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은 여자가 필요해 - 268년 된 남자 학교를 바꾼 최초 여학생들
앤 가디너 퍼킨스 지음, 김진원 옮김 / 항해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서는 하버드가 제일 유명하고 그 다음이 예일대학이 유명한 것 같다

미국친구말로는 우리나라 서울대에 해당하는 게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이고 연세대에 해당하는 게 스탠포드,  서강대에 해당는 게 시카고대학,  경희대에 해당하는 게 포댐대학이라고 했다.

1968년 여름, 전미의 여학생들이 처음으로 예일 대학에 지원서를 넣을 수 있었다.

예일대학은 여자를 받은 게 얼마 안 된 것 같다.

매년 ‘1000명의 남성 지도자를 졸업시키는 데 전념하던 아이비리그 중에 하나인 예일이  마침내 미국의 뛰어난 여학생들에게 문을 연 것이다.

이 일은 양성평등을 위한 교육상의 큰 진전이었다.

그러나 이해 예일 대학에 최초로 입학한 여성 학부생들이 맞닥뜨린 것은 압도적 남성 문화였다.

268년 된 남성의 성역에 들어선 여학생들은 섬처럼 고립되었고, 자신들이 예일이라는 엘리트교육이 제공하기로 되어 있던 수많은 특권에서 제외된 이방인임을 점차 깨달았다.

나도 물리학과에 다닐 때  여학생이 4명이고 전부 남학생이니까 사람들은 공주 대우 받지 않는냐고 하는데 투명인간 취급 받는다.

여학생들의 의견은 반영이 안 된다.​

이 책은 수세기 동안 이어진 명문 교육기관의 후진적 전통에 맞서 싸운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이자, 그들이 여성에게 미래의 기회를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얘기이다.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고투한 이들의 노력은 오늘날까지 울려 퍼지며 힘과 회복력, 용기에 대한 영감을 준다.

​여학생을 받기 전에  예일 대학에는 남학생뿐이었다.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길이라고는 바사나 스미스 같은 일류 여대에서 주말마다 버스를 타고 오는 여학생들과의 사교 모임에 얼굴을 자주 비치는 방법 밖에 없었다.

버스마다 여학생들이 50명 정도 타고 있었다.

그녀들은 자정이 되면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이 네 시간 남짓 동안 예일대 남학생들은 짝을 찾았다.

이미 여자 친구가 있는 남학생은 토요일이 되면 연인과 팔짱을 끼고 자랑스레 미식축구 경기장에 들렸다가 학생 식당이나 인근 레스토랑으로 가서 의기양양하게 식사를 했다.

그러나 나머지 주중 내내 예일대 남학생은 오로지 한 가지성만 존재하는 세상에 살았다.

당시 예일 대학을 그대로 그려보려면 남성만 사는 마을을 상상하면 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생들은 남성만 있는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남성만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남성끼리만 과외활동을 학고 남성만 있는 기숙사로 돌아왔다.

예일 대학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남성만 존재하는 학교였다.

여자 친구는 남학생의 재산 중 가장 귀한 물건이었다고 한 예일대 남학생이 말했다.

여자 친구를 물건이라고 표현을 하네,,

그렇지만 여학생들이 다 그런 대접을 받은 건 아니었다.

한 남학생이 아리따운 여학생을 예일대 학생 식당으로 데려오면 동기들은 유리 물컵을 숟가락으로 탕탕 치며 인정의 뜻을 표했다.

유치한 표현 방식이다.

예일대 남학생들의 남녀공학에 대한 시각은 시어러가 신입생으로 예일대교정을 처음 밟은 이래 4년이 흐르는 동안 차츰 변해갔다.

몇몇 예일대 남학생은 여전히 남학생뿐인 학교의 끈끈한 형제애 속에서 만족스러워했다.

​만족스러워 하는 이유는 이성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압박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1968년 무렵에는 대다수 예일대 남학생이 덫에 걸린 듯 남성만 사는 마을에 묶여 학창 시절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들은 연애를 고파했다.

한 가지 성만 있는 생활을 부자연스럽게 여겼다.

그저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리학과 다닐 때 그저 연애가 하고 싶어서 그런지 저번 주에 나한테 고백했던 애가 이번주에는 4명 중에 다른 애한테 고백하는 걸 물리학과에 다니는 내내 겪었다.

나만 빼고 3명은 캠퍼스커플이 됐는데 그때부터 애들이 나만 보면 수근거렸다.

별로 신경 안 썼는데  경영학과로 과를 바꾼 뒤에 내가 물리학과에서 남자를 싫어하는  레즈비언이라고 소문 난 걸 알았다.

사람들은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다.

누군가 한 명이 거짓말로 시작했을거고 거기에 동조를 하는 사람들이 불어나면서 그게  기정사실화되는 것이다.

박근혜대통령도 그럴지 모른다.

어떤 기자가 박근혜대통령 섹스비디오가 나오고 독일에 몇 조가 있다더니 언제 나오는데,,

다 거짓말이었어.

박근혜대통령이 집에서 혼자 불어나 영어공부하고 하루종일 책만 본다고 했다.

책 몇 권만 봐도 친구들 전화 받을 시간도 없고  친구 만날 시간도 없고 텔레비전의 존재는 잊고 딴 짓할 시간이 전혀 없다.

인터넷 잠깐잠깐 보는 것만 빼고는,,

시간이 모자라는데 박근혜대통령이 이상한 짓을 했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었다.

공부나 책을 전혀 안 읽는 무식한  좌파들이  하는 거짓말,,

그래서 소문의 진위를 정확하게  끝까지 밝혀야 한다.

​예일대는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남학생이라면 인종, 계층, 종교와 무관하게 입학을 허용했다.

예일 대학에서 오랫동안 다수를 차지해온 사립 고등학교 남학생은 더 넓은 장을 두고 경쟁을 벌여야 했는데  이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이를 메우려고 예일 대학은 공립학교 학생을 점점 더 받았는데 아주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 이 학교들은 대개 남녀공학이었다.

남학생뿐인 앤도버나 엑서터 출신에게는 남학생만 있는 예일 대학이 자연스러웠지만 공립고등학교 출신 남학생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시어러가 졸업반으로 올라갈 무렵 예일 대학의 네 개 학년 학생 가운데 절반은 클라크가 뽑은 학생이었다.

남학생뿐인 예일 대학의 상황을 끝내려고 이전 학생들이 기울인 노력과 마찬가지였다

예일대 총장인​ 브루스터는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을 띠었지만 여러 문제를 열린 마음으로 대했다.

뉴잉글랜드의 지체 높은 명문가 출신이면서도 타인에게 배움을 구할 때는 출신을 따지지 않았다.

그런데 남녀공학 문제에 관한 브루스터와 예일대 남학생은 팽팽한 입장 차이를 보였다.

브루스터를 규정하는 양면성 가운데 인종, 종교, 계급에 대한 진보적인 태도와 성에 대한 보수적 관점 사이의 대조를 보였다.

브루스터는 흑인이나 유대인을 차별하는 모임에는 발길을 피했고, 흑인 학생 및 과거였다면 자식을 예일 대학에 보낼 엄두도 못 내던 집안 출신 학생에게 문을 활짝 열어, 대학 운영에 뚜렷한 변화를 몰고 왔다.

그런데 여성에 관해서 한 브루스터는 세상 모습 그대로에 만족했다.

점심시간이면 여성에 관한 한 브루스터는 여성을 받지 않는 클럽의 메인 식당에서 식사를 즐겼다.

1968년 무렵에 예일대 남학생들은 남녀공학 문제에 답변을 달라고 브루스터에게 계속 요구하고 있었다.

데이비스라는 사람이  1966<예일 데일리 뉴스> 편집장이 되고 2년이 넘도록 답보 상태였다.

