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를 즐겁게 - 우리말의 어원과 유래를 찾아서
박호순 지음 / 비엠케이(BMK)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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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말하다의 어원을 알려주는데 난 그런 얘기는 처음 들었다.

얼굴이 눈코입이 있는 머리의 앞면을 말하는거다.

얼굴은 혼 넋 마음 생각이 담겨 있고 꼴이라는 뜻의 굴이 합쳐져서 얼굴이라는 뜻이다.

난 책을 읽는데 의미를 모르는 단어가 항상 있다.

사전을 안 찾을 때가 없다.

신기하다.

읽어도 읽어도 모르는 단어가 항상 있다.

이 책을 읽으면 국어에 대한 깊은 이해가 더해질 것 같다.

책을 읽을 때 와닿는 단어나 문장도 좀 더 다른 의미로 와닿는다.

저자 박호순은 교대를 나와서 초중고 교사를 하고 교장 장학관까지 했다.

조선시대에 훈민정음이 창제되면서 우리말을 우리글로 표현하게 되었는데 그 전에는 우리말은 있어도 우리 문자가 없어서 한자로밖에 표기할 수 밖에 없었다.

[계림유사]를 보면 12세기 초 고려 숙종때 중국 송나라 손목(통역관)이라는 사람이 사신과 함께 개경에 왔다가 당시 고려의 조제(조정의 제도), 풍속 등과 함께 고려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 중에서 353 어휘(진태하의 [계림유사연구]에는 359어휘가 수록되어 있음)를 채록하여 당시 고려 사람들의 발음을 중국 송나라 시대의 한자음으로 가차(뜻은 다르나 음이 같은 다른 한자를 빌려 씀)하여 기록한 백과서이다.

[계림유사]의 기록이 1000년 전의 고려 사람들이 사용했던 한자음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 민족은 그 당시에도 지금과 거의 비슷한 소리의 언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4300년 전의 고조선때에는 지금과 같은 소리의 언어는 아니더라도 현재 언어의 뿌리가 될 만한 우리말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우리 민족 나름의 기호적 문자도 존재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한서]지리지에 의하면 고조선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법조문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개인의 생명과 노동력에 의한 사유 재산과 가부장적인 가족 제도가 존중되는 관습법으로 범금팔조라고  불렸다.

1. 살인을 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

2.남을 상하게 한 자는 곡물로써 보상한다.

3.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그 주인의 노비로 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속죄하고자 하면 일인당 50만  전을 내놓아야 한다.

중국 한서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 민족은 부족 국가를 형성하여 우리의 역사가 시작된 고조선 때에도 우리 나름대로의 우리 언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

국어사전의 사랑은 정성과 힘을 다하여 아끼고 위하는 마음, 이성에 끌려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 남을 돕고 이해하려는 마음, 어떤 사물을 즐기거나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열렬히 좋아하는 대상이라고 한다.

사랑에 대하여 기독교는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하면서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이 믿음과 소망보다 앞서는 이유는 믿음과 소망은 마음에 간직되어 있는 반면에 사랑은 마음에 간직되면서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기때문이라고 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예수의 헌신적 사랑이다.

불교에서의 사랑은 중생들을 가엾게 여기어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 주려는 자비를 말한다.

불교 사상 중에는 자비무적이란 말이 있다.

어지럽고 힘든 세상에서 자신이 살아가는 데 가장 힘이 되는 것은 상대를 미워하지 않는 자비로운 사랑이라는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데에는 적이 없다는 말이다.

불교의 자비심은 인연의 멀고 가까움에 차별 없이 모두를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며 무량한 사랑과 감싸는 마음으로 자기보다 상대를 더욱 위하는 마음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부처의 무한한 자비이다.

유교에서의 사랑은 남을 이해하고 보듬으며 어질게 행동하는 인을 의미한다.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도타운 자애라고도 한다.

논어에는 박시제중(널리 은혜를 베풀어서 뭇사람을 구제함)이라는 말이 있다.

유교에서의 사랑은 기독교의 헌신적 사랑이나 불교의 무한한 자비보다 오히려 보편적인 면이 있어 보이지만 유교에서도 하늘 죽신의 뜻을 사랑에 결부시킨다.

공자가 말한 지천명은 사람의 나이 쉰 살을 달리 이르는 말로 사람이 쉰 살이 되면 하늘의 순리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늘의 순리를 따르는 것도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

부자유친은 부모를 공경하고 효도를 하는 것인데 이 또한 부모를 사랑하기에 효를 실천하는 것이다.

유교의 기본은 인이라고 하지만 예 또한 가벼이 여길 수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예절을 지키는 것 또한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예절을 지키는 것이다.


 

 

 

철학적 의미의 사랑에는 에피투미아(원초적 사랑), 플라토닉(정신적 사랑), 에로스(이성적 사랑), 필리아(친구 간의 사랑), 스토르게(가족 간의 사랑), 아가페(조건 없는 사랑)가 있다.

에피투미아는 원초적인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우선으로 하여 욕구 충족을 위한 자기 사랑이다.

