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나무같은 사람 - 식물을 사랑하는 소녀와 식물학자의 이야기
이세 히데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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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이세 히데코는 화가이며 그림책 작가이다.

'미야자와 겐지'와 '고흐'에 대한 연구를 평생의 화두로 삼은 저자는 여행을 하면서

만나고 느낀 것들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어느 날 우연히 들른 파리의 식물원에서 나무와 꽃과 새싹들을 보게 된다.

그 경이로움과 감동을 되살려 어느 봄 날, 집 뒷마당 한 귀퉁이에 처음으로 해바라기 씨앗을 심는다.

날마다 싹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흙에 이마를 바짝 대고 들여다보게 되었다.

식물원, 공원, 묘지, 정원은 작가에게 신기함으로 가득 찬 세계가 되어갔다.

<커다란 나무같은 사람>은 풀과 꽃, 돌연변이, 나무와 뿌리와 가시 등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이다.

식물원을 배경으로 식물학자와 소녀 사에라가(사에라는 '이곳 저곳'이라는 뜻)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따뜻하게 그려져 있다.

투명수채화의 부드럽고 담백한 그림들은 감동을 더해준다.
 





 

초록동굴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오솔길이다.

 



 

나의 연구실, 30년 넘게 책을 읽고, 세상의 나무와 사람들의 관계를 연구해 온 곳.

나는 지금도 이곳을 여행중이다.

 



 

꼬마 소녀 사에라는 이곳 저곳을 다니며 말썽을 피운다.

"거기는 들어가면 안 돼! "

 



 

아이가 꽃을 뽑았다.

"이 해바라기가 뽑혀 있었단 말이예요!"

 



 

"왜 그랬니? 그건 해바라기가 아니란다."

"할아버지께 생신 선물로 드리려고요."

 



 

"400살 먹은 아카시아 나무란다."

 



 

"해바라기 씨앗이란다."

"나무야, 내 해바라기도 너처럼 크게 자랄까?"

 



 

"이 가시로 호랑가시나무 꽃 속을 살짝 찔러 보렴.

수술이 놀라서 한데 모여 들거야. 곤충 다리인 줄 알고 말이야."

사에라는 식물학자처럼... 그럴듯하게 설명한다.

 



 

플라타너스는 250년 동안이나 뿌리를 내려왔다.

빛이 쏟아진다. 바람이 가지 끝을 헤엄친다. 봄에는 움이 트고, 여름에는 짙은 그늘을 떨어뜨린다.

숲처럼 커다란 나무. 별빛 쏟아지는 밤에도, 눈 내리는 날에도,

이 나무를 지탱해 주는 뿌리가 있었다. 250년이나 이렇게.

 



 

초록 동굴 어느 나무 아래 사에라의 그림이 있었다.

'고맙습니다' 이 한 마디와 함께.

 

사에라는 떠났다.

커다란 나무야. 말 없이, 언제까지나 기억하는 나무야.

네가 보아 온 것들을 들려다오.

네게서 나온 말은 나의 이야기가 된단다.

부드러운 햇살 사이로

그 아이의 웃음소리가 작은 방울 소리처럼 들려온다.

 



 

사에라의 그림을 여기저기에 걸어 두었다.

겨울 빛깔 속에서 사에라의 봄꽃과 여름 꽃들이 알록달록 빛나고 있다.

 



 

내년에는 사에라가 키운 해바라기의 씨앗을 아이들에게 나눠 줘야지.

여름이 되면 거리 이곳저곳에 사에라의 웃는 얼굴이 활짝 피겠지.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나무 한 그루를 가지고 있다." ~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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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위하여 - 그리운 이름, 김수환 추기경
한수산 지음 / 해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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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를 위하여>는 작가 한수산이 소설 <까마귀>를 출간한지
7년 만에 내놓은 소설이다.

개인의 의식세계에 천착하던 그는 필화사건을 겪은 이후 사회적 맥락 속에서

개인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1981년, 중앙일보에 '욕망의 거리'를 연재하던 저자 한수산은 국군 보안 사령부로 연행된다.

일부 표현이 국가 원수를 모독했고 군부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혐의였다.

일명 '한수산 필화사건'이다.

그는 혹독한 매질,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을 당한다.

