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베니스 구겐하임 미술관' 설립자인 페기 구겐하임(1998~1979)의 자서전이다.
페기 구겐하임... 20세기 최고의 컬렉터, 배고픈 예술가들의 천사, 미술의 대중화를 이끈
전시 기획자,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운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 등이 그녀에게
따라붙는 수식어이다.
나는 미술에 문외한이지만 그림 감상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봐도 흥미롭다.
작가는 엄청난 영감을 가지고 수고를 들여 창작하겠지만 그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은
별다른 고민 없이 (수고로움에 대한 지불 없이) 보고 느끼는 것이라 그런 것 같다.
자서전에는 그녀의 어린 시절, 결혼과 연애 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거장들과의 만남, 미술품을 수집하는 일 등에 대한 열정적인 기록들을 읽다 보면
아!! 이런 삶도 있구나 ...라는 감탄과 함께 부러운 생각이 든다.
미술품 수집과 화랑을 중심으로 뉴욕, 파리, 런던, 베네치아. 그리고 세계의 여러 곳을
여행하며 미술품들을 만나는 내용이라 그림과 조각작품들이 지면에 나오리라 기대했는데
아주 조금 실려 있다.
그나마 실린 것도 색상이나 명암 등이 어두워 작품을 감상하기 힘들어 아쉬웠다.

페프스너의 구조물 앞에 선 페기
최근에 읽었던 몇 권의 책과 중.고교에서 배웠던 미술교과서가 내가 가진 미술 지식의
전부라 현대미술에 관한 이야기들은 꽤 낯설다.
만일, 현대미술과 그 화가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었다면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이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유명한 사람들임에 틀림없는 책 속의 등장인물 중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칸딘스키, 달리, 콜트 등이 내가 아는 화가의 전부였으니.
그러나 새로운 미술가들을 알게 된 기쁨이 있다. 막스 에른스트나 폴록 등등...
페기 구겐하임은 분명 복이 많은 사람이다.
20대에 엄청난 유산의 상속, 예술가들과의 유대관계,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소명의식 등의 일반인으로는 가지기 힘든 여러 복을 타고났다.
그러나 그녀의 어린 시절은 화려하고 부유하지만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불행했다.
아버지의 잦은 바람기와 그로 인한 부모의 갈등, 타이타닉 호를 탄 아버지의 죽음,
그로 인한 상실감...
정열적이고 격정적인 예술가들과의 접촉은 그녀 자신의 자유분방함에 맞물려 몇번의
결혼과 이혼을 되풀이한다.
예술을 사랑했던 그녀는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 사랑하고 재정적인 도움을 준다.
그녀는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인 마르셀 뒤상으로부터 초현실주의, 입체주의, 추상미술의
차이를 배우고 아르프, 칸딘스키 등의 미술가들과 만난다.
그녀가 처음 열었던 '구겐하임 죈 화랑'의 적자는 연간 약 6000달러 정도의 손실을 보고
있었다. 여러 해 동안 후원해온 예술가들에게 연간 1만 달라에 달하는 돈을 주었던 그녀는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개인적인 비용을 줄인다.
실제로 수도사같은 생활을 하면서 옷도 사지 않고 소형 자동차를 탄다.

