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파리? 에펠탑? 와인? 세느 강? 샹송? 혁명? 각자 다른 답을 가지고 있을 것 같습니다. 직접 프랑스에 가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본인의 사적인 경험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꼽을 수 있겠지만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TV나 인터넷, 책 같은 매체를 통해 재현된 프랑스의 이미지들 중 자신의 뇌리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부분을 꼽을 것입니다. 책갈피 세대라면 이자벨 아자니, 소피 마르소 같은 ‘여신’들의 얼굴을, 좀 더 이전 세대로 가면 알랭 들롱이나 이브 몽땅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교류는 그렇게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교통수단과 통신기술이 발달되기 전까지 소수의 탐험가나 정부에서 파견한 사신들을 제외하고 먼 이국을 가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흔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프랑스가 본격적으로 맞닥뜨린 사건은 ‘병인양요’라 할 수 있습니다. 병인양요 이후 프랑스 신부님들이 조선으로 와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식민지 시기 조선에서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이 읽혔다고 합니다. 불어 원전 번역본이 아닌 영역된 축약본을 중역한 판본이었다고 하네요. 그 당시 소위 상징주의로 분류되는 일군의 프랑스 시인들이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에 조선의 시인들은 보들레르와 랭보를, 베를렌과 말라르메를, 로트레아몽을 읽었을 겁니다(번역사를 검토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방 이후부터 이중에서 해방 이후부터 읽히기 시작한 작가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별 헤는 밤>을 통해 시인 동주가 ‘프랑시스 잠’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50년대에 지식인들의 ‘교과서’로 통용된 ‘사상계’ 잡지 등을 통해 사르트르가 널리 읽혔다고 합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인간의 실존을 다룬 사르트르와 카뮈의 작품들이 한국인들의 정서와 잘 맞았던 것 같고, 사르트르의 참여문학론(앙가주망)과 지식인의 현실참여에 대한 생각들이 당대 사회 분위기와 잘 부합했던 것 같습니다. 이후 김현 같은 불문학자, 평론가에 의해 프랑스의 지성은 한국사회에 꾸준히 수용되었습니다. 80년대까지 지식 공론장의 지배 헤게모니는 마르크스주의 혹은 맑스-레닌주의가 장악하고 있었다면, 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이름으로 들뢰즈, 푸코, 데리다, 리오타르, 보드리야르 같은 철학자들의 대거 수입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철학과를 다녔던 분들 중에는 철학자라고 하면 미셸 푸코밖에 없는 줄 알았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우스갯소리긴 하지만 당대 프랑스 철학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글로벌 지식장에서 미국의 위상이 지배적이지만 프랑스 지식은 여전히 한국에서 활발하게 수용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쇄신하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로 범주화할 수 있는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랑시에르 같은 정치철학자들의 저작들이 꾸준히 번역되고 있고, 활발히 논의되고 있습니다. 자크 라캉 같은 정신분석학자의 이름도 한 번쯤 들어본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EBS에서 만든 3부작 드라마 <내 여친은 지식인>에서 1화에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 개념을 설명하고, 2화에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취향의 계급화, 상징자본에 대해 설명하고, 3화에서 라캉의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를 설명하는 등 프랑스 이론 편향적(?)인 모습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실제 인문학계와 대학가에서 프랑스 사상가들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반증일 겁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많은 이슈를 야기하고,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페미니즘 분야에 있어서도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의 고전을 꼽을 때 첫 손으로 꼽히는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저자 올랭프 드 구주는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수 있다면 투표할 권리도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권선언에서 여성의 인권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의식은 제1의 페미니즘 물결에서 중요한 시민권, 투표권 투쟁으로 이어져 여성해방의 기나긴 혁명의 첫 걸음을 떼게 했습니다. 제2의 페미니즘 물결 역시 프랑스의 철학자가 쓴 글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주인공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인데 제목이 함축하고 있듯 ‘여성은 남성의 타자로 구성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그동안 이면에 숨어 있었던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문제들을 표면으로 부상시켰습니다.