실제로 당했던 고문은 소설 속의 묘사보다 훨씬 심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그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힘들었던 과거와 직면,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고문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의 나이 65세이다. 고문 이후로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말로 용서했을까? 마음 깊이 숨은 증오를 모두 버렸을까?
(왜 이러한 의문에 매달리는지... 책을 읽으며 내내 궁금했다)

이 작품은 추기경의 삶을 날줄로 하고 작가의 개인적 체험을 씨줄로 하여

픽션과 논픽션의 간극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독특한 소설이다.

작가는 고백한다.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로 소설이라는 허구의 집을 짓는다는 것부터가 있을 수 없고,

이루어질 수도 없기에 기존의 어떤 소설 형식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소설 속의 인물, 장소,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

그렇다면 명상록 내지는 회고록을 냈어도 되지 않았을까?

왜 굳이 소설의 형식을 취했을까?

 

육신의 아픔과 상처는 아물었다지만 마음의 상처가 다 아물었을지는 의문이다.

자신을 알았고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끌려와 고문을 당한 사람들은,

살기 위해 자신의 입으로 토해낸 이름들의 주인이었다.

(시인 박정만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죽었다)

그들에 대한 미안함, 자기 안의 비겁함, 인간성 상실의 뼈아픈 기억들과의

화해 없이 가해자들을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남을 용서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내 부족함을

절대자에게 내려 놓음으로써 가능한 일이 아닐까.

자신 안의 고통을 날 것 그대로, 시시때때로 들여다 보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를 힘들게 했을지... 참으로 안스럽고 안타깝다. 

 

신군부에게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내 자신의 존재가, 존엄성이 발기발기

찢겨졌다면, 그리하여 나로 인해 나를 알던 다른 이들의 이름이 토해져 나오고

나로 인해 무고한 이들이 고문을 당하게 되었더라면 나는 하느님에게 악다구리를

하며 덤볐을 것이다.

왜 그렇게 비겁한 상황으로 나를 내몰았고 내가 지옥 속에 있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느냐고...

그것을 용서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냐며 추기경에게도 따져 물었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 그것은 추상명사이고 인간은 추상명사로 살아간다.

모성애, 열성, 가치, 헌신, 의리, 신뢰, 사랑, 서로의 우애, 충성...

고문은 인간에게서 추상명사의 가치를 송두리째 빼앗아가버린다.

나에게서 추상명사가 사라졌다. 인간에 대한 절대의 절망,

결코 잊을 수도 잊힐 수도 없는 절망... 나는 벌레가 되어 있었다.

벌레가 되어 살았다. 벌레도 산다." ~ 142-144쪽

 

1980년대 김수환 추기경의 "적대적인 사람이라도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

는 말은 그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었다고 한다.

"사죄가 없는 용서, 사죄가 없는 죄 씻김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가.

악은 저편에서 여전히 강자로 건재하는데 어떻게 추기경 당신은 약자에게 강자를

용서하라고 하십니까? 미움을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의 고통을 왜 모르십니까?" ~ 189쪽

 

"추기경님,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쉽답니다. 사랑할 것을 사랑하는 건 더 쉽답니다.

그러나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어떻게 사랑하나요.

당신은 그 사랑법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추기경님도 고문 한번 받아 보시지요.

그리고 나서 그 잘난 사랑법을 알려 주시지요.

고통을 주었다는 의식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가서 우리 화해하자.

난 너를 사랑해. 한다면 그가 오히려 물을걸요.

뭘 화해하고, 네가 날 왜 사랑하냐고 말입니다." ~ 155-156쪽

 

유신과 군사정권의 질곡의 시대를 지나며 고문을 당하고 인간 되기를

포기해야 했던 모든 사람들의 치유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시대를 지나면서 고통을 겪었을 사람들의 희생에 대해 삼가 머리를 조아린다.

 

'저희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용서하는 행위는 고통을 겪은 후 치열한 각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저자와 같은 경우를 당한다면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뼈저리게 알 것 같다.

하느님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다 단단해지도록 엄청난 시련을 주는지도 모른다.

자... 그렇게 용서한다는 것이 어렵단다.

어디 한번 그 질곡을 헤쳐 나와 보거라 ............

 

백두산 천지에서 이경재 신부로부터 세 번만에 세례를 받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아픔과 고통으로 얼룩진 삶이 일순간 치유되는 기쁨을 느꼈을까.

그는 김수환 추기경이 당부했던 사랑과 용서의 삶에 대해 골백번도 더 생각한다.

추기경의 선종 이후 '용서하라'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알고 싶었던 그는

추기경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사랑과 용서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고로 이 책은 추기경의 용서하라는 메시지에 대한 답이자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보며 치유를 위해 몸부림쳤던 작가의 고백성사인 셈이다.