배가 고프거나 몸이 아프면 울고 마음이 흡족하면 웃으며 좋은 물건을 보면 갖고 싶어 하고 사회 활동 중에는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고 싶은 것 등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탐하는 것이 에피투미아적 사랑이다.

에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렁의 신의 이름처럼 이성 간의 사랑을 기본으로 하며 서로가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고 아름다운 것에 감동을 받으며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자타 공존의 사랑이 에로스적 사랑이다.

아가페는 철학자 플라톤이 이데아(이상적 개념)에 대한 동경이라고 정의한 것처럼 신의 뜻을 따르는 사랑, 모든 인류를 위한 사랑, 어떠한 조건도 없는 헌신적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하고 있지만 어원사전에서는 사랑은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풀이하였다.

그러니까 사랑은 사람과 사람이 상대방의 여러 상황을 깊이 생각하고 헤아리면서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다.

중세 국어는 사랑하다는 생각하다는 뜻도 있었다.

사랑과 가장 관련이 있는 사람에 대하여  국어사전과 어원사전에 의하면 사람의 어원은 살(명사로 사람이나 동물의 뼈를 싸고 있는 부드러운 물질)+암(접미사)이 합하여 사람이 되었다.

어원사전에는 사랑과 생각의 두 뜻을 포함하고 있는 사랑과 사람은 같은 동원어(뿌리가 같은 말)라고 하면서 사랑은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게 가장 사랑하는 것이다.



















조금 있으면 이팝나무가 길거리에 많이 핀다.

이성계 때 전제 개혁으로 토지를 분배 받고 조세는 십일제이므로 가족들의 입에 풀칠은 물론 이제 하얀 쌀밥까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백성들은 전제 개혁을 실행한 이성계를 높이 칭송하였고 또한 쌀밥을 일러 이성계가 내려 준 밥이란 뜻으로 이밥이라 했다.

이런 일이 있어 이팝나무를 이밥처럼 꽃을 피우는 이밥나무라 하다가 이팝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리가 평소에 지어 먹는 쌀밥의 쌀을 멥쌀이라고 하고 입쌀은 멥쌀을 잡곡과 구분하여 이르는 명칭이므로 입쌉과 멥쌀은 같은 명칭이다.

이밥은 입쌀로 지은 밥이므로 이밥은 입쌀밥을 줄여서 줄여서 부르는 명칭이다.

이팝나무의 원말은 입쌀밥나무이다.

우리 속담에 언제 먹었는지 모를 만큼 음식을 빨리 먹어 버리는 것을 '마파람에 개 눈 감추듯'한다고 말한다.

춘향전에 한양으로 떠난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에 내려와서 남루한 행색으로 춘향 모인 월매를 찬아가 밥 한술 달래 허겁지겁 먹어 치우자 월매가 원망하듯이 '마파람 게 눈 감추듯'먹는다며 핀잔을 주는 대목이 있다.

마파람은 뱃사람들이 남풍을 이르는 말로 경퐁(온화한 바람), 마풍(마파람의 한자말), 앞바람(앞에서 마주 불어오는 바람), 오풍(낮12시경부터 바다에서 육지로 부는 바람)등 여러 가지 명칭을 가지고 있다.

바람을 중시하는 뱃사람들이 남쪽을 '마'라고 불렀기 때문에 남쪽에서 부는 바람을 '마파람'이라 하였고 옛날에는 북을 '뒤'라 하고 남을 '앞'이라 하였으므로 '남'에서 부는 바람을 '앞바람'이라고도 하였으며 또한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해를 향해 남면(남쪽을 바라봄)하는 경우가 많아 역시 남쪽에서 부는 바람을 '앞바람'이라 하였고 고기를 잡으로 바다로 나갈 때 마주치는 바람이라 하여 '마파람'이라고 하였다.

남풍을 경풍이라 하여 온화한 바람을 말하는 것이며 개풍이라고도 하여 따뜻한 바람을 의미한다.

바다에서 온화하고 따뜻한 바람이 불면 대개는 비가 오기 때문에 남풍을 비바람이라 한다.

마파람은 외형상으로는 남풍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비바람과 같은 장마 바람을 뜻한다.

게 눈의 게(칠게와 같은 달랑겟과의 무리)의 습성을 바닷사람(뱃사람)들이 보고 게가 두 눈을 빠르게 감추는 것처럼 있던 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지는 상황(음식을 빨리 먹어 치우는 상황)을 일컬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란 말을 썼던 것이 오랜 세월 굳어져 속담이 되었다.

우리말에 대한 것도 모르는게 너무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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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신뢰 - 인생의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 현대지성 클래식 36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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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지성책은 항상 좋다.

랄프 왈도 에머슨이 니체의 사상적 뿌리라는 건 처음 알았다.

책을 읽다보면 연결된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천재의 행동이 자신을 믿고 자신에게 진실이 되는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도 진실이 된다.

장미처럼 시간을 초월해서 자연과 어울려 현재를 살아야 행복하다는 얘기가 왠지 심오한 것 같다.

권력을 자기 내부에서 찾지 외부에서 찾지 말라고 한다.

그게 니체의 초인개념이다.