철학과 사상에 있어서도 탁월한 프랑스지만 아무래도 독일은 철학과 사상, 프랑스는 문화예술의 이미지가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제 세대는 샹송을 접할 기회가 잘 없는 편인데 에디트 피아프, 이브 몽땅의 대표곡 정도는 들어본 바 있습니다. 제 세대에게는 다프트 펑크를 프랑스 음악의 대표적인 명사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디지몬 어드벤처에서 들었던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 침대광고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김연아 선수를 통해 알게 된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마티유 드뷔시의 <달빛>, 현대음악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를 클래식 쪽에서 좋아하고, ECM 쪽의 재즈 뮤지션들을 좋아합니다. 프랑스가 스웨덴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큰 재즈신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나중에 여행가게 된다면 꼭 재즈 카페를 가보고 싶습니다.
미술 쪽으로 가면 워낙 많아서 일일이 화가의 이름을 열거하기 힘들지만 인상주의부터 초현실주의까지 굵직굵직한 프랑스 화가들이 많았다면 미술계의 패권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간 이후부터 아무래도 현대미술에서는 프랑스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세계인들에게 루브르와 오르세 미술관의 아성은 여전히 굳건해서 문화예술의 강국 이미지를 통한 (프랑스 경제에서 굉장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관광산업은 문제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영화예술에 있어서만큼은 칸느영화제가 세계 최고의 영화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고, 알랭 기로디, 올리비에 아사야스, 미아 한센-러브, 프랑수아 오종, 자비에 돌란 같은 좋은 감독들이 계속 배출되고 있는 걸 보면 프랑스 영화계의 아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학의 경우 최근 창작되고 있는 젊은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은 거의 읽어보지 못했지만 르 끌레지오, 파트릭 모디아노 같은 거장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좋은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조르주 페렉을 위시한 울리포 그룹, 파스칼 키냐르와 이브 본느프와를 추천합니다!). 최근 개봉된 <발레리안>이나 <설국열차> 같은 영화들의 원작이 그래픽 노블인 걸 보면 그래픽 노블 강국인 프랑스의 선전은 쭉 이어질 것 같습니다(<아스테리오스 폴립>으로 그래픽노블의 세계에 입문한 저는 미메시스에서 나온 책들을 몇 권 읽어보았고, 앙굴렘 페스티벌에서 수상한 작품들은 찾아 읽어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대한 정보 중에 제게 흥미로웠던 사실은 프랑스가 기록의 강국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필립 가렐 감독의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을 보았을 때 필름들이 보관되어 있는 아카이브가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기록이 없기로 악명이 높은 한국의 경우와 비교되어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물론 한국 또한 <조선왕조실록> 같이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한 유산을 보유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식민지 시기 일제에 의해 기록물들이 말소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기록들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아 연구자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얘기를 종종 전해 들었습니다(특히 식민지 영화연구의 경우 필름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도 식민지 시대 최고의 영화로 꼽히는 나운규의 <아리랑>의 필름이 남아 있지 않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 프랑스에서 유학하신 교수님의 특강을 들으면서 접한 재밌는 에피소드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프랑스의 경우 세계적인 석학이라 판단되는 학자가 사망하면 유가족의 동의를 얻어 그가 남긴 메모 하나까지 모두 국가에게 수거해간다고 합니다. 전집 발간을 위해서인데 어린 시절 연애편지부터 해서 온갖 잊고 싶은 흑역사들까지도 역사에 기록되는 것이죠. 어떤 교수님이 본인은 그 정도로 유명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농담을 하신 기억이 납니다. 만약 오늘날 한국에서 세계적인 석학이 돌아가셔서 프랑스 식으로 아카이빙 작업을 하게 된다면 작업담당자들은 그분이 부디 SNS를 안 하셨기를 간절하게 소망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SNS를 엄청나게 뒤져야 하는 수고는 일기나 편지 등 인쇄매체의 글들을 끌어 모으는 것보다 더 힘들 것 같습니다.