 

" 한 사람의 생애는 세월의 조각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모자이크인가.

아니 시간의 퍼즐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있었던 그 무엇도 다만 흘러간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의 생애를 펼쳐 놓고 돌아보면 결국 그 하나하나는 그의 생애를 그렇게 만들기

위한 치밀한 구성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건 다만 지나가버리는 하나의 조각이 아니었다.

끝내는 죽음으로 뒤덮이는 그 조각들 사이사이에, 그러나 죽음과 함께 새롭게 솟아나는

생명이 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알마(alma ~ 생명을 준다는 뜻의 라틴어) 의 길.

삶이 있지 않은가." ~ 337-338쪽

 

그는 지금 최양업 신부와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소설화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고문이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고 마비시켜 나가는지, 다디단 배교의 유혹 속에서

치러야 하는 정신적 몰락에 대해 그리고자 한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지독히도 불행했던 과거의 고문마저도 자신을 견고하게 만들고

사회와 역사에 눈을 돌리게 한 하느님의 뜻임을 알게 된다.

저자는 그 길에서 추기경의 화두인 '사랑과 용서'가 자신을 이끌었다고 고백한다.

 

"짙은 어둠 속에서 사랑을 잃고 절망에 빠져들 때

나를 감싸주는 부드러운 한마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세상이 내게 주는 많은 기쁨과 힘겨운 시련 중에도

나를 지켜주는 지혜로운 한마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 303쪽 김웅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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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의 문
길상 지음 / 푸른향기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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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숲 속의 문>은 길상 스님이 쓴 자전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의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허구인지 궁금하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책을 읽기 전 스님이 쓴 글이라 재미는 덜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맛깔진 글솜씨와 능숙한 전개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스님의 글은 감동적이면서도 재미있다.

 

제목이 참 멋지다.

책의 부제는 '숲속에서 문을 찾아 헤매는 외로운 수행자의 구도소설' 이다.

나의 20대, 이후 젊은 날의 방황은 어둡고 치열했던 것 같다.

속으로만 파고들던 그 시기를 지나며 모나던 부분이 조금씩 둥글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참 부족하지만 조금씩 배워 나가다 보면 연민과 사랑, 겸손과 비움,

양보와 희생의 좋은 덕목들이 내안에서 체화가 될까?

스님이 찾았던 깊은 숲 속 어딘가에 있을 문... 나도 찾고 싶다.

 

"우리 모두는 숲 속에서 문을 찾아 헤매는 나그네였노라.

눈으로 세계를 보고 귀로 세계를 들으며 몸으로 감각을 느끼는 지각작용의

숲 속에서 문을 찾아 헤맸던 여행자였노라...

나는 그 환영 속에서 문을 찾아 숲 속에서 느껴지는 많은 풍경들을 모순이라고

느끼며 해결책을 찾아 헤매었다. 그것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한 번도 일어나

본 적이 없는 허깨비였는데 마치 악몽을 꾸듯 몽환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렸던

나그네였노라!" ~ 359쪽

 

정각은 무상함과 허무의 근원을 찾을 수 없어서 대학 입시를 보기 위해

공부했던 책들을 태우고 입산한다.

이후 각 사찰에서 떠돌이 행자 생활과 스님의 길을 걸으며 모순에 대해

생각하고 인연과 업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다.

"마음은 초조한 에너지에 사로잡혀 내 자신을 볶아댔다. 그 초조한 에너지는

'나는 왜 나의 불성을 보지 못하고 이렇게 고통 속을 헤매고 있나'라고

자신을 질책했다." ~ 77쪽

 

인생살이를 체험하지 않고 제대로 된 승려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속세에 내려와 중국집 종업원, 술집 지배인을 하지만 그의 내면은

근원 모를 무상함으로 고독하다.

속세에서의 방황의 시간을 접고 새로운 행자생활을 거쳐 정식으로 스님이 된다.

번뇌의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가를 고민하면서 여기 저기를 떠도는

스님의 모습은 젊은 날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구도의 길을 찾는 수행자들의 삶은 속세의 사람들보다 훨씬 치열할 것 같다.

20대의 젊음은 최절정의 시기이다.

부산물로 주어지는, '자기 길을 찾는' 그 시기의 고민은 누구나 겪어야 할 산통이다.

나이가 들면 번뇌가 사라질까.