저자 랄프 왈도 에머슨는 ​ 1803년 5월에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돌아 가셨는데도 어머니가 네 아들을 전부 대학에 보낼 정도로 의지가 강했다.

14세에 하버드대학교를 입학했고 그 후 하버드 신학대학원에 진학했으나 건강 문제로 학업을 중단했다.

26세에 보스턴 제2교회 목사로 일하기 시작했지만 형식적인 ​종교의식에 실망하여 1832년 목사직을 사임하고 유럽 지역을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혔다.

31세에 콩고드로 이사하여 월든 호수 근처의 땅과 집을 사고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47년 동안 왕성한 지적 노정을 시작한다.

에머슨의 제자 소로는 이 호수를 배경으로 [월든]을 펴냈고 에머슨 자신도 이 숲과 호수를 산책하면서 많은 영감을 얻고 안식을 누렸다.

35세 하버드 신학대학원 졸업반에서 형식적이고 영감 없는 설교에 대해 맹렬하게 비판하자 목사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사서 즉각 이단 취급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에머슨은 미 전역을 돌어다니며 40년간 총 1500회 이상의 강연을 하면서 수많은 미국인에게 오롯이 자기 힘으로 우뚝 서는 삶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는 미국이 강대국으로 도약하려면 유럽으로부터 사상적으로 독립할 것과 미국인만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머슨은 대중 강연을 많이 했지만 평소 수줍음을 많이 탔고 동물적 야성은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콩코드의 현자로 불렸으며 19세기 후반 미국 사상계에서 가장 우뚝한 존재였고 공공지식인으로 통했다.

시인 프로스트는 가장 위대한 미국인으로 조지 워싱턴, 토머슨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에머슨을 꼽았다.

대표 저서로는 [자연], [제1에세이], [제2에세이],[인생의 처세],[대표적 인간],[사회와 고독]등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은밀한 마음속에서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도 그대로 진실이 된다고 믿는 것이 천재의 행동이다.

자신의 머릿속에 숨은 확신을 밖으로 드러내면 보편적 의미를 획득한다.

가장 깊숙한 것은 적절한 때가 되면 겉으로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번쩍거리는 지나가는 빛줄기를 발견하고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각 개인에게는 음유시인이나 현자들에게서 나오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불빛보다 자기 마음속에서 샘솟는 한 줄기 빛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에게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그 생각을 별로 주목하지 않고 그냥 무시해버린다.

천재들이 남긴 모든 작품에서 우리는 스스로 거부해버렸던 생각을  발견한다.

낯설지만 장엄한 모습으로 그 생각들은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위대한 예술 작품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감동적인 교훈은 다른 무수한 목소리가 반대 의견을 낼지라도 점잖으면서도 굳건한 자세로 자신의 자발적인 느낌을 더 소중하게 믿고 그 작품들이 웅변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내일 어떤 낯선 사람이 우리가 늘 생각하고 느꼈던 바로 그것을 아주 그럴듯하게 말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타인에게서 우리 생각을 받아들여야 하는 부끄러운 상태가 된다.

부러움은 무지에서 나오고 모방은 자살행위다.

배우는 과정에서 이런 확신이 드는 순간이 온다.

또한 좋든 나쁘든 자신이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제 운명의 몫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을 맞이한다.

이 세상은 좋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경작지를 자기 자신의 노동으로 갈지 않으면 단 한 알의 옥수수도 그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인간 내부에 깃든 힘은 본래 새롭다.

그 새로움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예상하지 못하는데 직접 뭔가를 해보아야만 비로소 자기 능력을 알게 된다.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우리에게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주어지지 않았다.

기하학은 주도적인 사상들의 거대한 궤적을 잴 수 없고 어떻게 귀결되는지 목격하지 못하며 사상들 사이의 대립을 화해시키지도 못한다.

우리는 단지 자신의 극성을 따를 뿐이다.

이 저항할 수 없는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다면  깊이 생각하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

수단을 위해 목적을 희생시키는 것이 운명이다.

신체 조직이 성격에 독재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자연의 책은 운명의 책과도 같다.

자연은 거대한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지만 예전 페이지를 다시 넘기는 법은 없다.

이 세상의 인간은 조건부적 인간이다.

최선은 아니지만 현재 서식 중인 것으로는 가장 좋다는 의미다.

온 자연을 관통하여 흐르는 원소를 운명이라고 부르는데 우리에게는 제약이라고 한다.

운명이 부과하는 제약은 인간의 통찰력으로는 꿰뚫어볼 수 없다.

운명이 최종적으로 가장 높이 상승할 때 인간의 통찰과 의지의 자유는 운명의 온순한 구성원이 된다.

지나치게 광범위한 일반 개념을 제시해서는 안 되고 운명의 자연스러운 테두리나 본질적 특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운명의 다른 요소도 감안해야 한다.

운명이 거대하긴 하지만 이중 세상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는 힘 또한 거대하다.

만약 운명이 힘을 따라오면서 제약하려 든다면 힘은 거기에 맞서서 운명을 적대시한다.

우리는 운명을 자연사로서 존중해야 하지만 그 안에는 자연사 이상의 것이 있다.

인간은 자연이 만들어낸 날 것 그대로가 아니다.

