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는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동생은 업히고 나는 걸려서 '미워도 다시 한번'과 같은 영화를 보러 다니셨다.
어째서 꼭 우리를 데리고 다녔는지 그 이유는 모르지만 저녁밥 먹은 후에 서둘러
평화극장에 간 기억이 난다. 집에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영화관이다.
남일극장, 목포극장도 있었는데 유독 평화극장에 갔던 기억만 난다.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아이가 비를 맞으며 친엄마와 헤어지기 싫다고 우는
장면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박혀 있다.
김진규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는 보지 않았던 것 같다. 기억에 없으니...
50~60년대 영화판에서 전성기를 누린 배우여서인 것 같다.
나는 영화보는 것을 좋아한다. 아마도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다니면서 보았던
기억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 운명의 별 김진규>는 김보애 씨가 김진규 씨를 회상하며 쓴 책으로
2009년 조선일보 논픽션 부문에서 대상을 탄 작품이다.
진솔하게 쓰여진 이 책을 읽다 보면 김진규라는 배우의 면면에 대해 알게 된다.
김진규씨와 김보애씨의 모습에서 아버지 세대를 보는 것 같아서 왠지 모를 연민이
느껴진다. 책을 읽음으로써 얻어지는 부수적인 재미도 꽤 있다.
50-60 년대의 영화계 풍경, 영화의 생생한 역사를 알게 되는 짧짤한 재미가 있고
이혼 후에 그녀가 경영하는 식당에 드나드는 정치인들과 문인들의 이야기,
정치적인 변화들을 엿볼 수 있다.
32살의 춘향 최은희, 40살의 이몽룡 김진규. 서울인구 250만 가운데 38만 명의 관객이 보았다.

1960년대와 70년대 영화판은 '가께모찌'이다.
배우가 한꺼번에 여러 편의 작품에 겹치기 출연한다는 뜻의 일본말이다.
일주일이면 영화 한 편을 뚝딱 만들었다고 한다.
배우가 대충 대사를 외운 후 성우들이 배우의 입모양을 보고 대사를 창조하는 방식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성우 고은정이 문희, 남정임, 윤정희, 엄앵란의 목소리를 전담했고 성우 박영민이 김진규의
목소리를 대신 했다.
이 시대의 영화를 지금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게 어색한 이유가 바로 성우들의 목소리에
있는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은방울 구르듯이 애처로운 목소리가 사람들의 애간장을 끓게 했을지 모르지만.
신성일 역을 도맡아 하는 성우의 목소리는 어찌나 껄렁껄렁한지...
책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는 왠지 느끼한 (아마, 성우의 목소리 때문에 더욱
느끼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신성일보다 호감이 가는 배우이다.

스크린의 신사로 지식인의 역할을 도맡아 하던 그의 실제 생활은 난봉꾼과 가까운 것 같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는 주사가 심하고 손찌검을 했다고 한다.
그 시절은 가부장적인 시대이다. 남편들이 부인들을 때려도 참고 산 시대이다.
요즈음 같으면 당장 이혼이고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아직도 맞고 사는 부인들도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때린 뒷날에는 선글라스를 쓰게 하고 보석이나 명품 가방을 사줬다고 하니. 원...참.
그의 삶은 가난했던 유년시절과 일본에서 양자로 들어가 생활하던 사춘기, 무대에 서서
전국을 유랑하던 가난한 청년기, 첫부인과의 파국 등등 스크린 밖의 삶은 온통 슬픔과 상처
투성이의 삶이었다.
4.19 이전의 연예계를 지배하던 임화수의 폭력, 여기에 한국을 대표하는 일급배우라는
자부심과 정신적인 중압감. 이 모든 것들이 그의 병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그의 아들에게 말한다.
"죽을 만큼 노력해라. 1등이 되어야만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거란다."
책을 읽으며 배우 김진규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그에게 연민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주사, 폭력성, 바람 피우는 일 등이 합리화될 수는 없지만...
배우의 삶은 참 고단한 삶인 것 같다.
그를 봐도, 몇몇의 연예인들을 봐도 겉보기에는 화려해 보이지만 실제의 삶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김진규는 <성웅 이순신>과 <난중일기>의 제작, 흥행에 실패한다.(박정희의 독재가 계속
유지되었다면 아마 그의 영화도 어찌 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박정희는 그들 부부에게
무척 호의적이었다)
이혼 이후, 그녀는 한식당 세보를 열고 정. 재계인사들, 문인들과 인연을 맺는다.
20년이 흐른 후에 골수암에 걸려 6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그를 가족이 받아 들인다.
그는 가족의 사랑 속에서 5년 넘게 살다가 향년 77세로 세상을 떠난다.
예사롭지 않은 그녀, 김보애는 90년대 이후 북한과의 문화연대에서 귀중한 역할을 하고 잇다.
최근에는 남북 합작 영화의 기획을 하고 있다니 세월을 잊은 그녀의 열정이 놀랍기만 하다.
70이 넘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열정적인 그녀, 김보애는 마지막으로 고백한다.
배우 김진규는 자신의 운명이었노라고...
한 인간, 한 여인으로 겪은 70 평생의 진솔한 한바탕 이야기들을 들으며
지나온 세월의 대선배, 내 어머니 세대인 그녀에게, 그 지난했던 삶의 고백들에
머리 숙여 연민과 감탄을 표하는 바이다.


"역시 최고는 김진규다. 이 순결하면서도 복잡한 남자를 신성일이나 신영균은 죽었다
깨도 연기하기 힘들 것이다.
눈꺼플이 반쯤 흘러 내리는 무기력한 표정, 꼭 필요한 말조차 조금 늦게 꺼내는 우유부단함,
주위의 온통 공격적인 인간들을 상대하기 버거워 자꾸 한쪽으로 기우는 어깨,허적허적
힘없는 걸음걸이." ~~ 120-121 쪽 한국 영상자료원 원장을 지낸 조선희의 '클래식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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