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돌로지 - 아이돌+팬덤+산업의 변신
류진희 외 기획 / 빨간소금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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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예스24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아이돌 음악 많이 듣니? 군대에 가면 아이돌 음악에 전문가가 돼서 나온다고 하던데. 근데 딱 시기가 제대하기 전까지에 멈춰 있고. [프로듀스 101]을 팬덤의 문화현상으로 분석한 학위논문을 쓴 친구가 내게 물었다. 응, 많이 보지(케이팝은 단순히 하나의 음악 장르가 아니라 시각문화다/126). 자대배치 받은 이후에는 다들 스마트폰을 끼고 사니까 좀 덜한데 훈련소에서 IPTV로 뮤비를 많이 봤어. 에스파, 레드 벨벳, 트와이스, 스테이씨, 스우파 등등. 트와이스는 다 알더라. 내 또래부터 21, 22살 얘들도 다 좋아하더라고. 한 번은 주말에 다 같이 트와이스 히트곡 메들리를 틀어놓고 [cheer up]이랑 [likey] 군무를 췄다니까 !

친구가 남돌의 전문가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우리의 아이돌 얘기는 더 이상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평소에 아이돌 음악을 잘 듣지 않는 남성들, 하지만 군대에서 한시적으로 아이돌 음악이란 장르에 전문가/덕후가 되는 현상. 그랬다. 그동안 내가 군대에서 만난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발라드를 듣는 사람과 힙합을 듣는 사람. 발라드의 외연을 넓혀 해외 POP 장르까지 포함시킬 수 있긴 하지만 전통의 강호(?) 발라드와 2010년대 이후 한국에서 청년 세대를 대표하는 하위문화의 장르로 우뚝 선 신흥 강호 힙합의 우세는 명약관화했다(한 번은 재즈 음악을 틀었다가 누가 이런 이상한 음악을 틀었냐고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듣기 좋은 음악이자 따라 부르기 위한 노래 장르로서의 발라드, 스트릿 문화의 주요 항이자 청춘의 분노와 우울, 꿈(자수성가, 영앤리치?)을 대변하는 가사와 감각적인 비트의 힙합.

발라드 음악을 좋아하는 한 친구를 보면 ‘듣기 좋은 음악‘으로 발라드 취향이 공고해서 그런지 아이돌 음악을 왜 듣는지 모르겠다고 의구심을 내비친 적이 있다. 꽤 오래 전부터 아이돌 음악에 해외의 유명 프로듀서가 참여해왔고, 다양한 장르를 섞기도 하고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화성구조를 사용하기도 하는 등 음악성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돌 음악은 음악성이 떨어지고 ‘눈요기‘를 위한 쇼 엔터테인먼트의 성격이 강하다는 편견이 잔존해 있는 듯하다.

음악성에 대한 폄하도 문제지만 사실 이 ‘눈요기‘에 대해 이전과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학자 로라 멀비가 논의했던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의 응시는 아이돌을 ‘소비‘하는 주요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적 대상화에 대한 비판이 자칫 섹슈얼리티에 대한 억압, 그리고 아이돌의 주체성을 지우는 환원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어 주의할 필요가 있다. 내 주변에 아이돌 덕후를 보면 다른 무엇보다 비주얼/얼굴의 우선성을 강조하는데(‘얼굴을 파먹기 위해 덕질한다‘) 오히려 이 얼굴성이 추동하는 정동적 관계를 생산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독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얼굴을 위시로 신체를 포획하여 자본친화적 미의 규범에 예속되게 만드는 자기규율의 테크놀로지가 작동하는 사회에서 신체와 자기의 관계를 어떻게 재구축할 수 있을까. 몸에 대한 주권의 회복, 아니 몸들의 배치 속에서 타자와 자유롭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몸의 회복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하여 타인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일, 그리고 읽는 일(우리는 얼굴에서 피부 상태나 관리된 표면이 아닌 감정과 생각의 기미를 읽어내는 능력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에서 코드화된 욕망의 발현에서 벗어나 ‘벌거벗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까. 눈을 마주치고 상대방의 얼굴을 다정하게 들여다보는 일. 얼굴에 새겨진 고유한 시간성을 감각하고 체득하는 일. 얼굴에 대한 질문을 앞으로 이어가보고 싶다.