인간은 자연에 맞서는 엄청난 적대적 힘, 우주의 양극을 함께 끌어당기는 존재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를 무시할 수 없다.

모순어법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자유는 필연이다.

























생각이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도덕 감정도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의지에 강력한 힘을 실으려면 우주적 힘에서 가져와야 한다.

도덕 감정을 경험했다면 선택의 여지 없이 그냥 무제한적인 힘을 믿게 된다.

통찰은 의지가 아니고 감정도 의지가 아니다.

지각은 냉정한 것이고 소망속에서 선은 죽어버린다.

볼테르는 선량한 사람들의 가장 큰 불행은 그들이 겁쟁이라는 것이다.

통찰과 감정, 이 두 가지를 융합해야만 의지라는 에너지가 생긴다.

인간을 그의 의지로 전환시켜 그가 곧 의지이고 의지가 곧 그인 상황이 되지 않으면 아무런 추진력도 생기지 않는다.

자연 중에서 가장 진지하고 무서운 것은 의지이다.

사회는 의지의 결핍 때문에 굴복하고 따라서 세상은 구세주와 종교를 원한다.

영웅은 그 길을 보고서 그 목적에 따라 움직이며 온 세상을 발밑에 두고 뿌리와 지지목으로 삼는다.

다른 사람에게 그는 곧 세상이 된다.

영웅이 인정하면 명예롭고 반대한다면 치욕이다.

그의 눈빛에는 햇빛 같은 힘이 있다.

개인의 영향력은 기억 속에서 우뚝 솟아오르며 숫자, 돈, 날씨, 중력 그리고 운명의 나머지 것은 기꺼이 잊힌다.

역사는 자연과 생각의 작용과 반작용이다.

물질과 정신은 언제나 기울어졌다가 다시 균형을 잡는다.

노동은 하나님의 교육이다.

성실한 학습자여야만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

노동의 비밀을 깨우치고 자신의 총명함을 발휘하여 자연에게 왕홀을 빼앗는 사람만이 진정한 주인이다.

왕홀은 국왕이 왕권의 상징으로 손에 쥐고 있는 지팡이를 말한다.

주인의 표시라는 뜻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연보가 있어서 저자에 대해서 빨리 정리해서 보고 싶을 때 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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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브랜딩을 위한 2주 책 쓰기 - 1인 퍼스널 브랜딩이 힘이다
김인희 지음 / 다온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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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는 건 자신의 모든 것을 밖으로 꺼내놓는 것 같다.

처음엔 자신이 얘기하고 싶을 걸 얘기할 때가 많다가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다면 사람들의 생각이나 마인드까지 확장이 돼야 하는 것 같다.

지금도 쏟아져 나오는 책을 많이 읽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어떤 의도나 생각으로 책을 쓴다.

요즘은 SNS에도 전부 글쓰기로 자기 의견을 얘기하고 짧은 문자메세지도 전부 글쓰기이다.

평생 글쓰기를 하고 살아가야 한다.

저자 김인희는 사내 강사로 12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프리랜서 강사를 선언하고 활동했다.

 그러면서 강의의 기회와 강의료가 브랜딩이 되어 있는 다른 강사들과 차이가 있음을 깨닫고, 일찍이 1인 브랜드의 필요성을 느꼈다.

수많은 노력 끝에 <완벽한 강의의 법칙> <말한마디 때문에> <언택트 시대 왜 그 강사만 강의 의뢰가 더 늘었을까>를 기획 출간 하는 데 성공했다.

그로 인해 여러 기업에서 강의요청을 받고 15년째 강사로 활동했다.

책 쓰기 경험과 쉽게 익히고 경험과 쉽게 익히고 가르치는 자신의 장점을 살려, 남들보다 월등히 빠른 책 쓰기와 기획출간 성공 노하우를 베풀고 나누었다.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는 마케팅을 꾸준히 연구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저자는 그녀만의 노하우로 유튜브 채널 골든 버킷리스트를 운영하며 1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살아남으려면 1인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나라고 의구심이 들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살아남아야 한다.

이렇게 몇백 억씩이나 하는 수입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도, 1인 브랜드로 돈을 벌기위한 목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살아남아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시대, 언택트 시대다.

그만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취업은 더욱 어려워지고 직장인이라 해도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다.

금방 쓰러질 듯한 몸으로 국가대표 선수가 될 수 있는 게 작가다.

누구나 작가가 될 구 있지만 그럼에도 작가가 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한 분야에서 남보다 능력이 월등하게 뛰어나고 그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우리는 타고 났다라고 표현한다.

저자가 만든 음식을 맛보고는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음식 솜씨가 타고 났다고 말한다.

 

 

 

 

 

저자는 처음에는 요리를 잘하지 못했다.

그저 맛있는 음식을 좋아했고 먹어본 음식의 맛을 그대로 흉내 냈다.

그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에 이르렀다.

책은 요리, 그림, 수영 실력을 쌓는 것보다 더욱 멋지고 매력적인 분야다.

글 솜씨가 없더라도 출판사 편집자 찬스를 활용할 수 있고,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도 있다.