데이비스는 첫 사설에서 남녀공학은 더는 논쟁거리가 아니다라고 못 박으며 남학생만 있는 예일 대학의 비현실적이고 인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 환경을 종식할 시기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고 했다.

브루스터는 여성을 별개의 존재로 여겼고, 자신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 여성을 낯설어 했다라고 존 윌킨슨 부사감은 말했다.

남녀공학을 반대하는 브루스터의 입장 한가운데는 이런 인식이 있었다.

브루스터가 볼 때 여학생을 받아들이면 예일 대학의 미래 지도자를 배출하는 일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브루스터는 남학생이 사회지도자가 되는데 방해가 되고 여학생는 사회지도자가 도리 수 없다고 생각한거다.



1968년 무렵 예일 대학은 대법관, 미국 대통령, 소수의 상원의원, 주지사, 최고 경영자를 배출했다.

하버드 대학, 프린스턴 대학과 더불어 예일대학은 국가 지도자를 배양하는 훈련소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예일 대학은 20년 뒤 이 평판을 입증했다.

1989년부터 2009년 사이 미국 대통령이 모두 예일대 출신이었다.

브루스터는 노련한 정략가였다.

2년 내내 내리 데이비스가 사설을 통해 맹공격을 퍼부었지만 그는 여학생을 입학시키기는커녕 그녀들을 뉴헤이븐으로 데려오는 데 불과한 자매 학교의 가능성을 흘리며 예일대 남학생들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남녀공학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남학생에게 예일 대학은 남성만 사는 우울한 곳이었다.

대학은 여성을 주변부에서 맴돌게 했다.

난 어떤 사람이든지 들러리, 주변인, 잉여인간, 히키코모리로 만들려고 하는 걸 지지하지 않는다.

1968년 예일 대학에는 여성 종신 교수가 두 명 있었다.

반면 남성 종신 교수는 391명이었다.

예일 대학만 남성 교수를 선호한게 아니었다.

오랫 동한 남녀공학이던 대학에서도 여성 교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미시간 대학은 전체 교수 가운데 4페센트만이 여성이었고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은 2페센트만이 여성이었다.

나도 대학교 다닐 때 물리학과나 경영학과에 여성 교수님은 1명도 없었다.영문학과에만 여성 교수님들이 좀 많았다.

​미시간, 버클리 대학 모두 1870년대부터 여학생을 가르쳐왔음에도, 예일 대학이 남성 위주 문화를 유독 심하게 고수한 건 맞지만 당시 미국 대학들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브루스터는 뉴욕으로 가서 예일 재단 사람들과 회동했다.

1967년부터 남녀공학 찬성론을 폈던 재단 이사 어윈 밀러는 예일 대학입학의 질은 여학생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오래도록 천천히 하향세를 그릴 것 이라고 경고했다.

브루스터가 마음을 굳히고 대중 앞에 나서기까지 아직 마지막 단계가 하나 더 남아 있었다.

남녀공학 안건을 교수진 앞에 내놓는 것이었다.

남녀공학 투표결과는 2001로 거의 만장일치 찬성이었다.

유일한 반대표는 역사학 교수인 조지 피어슨이 던졌는데, 그는 1922년 열일곱 살에 신입생 자격으로 예일대 교정을 밟은 이후 46년이 지나도록 예일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었다.

브루스터가 남녀공학 발표를 하고 나흘도 채 지나지 않아 예일대학은 여학생들에게 800통에 이르는 입학 문의서를 받았다.

남학생뿐이던 교육기관에서 남녀 학생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교육기관으로 변모하기 위해 진정한 변화를 모색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그러한 변화를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브루스터가 서둘러 조직한 남녀공학위원회는 가능한 현 상태를 최대한 깨뜨리지 않으며 여학생을 받아들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현 상태를 깨뜨리는 것은 ​예일 대학에 처음 발을 디딘 여학생들 몫이 되었다.

그러려면 먼저 예일 대학에 들어와야 했다.

예일 대학은 미국에서 음악 활동이 가장 활발한 대학이었다.

세계 최상급 음악당도 있었다.

예일대 여학생들은 표면상 서로 여학생들의 친구도 아니었다.

각 기숙사에 몇 안 되는 여학생 수가 있었지만 여성이라는 점 말고는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기숙사에서 마음 맞는 친구를 찾지 못하면 정말 외로움이 사무치게 된다.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여학생 사이의 우정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도 짙었다.

기숙 여학교 콩코드 아카데미에서 온 한 1학년생은 이를 가리켜 예일 대학의 반여성 길들이기 라고 불렀다.

마찬가지로 콩코드 아카데미 출신인 이 여학생의 동기도 예일 대학에서 이런 태도를 목격했다.

예일대 남학생들은 자신들 무리나 활동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여학생이 모이면 딱하게 여기거나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녀들이 들어오기도 전에 정해놓은 결정과 건물 구조와 여학생의 우정은 별거 아니라는 문화 때문에 예일대 여학생들은 흩어졌다.

1월이 되어, 여학생들은 이제 겨우한 학기를 마쳤고 몇몇 교수들은 응큼한 목표가 점점 치밀해졌다.

케이트 필드라는 학생은 시를 가르치는 교수가 상급생과 대학원생이 함께하는 주간 문학 토론을 하는데 참여하지 않겠냐고 물어와서 우쭐해졌다.

케이트는 후서토닉 강이 흐르는 매사추세츠 서쪽 끝 온통 숲과 습지로 둘러싸인 집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명망 있는 7대 여성 명문 대학 서븐 시스터스중 하나인 웨슬리 대학 입학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어린 케이트를 기숙 여학교에 보냈다.

예일 대학 입학 무렵 케이트는 이미 시집을 낸 시인이었고, 케이트의 교수가 자신의 재능을 인정해서 점심 문학 모임에 초대한 거라고 생각했다.

케이트는 매주 문학 모임에 참석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다.

교수가 예일 대학의 그로브 거리 묘지로 산책을 가자고 권했다.

교수든지 뭐든지 남자와는 단둘이 있는 상황을 만들지 말라고 책에 씌여 있다.

경치도 아름다웠고 유명한 묘지도 있어서 누구나 잘 아는 곳이었다.

케이트는 예일대 생이었지만 아직 열일곱이었다.

교수가 달려들자 케이트는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사람을 한참 잘못 봤다고 케이트는 교수에게 딱 잘라 말했다.

교수가 왜 저려냐,,

좌경화된 교수인가보다.

난 대학교 다닐 때 생각해보면 거의 기독보수교수님들이  많았던 것 같다.

교수님들이 나한테 천재소녀라고 계속 그래서 ​2년 조기졸업한게 그렇게 천재소녀라고 들을 얘기인가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들어 보니까 내가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나이에 대학을 온 줄 알고 교수님들이 나만 보면 천재소녀라고 했던 거다.

그 교수님들은 만나면 기도해주고 공부 가르쳐 주고 맛있는 거 사주고 책주고 그랬는데 미국 교수는 학생을 건드리려고 하다니 충격이다.

1960년대는 미국도 성의식이 너무 떨어지는 것 같다.

남학생들은 한 가지 성만 있는 게 싫어서 남녀공학을 주장 했는데, 여성 대학원생들은  몇몇 교수의 먹잇감이 되었다.

이들 가운데 한명은 예일대 대학원에 등록하기도 전에 토나오는 사건을 겪었다.

입학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작품집을 제출했는데, 마지막 그림 심사가 끝날 즈음 교수가 어깨를 와락 껴안으면서 이것 말고 다른거 보여 달라고 했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더럽다.

또 다른 여학생은 지도교수가 교수실에 보자면서 불러놓고 거기서  자신의 도착 행위를 하자고 요구했다고 한다.

도착행위가 뭔지 찾아 보니까 성도착증이고 성도착증은 성적 행위에 있어서 변태적인 이상 습성이라고 한다.

