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문
길상 지음 / 푸른향기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숲 속의 문>은 길상 스님이 쓴 자전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의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 허구인지 궁금하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책을 읽기 전 스님이 쓴 글이라 재미는 덜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맛깔진 글솜씨와 능숙한 전개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스님의 글은 감동적이면서도 재미있다.

 

제목이 참 멋지다.

책의 부제는 '숲속에서 문을 찾아 헤매는 외로운 수행자의 구도소설' 이다.

나의 20대, 이후 젊은 날의 방황은 어둡고 치열했던 것 같다.

속으로만 파고들던 그 시기를 지나며 모나던 부분이 조금씩 둥글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참 부족하지만 조금씩 배워 나가다 보면 연민과 사랑, 겸손과 비움,

양보와 희생의 좋은 덕목들이 내안에서 체화가 될까?

스님이 찾았던 깊은 숲 속 어딘가에 있을 문... 나도 찾고 싶다.

 

"우리 모두는 숲 속에서 문을 찾아 헤매는 나그네였노라.

눈으로 세계를 보고 귀로 세계를 들으며 몸으로 감각을 느끼는 지각작용의

숲 속에서 문을 찾아 헤맸던 여행자였노라...

나는 그 환영 속에서 문을 찾아 숲 속에서 느껴지는 많은 풍경들을 모순이라고

느끼며 해결책을 찾아 헤매었다. 그것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한 번도 일어나

본 적이 없는 허깨비였는데 마치 악몽을 꾸듯 몽환의 세계에서 허우적거렸던

나그네였노라!" ~ 359쪽

 

정각은 무상함과 허무의 근원을 찾을 수 없어서 대학 입시를 보기 위해

공부했던 책들을 태우고 입산한다.

이후 각 사찰에서 떠돌이 행자 생활과 스님의 길을 걸으며 모순에 대해

생각하고 인연과 업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다.

"마음은 초조한 에너지에 사로잡혀 내 자신을 볶아댔다. 그 초조한 에너지는

'나는 왜 나의 불성을 보지 못하고 이렇게 고통 속을 헤매고 있나'라고

자신을 질책했다." ~ 77쪽

 

인생살이를 체험하지 않고 제대로 된 승려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속세에 내려와 중국집 종업원, 술집 지배인을 하지만 그의 내면은

근원 모를 무상함으로 고독하다.

속세에서의 방황의 시간을 접고 새로운 행자생활을 거쳐 정식으로 스님이 된다.

번뇌의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가를 고민하면서 여기 저기를 떠도는

스님의 모습은 젊은 날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구도의 길을 찾는 수행자들의 삶은 속세의 사람들보다 훨씬 치열할 것 같다.

20대의 젊음은 최절정의 시기이다.

부산물로 주어지는, '자기 길을 찾는' 그 시기의 고민은 누구나 겪어야 할 산통이다.

나이가 들면 번뇌가 사라질까.

치열한 고민은 덜하지만 길을 찾는 작업이 멈추라고 해서 멈춰질 문제인가.

스님의 길을 따라 책을 읽으며 문득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가 떠올랐다.

 

"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

 

구도의 길에서 그가 만난 도반 동민스님의 이야기는 일정 부분

소설의 재미와 감동을 주기 위해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이 아닐까.

서울의 만원버스 안에서 동민스님이 간질발작으로 쓰러진다.

동민은 정각 스님에게 "잘 가시오."라는 한마디를 남긴 채 비틀거리며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 무등산 자락 암자에서 동민을 만나고 그의 죽음 이후에야

그의 행적들을 - 병에 저항하지 않고 받아 들이면서 평화가 찾아왔다는 것,

며칠씩이고 암자를 비울 때는 남에게 봉사의 삶을 실천해 왔다는 것,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 도움이 필요할 때까지 머물렀다는 것,

지치면 암자로 돌아와 무등산의 산 그림자 속에 자신을 맡기고 침묵의 세계에

침잠해 들어갔다는 것 - 알게 된다.

 

"병은 나를 어둠에서 해방시킨 스승이며 부처님이었습니다.

다른 인연들은 그 인연이 끝나면 그 인연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지만 병은 내가

바랬던 모든 것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결국 나의 에고가 '병' 앞에서 철저하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 320쪽 동민스님

 

"친구여! 우리는 오랫동안 꿈속에 취해 있었지.

거울에 비춰진 영상을 나라고 착각하며 참된 나를 망각한 채

거울에 비쳐진 그림자에 취해 있었지.

우주에는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네. 모순이라는 생각이 존재할 뿐.

모순이야말로 진리의 왕중의 왕이라네.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네. 오직 전체가 존재할 뿐.

 

친구여! 그대들의 삶은 어떠한 삶이라도 성공한 삶이라네.

부디 이 점을 알기 바라네.

우리는 이미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고 있다네." ~ 356-358쪽

 

"돌아다보면 아득해서 전생 일처럼 아련하다.

후회할 수 없는 길을 걸어왔다. 그 길은 본래 자취가 없는 길이므로...

혹시나 누구나가 꿈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면 말해주리라.

 

그대는 문 아닌 문을 통과할 것이라고..." ~ 360 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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