내게 프랑스는 처음 지단과 앙리, ‘아트싸커’의 나라로 각인되었다. 앙리-트레제게 세계 최고의 투톱을 가지고도 골대 6-7번을 맞추는 불운 끝에 조별예선에서 탈락한 프랑스. 외국나라의 수도를 어느 정도 외울 수 있을 때쯤 프랑스는 막연히 고급스러운 선진국의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자유·평등·박애의 삼색기, 에펠탑이 있는 수도 파리, 와인과 더불어 프랑스 혹은 세계 3대 음식으로 꼽히는 푸아그라, 에스카르고(달팽이 요리)가 있는 미식의 나라, 아직까지 프랑스의 문화예술 및 역사에 대해 알지 못했을 때 대중매체를 통해 이식된 프랑스의 정체성이란 이런 것들이었다. 한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초1 때 어린이용으로 편집된 얇은 레미제라블을 읽었는데 ‘장발장’이란 이름에 혼란을 느꼈다. 만약에 지네딘 지단이나 티에리 앙리 같은 이름이었으면 프랑스식 이름이구나 바로 알아차렸을 텐데 한국인 성씨로도 쓰이는 ‘장’이 나와서 성은 장이요, 이름은 발장인 이상한 한국이름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장발장이 신발장과 비슷한 유의 가구는 아닐지 헷갈렸다. 책을 읽어보면 사람은 사람인데 이름이 장발장이라니... 레미제라블은 내게 빵을 훔쳐서 ‘빵’에서 십 몇 년 동안 썩었다는 줄거리보다 이름으로 기억되는 작품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세계사 시간을 좋아했기에 프랑스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갈리아, 프랑크, 아비뇽 유수, 백년 전쟁, 절대왕정의 상징 태양왕 루이 14세, 마리 앙투아네트, 1789 프랑스 대혁명(이때 1818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을 다뤘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아마 고등학교 때 가볍게 다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폴레옹, 영국과 세계를 양분해서 통치했던 제국주의 국가, 양차세계대전을 거쳐 유엔 상임이사국 중 하나인 선진국 프랑스 정도의 정보를 정리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세계문학을 읽기 시작하면서 프랑스는 확실히 문화예술 강국으로 입지를 굳혔고, 까뮈와 사르트르, 앙드레 말로와 에밀 졸라 같은 ‘모랄리스트’‘리얼리스트’들의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대학 입학 이후엔 누벨바그의 진원이자 현대사상의 메카로 인식되었다. 지금은 위세가 많이 꺾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문화예술의 중심지이며, 사회적 국가로서 복지제도나 프랑스산 현대사상과 담론들이 한국사회에서 활발히 수용되고 있다. 추후에 다루겠지만 친불 성향?의 지식인들에게 프랑스에 대한 호평만 듣고 선진국인 줄만 알았던 프랑스가 생각보다 많은 모순들과 문제들을 껴안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책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전반적으로 책을 읽은 감상을 정리하자면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내용들을 정리하는 한편 최근에 신문이나 TV 등 대중매체를 통해 들었던 최신 소식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그것의 사회적·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 수 있어 유익했다.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비시 정부, 페텡, 샤를 드골, 미테랑, 시라크, 사르코지, 올랑드, 마크롱 같은 지도자들을 역사적 좌표 아래 위치시킬 수 있었다. 독불 전쟁에서 패해 프로이센 왕국의 영토로 편입된 경험이 있는 알자스로렌 지방에서 전후 부역자 재판과정에서 논란이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책에서는 ‘많은 프랑스인이 나치에 협력한 것을 용서할 수 없다며 비판했지만, 또 다른 입장에서는 프랑스가 두 번이나 알자스로렌을 포기해 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 지식인들의 흑역사인 알제리 문제의 경우도 그전까지 사르트르는 알제리 쪽에, 까뮈는 프랑스 쪽에 서면서 알제리 문제로 서로 등을 돌리게 되었다는 일화가 흥미로워서 알제리 문제가 프랑스 지성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 좀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막상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갈증이 해소되었다. 책에서는 ‘워낙 오랜 식민지였기에 ’알제리 없는 프랑스는 생각할 수 없다.‘라고 여기는 프랑스인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전쟁 중에 알제리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었고, 당시 열강들이 추구하던 핵무기 실험의 장소로도 알제리 영토인 사하라 사막만큼 적절한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으니, 프랑스에게 알제리의 중요성은 더욱더 커져 갔습니다.