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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 - The housemaid
영화
평점 :
현재상영

1960년 고 김기영 감독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칸영화제 수상을 기대하다가 아쉽게도 불발로 돌아갔다.
하녀는 보여지는 영화이다. 눈요기로 등장하는 것들이 많다.
고가의 가구와 그림, 장식품 등 제작비 31억을 들여 재현한 세트는 재벌의 실체를
상상하게 한다.
차갑고 건조한 느낌을 주는 차가운 대리석 벽과 바닥, 화려한 샹들리에
고급스러운 의상과 요리들, 음식의 장식(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모습이 없다)
등장인물들의 무표정(하녀 병식, 아내 해라, 해라의 엄마, 딸 나미),
눈발이 날리는 날씨,
곳곳에 있는 많은 거울들과 음모가 이뤄지는 계단,
피아노를 치고 있는 훈의 어두운 실루엣과 저택 전체를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
처음부터 끝까지 깔리는 어둡고 쓸쓸한 배경음악(애잔하고 슬프다)등은 공들여 만든
스릴러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대에 못미친다는 평이 많아 영화를 보기 전에 망설였지만...
영화는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철저하게 물신화한 사회 속에서의 군상들의 모습들.
많이 가지면 더 행복할까?


식당보조 일을 하던 은이(전도연)은 유아교육과를 중퇴한 이력으로 재벌집의
하녀채용에 합격한다.
쌍둥이를 임신한 안주인 해라(서우)의 시중을 들고 해라의 딸을 보살피고 훈(이정재)의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한다.

은이는 이혼 후 모아놓은 돈으로 자기 집을 사서 전세를 내준 상태이다.
남의 밑에서 수모를 당하며 살만큼 궁핍하지 않다.
그러나 은이는 상류사회를 엿볼 수 있는 하녀의 일을 좋아한다.
나미를 사랑하고 해라의 뱃속에 있는 쌍둥이도 좋아하고
자신을 해하려 하던 해라엄마의 악의도 눈치채지 못한다.
훈이 자신을 사랑해서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할 만큼 어리석다.


와인을 권하는 훈이에게 그녀는 쉽게 무너진다.
예의 바르지만, 그는 권위적이고 위압적이다.
은이는 순수한 여자로 그려지지만 훈과의 관계를 통해 상류사회에 대한 선망과 동경을
드러낸다. (이정재가 분한 훈을 거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 야비함을 보라)
그녀는 다음날 피아노 위에 둔 수표를 보면서 그에게는 사랑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쓴 웃음을 짓는다.

훈이 누구인가... 해라엄마는 말한다.
"훈이는 어릴 때부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갖고 살아왔어.
눈에 보여서 좋으면 갖는거야. 아무 죄책감 없이."
"훈이의 엄마가 그랬듯이 너도 조금만 참으면 네 자식들은 훈이처럼 엄청난
부와 행복을 누릴 수 있어"
해라는 자식을 넷, 다섯... 계속 낳고 싶다.
지금의 부를 앞으로도 계속 움켜 쥐기 위해.

나이 든 하녀 병식(윤여정)은 집안의 모든 일을 총괄한다.
"세상은 아더메치야... " 세상은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고...
매사를 돈으로 해결하는 주인집의 돈을 받고 그렇게 충복 노릇을 하며 아들을 검사로
만드는 병식.
아더메치지만 그들이 주는 돈으로 욕망을 충족시키며 살아간다.

예의를 알고, 베토벤을 알고, 은이에게 어른들을 대신해서 사과하는 나미.
(좀더 아이답게 그렸다면 더 좋을텐데...)
은이는 나미와 같은 예쁜 딸을 낳으려고 했지만...

참혹한 결말 이후...
나미의 생일에 해라는 '헤피버스데이투유'를 부르고 뭔가에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고,
영어로 말하는 훈, 아이들을 안고있는 하녀의 무표정함, 고가의 그림을 앞에 두고
어딘지 이상한 훈이 가족의 모습이 화면에 펼쳐진다.
그들은 자신의 본모습과 목소리와 얼굴을 잃어버렸을까?
영화에서 하녀는 은이와 병식만이 아니다.
자본, 물신에 굴복하는 자들 모두 하녀이다.
부를 움켜 잡고 놓지 않기 위해 훈에게 굴종하는 해라와 해라엄마,
그들이 던져주는 돈으로 평생을 살아온 병식,
사랑 없이도, 도덕적인 판단을 유보한 채 욕망에 빠지는 은이,
무엇보다 타인의 삶을 희롱하고, 악을 악으로 생각하지 않는 훈이.
모두 자신이 자신의 주인 되기를 포기한 하녀들이다.
영화 <하녀>는 자본만이 최대의 가치라고 여기는 우리 사회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이다.
한순간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의 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