치열한 고민은 덜하지만 길을 찾는 작업이 멈추라고 해서 멈춰질 문제인가.

스님의 길을 따라 책을 읽으며 문득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가 떠올랐다.

 

"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

 

구도의 길에서 그가 만난 도반 동민스님의 이야기는 일정 부분

소설의 재미와 감동을 주기 위해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이 아닐까.

서울의 만원버스 안에서 동민스님이 간질발작으로 쓰러진다.

동민은 정각 스님에게 "잘 가시오."라는 한마디를 남긴 채 비틀거리며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 무등산 자락 암자에서 동민을 만나고 그의 죽음 이후에야

그의 행적들을 - 병에 저항하지 않고 받아 들이면서 평화가 찾아왔다는 것,

며칠씩이고 암자를 비울 때는 남에게 봉사의 삶을 실천해 왔다는 것,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 도움이 필요할 때까지 머물렀다는 것,

지치면 암자로 돌아와 무등산의 산 그림자 속에 자신을 맡기고 침묵의 세계에

침잠해 들어갔다는 것 - 알게 된다.

 

"병은 나를 어둠에서 해방시킨 스승이며 부처님이었습니다.

다른 인연들은 그 인연이 끝나면 그 인연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지만 병은 내가

바랬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결국 나의 에고가 '병' 앞에서 철저하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 320쪽 동민스님

 

"친구여! 우리는 오랫동안 꿈속에 취해 있었지.

거울에 비춰진 영상을 나라고 착각하며 참된 나를 망각한 채

거울에 비쳐진 그림자에 취해 있었지.

우주에는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네. 모순이라는 생각이 존재할 뿐.

모순이야말로 진리의 왕중의 왕이라네.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네. 오직 전체가 존재할 뿐.

 

친구여! 그대들의 삶은 어떠한 삶이라도 성공한 삶이라네.

부디 이 점을 알기 바라네.

우리는 이미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고 있다네." ~ 356-358쪽

 

"돌아다보면 아득해서 전생 일처럼 아련하다.

후회할 수 없는 길을 걸어왔다. 그 길은 본래 자취가 없는 길이므로...

혹시나 누구나가 꿈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면 말해주리라.

 

그대는 문 아닌 문을 통과할 것이라고..." ~ 360 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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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 The housemai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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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고 김기영 감독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칸영화제 수상을 기대하다가 아쉽게도 불발로 돌아갔다.

 

하녀는 보여지는 영화이다. 눈요기로 등장하는 것들이 많다.

고가의 가구와 그림, 장식품 등 제작비 31억을 들여 재현한 세트는 재벌의 실체를

상상하게 한다.

차갑고 건조한 느낌을 주는 차가운 대리석 벽과 바닥, 화려한 샹들리에

고급스러운 의상과 요리들, 음식의 장식(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모습이 없다)

등장인물들의 무표정(하녀 병식, 아내 해라, 해라의 엄마, 딸 나미),

눈발이 날리는 날씨,

곳곳에 있는 많은 거울들과 음모가 이뤄지는 계단,

피아노를 치고 있는 훈의 어두운 실루엣과 저택 전체를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

처음부터 끝까지 깔리는 어둡고 쓸쓸한 배경음악(애잔하고 슬프다)등은 공들여 만든

스릴러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대에 못미친다는 평이 많아 영화를 보기 전에 망설였지만...

영화는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철저하게 물신화한 사회 속에서의 군상들의 모습들.

많이 가지면 더 행복할까?

 



 



 

식당보조 일을 하던 은이(전도연)은 유아교육과를 중퇴한 이력으로 재벌집의

하녀채용에 합격한다.
쌍둥이를 임신한 안주인 해라(서우)의 시중을 들고 해라의 딸을 보살피고 훈(이정재)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한다. 

 




은이는 이혼 후 모아놓은 돈으로 자기 집을 사서 전세를 내준 상태이다.

남의 밑에서 수모를 당하며 살만큼 궁핍하지 않다.

그러나 은이는 상류사회를 엿볼 수 있는 하녀의 일을 좋아한다. 

나미를 사랑하고 해라의 뱃속에 있는 쌍둥이도 좋아하고

자신을 해하려 하던 해라엄마의 악의도 눈치채지 못한다.

훈이 자신을 사랑해서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할 만큼 어리석다.

 



 



 

와인을 권하는 훈이에게 그녀는 쉽게 무너진다.

예의 바르지만, 그는 권위적이고 위압적이다.