한편 아이돌을 음악으로만 한정해 논의하기에 그 세계가 너무 다채롭고 풍부해서 아깝다는 생각이 앞선다. 아이돌은 ‘시각문화‘(패션과 ‘얼굴성‘의 비주얼, 역동적인 군무, 뮤직비디오와 직캠, 멤버별 영상 등 다양한 하위장르의 영상물로 구성된)이자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서사이기도 하다. 그룹의 서사 및 멤버 개개인의 서사, 소속사에서 제공하는 시놉시스 격의 설정 아래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 팬들이 아이돌의 세계관과 서사를 추리하고 상상하고 보충하고 재구성하는 식으로 상호텍스트적 실천이 이뤄진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이 설명을 들은 상태에서 아이돌 음악을 접하니까 색다른 재미를 느꼈던 경험이 있다. 에스파의 ‘Next level‘을 보고 나니 이 독특한 컨셉과 세계관이 궁금해져서 전작 ‘black mamba‘을 찾아보는 것으로 에스파 디깅을 시작했던 것이다. 신곡이 나오면 스트리밍 한 번 하는 것으로 끝나곤 했던 아이돌에 대한 향유를 텍스트, 서사, 이미지, 퍼포먼스의 차원으로 다각화시키는 지평의 확장 - 여기에 내가 사랑하는 아티스트를 양육하고 성장시키고 성공시키고 싶다는 팬덤의 일원이 되는 차원까지 나아가지 않았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아이돌을 향유하는 방식이 남고와 군대에서 접한 또래 남성동성사회의 그것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페미돌로지]를 비롯해 학술장에서 이뤄진 아이돌에 대한 논의를 살짝이나마 접해봤다. 일단 너무 중요한 문화 현상이자 개념이 되어버린 팬덤. 팬덤이라는 새로운 집단적 정체성, 일단 아이돌 세계에 국한해본다면 아이돌 가수와 소속사와 더불어 아이돌 시장에 내놓을 상품/작품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문화 기획자이자 실질적으로 시장에서 생명력을 구가하게 하는 소비자인 존재. 비판이론의 전통에서라면 이들이 후기 자본주의의 물신적 상품에 현혹돼 현실의 모순을 은폐하고 있는 문화상품에 종속된 우매한 대중의 형상으로 포착될 가능성이 높지만 ‘현실‘에서 이들은 다양한 정치집회/시위현장에서 팬덤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결집해 집단행동을 보여준 새로운 정치적 주체이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촛불집회의 시작은 이화여대에서 시작되었고, 이 학생들이 용기를 내 불의에 대항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준 노래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였다.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의 민주주의, 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위에서 k-pop이 울려퍼졌다. 이렇듯 k-pop은 어느 시점부터 소수자들의 놀이터, 축제현장이 되었다고 한다([페미돌로지]에 수록된 글들 중엔 해외 언론이 만들어낸 이미지와 달리 k-pop의 가부장적 남성성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k-pop이 트랜스퍼시픽 콘텐츠의 상품으로 국제화되는 과정에서 시장의 수요를 영리하게 반영한 부분을 지적한다).