비유를 하자면 가벼운 바람에도 쓰러질 것 같은 깡마른 몸으로 태어났어도 목표한 만큼의 운동만 하면 국가대표 선수가 될 수 있는 게 작가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런데도 작가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책은 엉덩이로 쓴다라는 말이 있다.

얼마나 엉덩이를 오래 붙이고 앉아 있느냐에 따라 책 쓰기의 성공이 갈린다는 말이다.

저자는 ​책을 쓰면서 하루 평균 16시간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먹는 시간, 자는 시간, 심지어 씻는 것도 포기한 채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썼다.

목차를 정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글이 잘 안 써질 수도 있다.

이때 중요한 점이 있다.

글이 잘 안 써 지더라도 일단 책상 앞에 앉아야 한다.

그래야 어떤 책을 쓸 수 있을 것인지 콘텐츠를 고민할 수 있고, 자료를 찾을 수도 있고, 글감이 떠오를 수 있다.

그래야 목차 안에 글을 붙여가며 책 쓰기에 성공할 수 있다.

책 쓰기의 답은 책속에 있다.

다른 사람들처럼 살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을 것을 해야 한다".

그 다음은 자료수집이다.

강사란 어떤 분야보다 브랜딩이 필수적인 직업이다.

오로지 자신의 브랜딩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책들도 많다.

물론 훌륭한 책도 있었으나 그런 책을 쓴 작가는 강의기획과 관련한 전문가였다.

정말 2주 만에 책 쓰기가 가능할까?

“2주 만에 책을 쓰려는 생각은 버려라, 오래 걸려서 글을 써도 된다는 생각 또한 버려라라고 말하고 싶다.

저자가 2주 만에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꽤 많은 집중력이 필요한 책 쓰기를 얼른 끝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2주만에 쓰려면 자신의 모든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2주 만에 글쓰기를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독하게 써야한다.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한 2주 만에 책 쓰기, 만일 자신의 지구력이 약하다면 저자는 반대한다.

노는 것, 먹는 것, 자는 것, 때로는 씻는 것까지 그 시간을 줄이거나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2주 만에 책을 쓰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근데 제목은 2주만에 책쓰기네,,

한 달도 좋고 두 달도 좋다.

다만 그 이상을 넘겨도 된다는 여유는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1인 브랜드가 되기 위해 악착같이 책을 써내야겠다.' 라는 생각 하나면 충분하다. 무슨 일을 할 때면 기획이 필요하듯이 글쓰기 역시 기획이 필요하다.

19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조지버나드 쇼가 쓴 글에 그의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글은 쓰레기감이에요.” 이 말에 버나드 쇼는맞아 하지만 7번 교정한 다음에 완전히 달라져 있을 거라고!”라며 외쳤다.

​저자는 이 일화를 통해, 책을 쓰기 시작한 자신을 응원해주고 믿어주는 사람을 곁에 두라고 조언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더 강력하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즉 여기에서 주장은 쓰레기 감이 되지 않을 만한 퇴고조차 필요 없는 글쓰기를 기획하자는 것이다.

2주 만에 책 쓰기에 성공한 비결로 책 쓰기 계획과 혹독함을 스스로 결정했다는 것, 그리고 쉽게 책 쓰는 법에 대해 연구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

책쓰기도 열심히 하라는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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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하지 않는 기도 - 40일 기도하는 사람에게
정기원 지음 / 샘솟는기쁨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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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기도생활이 제일 중요하다.

하나님말고는 얘기할데가 없다.

그래서 기도에 대한 신앙서적을 정말 많이 봤다.

성경을 보기는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기도에 대한 구절보다 더 깊이 기도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그래서 기도에 대한 신앙서적을 또 보고 또 보고 하다가 이엠바운즈의 기도라는 책 8권을 한 권으로 묶은 책을 봤다.

그러니까 기도에 대한 의문이나 답답함이 많이 걷혔다.

난 매일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많이 듣는다.

기도다이어리와 하나님음성 다이어리도 있어서 적고 있다.

기도는 내가 하나님께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교통의 수단이다.

기도생활이 제일 중요해서 기도생활에 대한 업그레이드를 계속 하고 싶어서 저자의 책을 읽었다.

성경필사나 기도필사 외국어 필사를 하는 이유는 더 자신의 내면에 잘 입력하기 위해서 인 것 같다.

낭비하지 않는 기도는 수익대비용이 잘 맞는 것 같다.

경제적인 기도를 말이다.

기도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특권이라는 얘기가 너무 기분이 좋다.

기도를 하면 나에서 시작해서 하나님께 집중한다.

기도가 환경보다 중요하다.

저자 정기원은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하였고, 평택대학교 상담대학원에서 군상담을 전공하였으며, 미국페이스신학교에서 기독상담학을 전공하였다.

2005년 해군군종목사로 임관하여, 현재까지 재직 중이며, 지금은 신길동 소재 해군중앙교회 담임목사이다.

기도생활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저자는 어떻게 하면 기도를 드릴지, 기도를 낭비하지 않을지에 대해 실제적인 기도생활을 통한 깨달음을 고백한다.