(p60)’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맞서 알제리는 민족해방전선FLN을 중심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했는데 마치 조선에서 실력양성론이나 식민지 근대화의 논리로 일제의 편에 섰던 사람들처럼 알제리를 위해 알제리의 해방에 맞섰던 알제리인들의 존재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 생각나는 대목이었고, 한편으로 친일/반일(친불/반불)의 이분법적 프레임을 넘어 복합적이고 다층적으로 역사를 재인식하는 게 대두되는 현 시점에서 알제리는 우리와 어떤 차이를 갖고 현대사를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히잡 사건 또한 단순히 이슬람포비아의 산물인 것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오래 전부터 시행되어 온 정교분리의 원칙이란 명분 아래 행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게 수확이었다. 이처럼 비가시적으로 행해지는 이슬람이나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이 IS 테러로 이어졌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IS 테러 이후 한국사회에서 보인 이슬람포비아 반응이나 인종주의적 차별의식이 앞으로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사회에 진출했을 때 커다란 사회갈등을 낳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해외여행이 보편화되고,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숫자도 늘어나 다문화사회로 점점 더 바뀌어가고 있고, 전반적으로 세계화 시대를 살면서 국경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경계가 느슨해졌지만 물리적이고 양적인 교류의 증가가 타자에 대한 질적 이해도의 상승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서구에 대한 열등감 내지 콤플렉스는 여전히 모양을 바꿔가며 잔존해 있는 것으로 보이고, ‘우리’보다 ‘까만’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 대한 차별 및 인종주의적 편견 역시 강하다. 남한이라는 고립된 ‘섬’ 너머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보편적인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세계시민교육이 요구된다고 생각된다.
항상 나오는 얘기지만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진 독일(프랑스와 독일이 공동으로 합작해서 만든 역사교과서를 만들 정도로 민족사관이든 식민사관이든 일국의 관점에서 서술된 역사와 비교했을 때 진일보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모범적인 독일사회 역시 통일의 후유증과 이민자들의 유입에 따른 사회갈등으로 네오나치를 위시한 세력들이 홀로코스트를 부정하거나 축소시키고, 나치를 긍정하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고 있어 홍역을 앓고 있다. 최근에 개봉한 <나는 부정한다denial>을 참고해볼 수 있다)과 비교했을 때 난징대학살,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화해 및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동아시아 삼국이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각은 너무나도 협소하다.
(동)아시아라는 인식론적 지평을 첨예하게 사유하는 젊은 사상가 윤여일의 <여행의 사고>를 읽어보면 이런 역사인식의 난점들과 고뇌들이 담겨 있다. 탈식민주의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데 있어 ‘식민지 근대’의 경험이 우리의 역사적 무의식에 남긴 상흔은 무엇이었는지, 그게 어떤 식으로 현재에 영향을 미치면서 일본에 대한 이중으로 왜곡된 인식과 서구에 대한 콤플렉스, 개도국(혹자는 이를 ‘올챙이 개구리 적 생각 못 한다’라고 평한 바 있는데 이를 교훈적 메시지로 환원해버리지 않고, 복합적인 함의들을 잘 읽어낸다면 굉장히 의미심장한 문제성을 담지하고 있는 문장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에 대한 차별적 인식에 개입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현재 한국대학에는 중국인 유학생들의 비중이 급격히 증가했는데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중국사에서 거의 업데이트가 되지 않아서 중국-티베트 문제라든지, 홍콩의 우산혁명이라든지 트와이스의 쯔위 사건으로 표출된 중국-대만 갈등관계를 이해하는 폭이 굉장히 좁을 수밖에 없었다.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듯 EU와 유사한 동아시아공동체를 건설한다고 했을 때 풀어야 할 숙제가 산재되어 있지만 삼국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점점 더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있어 ‘통일’이 가장 중요한 숙제 중 하나겠지만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간도 지역으로 가서 독립 운동가들의 흔적을 살피고, 만주 지역에서 삼국의 제국주의-식민지 근대성에 대한 탐구를 협력적으로 진행하고, 제주-오키나와를 평화의 섬으로 연결시키고, 베이징/상해-서울/부산-동경/오사카 등 도시 간 교류를 좀 더 활발히 이어간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좀 더 넓어지고 한결 다채로워질 것이다. ‘쪽바리’, ‘조센징’, ‘짱깨’, ‘때놈’, ‘왜놈’을 넘어 ‘동아시아 시민’으로서 보다 넓고 깊은 보편성을 사유하고 실천할 수 있게 되기를 꿈꿔본다.
