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코인 광풍이 한바탕 몰아쳤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회귀물의 인기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의 정서에 기인한다고 말하면 너무 거칠고 불성실한 분석일까. 하지만 <재벌집 막내아들>은 진양철 역으로 분했던 이성민 배우의 열연 외에도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상상을 대리실현한 데서 오는 통쾌함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생각한다. 분당이 '천당 위의 분당'이 될 거란 사실을 알고 미리 땅을 사들이고, 주식의 등락 흐름을 미리 파악해 저점에서 사서 고점에서 판매하고... 평균적인 소득 수준의 임금노동자가 서울 집 한 채(아마 주거 형식의 코리안 스탠다드인 아파트를 기준으로 삼았을)를 구하려면 30년 동안 돈을 모아야 한다는 식의 기사를 가끔 발견하곤 한다. '일확천금''한탕주의'까진 아니더라도 <21세기 자본>의 저자인 세계적인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유명한 공식,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는 사실이 상식이 된 마당에 재태크를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인문잡지 <한편 5호 : 일>에 실린 배세진의 '동학개미, 어떻게 볼 것인가'에도 관련 일화가 소개된다. <21세기 자본>을 읽고 주식투자를 시작했다고, 사회과학적으로 보면 주식 투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거나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경우라면 이 말에 설득력이 더해진다. 여기에 대해 진보적인 입장에서 '제로섬 게임'에서 홀로 생존 경쟁을 부추기는 이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바꾸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괜찮은 식사와 살 만한 주거 환경 및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권리를 다수가 누릴 수 있도록 사회의 공공성을 살려내야 한다고 말한다. 메시지는 가슴 깊이 공감하지만 현실의 차가운 벽 앞에 인간에서 (동학)개미로 '변신Metamorphosis'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지 고민이 든다. 왜 한국은 부동산에 미친 나라가 된 걸까. 서울의 집은 왜 이리 비싼 걸까. 수저계급론이 시사하듯 어쩌다 계층 이동성이 경직되고 중산층이 해체되고 신분제 사회로 회귀한 것 같은 신계급사회가 도래한 걸까...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 바뀌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현재를 비틀어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사를 들여다 보기. 세계가 왜 지금 모습이 되었는지 파악하고, 실현되지 못한 미래를 불러올 수 있는 틈새를 찾아내기. EBS 국제다큐영화제 대상 수상작인 <버블 패밀리>의 감독 마민지의 첫 책 <나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은 버블이 꺼지듯 호황 뒤에 불황이 덮치면서 초래된 가족의 불행을 역사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며 자신의 '이상하고 평범한 부동산 가족'을 이해하는 과정을 담담히 풀어낸다.
IMF 외환위기(이하 IMF)는 몇 년 전부터 대중문화의 소재(영화 <국가부도의 날> 등)로 등장할 만큼 이제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말할 수 있는 역사가 된 것처럼 보인다. IMF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IMF의 상징적 이미지는 두 종류로 구분된다. 긍정적인 이미지로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했던 '국뽕'의 이미지, 부정적인 이미지로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에서 배회하는 쓸쓸한 가장의 이미지, 서울역에 나앉은 노숙자의 이미지. IMF는 한국전쟁만큼이나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시스템을 뒤흔들고 재편한 결정적 사건으로 지목된다. 며칠 전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는데 비정규직이 최초로 도입된 계기가 다름 아닌 IMF였다. 노동시장의 이원화(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변화, 소득 불평등 및 양극화의 점진적 심화 등 IMF를 기점으로 한국은 '헬조선'으로 가는 헬게이트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파국적이고 엄청난 사건이었음에도 IMF에 대한 문화적 기억/재현은 여전히 빈약하다. 그런 의미에서 마민지의 작업은 'IMF 키즈'(IMF를 경험한 밀레니얼 세대 청년)로서 자신이 겪은 IMF가 무엇이었는지 증언하는 이야기로서 흥미롭고, IMF 재난/트라우마가 남긴 상흔을 치유하는 가족 드라마로서 감동적인 면모가 있다. 대학교 졸업작품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하겠다고 마음 먹고 "부모님을 인간 대 인간으로서 더 알아보고 싶다는 마음"(252)에서 인터뷰를 했다. 연을 끊다시피 하며 살았던 아빠가 왜 대낮에 종로를 거닐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고, 엄마는 하필 많고 많은 직업 중에 부동산을 파는 사람이 되었는지 궁금했다고(252). 여기서 자연스레 개인과 사회, 가족사와 역사가 겹치면서 질문은 확장된다. "중산층이었던 우리 가족은 왜 하루아침에 추락한 걸까? 부모님은 왜 부동산에 집착하는 걸까? 나는 왜 사춘기 시절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던 걸까? IMF 외환위기가 우리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친 걸까? 마음속에서 무수히 생겨났다 없어지길 반복했던 질문들"에 답하기 위한 시도로서 저자는 영화를 찍고 글을 썼다. 그렇게 저자의 시선은 자신들과 같이 "IMF 외환위기를 극복했다는 신화 뒤에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