들 위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서 있다가도, 그 땅이 언제든 다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본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고 싶었다.

'내 땅'을 통해 바라본 것들, 252~253

나는 이 이야기를 IMF 외환위기를 겪어낸 또래의 관객들과 나누고 싶었다. 가세가 기울고 부모님의 언성이 높아지는 날들이 이어졌지만 친구들에게 차마 이런 속사정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혼자 마음속 깊은 곳에 짐을 진 채로 성인이 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흩어져 있는 서사를 각자의 방식대로 다시 채워나가고 있을 사람들과, 전기가 나간 방 한구석에서 두려움에 떨었던 순간에 대해, 등교하기 전 머리를 감기 위해 커다란 냄비에 물을 끓이며 지각할까봐 발을 동동 구르던 순간에 대해, 내가 살고 있는 초로한 집을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불안해하며 죄지은 사람처럼 골목길을 돌고 돌아 집에 가던 순간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영화 <버블 패밀리>의 완성, 228~229쪽

중산층도 아닌 중상류층으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다 한순간에 경제적으로 추락한 상황을 가족 구성원 중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부친은 큰 한 방을 노리며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재기를 꿈꾸고, 모친은 축소된 집 크기에 맞지 않는 '투머치한' 원목 식탁(90년대에 500만 원을 부담하고 구매했던!)을 포기하지 못한다. 저자는 인용문에 서술된 모든 궁금증을 안고 영화를 찍었는데 그 영화가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느낀 순간은 부친이 관람했을 때라고 적는다. "아빠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나서야 비로소 <버블 패밀리>라는 영화가 완성됐다는 생각이 들었다."(232) 그렇게 한 부동산 가족의 이야기가 사람들 곁으로 왔다. 부동산 불패신화의 호황기 한가운데에 있었고, IMF의 여파를 직격탄으로 맞았으나 여전히 부동산 신화에 사로잡혀 있는 부모님을 이해하고자 했던 딸은 아버지와 자신의 성씨를 따 '쌍마픽처스'를 설립한 영화인이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앞으로 밀레니얼 세대가 들려줄 집과 부동산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이미 기존에도 대단지 아파트의 독특한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이은규의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 최초의 집에 살았던 주거 기억을 찾아가는 책(신지혜, <최초의 집>) 등이 나와 있다. 시야를 좀 더 확장하면 <여기는 무지개집입니다 - 한 지붕 퀴어 대가족> 등 주거, 가족, 공동체, 섹슈얼리티, 계급, 장소성 등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는 집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IMF 버블이 거품 꺼지듯 한 정상가족을 해체로 몰아갔다면 마민지는 서사의 힘을 통해 거품에서 태어난 조개껍질을 엮어 이야기의 집을 지어냈다. 이 집에서 각자 상처로 얼룩덜룩한 집, 사랑하지만 지긋지긋한 가족에 대한 기억의 사진첩을 잠시 꺼내보게 될 것이다. 집을 사지는 못하더라도 집을 지을 권리와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기억의 건축술은 과거의 나, 우리를 다르게 살게 할 수 있다. 이름 모를 외로움과 슬픔에 잠겨 있던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집을 지어주길 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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