무엇보다 재밌었던 부분은 지리였다. 수도 파리와 남부의 마르세유, 칸느 같은 도시들이 관광지로 유명한 해안도시라는 점 정도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대략적으로나마 각 지역의 특징을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앞서 언급한 알자스로렌 지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프랑스라는 단일하고 균질적이고 순수한 정체성으로 포섭되지 않는 지역의 이질적이고 혼종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프랑스를 이해하는 데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었다. 에밀 졸라의 소설 <제르미날>의 배경이 되는 보수화된 노동운동의 성지 노르파드칼레, 세계사 시간에 많이 들어봤던 알자스로렌 지역, 특히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 대한 비판적인 독해를 소개해준 대목이 흥미로웠다. 책에서는 ‘소설이 지나친 프랑스 문화 우월주의, 민족주의와 반독일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며, ‘원래 알자스로렌은 독일어 문화권이었기 때문에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마치 일본이 식민지 조선에서 더 이상 일본어를 가르칠 수 없는 것을 슬퍼하는 것과 매한가지라는 비판’이 있다고 설명한다.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이 작품을 다뤘을 때만 해도 나는 ‘마지막 수업’을 식민지 조선-일본의 관계에 이입시켜서 읽었는데 알자스로렌 지방의 역사에 대한 무지가 낳은 오독이었던 것이다.
조금만 옆길로 새보자면 사실 세계사 시간에 프랑스의 왕자가 덴마크의 왕이 되는 식의 역사적 사실을 접하면 ‘반 만 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단일민족의 서사로 설명되는 한국사를 배운 한국인 입장에서 궁금증을 품을 법도 한데 한 번도 여기에 대해 질문해본 기억이 없다. 아마 처음에 봤을 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어떻게 이렇게 된 것인지 묻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기에 궁금증의 수도꼭지가 일상적 타성의 냉기에 얼어버렸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에서 서술한 대로 알고자 하는 욕구가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인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뭔가를 알고자 하고, 탐구하는 자세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데 완전히 동의하는 바이다. 수학과 같이 순수한 지성적 활동이 아닌 경우 학습 자체에서 산출되는 자족적인 기쁨 이외에 지식이란 수단을 통해 어떤 목적이 달성될 수 있는지 묻게 되는데 학창시절 지식은 단순히 시험점수를 위한 수단으로 환원되다 보니 순수한 지적 호기심이 설 자리가 없었다.
프랑스의 경우는 어떨까? 독일의 아비투어와 함께 거론되는 바칼로레아는 프랑스 교육의 상징처럼 거론되지만 최근 너무 높은 합격률로 인해 시험의 변별력이 없고, 논술형 답안지를 채점하는데 너무 많은 인력이 동원되기 때문에 비용문제로 인해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번외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한예종의 입시문제가 바칼로레아 못지 않은 창의적인 시험문제로 화제가 된 바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교육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데 대전제에 동의하지만 단순히 인공지능을 기술적으로 계발하기 위한 지식을 전달한다고 해서 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인재들을 길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이제까지와 같이 외국의 핵심기술을 빌려와 가격대가 합리적인 상품을 찍어내 수익을 창출했던 하청노동의 모델을 답습하는 꼴을 면치 못하고, 이런 모델로는 더 이상 중국이나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새로운 교육을 선도하고 있는 어느 전문가(EBS 다큐 프라임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대혁명’ 참조)는 새로운 시대의 인재를 길러내는 데 필요한 역량은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과 상상력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인공지능 시대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인간보다 기계가 더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인간과 기계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었을 때 시너지를 효과를 내며 공생할 수 있을지를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베이스를 키워야 인공지능 시대 시민을 양성하는 게 가능해질 것이다. 참고로 2017년 철학 시점 문제는 다음과 같다.
알기 위하여 관찰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예술 작품은 꼭 아름다워야 하는가?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곧 이익을 옹호하는 것인가?