성적인 것도 모르는데 변태적인 거는 또 어떻게 안다고 계속 찾아 보니까 소아성애자같은 인간들이 변태에 들어 가는 거였다.

그 뒤 그 여학생은 예일 대학을 그만 두었다.

​다른  여학생도 지도교수에게 추행을 당했다.

​또 다른 여성 대학원생의 경우 대학원 학과장이 괴롭혔다.

이런 일이 있기 때문에 케이트는 이 학교를 그만두지 않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했다.

케이트는 교수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다만 전도유망한 젊은 여성 작가를 알아본 예일 대학 교수라는 사람의 행위가 실망스러웠고 분노가 치솟았다.

그런 행동을 하면 교수라도 개로 보이고 난 사람취급을 안 할 것 같다.

2학년인 데니즈 맬릿이라는 학생은  웨슬리 대학에서 예일 대학으로 편입했다.

그녀는 예일대생을 분류하는 인종이나 계층 어느 범주에도 들어맞지 않았다.

데니즈는  어머니 고향인 뉴욕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회사 일로 베네수엘라와 푸에르토리코에서 컸다.

그래서 라틴계 여성은 아니지만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데니즈는 유럽으로 떠났다가, 곧 은퇴 예정인 아버지를 대신해 돈을 벌기 위해서 예일 대학에 다니며 웨이트리스 일을 했다.

데니즈에게는 남다른 지성이 있었다.

고교 시절 내내 주말이면 아버지와 함께 책을 읽곤 했다.

데니즈가 예일 대학에서 보낸 첫 학기는 순풍에 돛 단 듯 순조로웠다.

예일 대학에 들어올 때 그녀는 이미 남자 친구가 있었다.

남자 친구는 4학년으로 유명한 위펜푸프스의 단원이었고, 데니즈가  위즐리 대학 1학년일 때 크리마스 방학을 보내다가 만났다.

주말이면 남자 친구와 함께 위펜푸프스 공연을 보거나 파티에 가거나 미식축구 경기를 응원했다.

​데니즈는 다른 여학생들처럼 동성 친구가 거의 없었다.

임자 있는 몸이었기 때문에 맞닥뜨려야 했던, 남학생들의 알방적 관심을 피할 수 있었고 그들과 더 수월하고 편안히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교수 한 명이 밤에 데니즈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데니즈는 대학에서 드물게 기숙사 1인실을 쓰고 있었다.

그때는 ​전화기가 울리면 부모나 친구, 데이트 중인 상대일 거라고 여기며 수화기를 들던 시절이었다.

그 교수는 밤에 전화를 걸어서 데니즈에게 무슨 잠옷을 입고 있는지, 감촉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몸에 꽉 끼는지 따위를 묘사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난 생각만해도 징그러워서 바로 전화를 끓을 것 같다.

그 교수는 남학생과 다른 과제와 시험을 내줬고, 내용은 온통 성과 관련된 것뿐이었다.

그 교수의 ​수강을 그만 두기는 너무 늦어 버렸다.

데니즈는 봄에 교내위원회에서 일했는데 예일대 관리직이 위원장으로 있었다.

어느 날 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일을 상의해야 하니 만나자고 한  위원장은 그녀를 강간하려 했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 사진도 벽에 걸어 놓고 있었다.

데니즈는 가까스로 벗어났지만 그 이후로 자신이 나약하다는 기분을 떨 칠 수 없었다.

나머지 학기 내내 데니즈는 푸에르토리코 집으로 내려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예일 대학에서 성희롱이 일어나면 대개는 지도교수를 바꾸고 강의를 바꾸고 교수를 피해 다녔다.

여학생들에게 남학생 수를 줄이자는 말은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남학생 자리가 줄어들어 자기 아들이 예일대 입시에 떨어지면 졸업생들은 일제히  여학생 탓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며그렇게 되면 신입생 지원이 축소될 수 있다고 했다.

엘가라는 기숙사 사감은  예일대 여학생들에게 지지를 보냈고 그들의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엘가는  가장 어른스러운 여성이었고 여성을 위해서 일하는 역할을 해냈다.

과거의 예일대는 성범죄자가 왜 이렇게 많았냐,,

그 범죄자가 교수나 교직원이었다.

예일대의 우수한 남학생을 유치하고 그들이 연애를 할 수 있게 하려고 여학생을 받은거네,,

여학생을 완전히 연애 수단화를 한 거다.

예일녀들처럼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처럼 조금은 안전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거다.

교회언니도 여자는 꼭 성공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여자는 20대때 결혼해야지 잘하는 거라고 하더니 언니들을 보니까 완전 거짓말이었다.

언니는 자신이 사회적으로도 성공하고 결혼도 잘한 건 리스크가 낮고 자신을 격려해주고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라고 했다.

언니 얘기를 잘 참고해야겠다.

예일은 우수한 남학생유치때문에  여자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여자들은 깊은 학문과 성공을 위해서 예일이 필요하고 이용하려고 간거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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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티즘 - 지상 최대 경제 사기극
게르트 노엘스 지음, 박홍경 옮김 / 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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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성장만 해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어떻게 될까,,

저자 게르트 노엘스는 자산 운용 및 경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코노폴리스의 CEO겸 수석 이코노미스트다.

정부는 거대해질수록 거대한 기업을 좋아한다.

정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더 이상 순수하지 않고 문제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과 정부는 지나치게 가깝고 정부와의 관계가 기업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정치인들은 은퇴하면 골드만삭스와 같은 대형 금융그룹이나 엔지 들의 유틸리티 기업, 정부와의 원만한 관계가 필요한 기타 기업에 취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낙하산은 양방향으로 작동한다.

기업 출신의 인사가 관련 정부 조직에 들어가 중요한 여러 기능을 좌우한다.

이런 건 우리나라와도 비슷한 것 같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 빌데르베르크 회의와 같은 베타적인 모임은 다루기가 보다 복잡한 사안이다.

이런 회의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거나 인맥을 만들기에 유용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실 자본주의가 퍼지기에 좋다.

입장료가 수십 만 유로를 호가하고 가격이 비쌀수록 더 좋은 인맥을 쌓을 수 있으니 중소기업은 회의에 참석할 수가 없다.

빌데르 베르크를 비롯한 일부 콘퍼런스는 초청 받은 사람만 입장할 수 있다.

정치와 기업의 긴밀한 관계는 운동장을 기울게 한다.

공정하지 못하다는 거다.

정부의 의사결정자들은 대기업의 의견만 듣기 때문에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곧 나라 경제의 이해와 일치시킨다.

그런 태도는 모든 종류의 규제에 스며들고 대기업에 사람을 소개하고 인맥을 형성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

중소기업의 기업인이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거나 향후 기업으로 올라서지 않는 한 장관이나 대통령과 커피를 마실 가능성은 드물다.

대통령이 커피 마시자고 하는게 더 극혐이다.
















이 책은 300페이지가 좀 안된다.

책들을 보면 거의  300페이지에서 500페이지 많으면 800페이지가 된다.

집중해서 읽어도 몇 시간은  걸리는 것 같다.

자이언티즘은 지나치게 크면서 경제 질환에 가까운 현상을 말한다.

자이언티즘은 생물학적으로 비정상적으로 크고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과도한 성장, 배수체로 인한 식물의 과도한 성장이다.

식물의 과도한 성장은 염색체 이상을 말한다.

배수체는 유전체 수준에서 유전체 이상을 말하고 유전체가 배수로 증식되는 것을 말한다.

자이언티즘은 사회와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 질환을 전부 말하는 것이다.

자이언티즘은 모든 생물, 사회, 기후, 나아가 모든 생태계의 평형을  교란하는 것이다.

