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위하여 - 그리운 이름, 김수환 추기경
한수산 지음 / 해냄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용서를 위하여>는 작가 한수산이 소설 <까마귀>를 출간한지
7년 만에 내놓은 소설이다.

개인의 의식세계에 천착하던 그는 필화사건을 겪은 이후 사회적 맥락 속에서

개인의 문제를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1981년, 중앙일보에 '욕망의 거리'를 연재하던 저자 한수산은 국군 보안 사령부로 연행된다.

일부 표현이 국가 원수를 모독했고 군부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혐의였다.

일명 '한수산 필화사건'이다.

그는 혹독한 매질,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을 당한다.

실제로 당했던 고문은 소설 속의 묘사보다 훨씬 심했다고 한다.

이 책에서 그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힘들었던 과거와 직면,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고문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의 나이 65세이다. 고문 이후로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말로 용서했을까? 마음 깊이 숨은 증오를 모두 버렸을까?
(왜 이러한 의문에 매달리는지... 책을 읽으며 내내 궁금했다)

이 작품은 추기경의 삶을 날줄로 하고 작가의 개인적 체험을 씨줄로 하여

픽션과 논픽션의 간극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독특한 소설이다.

작가는 고백한다.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로 소설이라는 허구의 집을 짓는다는 것부터가 있을 수 없고,

이루어질 수도 없기에 기존의 어떤 소설 형식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소설 속의 인물, 장소,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

그렇다면 명상록 내지는 회고록을 냈어도 되지 않았을까?

왜 굳이 소설의 형식을 취했을까?

 

육신의 아픔과 상처는 아물었다지만 마음의 상처가 다 아물었을지는 의문이다.

자신을 알았고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끌려와 고문을 당한 사람들은,

살기 위해 자신의 입으로 토해낸 이름들의 주인이었다.

(시인 박정만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죽었다)

그들에 대한 미안함, 자기 안의 비겁함, 인간성 상실의 뼈아픈 기억들과의

화해 없이 가해자들을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남을 용서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내 부족함을

절대자에게 내려 놓음으로써 가능한 일이 아닐까.

자신 안의 고통을 날 것 그대로, 시시때때로 들여다 보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그를 힘들게 했을지... 참으로 안스럽고 안타깝다. 

 

신군부에게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내 자신의 존재가, 존엄성이 발기발기

찢겨졌다면, 그리하여 나로 인해 나를 알던 다른 이들의 이름이 토해져 나오고

나로 인해 무고한 이들이 고문을 당하게 되었더라면 나는 하느님에게 악다구리를

하며 덤볐을 것이다.

왜 그렇게 비겁한 상황으로 나를 내몰았고 내가 지옥 속에 있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느냐고...

그것을 용서하기가 어디 쉬운 일이냐며 추기경에게도 따져 물었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 그것은 추상명사이고 인간은 추상명사로 살아간다.

모성애, 열성, 가치, 헌신, 의리, 신뢰, 사랑, 서로의 우애, 충성...

고문은 인간에게서 추상명사의 가치를 송두리째 빼앗아가버린다.

나에게서 추상명사가 사라졌다. 인간에 대한 절대의 절망,

결코 잊을 수도 잊힐 수도 없는 절망... 나는 벌레가 되어 있었다.

벌레가 되어 살았다. 벌레도 산다." ~ 142-144쪽

 

1980년대 김수환 추기경의 "적대적인 사람이라도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

는 말은 그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었다고 한다.

"사죄가 없는 용서, 사죄가 없는 죄 씻김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가.

악은 저편에서 여전히 강자로 건재하는데 어떻게 추기경 당신은 약자에게 강자를

용서하라고 하십니까? 미움을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의 고통을 왜 모르십니까?" ~ 189쪽

 

"추기경님,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쉽답니다. 사랑할 것을 사랑하는 건 더 쉽답니다.

그러나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어떻게 사랑하나요.

당신은 그 사랑법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추기경님도 고문 한번 받아 보시지요.

그리고 나서 그 잘난 사랑법을 알려 주시지요.

고통을 주었다는 의식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가서 우리 화해하자.

난 너를 사랑해. 한다면 그가 오히려 물을걸요.

뭘 화해하고, 네가 날 왜 사랑하냐고 말입니다." ~ 155-156쪽

 

유신과 군사정권의 질곡의 시대를 지나며 고문을 당하고 인간 되기를

포기해야 했던 모든 사람들의 치유가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시대를 지나면서 고통을 겪었을 사람들의 희생에 대해 삼가 머리를 조아린다.

 

'저희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용서하는 행위는 고통을 겪은 후 치열한 각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저자와 같은 경우를 당한다면 용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뼈저리게 알 것 같다.

하느님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다 단단해지도록 엄청난 시련을 주는지도 모른다.

자... 그렇게 용서한다는 것이 어렵단다.

어디 한번 그 질곡을 헤쳐 나와 보거라 ............

 

백두산 천지에서 이경재 신부로부터 세 번만에 세례를 받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아픔과 고통으로 얼룩진 삶이 일순간 치유되는 기쁨을 느꼈을까.

그는 김수환 추기경이 당부했던 사랑과 용서의 삶에 대해 골백번도 더 생각한다.

추기경의 선종 이후 '용서하라'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알고 싶었던 그는

추기경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사랑과 용서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고로 이 책은 추기경의 용서하라는 메시지에 대한 답이자

고통의 근원을 들여다보며 치유를 위해 몸부림쳤던 작가의 고백성사인 셈이다.

 

" 한 사람의 생애는 세월의 조각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모자이크인가.

아니 시간의 퍼즐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있었던 그 무엇도 다만 흘러간 것이 아니다.

한 인간의 생애를 펼쳐 놓고 돌아보면 결국 그 하나하나는 그의 생애를 그렇게 만들기

위한 치밀한 구성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건 다만 지나가버리는 하나의 조각이 아니었다.

끝내는 죽음으로 뒤덮이는 그 조각들 사이사이에, 그러나 죽음과 함께 새롭게 솟아나는

생명이 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알마(alma ~ 생명을 준다는 뜻의 라틴어) 의 길.

삶이 있지 않은가." ~ 337-338쪽

 

그는 지금 최양업 신부와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소설화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고문이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고 마비시켜 나가는지, 다디단 배교의 유혹 속에서

치러야 하는 정신적 몰락에 대해 그리고자 한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지독히도 불행했던 과거의 고문마저도 자신을 견고하게 만들고

사회와 역사에 눈을 돌리게 한 하느님의 뜻임을 알게 된다.

저자는 그 길에서 추기경의 화두인 '사랑과 용서'가 자신을 이끌었다고 고백한다.

 

"짙은 어둠 속에서 사랑을 잃고 절망에 빠져들 때

나를 감싸주는 부드러운 한마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세상이 내게 주는 많은 기쁨과 힘겨운 시련 중에도

나를 지켜주는 지혜로운 한마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 303쪽 김웅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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