얼마 전 EIDF를 통해 프랑스 영화학교 페미스의 입시과정을 다룬 <프랑스 영화학교 입시전쟁>이란 다큐에서도 나왔듯이 프랑스는 기회는 평등하게 제공하되 최고를 위한 교육을 한다는 엘리트주의적 교육철학을 갖고 있다. 68혁명 이후 대학 간 위계를 철폐하고, 공화국의 이념에 맞는 공공성을 실현하는 사회기구로서 파리 1대학, 2대학 식으로 대학제도를 재편했지만 최상위 교육기관인 그랑제콜(베르그손, 사르트르, 푸코, 데리다, 부르디외 같은 프랑스 지성계의 기라성 같은 존재들은 대부분 그랑제콜의 인문계열이라 볼 수 있는 고등사범학교 출신이다. 혹자는 프랑스 철학자들의 글쓰기가 그렇게 난해하고 어려운 이유는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어야 하고, 고등사범학교 같은 엘리트 집단에서 평범하고 쉽게 써서는 두각을 나타내기가 쉽지 않아서 라는 식으로 농담 반, 진담 반 식으로 얘기한 바 있다. 간결하고 명확한 문장을 ‘바른’ 문장이라 생각하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사뭇 대비되는 대목이다) 출신들이 ‘엘리트주의와 폐쇄성으로 재계, 정계, 학계를 독식하다시피 해 비판받는’다고 한다. 특히 고급 행정 관료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진 ‘국립행정학교ENA’가 정계 및 관계를 지배하는 풍토에 대해 ‘ENA 망국론’이 있다고 할 정도이니 과거 한국사회의 서울대 출신들이 만들어낸 학벌사회 현상보다 더 심각한 상황인 것처럼 보인다. 초등학교의 경우도 낙제가 있어 부모가 아이의 교육에 신경을 기울이기 힘든 이슬람 가정의 아이들이 주로 낙제를 받아 교육에서 사회 불평등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보인다.
한국의 교육철학은 무엇이라 정의내릴 수 있을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해본다면 남들 하는 만큼은 한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교육에 대한 정부와 대중의 인식이 어떤 변천사를 겪었는지 확인해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대학진학이 상례가 된 시점부터는 일단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남들 하는 만큼은 한다가 아니었을까. 물론 여기에는 80년대 전두한 정권이 민심을 회유하기 위한 방책 중 하나로 실시한 정책으로 인해 사립학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신자유주의화의 흐름 속에서 대학이 취업예비 기관으로 바뀌면서 바야흐로 ‘개나 소나’ 다 가는, 가지 않을 수 없는 곳이 되었던 사실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대중의 교육에 대한 의식이 이러했다고 친다면 정부의 교육철학은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부족한 관료들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충원하기 위해 ENA를 설립한 프랑스와 달리 한국은 자국에서 엘리트를 키워내기 위한 노력을 크게 기울이지 않은 것 같다.
<학생운동, 1980>에 의하면 1970년대 경 경제관료 엘리트가 일본 유학파 출신에서 미국 유학파 출신으로 물갈이된다고 서술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처럼 미국과 일본을 모델로 놓고 ‘따라잡기 식catch up modernity’ 근대화를 추진하다 보니 애초에 자생적 생산시스템을 갖추는 데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게 인문사회 과학이나 기초과학 분야 같은 토대학문에 대한 이해부족에 대한 미비한 투자로 이어진 게 아닌가 의심이 되기도 하고. 국가행정을 책임질 엘리트는 고시제도로 선발하는데 사실 이는 고등교육 제도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갖지 않기에 정부의 초점은 기술자나 노동자를 양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 오랜 시간의 투자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장기적 비전은 정부에게 부재했을 것 같다. 정부의 정책도 정책이지만 한국사회의 교육열에는 입신양명을 중시하고,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유교의 정신문화적 유산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 것이다. 기계적 비교의 위험성을 무릅쓰고 독일의 마이스터 제도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상고, 공고가 어떠했는지 본다면 한국이 노동(자)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즉각 알 수 있다.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이번 정권에 들어 수능과목들을 점진적으로 절대평가로 바꾸고, 특목고나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쉽고 간단하게 풀릴 유형의 문제가 아님을 알기에 기다려봐야 알 것 같다.
