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에 대한 책을 많이 읽었는데도 머릿속에는 별로 남아 있는게 없는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이 소크라테스가 동성애자라서 잘생긴 남자애들과 얘기를 많이 하고 싶어서 발견해 낸 것이라는 것,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35살에 라틴어를 배워서 인문학에 처음 발을 내딛뎠다.
그 당시 수명이 30살이었는데도말이다.
그래서 그는 인류에 엄청난 이바지를 했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주고 철학은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이성이 있다는 사실과 깊은 사유를 하게 해준다.
그 철학이 인류가 발전하고 사고작용을 하는데 도움을 줬다.
이 책에 나오는 플라톤, 국가론, 애덤스미스, 보이지 않는 손, 뭐 이런 단편적인 것 밖에는 생각이 안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꾸준히 철학책을 읽어서 그런지 처음에는 완전히 외계어같았는데 지금은 조금 익숙해지는 언어가 보이기는 하다.
예수님은 최초의 페미니스트라고 하는데 요즘에 본 책에는 프랑스의 올랭드 구주인데 여성에게도 선거권와 기본권을 달라고 했다고 사형을 당했다.
그녀는 사유를 하고 의심을 하고 비판을 하고 주장을 할 줄 아는 여성이라서 단두대에서 죽음을 당한 것 같다.
내가 지금 누리는 자유나 평등이 그런 여성들의 죽음과 철학을 딛고 누리는 거라는 생각에 가슴속에서 뭔가가 느껴졌다.
난 인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올바르게 판단하고 싶다.
그런 능력은 철학하는 힘에서 나오는 것 같다.
조금 전에도 근대 철학의 시조인 데카르트가 인간을 모든 것을 의심하는 사유주체로 설정한다고 유한자인 인간은 타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타자와의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소통의 문제를 고민한 철학자는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인데 라이프니츠는 과학자중에도 같은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인지 아니면 이 사람이 과학도 같이 연구를 한 건지 모르겠다.
스피노자는 인간이란 삶의 주체를 아펙투스와 코나투스를 가진 존재라고 했다.
라이프니츠는 필연적 진리와 우연적 진리를 얘기하면서 인간은 소통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했다.
옛날같으면 너무 어려워서 읽다가 포기했을 텐데 철학책과 친하게 지내다보니까 포기를 안 하고 끝까지 읽었다.
그래도 이해는 잘 안된다.
내가 믿는 예수님이 철학자로 분리된다는 것은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저자 황광우는 광주에서 태어나서 검정고시를 거쳐서 서울대에 들어 갔다.
대단,,,,
서울대에 들어가서 고전을 틈틈이 읽었다.
1980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2번 제적을 당하면서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의 길을 걸었다.
요즘에 읽은 책의 저자들이 서울대를 나와서 노동운동을 한 사람이 몇 사람있다.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저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1998년에 졸업했다.
2002년 민주노동당정치연수원장을 역임하면서 건강이 나빠져서 지금은 공부를 하면서 글을 쓰면서 살고 있다.
지금은 철학중심의 책을 쓰고 있다.
일러스트 김동연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광고회사를 거쳐 북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그림이 동양철학자를 나타낼때는 동양화같고 서양철학자를 나타낼때는 서양화같이 그렸다.
예수님이 최초의 페미니스트라는 얘기를 책을 통해서 보기는 했다.
그 당시에 여자랑은 말도 안 섞고 재산으로 취급받았는데 그런 여자를 존중해주고 말을 같이 했기때문에 그렇게 얘기를 한다고 했다.
철학책을 읽으면서 이와 기가 어떻고 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이와 기에 대한 책을 여러권을 읽어도 아직도 이해를 못했다.
그런데 퇴계이황이 이 책에 나와서 너무 반가웠다.
챕터6에 제1자를 향한 그리움, 태허라고 해서 태허가 무엇인지 찾아 봤다.
태허는 중국 사상의 기본적 개념의 하나로 우주의 본체나 기의 본체를 말한다고 한다.
찾아 봐도 사실 이해가 안된다.
퇴계이황의 삶을 보면서 정말 부러웠다.