자이언티즘을 멈추는 것은 비만, 괴롭힘, 자살, 범죄, 번아웃, 대기오염, 온실가스, 소외, 경제의 비인간화와 같은 증상을 부분적이나 완전히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지나치게 크면 종양과 암이 자라게 된다.

생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나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지난 30년 동안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을 과학으로 생각했다.

경제를 계량화하여 공식으로 모델을 만들고 법칙을 도출하여 계량 경제 모델을 구축했다.

회계사시험공부할 때   경제학책을 보면서  수학인 줄 알았다.

정부나 중앙은행은 거시경제모델을 과신하면서 경제를 계획하거나 조장한다.

그렇게 하면 실패를 예측할 수 있는 거다.

중앙에서 계획할수록 사람과 사회는 무시 받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회적 성찰을 하지 않는 경제학은 거대한 불균형을 초래하며 이는 기후 문제, 불평등, 풍요병과 같이 경제 이외의 분야에도 영향을 미친다.

경제학자는 철학적 통찰력을 갖추고 경제적 선택과 구조가 사회적으로 초래하는 결과를 고려해야 한다.

철학적 통찰력이 구체적으로 뭔지도 좀 얘기를 해주지,,

메타 경제 수준에서 공정한 게임의 법칙을 만들어야 한다.

공정한 법칙이 없는 경제 시스템은 비정상적으로 보이며 승자가 점차 시스템체를 왜곡한다.

자이언티즘은 생소한데 애덤 스미스와 같은 경제 창시자도 문제를 인식했다고 한다.

과거 경제학자들은 기업의 경쟁력과 혁신, 자유로운 계획이 경제의 역동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함을 깨달았다.

크기가 비대해지고 경쟁이 억제되면 경제는 더 이상 건전하다고 볼 수 없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기업이 아닌 경제학자와 경제 모델이 경제를 이끄는 모델을 강하게 신뢰했다.

케인스의 이론은 각광받았으며 정부에도 규제 기능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케인스를 지지했다.

케인스는 완전경쟁시장에서는 소비자와 경제 전체가 여러 혜택을  잃을거라고 생각했다.

케인스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거대 기업이 미국 경제를 주름 잡던 1920년대 말에 기업인으로서 활동했었다.

케인스는 코포라티즘을 통해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경제를 조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

코포라티즘은 국가가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이해관계에 적극 관여하는 방식이다.


케인스 이론의 하향식 조정은 선한 의도에서 출발하지만 과잉, 불균형으로 이어져서 더 많은 조정이 생겨난다.

현재 기업에서 여러 공룡기업이 활동하는 반면 생산성은 하락하고 일부 기업이 비정상적 이익을 누린다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공정한 경쟁은 일어나지 않고 대기업은  소기업을 인수하거나 불공정한 경쟁으로 퇴출시켜서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와 역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데어드레이 머클라스키는 자유주의 사상가로 집중과 과점에 반대했다.

공적 개입이나 규제를 통해 촉진되는 독과점은 지지하지 않았다.

코포라티즘의 문제는 기업가 정신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기업가는 정부, 사회 파트너, 협회, 업계의 연합, 라이선스 당국에서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소기업에게는 절망적인 과정이다.

대기업 집단은 복잡성, 규제, 라이선스가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 더 만들려고 한다.

순수한 경제학자보다는 대학에서 심리학, 과학, 사회학, 법학 등 다른 학문을 경험한 경제학자를 배출해야 한다.

무엇보다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통찰력을 갖춘 경제학자가 필요하다.

경제학자는 규모의 경제를 신뢰하며 컨설턴트도 이 경제적  원리를 기업뿐 아니라 학교, 병원, 정부 기관 등 사회 모든 수준에서 전해야 한다.

레오폴드 코르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철학자인데  어딘가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지나치게 크기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오늘날 해결책을 분산, 도시국가, 작은 것은 아름답다는 것을  얘기한다.

저자는 과잉을 해결하고 게임의 규칙을 수정하여 보다 지속가능한 성장이 이어지기를 바라지만 슈마허는 반세계화주의와 작은 나라나 도시국가보다 더 극단적인 지방주의를 주장했다.
슈마허가 말하는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자유나 재능을 발전시킬 기회를 제약당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나아가면 사회주의에서 더 나아간 좌파 전체주의 체제가 될 위험이 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사회주의 체제는 개인의 발전과 자유를 제약하고 혁신과 생산성 증가의 침체로 이어진다.

사회주의자가 약속하는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부를 창출하는 데 실패한다.

사회주의 안에는 공산주의의 이상이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고 있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그 결과는 뭘까,,

소수와 빈곤이 인간을 제약하게 되고 사람을 지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예속시킨다.















좌와 우 사이, 자이언티즘과 소박함 사이, 세계주의와 소도시 정신 사이에서 사회경제적으로 균형을 잡기 어렵다.

극단에 빠지지 않고 균형을 찾으려면 양측 모두 분석하고 이해해서 최상의 요소를 뽑아내야 한다.

좌파를 전부 없애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우파를 견제하기 위해서 또 좌파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저자는 중앙은행장과 정책 입안자뿐 아니라 은행가와 기업 경영자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한다.

정부는 재정, 사회, 기후에 문제가 발생할 때 해결책을 가지고 개입해야 한다.

이런 개입은 집단적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개입이 이루어질 때마다 그 규모는 점점 더 커질 위험이 있다.

자본주의는 경제에 최상의 조직적인 체제이지만 자이언티즘이 개입되면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지역과 국제적 수준 모두 카르텔 형성과 정실 자본주의를 퇴치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경제가 자이언티즘으로 고통받기 시작했는데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고 그것을 주요 경제 세력들이 알아서 잘 처리할거라고 기대하기 힘들다.

국제적 합의가 필요하다.

경제 게임이 새로운 계획경제로 인해 왜곡될 수 있다.

계획 경제를 중앙은행에서 보면 그들은 대기업에 더 유리한 조치를 취한다.

서양의 정부는 조직을 보다 대담하게 분산해야 한다.

미래는 더 작고 느리고 인간적이다.

그런 세계는  경제학자가 거시적이 아니라 미시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작은 단위로 인간에 다가가는 법을 배워야 하며 우리가 소속된 생태계를 위해  역할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고 질병, 기후나 금융 시스템 같은 복잡한 문제에 협력하도록 자극하면 된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수록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소수의 엘리트나 재능이 정실 인사에 힘입어 막강한 세력을 지닌 거대 구조를 만들고 이런 조직이 소수 독점 사회가 될수록 사회는 더 거대한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전체 시스템을 거부할 필요는 없지만 그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직시하고 고쳐가야만 한다.

자본주의가 계속된 발전을 한다면 여러가지 문제점이 생긴다.

크기는 작게 하고 문제점을 해결하고  합의점을 찾으면서 자본주의를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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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엘리트 - 4차산업혁명 시대의 뉴 엘리트
표트르 펠릭스 그지바치 지음, 박현석 옮김 / 사과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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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쯤되면 새로운 엘리트에 대한 모델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항상 성공성공하는데 진정한 성공이 뭔지 알아야 하는 것 같다.

무진장 성공하고 싶은데 성공이 뭔지 모른다는 건 목표지점을 모르고 달려가는 말같다.

뉴엘리트가 되려면 올드 엘리트가 뭔지 알고 올드 엘리트가 하는 걸 안하면 되는 것 같다.

끓임없이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세계적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알려주는 것 같다.

직감력을 어떻게 키우는지도 알고 싶었다.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결정적인게 뭔지도 알아야 할 것 같다.

창조적인 인재도 알아봐야 하는 눈이 있고 내가 창조적인 인재가 되어야 하는 것 같다.

저자는 성공이 그 자리에서 계속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공하는게 성공이다.

커다란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에 공헌을 해야지 또 성공한 인물이다.

행복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자기인식과 자기효능감이 커야 하는 것 같다.