동기 중에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와 종종 <비정상회담>에 대해 얘기를 나누곤 한다. 그 친구와 만나면 종종 <비정상회담> 얘기가 나온다고 하는 편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한국-이탈리아 혼혈이지만 국적이 이탈리아여서 ‘외국인’이기도 하고, 또 혼혈이기에 완전히 외국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경계인의 정체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어볼 때보다 <비정상회담>을 매개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탈리아에서 한국을 대표/대변하고, 한국에서 이탈리아를 대표/대변하는 경험이 자연스럽고 풍성하게 이야기에 녹아들었다. 아시아 남자를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이탈리아 친구가 있었다는 얘기와 나치를 숭배하는 인종주의자에게 ‘동양인’이라고 무시당한 경험을 얘기해준 게 기억에 남아 있다. 친구는 이전까지 한국에서 이탈리아의 이미지를 크리스티나가 대변했다면 지금은 알베르토가 대변하고 있는데 굉장히 젠틀하고 로맨틱하고 지적인 이탈리아 남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참고로 알베르토는 친구의 대학 선배라고 한다). <비정상회담>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보면 패널들이 왜 전부 남성인지(가끔 여성 게스트가 출연하긴 하지만), 특히 논리적으로 토론을 나누는 ‘회담’은 남성 패널들로 채우고, 시시껄렁한 수다를 떠는 프로그램은 ‘미녀’들로 채우는 한국의 예능방송이 외국인들을 소비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도 했고,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 얘기는 아니지만 터키나 중국의 패널들은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프랑스나 미국의 패널들은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형국이 있어 ‘본의 아니게?’ 특정 국가에 대한 코드화된 이미지를 재생산하는 점에 대해서도 지적한 바 있다. 이를 테면 그들은 각 나라를 대표하는 비공식 홍보대사인 셈인데(프로그램이 잘 되면서 실제로 공식적인 홍보대사 역할을 하는 사람도 생겼겠지만) 제작진이 패널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적용시킨 기준이 무엇이었을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국가가 일종의 ‘브랜드’가 된 시대에 부드러운 문화정치학이 이렇게 일상에 스며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보기에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영국이 ‘유럽’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으로 묶여 차이가 무화될 수 있는 것처럼 서구인들이 보기에 한국, 일본, 중국은 ‘아시아’란 거대한 정체성에 포섭되어 구별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말하면 인접해 있는 서유럽 국가들 간 차이, 동아시아 3국 간의 차이를 비교함으로써 특정 국가에 대한 특징들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책에서 종종 인접 국가들과 프랑스를 비교하는 대목이 등장하는데(이탈리아는 어떻고, 영국은 어떻고, 독일은 어떤데 프랑스는 이렇더라 하는 식으로) 평소에도 이런 식의 비교는 자주 접해볼 수 있었다. 프랑스 남자는 ~, 프랑스 여자는 ~ 이런 식으로 내셔널리티와 남성성, 여성성을 결부시켜 설명하는 방식 내지는 특정 국가의 시민들에 대한 코드화된 이미지의 재생산은 여전히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듯하다.
가장 최근에 들은 사례로는 한국에 살며 영어강사를 하다가 일본으로 간 영국인들이 유튜브 방송에서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이고 편향된 이미지들을 유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양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어떤 모습일까? 자가진단과 비슷할까? ‘백마’로 표상되는 서양여자와 어떻게든 한 번 자보려고 안달 난 ‘똥양남자’? 여성혐오적 시각을 갖고 있는 ‘한남’에 의해 서양남자에게 쉽게 자신의 성을 주는 ‘김치녀’?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해외수교의 역사가 짧은 한국이 프랑스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싸이의 강남스타일? 주35시간 노동에 대비되는 OECD 최상위권의 긴 노동시간을 갖고 있는 나라? 유럽 최대의 재즈 신을 가지고 있는 만큼 나윤선이 대중적으로 유명할까? 