이 책에 나오는 어떤 철학자들보다 내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삶에 가까이 있는 것 같다.
엄마의 얘기가 아무것도 안하고 책만 읽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책을 읽는 것은 한자리에 앉아서 이 우주를 여행하는 것과 같다.
퇴계이황은 그 옛날시절에 이인지 기인지를 깊이 연구하고 책을 썼다.
지금처럼 자료도 많지 않은데 말이다.
이제부터 퇴계이황을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
아름다운 남한강을 따라서 안동과 서울을 왕래한 이가 퇴계이황이다.
이황은 명종이 죽고 선조의 왕명을 물리치지 못하고 서울에 있었다.
경연장에서 몇 차례 강연을 했지만 어린 소년은 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쾨계는 [성학십도]를 바치고 고향으로 내려갈 것을 주청한다.
주청하다는 임금에게 아뢰어 청하다는 뜻이다.
퇴계는 69살의 늙은 나이로 임금을 모실 수 없다고 했고 선조는 말리다가 그의 귀향을 허락했다.
옛날에는 자기 마음대로 고향에 갈 수도 없나보다.
만조백관이 나와서 한강 나루터에서 노학자와 이별을 했다고 하는데 만조백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만조백관은 조정의 모든 벼슬아치라고 한다.
그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배웅을 했나보다.
퇴계가 그때의 광경이 인상적이었는지 글로 남겼다고 한다.
연산군 대부터 불어 닥친 사화의 바람은 중종 대의 기묘사화를 거쳐 명종 대의 을사사화에 이르러 수많은 선비의 목숨을 앗아갔다.
난 항상 선비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선비로 살면 책만 읽고 공부만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띠러리~~~~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명종이 승하하고 선조가 즉위하자 마침내 사림파가 정권을 잡았다.
영국의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1564년은 조선의 대학자 퇴계와 고봉이 조선 성리학을 활짝 꽃피운 시점이다.
선비들은 한 평생 하는 일이 세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학문을 연마하는 일, 둘은 세상을 다스리는 일, 셋째는 제자를 육성하는 일이다.
이 일에서 하나만 하고 싶다.
학문만 연마하는 일말이다.
이들에게 학문이란 식견을 넓히는 일이자 동시에 인격을 다듬는 일을 의미한다.
학문만 잘하고 엘리트만 되고 인격이 없는 것은 큰 일이 나는 일이다.
도덕적 기준이나 윤리적 기준이 없고 식견만 있으면 안되는 것 같다.
퇴계는 스무 살 즈음에 건강을 잃을 정도로 [주역]공부에 심취했다.
[주역]은 서양으로 치자면 변화의 원리를 추궁하는 철학, 변증법에 해당하는 분야이다.
마르크스가 대학 시절에 헤겔의 변증법에 심취했듯, 퇴계는 주자의 철학에 심취했다.
무언가에 심취하는 것은 정말 멋진 일같고 나도 공부에 몰입을 하고 싶다.
퇴계 이황을 만나는 시간들, 조선시대의 그를 만나는 시간들이 정말 행복하다.
그에 대해서 읽으면 읽을수록 빠질 수밖에 없고 그가 좋아진다.
그리스인들이 세계의 보편자를 찾아 철학을 했다면 동양의 현인들도 우주의 본체를 찾아 철학했다.
철학은 인생, 세계 등등에 관해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헬라스인이 만유의 보편자를 물이니 불이니 공기니 흙이니 찾아 헤매다가 이런 것들을 모아 4원소설을 정립했다.
보편자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대상을 말한다.
동양인은 물과 불과 나무와 쇠와 흙으로 우주를 풀이하는 오행 이론을 정립했다.
서양인은 공기를 보편자의 하나로 봤고 동양인은 나무와 쇠를 보편자에 포함시킨 것이 차이가 난다.
나무와 쇠는 농경적 삶의 양식을 반영한 것이다.
동양인은 음과 양으로 우주를 압축했다.
양은 활발하게 움직이는 기운이고 음은 조용히 쉬려는 기운이다.
