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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러브 - The Fair Lov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제목이 붙여진 이유가 궁금했다.
<페어 러브>. 사랑을 하는 두사람의 입장이 공평하다는 의미일까.
모든 사랑은 공평하다는 의미일까.
친구 딸과 아버지 친구와의 사랑... 그 역시 사랑이다. 그것도 풋풋한 첫사랑.
형만은 아무도 앉지 못하게 하는 자리에 남은이 앉자
"거긴 원래 아무도 못 앉게 하는데, 니가 처음이야."
"누군가의 처음이란건 좋은거예요. 그쵸?"
<페어러브>는 신연식 감독의 두번째 영화이다.
그는 2005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 첫 작품 <좋은 배우>로 관객들의 주목을 끌었다.
배우 안성기는 <페어러브> 시나리오를 읽고 3년을 기다렸다고 한다.
시나리오, 배우들의 연기, 음악 모두 훌륭하다. 무엇보다 재미있고 경쾌하다.
사진관 안에 있는 LP 판이 들려 주는 낭만적인 음악과 장면에 따른 적절한 음악의
배치는 영상미와 어우러져 로맨스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킨다.
사진사인 형만은 나이 50이 넘도록 연애 한번 하지 못하고 작업실 안에서만 생활하는
노총각이다.
믿었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전재산인 8천만원을 날리고 변변한 집 한 칸, 차도 없이
형네 집에 얹혀 살거나 작업실에서 생활한다.
(형이 담고 있는 김치를 집어 먹는 형만의 자연스러움. "빨래 가지고 오세요." 라는
형수의 말에 "벌써 가져다 놓았어요." 능청스러운, 약간 밉상. 헐렁한 셔츠에 후즐근한
청바지. 원래 노총각인 것만 같은 그 연기를 안성기, 그가 아니면 누가 할 것인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사기를 치고 도망갔던 친구는 간암으로 죽으며 설상가상으로 딸 남은을 돌봐 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아끼던 고양이마저 죽고 외로운 남은을 위로하는데, 남은은 빨래를
잘한다며 형만에게 찾아오기 시작한다.
"아빠가 부탁한거... 나를 돌봐 달라고 한거. 마음에 내키시면 하셔도 되요."
"아저씨, 예뻐요." 하는 사랑스러운 그녀를 거절할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영화는 시종일관 재미있고 발랄하다.
50 평생을 사랑한다는 고백한 번 못해본 형만은 백미터 달리기로 한달음에 달려가
프로포즈를 한다. "이 사랑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그러니..."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랑은 애틋하고 수줍다.
모든 첫사랑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영화는 12세이상 관람가이다.
"기억에 남는 특별한 날이 있어요? 없으면 지금부터 기억하세요." 라고 말하는 남은의 뽀뽀.
후배의 왜 그녀를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남은이가 섹시하니까"는 말도 순수하다.
그는 남은에게 "아저씨라는 말은 남보기에도 그렇고 손도 잡고 다니는데 오빠라고 하는
것이 어떨까."를 제안한 뒤로 남은의 전화를 받으면 "오빠야"
조카에게 물을 주라면서도 습관처럼 "오빠도"를 외친다.
2009년 <페어러브>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나왔을 때 흥행 예감 1순위였고, "오빠야" 라는
유행어 탄생을 기대했다고 한다.
"오빠야" 라는 말의 어감은 영화 내내 웃음을 자아낸다.

80년대에 <무릎과 무릎사이>라는 영화에서 그는 모시한복을 입은 인텔리 청년으로
나온다. 나는 30년 전의 그 모습을 기억한다.
젊어서는 젊어서대로. 지금은 나이든 모습 그대로. 그의 꾸밈없는 웃음과 깨끗한 생활,
그리고 자연스러운 주름살이 좋다. 젊은 안성기보다 주름이 많은 안성기가 훨씬 멋지다.

노래 잘하고 꾸밈이 없는 이하나...남은의 배역에 너무나도 잘 맞는다.
남은이는 헤어지기를 원한다. 형만이 자신에게는 변화하고 능력을 키우라고 하면서도
형만 자신은 작업실 밖으로 한걸음도 내딛지 않기 때문이다.
20대의 청춘은 알지 못한다.
50이 넘은 사람이 현재의 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꿈꾸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이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나이를 먹으면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일임을 청춘들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목사친구는 그에게 말한다. 모든 악의 근원은 두려움에 있다고...

조카는 형만에게 와서 자신이 사랑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한다.
3년 동안 바라만 보았던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왔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동시에
자신이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하지만 사랑은 변한다. 이미 아까 전의 내가 지금은 아니고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도 아니듯이 늘 변하고 있는 것이 인간인데 사랑이라고 어찌 변하지
않겠는가.
삶도, 생각도, 사랑도 변해 가고 나이를 먹으며 점차 몸도 마음도 무뎌진다.
남은이는 말한다.
"내가 변하거나 무뎌지거나 오빠가 변하거나... 그때 다시 오겠다."

형만은 고린도 전서에 나오는 '사랑'을 보면서,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사랑은 성내지 않는다니 쉬운게 하나도 없다고 목사인 친구에게 투덜댄다.
목사는 "그럼 쉬운 줄 알았냐? 남들 다 너보다 어렵게 사는거야."
사랑하지만 헤어지자는 그녀의 말에 힘들었던 그는 조카의 말을 들으며 통곡한다.
너희들, 모두 그렇게도 힘들게 살았느냐면서 미안하다고 통곡한다.
자신의 세계에 빠져 살던 형만이 소통해야 하는 사랑이 힘들다는 것을 통렬하게
고백하는 순간이다. 감독은 이 영화가
"사랑이 필요없는 상태에서만 머물려고 했던 한 남자의 성장영화" 라고 말한다.
그는 목사 친구에게 고해 (고해성사는 신부에게 하는 것이라는 친구에게 자신의 죄를 사해
달라고 박박 우긴다) 한다.
"나는 마음에 안드는 손님 카메라를 일부러 늦게 고쳐줘. 나는 형수에게 빨래를 맡길 때 마음
속으로 욕해, 나는 윤사장이 맡긴 재형이를 괴롭히고 싶어. 그리고 나는 남은이를 사랑해..."
친구는 "야, 새꺄. 그건 아니지."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그의 형수는 형만이 친구의 딸을 좋아한다는 말에 방으로 들어가
찬송가를 부르고 형만은 "차라리 혼을 내시지 찬송가를 부르시네."

무수한 남녀는 만나서 사랑하고, 그 사랑은 식고... 헤어진다.
사랑을 멈출 수 없는 것은 인간은 사랑이 있어야 살기 때문이다.
사랑의 형태와 방식과 습관이 변화할지라도 인간은 평생 사랑하고 그 사랑 속에서만
존재한다.
사랑을 위하여 희망을 품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