이런 팬덤의 정치는 정치의 팬덤화 현상을 기해 더욱 중요도가 높아졌다. 정치의 팬덤화는 ‘노사모‘ 열풍을 이끌어냈던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부터 지지난 대선 당시에 ‘나꼼수‘ 열풍,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제도권의 정당정치에 기대지 않고 이념과 당파를 막론하고 포퓰리즘의 문법으로 급부상한 정치인들의 활약을 떠올리게 된다. 대개 이민자, 난민, 여성, 소수인종, 성적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동력으로 삼은 극우 포퓰리즘이 현실정치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낳았지만... 앞으로도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한 직접민주주의의 집단행동은 팬덤과 유사한 형식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자신이 중시하는 이슈(이를 테면 동물권)를 선도적으로 이끄는 정치인이나 인플루언서와의 직접적인 교류(후원 등등) 및 결집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이렇듯 당대의 정치와 미학, 경제와 기술이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장소로서 k-pop 장을 이끌어가는 행위자인 팬덤은 종래의 저항적 주체의 모델, 주체화의 형식으로 논의되어 온 민중, 시민과 또 다른 성격-소비자 정체성을 강하게 띠고 집단주의적이면서 정동의 공동체로 흥미로운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다. [페미돌로지]는 이런 팬덤이 신자유주의적 논리를 내면화한 능력주의와 자본주의적 교환가치에 입각한 아이돌과 팬덤 내부에 대한 규율과 억압(성공이란 ‘같은 것‘을 공유한다는 신념 아래 행해지는 단속. 지불한 것에 대한 정당한 보상과 교환을 요구하는 소비자 정체성의 발현, 지불능력과 같은 진정한 팬의 규범에 따라 위계를 분할하는 문화. ‘배제를 통한 단결‘)에서 벗어나 아이돌과 함께 변화를 꿈꾸는 팬은 가능한지 묻는다. 내게 이 질문을 일차적으로 당신이 아이돌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그를 우상의 아우라를 지닌 아이돌뿐 아니라 정동 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청년으로 바라봐줄 수 있는지 묻는 것처럼 들린다. 아이돌이니까, 팬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감내해야 한다고 자연화된 규율을 비판에 부쳐 아이돌의 인격을 착취하지 않고 팬들의 애정을 소진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지속가능한 사랑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묻는 것처럼 들린다(나는 결국 이런 질문이 문화예술계 종사자/프리랜서들에게 너는 하고 싶은 일 하고 있으니까 낮은 경제적 대우와 사회적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는 욕망의 평등주의-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욕망을 유예하고 포기한 보상하는 심리-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

한편 어느 저자가 밝혔듯 남덕에 대한 논의가 거의 포함돼 있지 않아 아쉬웠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인증한 멤버가 포함된 아이돌 그룹의 CD를 부수는 인증샷을 남겼다고 하는, 여성혐오의 대표자로 고착된 이미지(이런 이미지가 과잉결정되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소위 ‘이대남‘의 징후적인 면모를 노출시키는 사건이었기에 본문에 제시된 비판이 유효하다고 생각한다)에서 벗어나 k-pop 댄스를 커버하고 수행하고 헤게모니적 남성성에서 미끄러져 ‘퀴어한‘ 남성성을 실천하는 다양한 사례들(본문의 6장 ‘동아시아 베어 남성 댄스 팀의 걸그룹 커버댄스‘가 이를 다루고 있다)이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팬덤문화 이외에도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하고 실천하는 장으로서 팬픽(최근 논란이 되었던 알페스를 비롯해 학문장에서도 굉장히 핫한 소재...), k-pop계의 ‘게임 체인저‘라 할 수 있는 BTS - 방탄 유니버스에 대한 논의, 버닝썬 사태가 몇몇 연예인의 일탈이 아니라 개발독재 시기 젠더화된 성별 분업에 따른 노동/여성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이 아이돌 승리의 얼굴성을 기반으로 여성들을 끌어모아 수익성을 보장한 모델로서 ‘살아 있는 시체‘로서 여성에 대한 죽음정치적 폭력의 구조 속에서 발생한 사건임을 밝히는 페미니스트 정치경제학의 논의 등 개인적으로 공부가 많이 되었던 독서경험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연습생의 혹독한 트레이닝 체계를 거쳐 데뷔를 하고, 말 그대로 무한경쟁의 수레바퀴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서사를 써내려가는 케이팝 아티스트. 그들의 탄생과 데뷔, 성장과 반목의 과정을 지켜보며 응원하고 덕질을 하는 팬. 서로에게 있어 서로 없어선 안 될 존재인, 하지만 일반적인 이성애 중심주의의 독점적 연애와 사랑과 또 다른 형태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책. 십대 청소년과 또래에게 감수성의 형성부터 정치적 입장까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아이돌이 건강하게 자신의 재능을 펼쳐나갈 수 있길, 팬이 누군가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힘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길, 그렇게 사랑의 피드백 루프가 오래오래 이어지고 널리널리 확산되길 응원한다.

레드벨벳, 오마이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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