르샹피오나의 팬들이라면 박주영, 정조국, 권창훈의 이름을 아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지젝이 변기 형태를 가지고 독일-프랑스-영국을 비교한다든지 아무래도 서양철학 분야에서 영국경험론, 독일관념론, 프랑스 철학의 전통 및 특징이 분명하다 보니 삼항의 비교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 같다. 개인적인 일화를 소개하자면 독일에서 문학을 공부하신 교수님은 독일문학은 너무 관념적이고, 프랑스문학은 너무 감상적인데 러시아 문학이 둘의 중간 정도라고 설명하시며 문학 초심자들에게 러시아 문학을 권하신 적이 있다. 프랑스문학이 너무 감상적이며, (‘따라서’가 괄호 쳐져 있다고 느껴졌다) 수준이 좀 낮다고 얘기했을 때 이 얘기는 그냥 걸러야겠다고 판단이 섰지만 간혹 ‘명자’(명자는 여성임에도 남성의 시각을 일반 남성보다 더 강하게 견지하고 있는 명예남성을 얕잡아 부르는 명칭이다)처럼 본인이 수학하신 나라를 신성화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들의 멘털리티를 분석해볼 필요성을 느끼곤 한다. 특히 남한 단독정부 수립으로 대한민국의 탄생부터 한국전쟁, 이후 냉전질서 아래 베트남전 참전 등으로 고도성장을 달린 끝에 지금에 이르기까지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미국이라는 항이 한국 현대사에서 어떤 의미였고, 어떤 역할들을 해왔는지 앞으로 알아보고 싶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가 소련 시절 자료들을 공개해 ‘냉전 연구’가 핫하다고 하는데 포스트 냉전 체제의 기미가 보이는 요즘이라 그런지 더 관심이 가는 분야다.
특정 나라에서 특정 나라가 어떤 식으로 이미지화되는지 살펴보면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이를 테면 20세기 중반 미국인들에게 프랑스는 성적으로 문란하고 자유로운 나라로 표상된다고 알고 있다. 미국의 보수적인 개신교 못지않게 아무리 요즘 사람들이 성당에 거의 다니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톨릭의 보수적인 문화가 스며있는 프랑스가 문란하고 방탕한 성의 아이콘이 된 데에는 68혁명의 영향이 크지 않나 추측해본다. 또, 프랑스 영화 등 대중문화에서 재현된 이미지가 대상화되고 타자화돼서 그 나라의 본질인 양 일반화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한국에서 일본 여성을 순종적인 현모양처 식의 전통적인 여성상으로 대상화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말이다. 한국의 경우 민주화 이전에 개인들의 자유로운 해외여행 자체가 거의 금지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미디어를 통해 매개된 이미지만을 접하는 환경이어서 이런 현상이 더 심하게 나타나지 않았을까 싶다.
외국인 친구를 서울에 데려오면 어디를 데려가서 보여줘야 하나 고민이 되는 데 가이드북을 한 번 훑고 왔을 그들 이상으로 서울의 속살이라고 할 만한 전통이 우리에게는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다. 경복궁이나 창덕궁, 창경궁, 종묘 같은 건물이야 남아 있지만 문화,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것들을 이식시켜 놓은 것이 아니라 우리 토양에서 오랜 세월의 시간성을 품고 있는 향기 나는 곳으로 어디를 꼽아야 할지 고민인 것이다. 서울역 고가도로 2017이나 DDP를 보면서 공공적, 집합적 기억을 생산하고 매개하는 신체로서 건축이 아닌 스펙터클을 제공하는 ‘디즈니랜드’(보드리야르)로 서울에 새로운 피부를 입히는 박피를 하고 있는 게 아닌지, 그렇게 매끈하고 세련된 피부 아래 역사도, 깊이도 없는 허공만이 자리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이만큼 가까운 프랑스>는 프랑스에 대해 궁금증을 품은 독자들에게 친절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프랑스에 대한 전반적인,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한 후에 본인이 관심 가는 분야를 좀 더 세부적이고, 전문적으로 파고들어가 본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저의 경우 파리 이외에 다른 도시들을 좀 더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 겨울에 스페인 여행을 갔을 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세비야 같은 대도시들이 명성대로 볼거리도 많고, 즐길 거리도 많고 좋았지만 빌바오, 성 세바스티앙, 그라나다 같은 도시들이 그 못지않게 좋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는 못 끌지만 저에게 딱 맞는 도시를 만났을 때의 그 쾌감이란! 유럽은 자전거로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다고 하는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뚜르 드 프랑스처럼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구석구석을 여행해보고 싶습니다. 봉쥬르, 사바, 메르시보꾸, 드 리앙, 트래비앙... 본 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