거기에는 가족의 투병 가운데 얻은 기도의 지혜와 낭비했던 기도생활에 대한 회개가 담겨져 있다.

 신자들의 기도생활을 다시 한 번 말씀 안에서 점검하게 하는 실제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기도의 팁을 제시하고, 각자의 기도를 기록하게 하며, 성경말씀을 필사하면서 묵상하도록 안내한다.

기도 안 하는 본능, 기도하는 본능,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라는 야고보서 5:13절 말씀대로 해본다.

교회를 오래 다니다 보면, 한번쯤은 들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너무 오래 무릎을 꿇고 기도해 무릎이 딱딱해진 낙타 무릎의 주인공 야고보, 세상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한 죠지 물러의 기도,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링컨 대통령의 기도 같은 이야기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기도를 통해 큰 역사를 이룬 간증의 이야기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

꾸준한 기도생활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쉽게 직감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의 그런 본능을 이길 수 있는 방법 또한 기도 이다. 기도만이 우리의 기도하기 싫은 본능을 제어할 수 있다.

야고보서 5장에 나오는 엘리야의 이야기는 우리를 더욱 기도하도록 격려했다.

우리도 엘리야처럼 본능을 제어하며, 기도하는 것이 어렵고, 기도의 자리에 앉으면 딴 생각이 나는 사람이다.

기도하기를 힘쓴다면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주셨던 것처럼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엘리야도 수많은 고난을 통해 점점 더 기도의 사람이 되었다.

우리의 본능을 바꿔 주는 것은 돈도 아니고, 말도 아니고, 고난이다.

저자의 기도생활을 바꿔 준 것도 고난이었다.

저자는 ​고난을 당하니 기도가 본능이 되었다.

저자는 기도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서 자연적으로 하나님께 기도로 매달리게 된다.

그래서 고난당하는 자가 있으면 기도하라고 한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본능을 바꾸고자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사랑하는 자에게는 고난을 주어서라도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리게 만든다.

기도하기가 귀찮은 본능을 기도하고, 기도를 잊어버리지 않고, 기도를 하고 싶은 본능으로 바꾸길 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하기 싫은 본능이 기도 하고 싶은 본능으로 바뀔 때까지 말한다.

우리의 본능을 바꿔야 한다.

고난을 통해서라도 바꿔야 한다.

기도하고 싶은 본능이 우리 안에 가득해야 한다. 이 훈련을 시작함에 있어서 주님이 함께 하시길 간구해야 한다.

우리의 본능을 바꿀 수 있는 힘도 기도를 통해 나온다.

우리의 본능을 바꿔 달라고 기도 훈련을 끝까지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순서에 상관없이 기도를 듣는 분이시다.

우리가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분이 있다.

바로 성령님이다.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기도의 순간들을 친밀하게 도우신다.

그래서 기도는 성령 안에서 할 때 가장 기도다울 수 있다.

로마서 826절은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 기도하면 우리의 기도가 의미가 없을 수도 있고, 기도 시간이 낭비가 될 수 있다.

에베소 618절은 이것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고, 더 나아가서 더욱 힘쓰는 기도를 하라고 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은 특별히 구해야할 첫 기도 제목이고, 또한 항상 힘써야 할 기도의 원동력이다.

사실 이것은 기도뿐만이 아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성령님 안에서 할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 우리 성도들의 간절한 마음이어야 한다.

말씀을 읽기 전에도 성령님 안에서 읽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시작한다면, 성령님의 조명이 우리의 지혜를 밝힐 것이다.

성령님이 내주하시기를 오로지 기도에 힘쓰는 시간이 없으면 신앙이 어느새 차가워지고, 딱딱해지고, 교만해지고, 외식이 가득하고, 무미건조해진다.

그래서 수많은 기도 제목이 있지만 이 한 가지를 위해서 오로지 기도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기도의 결론이 성령님을 기다리는 것이고, 이것을 위한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성령님이 내주하시면 문제가, 문제가 아닌 것이 된다.

기도 하려고 했던 다른 기도의 제목도 어느 틈엔가 해결이 된다.

우리가 가장 소중한 기도 제목이고, 언제나 드려야 할 기도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항상 기도하는 것을 원하시는데,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명제를 아주 잘 안다.

기쁘나 슬프나 기도해야 한다.

즐거우나 외로우나 기도해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크리스찬은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무리해야 한다.

기도를 진지하게 하면 심적 괴로움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처절한 심정을 느낄 수 있기에 우리 또한 괴롭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과 백성들의 죄악, 그리고 한국교회의 영적 타락에 대해 가슴 아파하시는 그 심정이 느껴지기에 우리 또한 이런 문제들을 위해 부르짖게 된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의 아픔을 위해 기도하면, 그 아픔이 내 아픔이 되어 기도하는 것 자체가 힘이 든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기 전 기도하실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았던 것은 예수님의 괴로움을 표현하는 내용이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셨고, 아버지의 고통에 동참하는 예수님도 같은 고통을 경험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싸움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에베소 610절부터 영적인 싸움에 대해 말씀했다.

영적인 싸움임을 안다면 기도에 생명을 걸 수밖에 없다.