에너지도 넘치고 건강해야 한다.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정말 힘들다.

뉴엘리트가 뭔지 알아서 뉴엘리트가 되고 싶다.














 

저자 표트르 펠릭스 그지비치는 폴란드 출생, 독일, 네델란드, 미국에서 생활한 뒤 2000년에 일본에 건너갔다.

2002년 벌리츠에서 그로 벌비즈니스 솔루션 부문 아시아태평양 책임자, 2006년 모건 스탠리에서 학습 경력개발 부사장, 2011년부터 구글 아시아태평양 지역 인재개발 담당, 그리고 2014년부터는 글로벌 부문 학습전략을 담당, 인재육성과 조직개발, 리더십 개발 등의 분야에서 활약했다.

현재는 독립해서 2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AI시대 주목받을 새로운 인재상을 알려주며, 기존의 올드 엘리트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저서는 <0초 리더십> <세계에서 가장 빨리 결과를 낳는 사람은 왜 메일을 쓰지 않을까>등이 있다.

저자는 뉴 엘리트가 될 것인가, 올드 엘리트로 남을 것인가를 구글에서 제의를 받고 처음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평소처럼 정장을 입고 갔다.

당시 이미 구글에는 정장으로 가지 말라는 소문을 듣고는 있었지만, 정장으로 면접에 임했다는 이유만으로 채용되지 않는다면 그런 관용적이지 못한 회사는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배짱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면접에서의 저자는 정장 입고 왔습니다.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약한 모습의 저자다.

구글  면접에 들어온 사람은 엔지니어링의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다.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에 낡은 티셔츠, 커다란 안경에 한껏 자란 수염, 보통 사람이 보기에 길거리에서 얕잡아보던 타입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시작한 순간 인상이 바뀌었다.

엔지니어인데도 인재 육성에 대해서 매우 날카롭고 핵심을 찌르는 질문을 차례차례로 던졌기 때문이다.

겉모습으로 사람이나 일을 판단하던 시대는 끝났으며우리는 어떻게 일하고 살아야 하는가라는 큰 관점에서 봐도 변화가 필요한 시대에 접어 들었다.














올드 엘리트의 슬픈 자화상은 명문대학을 졸업하면 학력 엘리트로 명문대학 졸업이라는 훈장을 달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올드 엘리트에게는 성장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일단 정상에 오르면 더 이상 발전 가능성이 없다.

이는 슬픈 일이다.

앞으로 시대를 이끌어갈 사람은 조금 다른 식으로 정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는 지위보다, 원래 있던 장소와 지금 있는 장소에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성공에 대한 정의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정 기간 동안 비교해서 특별히 성공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도 실제로는 성공한 사람이 존재한다.

오히려 그들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시대가 머지않아 찾아올 것이다.

애초부터 저자는 엘리트가 아니었다.

저자는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폴란드는 국민의 90% 이상은 가톨릭교도인데, 공산당 정권아래에서 가톨릭은 탄압의 대상이다.

지금 우리나라 기독교가 탄압을 받고 있다.​

구소련의 압력에 의해서 가톨릭 교회가 붕괴될 위기에 처한 것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198112월부터 계엄령이 선포되어 군대가 국가를 지배했다.

경제 봉쇄로 식료품은 배급제가 되었기에 슈퍼는 빵과 식초뿐이었고, 얼마 되지 않아 고기를 얻기 위해 긴 줄이 이어졌다.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레흐 바웬사가 집권하고 철의 커튼이 제거된 것은 1989년의 일이다.

그때 저자 나이가  14세였다.

 

공산주의 체제 속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취급을 받는다.

저자에겐 콤플렉스가 있었다.

전에 일하던 모건 스탠리에서 동료는 모두 부자들뿐, 그들은 대부분 스탠포드 대학이나 콜롬비아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 집단이다.

교회친구가 서울대의대 나온 자기보다 엘리트가 어디있냐고 해서 너보다 엘리트는 많다고 하니까 어디 있냐고 했다.

전 세계를 봐야지 한국만 보면 안된다고 하니까 자기는  한국에서만 최고이면 된다고 했다.

세계가 글로벌해지고 미국이나 영국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영향을 다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미국친구얘기가 아니면  우리나라의 갇힌 언론의 얘기만 들으면 절망스러울 수 있다고 얘기했다.

친구는 책 읽는다고 전화도 안 받고 책 읽는다고 자기들이 나오라고 해도 안 나가고  책 읽는다고 카톡도 씹는다고 뭐라고 했다.

책본다고 뭐라고 하는 건 올드 엘리트 아닌가,,

로스쿨 다니는 애가 동성애지지모임, 차별금지법지지 모임에 가자고 했다.

난 절대로, 완전, 결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은 반대다. 낙태도 물론이고,

책 한권 읽는데 6개월이 걸리고 읽고나면 바로 까먹는 너는 올드 엘리트라고 할 수 있겠다.

올드 엘리트는 차단시켜야겠다.

이 책을 보니까 책을 끓임없이 읽으라고 한다.

저자도 친구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저자의 친구들은 돈이 없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가족과 함께 요트를 타고 남쪽 섬에 갔다 왔다는 얘기를 들으면 별세계의 일처럼 여겼다.

저자가 자라온 환경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에 패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정말로 승리를 거둔 것일까,,

난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자도 그렇다고 한다.

자본가나 경영자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의 인생을 살펴보지 않는다.

원래 회사는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지원해야 한다.

인간이 일하는 방식은 끓임 없이 변화하고 있다.

얼음을 채취하던 시대는 생산경제의 시대였다.

다음 단계인 지식 시대에 접어들자 전문성과 지혜가 추구되었다.

이러한 것들도 지금은 아웃소싱으로 충분하다.

앞으로 일하는 방식의 단계는 창조경제이다.

시대에 살아남는 인재와 기업은 무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로,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정열, 창조성, 솔선이다.

막시즘은 창조성이 결여되어 있다.












끓임 없이 배우는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저자가 ​세계적으로 봐서 일본인은 호기심이 부족하다는 기사를 관심 깊게 읽었다.

기사에 일본인은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의욕이 낮다는 연구 결과가 실려 있었다.

내가 볼때는 일본인들은 호기심이 충만하다.

친구들과 일본인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왜 소극적일까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데 마침 와인을 서비스 하는 여성 종업원이 들어 왔다.

그녀에게 새로운 것을 배우기 좋아 하냐고 물었다.

그 와인녀는 배우는 것을 아주 좋아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창업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다.

사태는 생각지 않았던 방향으로 전개 되었다.

와인녀는 번역가인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 10대 때 캐나다와 미국에 유학한 경험이 있어 영어에 능통했다고 한다.

​굳이 일본 대학에는 진학하지 않고 스스로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선택을 해서, 지금은 대만과 중국인 친구들과 함께 일본 화장품을 대만과 중국에 수출하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비즈니스도 하고 있는데 왜 굳이 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가에 대답은 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회사가 좋아서 3년째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아르바이트는 수입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배우기 위해서 계속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레스토랑 경영의 한 부분을 경험함으로써 비즈니스의 시스템을 배울 기회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언어는 애플리케이션으로 배우고, 사람과 직접 대화해야 한다.

배움을 위한 또 하나의 방법은 사람과 직접 접촉하는 것이다.

어학을 배울 때면 언제나 원어민과 만나 그 언어를 익힌다.

물론 어휘를 늘리기 위해서 사전을 찾아보고 암기하는 경우도 있고, 기초적인 문법은 참고서를 보고 배우기도 한다.

일정 수준에 달하면 이후부터는 원어민과 이야기하며 익히는 것이 최선이다.

대화의 문장을 만드는 법이나 상대의 말에 수긍하는 방법 등은 언어에 따라서 다르다.

그렇기에 대화를 통해 배우는 것이 가장 이해하기 쉽다.

