은이는 순수한 여자로 그려지지만 훈과의 관계를 통해 상류사회에 대한 선망과 동경을

드러낸다. (이정재가 분한 훈을 거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 야비함을 보라)

그녀는 다음날 피아노 위에 둔 수표를 보면서 그에게는 사랑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쓴 웃음을 짓는다.

 



 

훈이 누구인가... 해라엄마는 말한다.
"훈이는 어릴 때부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갖고 살아왔어.

눈에 보여서 좋으면 갖는거야. 아무 죄책감 없이."

"훈이의 엄마가 그랬듯이 너도 조금만 참으면 네 자식들은 훈이처럼 엄청난

부와 행복을 누릴 수 있어"

해라는 자식을 넷, 다섯... 계속 낳고 싶다.

지금의 부를 앞으로도 계속 움켜 쥐기 위해.

 



 

나이 든 하녀 병식(윤여정)은 집안의 모든 일을 총괄한다.

"세상은 아더메치야... " 세상은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고...

매사를 돈으로 해결하는 주인집의 돈을 받고 그렇게 충복 노릇을 하며 아들을 검사로

만드는 병식.

아더메치지만 그들이 주는 돈으로 욕망을 충족시키며 살아간다.

 



 

예의를 알고, 베토벤을 알고, 은이에게 어른들을 대신해서 사과하는 나미.

(좀더 아이답게 그렸다면 더 좋을텐데...)

은이는 나미와 같은 예쁜 딸을 낳으려고 했지만...

 




참혹한 결말 이후...

 

나미의 생일에 해라는 '헤피버스데이투유'를 부르고 뭔가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고,

영어로 말하는 훈, 아이들을 안고있는 하녀의 무표정함, 고가의 그림을 앞에 두고

어딘지 이상한 훈이 가족의 모습이 화면에 펼쳐진다.

그들은 자신의 본모습과 목소리와 얼굴을 잃어버렸을까?

 

영화에서 하녀는 은이와 병식만이 아니다.

자본, 물신에 굴복하는 자들 모두 하녀이다.

부를 움켜 잡고 놓지 않기 위해 훈에게 굴종하는 해라와 해라엄마,

그들이 던져주는 돈으로 평생을 살아온 병식,

사랑 없이도, 도덕적인 판단을 유보한 채 욕망에 빠지는 은이,

무엇보다 타인의 삶을 희롱하고, 악을 악으로 생각하지 않는 훈이.

모두 자신이 자신의 주인 되기를 포기한 하녀들이다.

영화 <하녀>는 자본만이 최대의 가치라고 여기는 우리 사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다.

 

한순간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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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빈리 일기
박용하 지음 / 사문난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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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빈리는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에 있고 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오빈저수지가 있는 마을(里)이다.

서울과 수도권의 10년, 그리고 인심이 고약했던 경기도의 한 시골에서의

7년 세월을 견디다 못한 시인 박용하는 2008년 오빈리에 터를 잡는다.

다행히도, 오빈리는 환갑을 넘긴 이웃집 어르신이 통성명하자며 먼저 손을

내밀고 언덕배기 놀고 있는 밭 350평도 부쳐 먹으라고 내놓는 인심좋은 마을이다.

시인은 마을 어른들의 도움으로 고구마, 고추, 호박, 참외, 오이, 옥수수, 토마토,

시금치 심고... 풀 베고 풀 뽑는 날들을 시작한다.

2008.11.11일에 시작한 일기는 2009.11.10일에 끝난다.

시인의 속내가 담긴 1년의 기록들을 보면서, 미래의 내 모습이 그려진다.

어쩌면, 머릿속으로 막연하게 동경하는 삶과 시골에서의 실제 생활은 많이 다를 것이다.

오랫동안 귀농을 꿈꾸어 온 나로서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지는 꽃들과 피는 꽃들을

볼 수 있고, 밤새 내린 눈이 있어서 행복하고, (눈을 좋아하던 어떤 사람이 강원도의

첫 겨울을 나면서 쌓이는 눈을 치우며 눈을 저주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지만),

날리는 은행잎을 보며 가을이 끝나감을 슬퍼하고, 매일 오빈리 저수지 들판을 걷기도,

뛰기도 하면서 벼이삭 익어가는 황금 들판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멋진 일들이다.

 

시인의 일기는 솔직하다.

시인의 글에서 분노로 들끓는다고 표현한 글을 자주 만난다.