그 싸움의 승리는 우리의 기술이나 힘이 아니라 주님의 역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은 바로 기도이다.

영적인 능력의 근원은 기도로부터 나온다고 본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만이 훌륭한 기도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하루를 살 수 있을까? 없을 것이다.

결국 신앙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주의 인도하심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 자기를 바라보는 자기 자녀들의 기도를 들으신다.

교회는 공동체이다.

신앙생활은 절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함께 한 마음으로 같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 하는 것도 중요하다.

특별히 간절하고 시급한 기도 제목이 있을 경우에는 온 교회가 함심 기도하는 것도 괜찮다.

교회에서 특별한 상황에 대하여 함께 기도하는 자리가 있다면 꼭 참여 해본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한 마음으로 크게 부르짖는 기도에 관심을 가지고 반드시 역사한다.

공동체가 함께 기도하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개인과 공동체의 신앙 성숙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교회가 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고, 가정도 한 마음로 기도해야 한다.

한 마음으로 하는 합심기도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는 힘이 있는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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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국가 대한민국 - 부족주의의 노예가 된 정치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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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집을 사고 사는데 지장을 주니까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냥 정치가나 정치에 대해서 욕하는 것보다는 근거가 있는 비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비평에 대한 책이 정말 재미있다.

부동산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는데 적폐를 청산하지 않아서 실패한 거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거짓선동은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고 우리나라 국민들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아주 똑똑한 민족이다.

공수처는 무슨 공수처냐,,

중국에만 있는 사법권을 인정하지 않는 행정부에 귀속을 시키려고 하는 수작이다.

3권이 분립되어야 하는데 왜 사회주의국가로 끌고 가려고 하는거지,,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지금 정치를 보면 자신들의 뜻에 안 맞으면 토착왜구라는 둥 프레임을 씌워서 적폐로 취급을 한다.

의견이 안 맞으면 개화를 시켜야 하는 인간으로 취급을 한다.

토론을 해서 의견을 규합하고 상대방도 존중해야  한다.

위선은 진보의 특권인 것 같다.

미국이 그렇게 싫다고 하더니 애들은 전부 미국에 유학 가 있고 집은 한 채 이상 갖고 있지 말라고 하더니 평생 먹고 살 거 다 비축했다.

일본은 또 그렇게 싫다고 하더니 토쿄에 아파트가 있다고 한다.

유니클로도 가면 욕하더니 대학도 일본에서 나오지를 않나 위선의 끝은 어디인가,,난 원래 진보라고 생각했는데 중보책을 읽다가 차라리 보수가 되었다.

합리적인 정치에 관심이 있고 그쪽으로 지향해야 할 것 같다.

내가 뭐 정치를 할 것도 아니고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니까 나의 자리와 권리를 뺏기면 안되는거다.










저자 강준만은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를 하고 있다.

나도 아는 동생 아버지가 전북대학 공대 교수님인데 그 분도 지금 정부에 불만이 많은 것 같았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해선 다수 정상적인 국민들은 동의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진보인사들의 칼럼들은 정반대의 얘기들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문재인 정권은 부동산 정책 실패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무오류의 존재로 간주하거나 우기는 독선과 오만에 사로잡혀 현실을 인정하는 법이 없다.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다.

엉뚱한 통계를 들이밀거나 전 정권들 탓을 하는 등 시종일관 떼를 쓰는 아이처럼 버텼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던지 정책을 급전환하면서도 이렇다 할 설명이나 해명조차 없었다.

그러면서도 문재인 정권의 고위 인사들은 개인적 삶에선 부동산 재테크의 달인들이었다.

19세기 오스트리아 빈에서 의사로 일했던 이그나즈 제멜바이스는 당시의 지배적인 의학 패러다임인 미아즈마 이론(병은 나쁜 공기를 통해 옮는다는 이론)에 역행해 의료진에게 철저한 손씻기를 강조했다가 병원에서 해고되어 우울증에 빠졌다.

프랑스 세균학자 루이 파스퇴르의 연구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패러다임이 통용되기까지는 그로부터 반세기의 시간이 흘렀다.

벨기에의 정신분석학자 파울 페르하에어는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라는 책에서 패러다임의 힘은 대단하다.

패러다임은 특정 집단(경제학자, 정신과 의사, 법학자)가 가진 강제적 확신의 총체이며 해당 집단의 사고와 행동뿐 아니라 사회관계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자기 집단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투쟁의 대상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권은 적폐 청산을 내걸면서 민주화의 완성에 심혈을 기울렸다지만 평등 문제에선 보수보다 오히려 더 못한 점도 있는 무능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런 무능은 패러다임의 문제일수도 있다.

문재인 정권은 평등을 희생으로 한 적폐 청산을 해왔다.

평등은 부동산 정책의 대실패로 무너지고 말았다.

적폐 청산의 마인드는 다른 의견조차 적폐로 간주했다.

문재인 정권의 사람들은 신적폐의 주범들이었다.