성공한 사람들과 만나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두 겸손하다는 사실이다.

한 예로 건축가인 구마 게고 씨는 국립경기장을 비롯해 여러 건축 디자인에 관여한 건축계의 일인자이다.

​저자가 선생님은 어떻게 성공했냐고 물었더니  성공한 적이 없고 항상 실패의 연속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 지은 건물은 도면을 몇 번이나 틀렸는데, 언제나 그런 식이라고 했다.

건물이 완성돼도 만족하지 못한다고 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아직 더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표정을 보면 가식으로 겸손하게 말하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건축가는 정말로 자신이 실패의 연속이었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그 겸허한 자세에 감동했다고 한다.

직감력을 키우려면 작은 실패를 여러 번 해서 경험을 쌓는 것이 최선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작은 실패를 수차례 경험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공자들은 가끔  큰 성과를 기대하고 일을 맡기는 했으나, 나중에 냉정하게 생각해보니 예상 외로 부담이 크거나 번거로운 작업이 많거나 해서 생각만큼 보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은 저자도 그런 실패를 한 적이 있다.

​그런 경우는  어쨌든 눈앞의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방법뿐, 어쩔 수 없이 진행하기는 해도 소극적으로 임하게 된다.

그런데 경험을 쌓으면 직감적인 선택에도 설득력이 생겨난다.

과거의 경험에 의해 사람과 상황이 어떤 식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어떤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작은 실패들의 반복이 쌓여야 한다.

실패를 반복하려면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

이 포인트에서 중요한 것은 직감으로 결단을 내릴 기회를 늘리는 것이다.

직감으로 결단을 내려야 할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으면 작은 실패도 경험할 수 있고 직감력도 기를 수 있다.

올드 엘리트는 변화에 둔감하고 뉴엘리트는 끓임없이 배우고 기회를 만들어 그 기회에 반응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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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날 철천지원수의 땅에서 자유를 노래하다 - 주성하와 탈북 청년들의 아메리카 방랑기
주성하.조의성 지음 / 북돋움coop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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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북한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헌법에는 북한도 같은 나라인데 전혀 갈 수가 없고 인권이 최하 밑바닥이라고 하니까 너무 안타깝다.

김씨일가를 왜 북한 주민들은 무너뜨리지 못하는지 답답하다.

저번에도 김정은이 고모부를 고사포로 죽이고 머리를 진열했다는 얘기에 완전 사이코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마의 나라인데 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그런 사람와 친하게 지내려고 하는 걸 이해를 못하겠다.

그런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위에 있다는 것도 소름끼치고 너무 싫다.

우리나라위에 중공, 소련, 북한이 있다는 게 너무 슬프다.

몽골과 위그르족도 좀 일어났으면 좋겠다.

로스쿨 다니는 얘가 사회주의, 공산주의되면 어떠냐구,,

그냥 변호사하면서 살면 되지,,그랬다.

판옵티콘이나 감시사회, 전체주의 사회에 대해서 구분할 생각이 없나보다.

나도 책을 안 읽었을때는 몰랐으니까말이다.














미셸 푸코의 책을 읽을 때 이런 책을 왜 썼지라는 생각을 했다.

나와는 상관이 없는 얘기라고 생각했다.

푸코는 국가는 의료를 장악함으로써 인민을 자연스럽게 관리한다고 했다.

이 책은 탈북 청년 3명이 미국여행기를 같이 쓰려고 하다가 1명은 그만두고 2명이 같이 쓴 책이다.

오늘도 이 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원장님이 전화를 하셨다.

검사결과가 너무 좋다고 정상수치라고 하셨다.

저번에 말씀하신 것처럼  너무 오래 아파서 뇌가 다 나았다는 걸 인식을 못한다고 또 말씀하셨다.

뇌에 대한 책을 읽어야겠다.

깨끗하게 살아서 안 나을 병도 다 낫는다고 하셨다.

그것도 그렇지만 하나님이 있고 엄마가 건강책을 엄청나게 읽고 한의원에서 지어주는 약보다 더 효과적으로 약을 조제해주니까 낫는 것 같다고 했다.

원장님은 체력을 계속 보완하면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을거라고 하셨다.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반마르크스주의 이론 구축,,반사회주의 이론 구축,,반진화론 강화,,하나님이 수다쟁이라는 걸 알리기,,하지만 이틀동안 아무 말씀을 안하셔서 내가 뭘 잘못했나라고 또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음성 듣는 것도 중독성이다.

변호사사무실 닫고 여자친구랑 헤어진 거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해야해,,

나는 여자도 아니고 애기라고 하더니 너는 애기보다 못한 거니,,

나한테 훈수 많이 하더니 모솔인 나나 여자 8명 만난 너나 결혼 안 한 건 같쟎아,,

북한산 단풍이 들면 구경가는 것도 하고 싶은 모든 것중에 하나이다.

좌파쓰레기들을 우리나라와 전 세계에서 평화적으로 사라지게 하는 방법을 구축하는 것,,

원장님 말씀처럼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적어 봐야겠다.

우선  난 저자 3명이랑  미국여행을 책으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다.

뭐가 있는지 궁금하다.

저자들이 대화를 나누 걸 들어 보면 북한에 갇혀 살아서 역마살이 생겼다고 했다.

갇혀 살았다는 얘기에 갑자기 마음이 아파왔다.

자유가 없는 감금생활을 했다고 하는 것 같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지,,

저자 중에 오스틴이라고 미국이름을 쓰는 친구가 있는데 미국집을 지주집이라고 했다.

너무 좋은 집은 지주집이라고 한다고 한다.

나도 미국친구집을 사진으로 봤는데 정말 좋았다.

나중에 남자친구가 생기면 아빠엄마랑 미국친구한테 놀러 가야 겠다.

그럼 길에서 곰이나 여우, 사슴, 칠면조를 볼지도 모른다.

동물원에 따로 갈 필요가 없는 곳이다.

저자는 사진을 핸드폰이 아니라 카메라로 찍을 걸하는 후회를 하는데 풍경을 아름답게 정말 잘 찍었다.

미국의 풍경을 눈으로  어느정도 느낄 수 있다. 


북한은 제일 거지로 살면서 세상에 부러운게 없다는 노래로 세뇌를 시킨다고 했다.

이 책은 저자 2명,  등장인물 3명이라서 그냥 저자로 통일을 해야겠다.

저자는 북에 있을 때 비행기를 타보고 죽을까 싶었다.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때 비행기도 타봤으니까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여한은 풀지 못한 원한이다.

원한은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 응어리진 마음이다.

원통은  분하고 억울한  것이다.

저자는 비행기를 타서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풀렸다는 거네,,

저자들은 남자라서 그런지 총을 쏘는 사격장에 가고 싶다고 하고 축구얘기를 하는데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다.

미국의 땅은 크게 동부, 중부, 서부로 3등분해서 볼 수 있다.

각각의 면적은 거의 비슷하다.

미국 동부는 유럽 이주민들이 몰려와 개척한 땅이다.

중부는 전쟁을 치르느라 돈이 바닥난 프랑스의 나폴레옹 정부에 미국이 1,500만 달러를 주고 헐값으로 사들인 땅이다.

서부는 텍사스를 시작으로 멕시코에서 빼앗은 땅이다.

미국에는 주마다 별명이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골든 스테이트,  12살짜리랑 성관계를 합법화하겠다는 주이다.

이젠 별명을 악마의 주라고 해야겠다.

뉴욕주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플로리다주는 선샤인 스테이드, 텍사스주의 별명은 론스타이다.

별명을 왜 지은 건데,,

오스틴은 탈북하고 한국 고등학교에서 처음 영어를 접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는 것은 귀가 뚫리지 않아서라고 한다.