그는 나라에 대한, 정치판에 대한 실망감으로 분노하고 시가 써지지 않는 현실이

슬프고, 돈이 없어서 술과 화로 날을 지새기도 한다. 

일기에는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시인의 심사, 아내와의 싸움, 돈에 대한 치사한 마음,

돈을 벌지 못하는 아들에게 소설을 써야 돈이 된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이야기 등이

그대로 담겨있다.

그의 분노는 내가 알지 못하는 그만의 삶의, 그가 가진 문제이리라.

속살이 드러나듯이 밝혀지는 시인의 글을 보며 시인의 분노가 안타깝게 여겨지지만

자연과 함께 벗삼아 살고 있는 그의 세계가 마냥 부럽다.

그는 오빈리의 벌판을 걷고 달리면서 자연이 주는 축복과 경이로움에 흠뻑 빠진다.

새롭게 충전한 힘으로 돈을 버는 아내 대신 살림하고 딸의 공부를 가르치고 시를 쓰고 

자신이 지은 수확물로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오빈리 저수지로, 밭으로 산책을 나가는

시인의 모습은 행복해 보인다. 

삶이란 기쁨, 슬픔, 행복함, 불행함, 조금의 분노, 조금의 위안들로 버무러진 것이다.

시인의 삶이 그렇듯이 우리네 삶도 그 모든 복합적인 감정들과 사건을 겪으며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만족하며 사는 삶이 최고이다.

 

만 원에 살구 150 개를 따가게 하는 윗집 김씨 할머니를 가진 시인은 행복하다.

떨어지는 도토리를 머리에 맞으며 도토리를 한말씩이나 줍고,

심어 놓은 방울 토마토 가지에서 계속 열리는 방울 토마토를 먹고,

땀흘려 수확한 농작물을 도시에 사는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보내고,

좋아하는 책과 음악을 듣고 시를 쓸 수 있으니 시인은 참으로 행복하다.

 

"참외 심을 곳 잡초를 제거했다. 우거진 풀을 쳐내고 땅을 갈아엎으니 거기서

벌레들이 나오고 그걸 작고 귀여운 곤줄박이가 와서 물고 갔다.

어떻게 된 건지 그 새는 내 발 옆까지 서슴없이 다가와서 새가 날아갈 때까지

나는 꼼짝 않고 서있어야 했다." ~ 106쪽

(나는 이 글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시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잊을 수 없는 일 하나 : 1986년 군생활 때 군부대가 가까운 산골 읍내에

안경점이 둘 있었다. 그 중 한 안경점에서 맞춘 안경은 며칠이 지나도 눈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어지러웠다. 다른 안경점 주인이 했던 말. "있을 수 없는 처방이다!"

~ 153쪽 (다른 안경점 주인의 흥분한 얼굴이 떠올라 많이 웃었다)

 

"은행잎 한 조각 떨어져도 가을빛이 줄거늘

수만 잎 떨어지니 이 쓸쓸함 어이 견디리." ~ 16쪽 두보의 시 '곡강 曲江'에서

 

"일기는 정치적인 글이다. 모든 글은 정치적이고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정치적이다." ~ 24쪽

(시인의 말에 막연하게, 내식으로 공감하지만 의문이 생긴다.

시인이 사용한 '정치적'이라는 말이 정확하게 무슨 뜻일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오늘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일과 사건들이

생의 뒤쪽으로 가물거리며 사라지는 것인지." ~ 25쪽

 

"오빈리 들판과 오빈리 저수지를 걸었다 뛰었다 걸었다." ~ 28쪽

 

"산수유 꽃 진 자리에서는 산수유 잎이 조용히 와 있었다.

며칠 사이에 많은 꽃이 졌다. 오후에 흐리다 비가 왔다.

자연의 소리는 소음이었던 적이 없었고 자연의 빛깔은 억지스럽고

어지러웠던 적이 없었다." ~ 96쪽

 

"꽃사과 꽃이 하나 둘 져내리고 있다.

내 삶의 하루하루도 내 인생에서 떨어져나가고 있다.

삶은 그처럼 절박하고 끔찍하고 속절없고 부질없고 아름답다." ~ 98쪽

 

"삶의 그 어떤 화려하고 빛나는 형식일지라도 조용히 눈 내리는 밤보다는

나중 일이다." ~ 223쪽

 

"오빈 저수지 둑방의 억새가 바람을 견디며 한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천지사방이 그윽한 빛의 잔치였다. 빛이 물들고 있었다.

살았고 살고 있고 살 것이다." ~ 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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