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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 Wedding Dres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는 참 밝고 따뜻하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죽음이 영화의 소재이지만 어둡지 않다.
엄마와 어린 딸의 이별이 가슴 아프면서도 사랑의 느낌과 추억을 공유하는
두 모녀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모녀지간으로 분한 송윤아와 김향기의 눈물연기, 따뜻한 마음들을 가진 조연들의
연기 또한 볼만하다.
죽음, 인간에게 만약 죽음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시몬느 드 보봐르의 <인간은 모두가 죽는다>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그 아픔에
몸부림치며 죽기를 소원하지만 죽을 수 없는, 영원히 사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책을 읽으며 영원히 산다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울 것 같아 차라리 죽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일 모두가 죽지 않는다면...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할 것 같다.
아마 이별의 아픔이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행복할 것 같다.
2000년 이전에 나의 행복의 조건 하나는 부모님이 살아 계신 것이었다.
엄마와 아버지가 가시고... 그후 엄마와 아버지가 말할 수 없이 그립다.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도 떠오르고 그리워진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고운이(송윤아)는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다.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인 그녀는 씩씩하고 밝고 낙천적이다.
예쁜 딸 소라(김향기)와 오래오래 같이 살고 싶지만 위암에 걸린다.
그녀는 그동안 소라에게 하지 못했던 엄마 노릇을 하려 한다.
자전거도 홀로 탈 수 있도록 가르치고 학교를 결석하고서라도 같이 여행가고, 비오는 날
우산도 가져다 주고 목욕도 같이 한다.
그녀에게 소원이 있다면, 소라가 친구들과 마구 어울려 다니고 발레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소라는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싸웠던 친구와 화해하고 어렵게 발레를 배워
공연하는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 준다.
소라의 소풍 전날, 늘 있던 소풍과는 다르다.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고 슈퍼에서 과자와 음료수를 샀던 여느 소풍과는 다르다.
소라를 위해 생전 싸지 않았던 김밥을 만드는 고운이.
재료를 산같이 쌓아 놓고 열심히 만들지만 김밥은 옆구리가 터지고...
어렵사리 만든 김밥과 도시락. 하지만 소풍날 아침에 비가 내리고...


전날 힘겹게 쌌던 김밥 도시락을 챙겨서 비가 오지 않는 바닷가로 여행을 떠난다.
물론 학교는 결석이다.
소풍이자 추억여행인 셈이다. 엄마와 딸, 영화 속 배경은 밝고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그러나 슬픔이 준비되어 있어 마음이 불편하다.
한국영화가 외국의 슬픈 영화보다 훨씬 더 슬프고, 외국의 무서운 영화보다 훨씬 더
공포스러운 것은 우리의 정서가 영화 속 깊이 스며들어 있어서인 것 같다.

비누거품 목욕 장면은 참 따뜻하다. 가장 아름답다.
어미 눈에는 보기에도 아까운 내자식,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으로 눈 감기 전에
가지고 갈 추억이고 소라에게도 가장 따뜻한 기억을 줄 것이다.
엄마와 마주보고 웃고 말하고 뽀뽀하고...엄마의 냄새, 목소리... 따뜻했던 추억 한조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추억을 바탕으로 홀로 살아갈 힘을 얻을 것이다.

결벽증이 있는 소라는 다른 사람과 같이 반찬을 먹지 않는다. 물도, 음료수도 같이
마시지 않는다.
혼내는 엄마, "누가 그걸 다 받아준대 누가 !"
"엄마가, 엄마가 오래 살아서... 다 받아 주면 되잖아"


딸에게 줄 마지막 선물로 웨딩드레스를 만드는 엄마.
엄마는 자신이 디자인한, 세상에서 오직 한 벌뿐인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소라에게
선물로 남기려 한다.
엄마의 눈물과 정성, 사랑, 손길이 묻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날 울고 있을 소라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엄마가 소라의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이상 그 슬픔도 따뜻한 추억이 되어
소라의 삶에 등불이 될 것이다.

소라는 일어나서 엄마의 죽음을 알게 된다. 화분에 물을 주면서
"오늘 학교에 가지 않은 날이니 엄마랑 놀아 줄게."
하며 병실 밖으로 나가 의사들의 출입을 막는다. 가장 슬픈 장면이다.
"엄마, 엄마 대신 내가 아팠으면 좋겠어요. 엄마, 많이 많이 최고로 사랑해요."
"엄마에게 소라는 선물인데 소라에게 엄마도 선물일까... 사랑한다. 소라야."

소라는 따뜻하고 소중한 엄마의 사랑을 잊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영화의 엔딩 장면은 비가 내린다. 소라는 밝은, 노란 우산을 꺼내 들고 씩씩하게
빗속을 내딛는다.
모든 이별에 사랑과 추억이 꼭 함께 하기를...
그리하여 세상 끝날까지 그 훈훈하고 따뜻했던 사랑과 추억과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