낮의 양 기운이 다하면 밤의 음기운이 오고 밤의 음 기운이 깊으면 낮의 양 기운이 온다.
동양의 음양설은 땅에 씨 뿌리고 열매 거두며 사는 농부의 소박한 상식위에 서 있다.
무극인 태극이 있다.
태극이 움직여서 양을 낳고 움직임이 극한에 이르면 고요해져서 음을 낳는다.
고요함이 극한에 이르면 다시 움직인다.
한 번 움직임과 한 번 고요함이 서로 뿌리가 되어 음과 양으로 나누어지니 양의가 세워진다.
음양이 서로 변하고 합하여서 수, 화, 목, 금, 토를 낳으니 다섯가지 기운이 순조롭게 펼쳐져서 사계절이 운행한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며 태극은 원래 무극이다.
무극은 끝이 없다.
천지 만물이 이룩되기 전에 있었던 혼돈 상태의 만물 생겅의 근원이 된 하나의 기운을 태극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또 아무것도 없는 상태이므로 무극이라고 하기도 한다.
퇴계가 말한 태허는 태극이고 태극은 무극이다.
카오스이론에 비교하면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기 이전의 상태. 그것이 태극이고 태허이다.
이것이 자식인의 머릿속에 실재하는 관념인지 진정한 우주의 근원인지 어느 쪽인지 확실히는 알 수 없다.
인간은 우주를 관통하는 제 1자를 추구한다.
비가 오는 것이나 눈이 내리는 것이나 아지랑이가 아물아물하는 것이나 서리가 내리는 것이나 모두 기의 현상이다.
우주를 꽉 메우고 있는 것은 기다.
우리앞의 공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다.
그냥 허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켜면 화상이 떠오른다.
이미 공간 속에서 사방팔방으로 전파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고 그 전파들의 한 줄기를 텔레비전이 잡아낸 것일뿐, 그리하여 아무것도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비어 있는 공간은 기로 꽉 차 있는 공간이다.
옛날 사람들은 세상 만물을 음과 양 두 기운으로 이해했다.
그러다가 송나라 성리학의 시대에 들어와 우주의 생성과 변화를 풀이하는 철학적 개념으로 이가 등장했다.
이와 기가 너무 헷갈리고 어려웠는데 잘 봐야 한다.
퇴게의 제자 학봉 김성일의 강의 노트를 보면 이의 뜻이 무엇인가,,,
배를 만들어 물로 다니고 수레를 만들어 땅으로 가게 하는 이치가 이이다.
사람은 하늘로부터 각기 한 가지, 같은 기를 받았는데 어떻게 기질이 같지 않은가,,,,
사람됨의 높낮이는 음양과 오행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하늘의 도는 이이고 음양과 오행은 기인가,,,,
이는 형이상의 도이고 기는 형이하의 그릇,,,,도는 모든 사물을 낳게 하는 근본이고 그릇이라 함은 사물을 담는 기구이다.
사람과 사물이 생길 때는 이를 품수한 성이 있게 되고 기를 품수한 형이 있게 된다.
이와 기는 섞일 수 없고 불상잡이면서 이와 기는 떨어질 수 없는 불상리이다.
어,,,렵,,,다,,,
품수는 등급으로 나눈 차례이다.
불상잡은 양자가 서로 혼동되어서는 안되다는 것이고 불상리는 이와 기는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철학의 사변은 끝나지 않고 사람들은 이를 우월하게 여기는 이분법적인 가치론을 전개했다.
이가 먼저 있고 기가 나중에 생겼다는 것이다.
이가 본이고 기는 말이고 이는 선이고 기는 악이라고 했다.
무극인 진리와 음양오행의 정밀함이 오묘하게 합하여 응집해서 건은 남성을 이루고 곤은 여성을 이룬다.
건곤의 두기운이 교감하여 만물을 낳으니 만물이 끓임없이 생겨나 변화가 다함이 없다.
사람이 그중 빼어난 것을 얻어서 가장 영묘하다.
형체가 이미 생겨나니 신이 지각을 일으킨다.
오성이 감응하여 움직이니 선과 악이 나우어지고 온갖 일이 생겨난다.