오스틴은 영어를 배울 때 친구가 쓰던 MP3플레이어를 얻어 와서 안에 있는 음악은 모두 지우고  영어 뉴스와 영어 성경을 집어 넣었다.

그걸 음악 듣는 것처럼 계속 듣고 다녔다고 한다.

이해는 필요없고 아는 영어 단어인데도 외국 사람이 말하면 알아듣기 힘든  그 발음이 익숙해지지 않아서이다.

영어는 음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아는 단어라도 처음엔 안 들린다.

그래서 무작정 들어야 한다고 한다.

영어는 영어 음파가 따로 있다.

그걸 귀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중엔 라디오를 사다가 침대 밑에 놓았다.

그냥 집에 들어왔다가 나갈때까지 잘 때도 영어가 계속 들리게 하는 거라고 한다.

한국에선 귀가 뚫린 줄 알았는데 미국에 가서 보니까 오스틴의 귀가 뚫린 게 아니라는 걸 또 알았다고 한다.

오스틴은 미국에서 일반 대학과 아이비리그를 다녔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몰래  읽었다고 한다.

난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중학교때 읽었다.

저자들은 카네기의 책을 토막토막 나눠져 있는 걸  몰래 MP4로 다운을 받으면서 읽었는데 황홀했다고 한다.

북한은 책도 제대로 못 읽는 곳이구나.

난 정말 살 수 없는 나라다.

난 책없으면 못 사는데,,

저자들은 북한의 주체사상에 대한 책만 읽다가 카네기책을 읽으니까 충격이었다고 한다.

저자들은 책을 숨어서 봤다고 한다.

정말 생각할수록 충격적인 나라가 아니라 집단이다.













오스틴의  양부모님은 어머니는 한인이고 아버지는 미국 군인이었다고 한다.

북한에선 미국 사람을 미국 놈이라고 배웠고 미군은 승냥이 미제 침략군이라고 교육을 받았다.

그 논리에 따르면 오스틴의 양부는 남조선에 침략군 장교로 왔던 승냥이 미제가 되는 셈이고 아들은 중동으로 파병되는 미제 악당인 셈이다.

하지만 직접 만난 이들은 그렇게 상냥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정의와 평등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저자들은 미제 승냥이라고 배웠던 그 사람들이 친절한 마음으로 북한에서 온 오스틴을 양자로 받아주었고 외진 미국의 도시에서 고생하는 그를 위해 온갖 편의를 제공해주었다고 한다.

저자들은 북한에서도 엄마가 사서라서 책벌레였다고 한다.

저자들이 앨버커키를 갔는데 거기는 좀 황무지같이 보인다.

2007년 7월의 북한  해산 아파트 붕괴 사고에 대해서 얘기를 해줬다.

예술회관 옆에 있는 8층 아파트였는데 내부 개조를 하다가 기초가 되는 벽을 허물어버려 붕괴됐다고 한다.

낮 시간이라서 노인들이 많이 죽었는데 그때 붕괴되면서 돈이 옆의 예술회관 광장에 막 흩날렸다.

보안서에서 현장에서 재물을 얻는 자는 재판없이 총살한다고 공지하고 저들이 돈을 다 걷어 갔다고 한다.

북한은 집을 골조만 세우고 내부 인테리어는 하지 않고 매매한다고 한다.

2014년 5월 13일에 평양 평천에서 아파트 붕괴가 일어나서 수백 명이 죽는 사고가 또 있었다고 한다.

애리조나주 경계를 넘을 때 별똥별이 보인다고 하는데 미국은 그런 곳이 몇 군데 있나보다.

저자들은 LA에 도착했다.

나도 해외직구로 옷을 사면 항상 LA에서 배송이 시작되는 걸 봤다.

저자는 미국의 공기가 깨끗해서 놀랐고 사이즈의 모든 게 커서 또 놀랐다고 한다.

땅도 크고 빵도 크고 커피도 크고 변기도 크다고 한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공공질서도 잘 지킨다고 한다.

미국의 단점은 관공서가 느리고 인종차별이 심하고 교통에 너무 많은 시간을 버린다고 한다.

땅이 크니까 이동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

북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속마음을 숨기고 살아야 해서 이중적 태도를 취한다고 한다.

북한의 치안은 심각해서 강도, 성폭행, 좀도둑이 심하다고 한다.

북한의  국민은 노예이고 의견이 없다고 한다.

북한 사람들은 배타적이고 사람을 등쳐먹으려 한다고 한다.

저자들은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갔다고 하는데 사진을 보니까 브로드웨이 부기우기가 생각났다.

그랜드캐넌이나 하프돔 같은데는 힘들어서 못 갈 것 같다.

파란 물속에 파란 하늘과 함께 담긴 하프돔의 그림자는 탄성이 나오는 풍경이라고 하는데 내 방 창문에 보이는 산이랑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저자들이 여행한 곳의 사진들을 보니까 우리동네랑  비슷한 것 같다.

그만큼 아름다운 풍경들이 많다는 거다.

미국은 크고 북한은 갇혀 살고 책도 읽기 힘들고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라는 걸 알았다.

헬북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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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평화를 향한 탐구 - 핵무기와 전쟁이 없는 세계를 이야기하다
이케다 다이사쿠.로트블랫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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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핵무기와 전쟁이 없는 세계를  대담으로 구성했다.

 저자 이케다 다이사쿠는 창가학회 명예회장이자 극제 창가학회 회장, 1928년 도쿄 태생으로 소카대학교, 미국소카대학교, 소카학원, 민주음악협회, 도쿄후지미술관, 동양철학연구소, 도다기념국제평화연구소 등을 설립했다.

 UN평화상, 한국 회관문화 훈장을 포함해 24개국 훈장, 세계계관시인 등을 수상했으며, 전 세계 대학으로부터 396개의 명예박사 및 명예교수 칭호를 수여받았다.

또 다른 저자, 로트블랫은  물리학자, 퍼그워시회의 명예회장이다.

​로트블랫은 1908년 폴란드의 바르샤바 태생으로 영국에서 핵물리학을 연구하고, 미국 정부로부터 원폭 개발의 맨해튼 계획초청을 받아 도미했다.

이후 나치 독일이 원폭을 제조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자, 동계획에서 이탈하여 전후의 러셀 아인슈타인 선언발표에 진력했다.

 ‘퍼그워시회의 초대 사무국장과 회장을 역임하는 등 핵무기 폐절운동을 추진했으며, 1995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058월 런던에서 서거했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대로  전쟁이 없는 세계를 향해 점점 다가가고 있다는 징후도 실제로 볼 수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다른 유럽연합의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불구대천의 적대국이었다.

유럽은 가까운 나라일수록 원수같이 지낸다고 했다.

거기에는 아직도 분쟁이 존재한다고 해도 유럽연합의 구성국은 모두 각각의 과제를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우리는 괴로워하면서도 전쟁이 어리석은 행위라는 점을 인식하고 천천히 대면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래도 전쟁이 없는 세계의 개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려면 교육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전쟁을 용인하는 문화를 근절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안전을 해치는 형태로 자국의 안전보장을 추구하는 사고법을 바꿔야 한다.

세계규모의 안전보장을 전제로 하는 새로운 안전보장에 대한 대처에 대한 노력을 해야하고 인류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새로운 충성심을 키워야 한다.

지구 규모의 안전보장을 위해서 대량파괴무기를 감축해 인류에 대한 주요 위험을 줄일 필요가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금지를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과학적 연구가 낳은 기술의 진보에 따라 더욱 상호의존이 진행되는 국제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사회에 대한 책무를 지지만 과학이 근대사회에 미치는 지배적인 역할에 따라 그 책임은 과학자들에게 더 무겁게 전가되고 있다.

과학은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사회의 존경을 되찾아야 한다.