문재인 정권에 대해 여론이 싸늘해지면 뭔가 느끼는 게 있어야 할 텐데 이들은 죽으나 사나 닥치고 공격이다.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패러다임의 전환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들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과학은 장례를 치르면서 앞으로 나아간다고 했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세대의 무관하게 미디어의 선택적 노출과 학습에 의해 특정 패러다임을 고수하는 사람들도 소통의 관점에선 확신은 잔인한 사고방식일 수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문제들은 우리가 그 문제들을 발생시킨 그 당시에 갖고 있던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해결할 수가 없다고 했다.

지금 정부는 확신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증오의 강도를 낮춰야 한다.






19세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가부장제는 소멸할 거라고 했지만 다 틀렸다.

미국의 여성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하이디 하트만은 그들이 가부장제의 힘과 유연성을 과소평가했다고 했다.

그 얘기는 완고한 가부장제 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페미니즘을 포용하는 척하는 지도자와 정치인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정치가가 박원순, 안희정, 오거돈 진보쪽에는 많다고 한다.

문재인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고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바로 성평등한 세상이라고 했다.

그래서 여성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

그,,,러,,,나,,,민주당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성추행, 성폭행 사건이 터지면서 문재인표 페미니즘이 검증의 시험대 위에 오르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문재인은 국회 개원 연설에서 백원순 전 시장의 사망 사건, 고소인, 광범위한 젠더 이슈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고대훈은 문 대통령의 침묵은 선택적이라고 했다.

문재인은 적과 동지, 네 편과 내 편에 따라 결정된다고 고대훈은 얘기했다.

문재인은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지 못한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 없다고 했지만 지난 9월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 이후 2주가 지나도록 아무 말이 었고 가해자를 동정하는 듯한 대통령의 침묵은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공세를 한 것이다.

저자는 문재인이 페미니스트이긴 하지만 그걸 압도하는 부족주의 정서를 갖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은 인권 변호사였는데도 입양 아동을 바꿀 수 있는 대책을 얘기했다.

그는 페미니스트도 인권 의식도 없다는 확신이 저자는 들었다고 한다.

저자는 문재인이 어떤 면에선 진보일 수 있지만 여성과 가족을 보는 기본 시각은 가부장제에 찌든 수구적 남자일 뿐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문재인은 가부장적 페미니스트라고 한다.

가부장제와 페미니즘은  상극이고 모순어법이다.

저자는 모순적인 인간이라고 압축을 한 것 같다.



















2020년 2월 9일 문재인이 충남 아산 온양전통시장 내의 반찬 가게에서 주인과 대화를 나누었다.

문재인이 경기가 어떠냐고 하니까 거지같다고 장사가 너무 안된다고  주인이 얘기했다고 한다.

문빠들과 대깨문들이 대통령에 대한 예의를 안 지키고 주인장 마음씨가 고약하다고 했다고 한다.

인신공격성 댓글을 달고 반찬가게 상호와 주소, 주인의 휴대번호까지 공개하고 불매운동까지 벌였다고 한다.

반찬가게 주인은 가게로 찾아와 욕하는 문빠들 때문에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청와대 대변인은 그 분이 공격받는 것이 안타깝다고만 하고 그 곤경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것만 풀면 그만이지 그 곤경을 만들어낸 주범들은 아무 잘못 없다는 얘기처럼 들었다고 한다.

문재인은 문빠들의 행태에 대해서 계속 침묵을 하고 있다.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거라고 초기 예찬론을 사실상 일관되게 유지했다.

문빠들은 피포위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나도 과거에는 김어준 방송도 듣고 김어준의 책도 읽었다.

김어준은 문재인 정권과 부족동맹을 맺고 있다고 한다.

금태섭의 말에 따르면 여당 중진의원들도 김어준에 방송에 출연하려고 줄을 서고 그가 지휘하는대로 앵무새 노릇을 하고 그의 눈에 들면 뜨고 눈에 나면 죽는 것이 현 여당의 현실이라고 한다.

김어준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발견되면 취재하기보다 상상, 추론하고 음모론을 펼치다가 반박이 나오면 무시하는 스타일이다.

김어준의 수많은 음모론은 대부분 오류로 드러나도 일말의 사과없이 방송 활동을 이어가며 맹활약을 하고 있다.

진중권은 대통령이 제구실을 못하는 사이에 사실상 김어준과 유시민의 주장, 때론 궤변이거나 궤변에 가까운 주장을 무슨 우상숭배 하듯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전의를 불태우는 친문 지지자가 많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목숨 걸고 라는 말을 좋아한다.

나도 다이어리에 목숨 걸고 성공하기 목숨 걸고 1등하기 이런 식으로 썼는데 심하게 아프고 나서는 목숨은 걸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목숨을 건다는 것은 한국인 특유의 극단주의다.

조선시대 유교를 보면 200년 동안 철학싸움이 정치싸움과 엉켜 붙어 헛된 싸움으로 보냈다.

극단주의 문화는 단일사회에서 오는 것이다.

작은 나라에 비슷한 사람들이 살아가다보니 조급하고 역동적이고 획일적이다.

김어준은 정신적 대통령이라서 끓임없이 적과 악마를 만들어내야만 유지될 수 있다.

김어준이 정치적 탐욕을 버리고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한다.

이 책도 이성을 획복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사회주의가 아니라 부족주의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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