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는 고대 마야 문명의 달력이 2012년 12월 21일에 끝나 있어 그날을 지구 멸망의 날로
설정하고 만든 영화이다.
재난영화의 거장 롤랜드 에머리히는 '인디펜던스 데이'와 '투모로우'로 매우 친숙한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헐리우드 블록 버스터의 공식에 충실하다.
특히, 이 영화 '2012'에서는 제작비 2억달러( 3000억원)와 현대적인 장비로 무장한 1500여 명의
제작진이 시각적인 장면의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CG와 그래픽에 엄청난 노력과 공을 들였다고
한다. 영화는 157분 동안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각종 재난들을 쏟아 놓는다.
화면에서 보여주는 엄청난 장면들에 압도되어 (아무래도 재난영화들의 공통점은 줄거리보다는
보여주기 화면에 더 치중하는 것이 사실이다.) 정신이 없지만 영화 곳곳에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랑을 회복하는 가족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영화는 작정하고 자연재해의 무서움과 그것에 대처할 수 없는 사람들의 무기력함을 보여 준다.
이전에 본 한국영화 '해운대'에 높은 점수를 주었던 것은 CG보다는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들이
스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2'를 먼저 개봉했더라면 아무래도 해운대의 천만 관객은 힘들지 않았을까.
세계 사람들과 같이 죽음을 맞이하는 미국 대통령, 마지막 날에 국민들과 같이 미사를 지내는
이탈리아 수상의 가족, 인류 멸망의 징조를 알아 낸 인도 과학자 가족이 해일 앞에서 서로를
감싸 안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경건하고 숙연해지게 한다.
일본인 며느리를 인정할 수 없어 아들과 멀리 했던 아버지가 죽음 직전에 손녀와 전화 통화를
하며 마음을 여는 이야기, 과학자 아들이 자랑스럽다며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 모두 대지의
자손이라며 주인공 가족을 배 안에 안내하게 했던 티벳 할머니, 두 아들을 살리고 자신은 죽게
되는 러시아인 유리(유난히 애정이 가는 인물이다)와 샤샤, 비행기를 몰고 함선에 도착했지만
끝내 죽는 고든, 살기 위해 10억 유로(약 1조 7000억원)를 내고 배에 탔던 사람들(약 40만)과
주인공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죽는다.


도시가 절단되는 것처럼 무너져 내린다. 마트가 갈라지고 공중에서 열차가 맥없이 땅 아래로
추락한다. 그 도시를 해일이 감싸안고... 도시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인간의 문명이, 삶이, 인간의 모든 이야기들이 자연재해. 그 앞에서 맥없이 고꾸라진다.



잭슨은 지구 멸망과 인간의 사랑, 그리고 희망에 대한 책을 쓴 작가이다.
비록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았지만...
정부에서 우주선에 사람들을 탑승시켜 탈출한다는 비밀을 알게 된 그는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온갖 사투를 벌인다.
고난 앞에서 가족들은 이전보다 더욱 소중하게 여기며 사랑한다.

정부의 함선을 찾아가기 위한 잭슨 가족의 힘든 여정이 시작된다. 도시는 모두 파괴되고...
지진과 화산폭발로 모든 것이 땅 아래로 사라진다.

지구 멸망의 순간... 티벳의 고원이다.
노스님이 멀리서 밀려드는 해일을 보고. 동요되는 눈빛조차 없이 일어나 종을 두드린다.
나는 여기서 왜 '희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굉장히 감동적이다.
해일이 밀려오는 것을 보는 순간, 아주 잠시...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나는 무엇을 했을까.
노스님은 종을 두드렸다. 나는 무엇을 했을까. 죽음과 직면한 순간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노스님의 모습이 감동을 주는 것은 의연하게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매일 아침 저녁 했던 그 일.


감독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
지구가 몽땅 없어지고 신천지 땅에서 햇빛을 받아 빛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희망을 찾는다고
하는 것일까.
인류와 인류가 만든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없다. 살아남은 모두는 아버지와 엄마를 잃고,
누군가는 자식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는데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살아남은 이들은 동물들을 태우고 신천지에 도착한다. 케이프타운, 희망봉 에 도착한다.
우연하게도 잭슨의 아들 이름은 노아이다.
돛이 달린 거대한 함선은 마치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킨다.
여러날의 항해 끝에 지구가 안정을 찾고 도착한 희망봉... 그들은 그 곳에서 희망을 찾을까.
희망봉에서 새출발하면 인류 미래의 삶이 달라질까.
사람들이 죽어가는 그 순간 하느님도 무너지고, 모든 신들이 다 죽고 없어졌는데?
10억 유로를 내고 배에 탔던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아갈까?
새 세상에서도 그들이 가방에 들고 왔던 돈이 유통되는 것일까?
유리의 벤트리~~ "엔진. 스타트" 라는 음성 인식 기능으로 움직이는 최신형 차들도 그 안에
싣고 왔을까?
재난영화는 철저하게 오락영화이다. 재미있게 보는 것으로 그쳐야 하는데 항상 사변적이
되는 것은 그안에 죽음과 이별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 감독의 화제작은 모두 본 셈이다.
재난영화는 철저히 오락영화이니 그시간 동안 오락을 즐겼으면 이제 남은 한가지.
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