이상적인 현대 미술관을 꿈꾸던 허버트 리드는 구비해야 할 미술 목록을 만든다.
그녀는 그 목록 안에 있는 모든 화가의 작품을 하루에 한 점씩 사들인다.
전쟁 때문에 사람들은 그림을 팔았고 그녀는 미친듯이 그림들을 사들였다.
히틀러가 노르웨이로 진군한 날에도 페르낭 레제의 작업실을 찾아가 그의 그림을 구입한다.
히틀러가 파리로 진군해 오기 전에 빠르게 불어나는 컬렉션을 보관하기 위해
루브르 박물관 (전쟁에 대비, 귀중품을 프랑스 내 비밀장소에 보관할 계획이 있었다) 측에
부탁하지만 소장할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보존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그것들은 칸딘스키, 클레와 피카비아, 브라크, 후안 그리스,
레제, 글레이즈, 몬드리안, 미로, 막스 에른스트, 이브 탕기, 달리, 브랑쿠시, 아르프 등의
현대 미술사에서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거장들의 작품들이다.
전쟁 중에 훼손되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었던 이 작품들 때문에라도 그녀의 업적은
평가받을 만하다.
뉴욕에서 그녀는 '금세기 미술화랑'을 열고 피카소 이후 최대라는 잭슨 폴록을 발굴해 낸다.
그러면서 재정적인 곤란을 겪는데, 오래된 거장들의 작품을 팔면서 혹은 좋은 작품을 싸게
살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기도 한다.
그녀는 개인적인 부의 축적을 위해 일하지 않았다.
돈이 있으면 작품을 사들였고 미술가들이 곤궁하지 않도록 후원해주고
(예를 들면,폴록 같은 경우 1개월에 150달라의 후원), 작품을 안전하게 전시할 수 있는
화랑 등에 돈을 투자한다.
그녀는 '금세기 미술 화랑'의 개관식에 한쪽 귀에는 탕기의 귀고리를, 다른 쪽 귀에는 콜더의
귀고리를 달고 참석한다. 그것은 그녀가 초현실주의와 추상 미술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행동이다.
(콜더는 모빌 조각의 창시자로 미술 교과서에도 나온다. 그는 그녀에게 귀고리와
침대 헤드를 선물한다.)

페기의 베네치아에 있는 저택, 사후에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거듭 난다.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그녀의 전시회는 가장 인기가 있었다.
각 나라들의 국가 명과 나란히 '구겐하임'이라는 이름이 표시된 것을 보고 무척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녀 스스로가 새로운 유럽국가가 된 기분이었다고 회고한다.
미술 평론가인 번하드 베런슨은 현대미술을 무척 싫어했는데 그녀에게
"당신은 왜 이런 일을 합니까?" 라는 질문을 한다.
그녀는 옛 거장의 작품을 살 수가 없었고 어쨋든 누군가는 한 시대의 미술을 보호해야
한다고 답한다.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소명의식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베네치아에서 '페기 구겐하임 하랑'을 열고, 세계 각 나라들을 돌고 12년 만에 뉴욕에 다시
왔을 때 뉴욕의 미술계는 거대한 투기사업장이 되어 있었다.
과세를 피하기 위해 그림을 구입해 미술관에 맡기고 높은 세금이 매겨지는 그림은
1년에 한 두 점만 거래되고 가격은 비밀에 부쳐졌다.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가장 비싼 것만 구입해 주식처럼 유리한 시점에 팔려고 했다.
페기 자신은 부인하지만 일종의 책임의식을 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말한다.
"지금의 미술은 그림을 돈으로 보는 태도로 인해 엉망이 되고 만 것 같다.
사람들은 이 새로운 운동의 탄생을 돕고 부추겼다는 이유로 지금 생산되는 미술에 대해 나를
비난하지만 그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18년 전 미국 미술계에는 순수한 개척정신이 있었다.
새로운 미술 운동인 추상 표현주의가 태어났던 것이다. 나는 그 운동을 지원했고 그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가 미술품들을 사고 팔 때 번하드 베런슨이 당시 현대미술을 혐오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 자신이 활동했던 그 이후의 미술계에 대해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미술도 시대를 반영하는 만큼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른 자본의 논리에 충실하게 따르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림이 재산축적의 한 방편이 된 지 오래이다.
그래서 위작 소동도 많고 미술계에서의 알력도 대단하다고 한다.
미술 입상의 기저에는 암묵적인 거래가 동반되고 대학입시에서도 돈으로 합격이 거래되는
추악한 일도 심심찮게 오르내린다.
예술이 배가 고프면 안될 일이지만 그렇다고 예술이 자본의 논리로 움직인다면 참으로 서글프다.
예술이 구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만의 생각일까.
가난한 마음에서 진정한 예술이 탄생하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우리가 가진 위대한 보물을 대중에게 보여 줄 의무가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로 글의 끝을 맺는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돈과 재능을 참 멋지게 잘 쓴 것 같다.
미술가가 아니면서도 자신이 사는 동시대의 현대미술에 중독되어 평생을 헌신한 그녀의
삶에 찬사를 보낸다. 그 순수한 열정과 사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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