이런 얘기는 성학십도에 있다.
플라톤이 이데아의 개념을 창시할 때는 이미 철인집단에 지배층의 자리를 나누어주고 싶어하는 의도가 전제되어 있었듯이 성리학자들이 태극과 음양과 인의를 논할 때는 이미 사대부에게 권리의 자리를 주고 싶어하는 의도가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퇴계는 47세에 고향에 도산서당을 세웠지만 물어 볼 사람도 없고 강론할 사람도 없다고 했는데 고봉 기대승을 만나서 기뻤다고 한다.
고봉과 퇴계는 편지로 사단칠정 논쟁을 13년 동안이나 한다.
사단칠정, 사단칠정 책으로 많이 봤는데 아직도 나의 머릿속에는 기로 존재하고 있다.
퇴계는 조선 성리학의 대가답게 이와 기를 분명히 나누면서 이를 중시하는 이기이원론을 주장했다.
기에 대한 이의 우월서을 주장하지 않으면 성리학의 존재 의의, 그리고 선비의 존재 의의가 사라진다.
퇴계는 이가 움직이면 기가 이를 따르고 기가 움직이면 이가 기를 탄다.
인의예지 사단의 이가 움직이면 기가 따르고 칠정의 기가 발동하면 이가 기를 탄다.
사람이 말을 타듯, 이가 기를 탄다고 봤다.
퇴계가 조선 사회의 분열을 대변한다면 율곡은 조선 사회의 계급적 분열을 통합하려는 사상가였다.
율곡은 이가 기를 떠나 초월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이는 기안에서 존재한다.
움직이는 것은 기이고 기가 움직이면 이는 기를 타는 것뿐이다.
백성이 있기에 군주가 있다는 정도전의 기발리승과 비슷하다.
율곡의 기발리승일도설은 군주의 통치를 합리화하고 군주를 돕는 선비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
치자와 피치자 간의 관계를 퇴계는 가마를 탄 선비와 종의 관계로 보고 율곡은 무등을 태운 기와 무등을 탄 자의 이가 하나 되어 세상이 움직이다고 봤다.
퇴계와 율곡이 이의 우월성을 전제하고 이와 기의 상호 지위에 관해 다툼을 했다면 고봉은 이의 우월성 자체를 부정하는 논변을 한다.
인의예지 사단이나 희로애오욕 칠정이나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똑같은 정이라는 것이다.
고봉의 이기일원론이 율곡보다 더 논리적이고 퇴계보다 더 평등 지향적 사상이다.
퇴계가 고봉에게 사단은 이의 발현이며 칠정은 기의 발현이라고 주자가 말했으니 사건을 버리고 주자의 견해를 공론으로 받아들이자고 했다.
사단이 이라면 칠정도 이이고 칠정이 기라면 사단도 기라는 고봉의 주장은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에서는 위험한 견해였다.
사단 칠정 논변의 결말은 퇴계는 고봉의 논리가 맞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러나 고봉의 논리를 있는 그대로 전부 받아 들이면 성리학의 토대가 무너진다는 것을 앍고 있었다.
고봉이 논리는 우수하지만 세상을 아우르는 지혜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70의 나이가 된 퇴계는 고봉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이 지금까지 사물의 이치에 이른다와 무극이면서 태극이다라는 자신의 견해가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퇴계가 멋있는 것 같다.
자신의 잘못된 점을 인정한 것이 말이다.
요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우기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혈압이 올라가는 것 같다.
그런 점은 정말 퇴계에게 배워야 한다.
뒷부분에는 에필로그와 철학인터뷰와 참고문헌이 있다.
대표적이고 유명한 철학자들의 대표적인 저서들이 마지막에 정리가 되어 있어서 좋다.
찾아보기가 있어서 궁금한 점이 있거나 알고 싶은게 있으면 사전처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퇴계를 읽으면서 갑자기 논어, 공자, 노자까지 관심이 갔다.
성리학도 뭔지 책도 찾아 보고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기는 하지만 우리의 사상안에 들어 있는 것들의 뿌리를 찾고 깊이 들어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