과학은 자신의 견해 공공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면서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고 창조성을 자비심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 상상력을 자유자재로 발휘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것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것은 과학과 기술이 책임있는 형태로 사용되는 세계다.

​저자는 자신이 받은 교육을 인류와 환경을 해치기 위해 의도된 어떠한 목적으로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우리의 생애를 통해 어떠한 행동을 하기 전에 자신이 하는 일이 갖는 윤리적 영향성을 고려해야 한다.

저자 조지프 로트블렛은 96세가 됐을 때까지  인생을 대부분 핵무기 폐기를 위해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전쟁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바쳤다.

이 책은 ​세계평화를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활동한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과 함께 협력해 완성한 것이다.

인류가 공유하는 인간성을 상기시키고 또 지금의 차이를 잊는 일이 과연 가능한가, 지구 규모의 안전보장에 필요한 방법과 인류에 대한 충성심을 몸에 익힐 수 있는가, 저자 조지프는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과 함께 도의적이고 책임 있는 과학의 사용에 관한 경험과 확신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자 그 방도 중 하나로서 이 대담집을 만든 것이다.

전쟁은 인간을 어리석은 동물로 만들고 마는 힘이 있다고 조지프가 말했다.

조지프 박사가 반평생을 바친 평화를 위한 과학자 단체 퍼그워시회의가 발족한 때는 1957년이다.

그해 일본에서는  핵무기를 절대악으로 지탄하고 폐기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고 있었다.

평화를 위한 노력은 투쟁이지만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협력하면서 이 투쟁을 해나가야 한다.

조지프박사는 1995노벨평화상을 받고도 바쁜 행보를 이어갔다.

전쟁을 없애려면 사회제도나 국가체제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근본인 인간을 바꿔야 한다.

경제도 인간의 도덕성을 바꿔야 한다더니,,

 민중이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민중이 현명해지는 수밖에 없다.

경제, 정치, 평화를 지키는 일에도 민중이 깨어나야 한다.

제발 대가리를 좀 깨라.

그리고 전 세계의 민중이 마음과 마음을 합쳐 나아가야 한다.

히로시마는 핵시대가 시작된 땅이다.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보어 박사가 말한 전쟁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상황이 시작됐다.

피폭된 지 60년 그리고 러셀 아인슈타인 선언을 발표한 지 50주년을 맞아 히로시마에서 평화의 메세지를 발한다.

세계 사람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무서움을 놀라울 정도로 잘 모른다.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추진한 핵무기 개발 프로 젝트 맨해튼 계획에 많은 과학자가 참여했다

조지프 박사는 나치스 독일이 더 이상 원자폭탄을 제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이 계획에서 이탈한 과학자이다.

 조지프 박사는 1995년 퍼그워시회의와 아울러 핵폐기를 위한 끓임없는 노력을 높이 평가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전 세계가 갈채를 보냈고, 기뻐했다.

그런데 난 왜 금시초문이지,,

난 이 책에서 조지프박사 처음 들었다.

​조지프 박사는 퍼그워시회의의 회장으로서 매일 아침, 런던 북부에 있는 집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 9시전에는 사무실에도 도착했다.

퍼그워시회의가 정치적 압력단체는 아니지만 핵무기처럼 선진적인 과학기술의 개발로 야기되는 인류에 대한 위협에 대해서는 과학자의 관점에서 경고하는 것이 사명이자 책무이다.

실제로 핵실험 금지를 위한 국제 여론을 높이거나 많은 군측 관련 조약이 성립하는 데 퍼그워시회의 멤버의 지적 공헌과 폭 넓은 인맥이 실로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 받고 있다.

이전에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이 퍼그시회의의 군축과 냉전 종결 이바지했다고 조지프박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 적이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60년 가까이 평화운동에 몰두하면서 어째서 그렇게 오래 지속할 수 있었는지 자주 사람들이 물어본다.

이유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선량함을 믿기 때문이다.

무언가의 외재적인 힘이 작용하거나 외부 상황에 강제적으로 인간이 나쁜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인류 역사의 초기에 인간은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사랑을 위해, 여성을 위해, 종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여러 이유로 싸우고 서로 죽였다.

그러나 조지프박사는  인간은 내재적으로 선하다고고 믿는다.

이것이 처음부터 저자가 가진 철학이고, 이 신조가 있기에 평화를 위해 싸울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난 박사님 의견에 반대이다.

박사님이 하는 운동에도 막시즘이 침투하지는 않았는지 의심스럽다.

인간은 완전 악함 그자체이다.

교육과 하나님의 두려움을 아는 인간은 아니겠지만,,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박사의 평화운동을 높이 평가한 것도 확고부동한 신념에 깊이 기인하고 있음을 자세히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서 핵폐기를 지향하는 많은 시람이 박사의 행동에서 얼마나 크게 용기를 얻었는지 모른다고 한다.

일본에서 처음 퍼그워시회의 연차총회를 개최한 때는 10년 전이었다.

원폭 투하 50년을 맞은 1995년이었다.

당시 중국의 핵실험에 이어 프랑스가 핵실험 재개를 결정하는 등 핵군비 확장의 움직임이 강해지는 속에서 퍼그워시회의로서 운동의 원점이라고도 해야 할 히로시마에서 회의를 개최했다.

전체회의에서 강연할 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투하는 전혀 필요 없었다고 했다.

​핵무기 보유국들은 히로시마를 방문해서 거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직접 봐야 한다고 한다.

 지금 세계에서는 핵무기 보유국에 다른 핵삭감이 추진되지 않고 한편으로 핵확산의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핵위협이 급속히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폐기에 대한 관심과 열의는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그런 현상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고 단기간에 실로 엄청난 수의 핵무기가 축척되어 몇 번인가 그것을 사용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실제로 우리가 오늘날까지 궁극적 파국을 피해온 것은 고도의 위기를 관리 시스템 덕분이라기보다 단지 행운이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핵이 평화를 지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편협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평화를 지켰다고 하는 경우 누구의 평화를 지켰다는 것인가

핵무기는 한반도, 인도차이나, 중미 등의 사람들에게는 전쟁을 유발하는 마성의 무기가 되어 버렸다.

핵전쟁의 고비까지 간 쿠바 위기에서는 억지력이 잘 적용하기는커녕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검증되었다.

당시 미국의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쿠바 위기의 해결은 당사자의 대응뿐아니라 고도의 행운 덕분이었다.

인간의 나약함과 핵무기가 끓임 없이 결부함으로 핵무기로 인한 대참사가 발생할 위험성은 매우 커진다.

핵무기는 비록 합법이라고 해도 도의상으로는 사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그리고 핵무기 사용을 도의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합의는 물론 법적으로도 위법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했다.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19461, 유엔총회에서  핵무기 폐기를 위한 의결을 발의했다.

그 결과, 핵에너지 발견으로 인한 여러 문제에 대처하는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유엔은 처음부터 핵무기를 강하게 반대하는 견해를 취했다.

​유엔은 어느 나라든 핵무기를 입수하거나 생산, 설계, 구입하면 안 된다고 했다.

비핵무기국은  핵무기를 절대로 보유하면 안된다고 했다.

핵무기를 보유한 5개국은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이다.

그 외에도 핵무기를 개발하는 나라는 있었지만 인식되지 않았다.

그중 한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그리고 한참 뒤에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을 보유했다.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공식 확인된 나라는 8개국이다.

사회에 유해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면 그것을 고발하는 것을 과학자 의무로 삼아야한다.

사회적 사찰을 가능하게 만들려면 과학자를 포함해 모든 시민이 자신의 양심에 충실히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는 것이 불가결하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한 시민 교육이나 명확한 정보 제공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다음으로 그러한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보장하는 법률을 정비하는 일이 중요하다.

난 이 책을 읽으니까 우리나라도 핵이 있으면 아무도 못 견드릴 것 같다는 생각이 더 든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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