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길, '산티아고'는 순례자의 길이다.
순례자들은 천 년의 세월 동안 가방에 조개껍질을 매달고 지팡이를 짚으며 걸었다.
끝없이 이어진 밀밭길과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길 위에서 무거운 배낭이 어깨를
파고드는 고통과 발톱이 빠지고 발바닥이 찢어지는 아픔을 참으며, 빵과 생수로
끼니를 때우면서 끝없이 걸었다.

산티아고는 예수의 열 두 제자 중 가장 먼저 순교한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이다.
산티아고 길은 사도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었던 길이다. 그의 무덤은
스페인 북서쪽의 도시 산티아고티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la)에 있다.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성당에 이르는 길은 여러 코스가 있지만 가장 사랑받은 길은
'카미노데프란시스'(프랑스 사람들의 길) 코스이다.
프랑스 남부의 국경 마을인 생장피데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이어지는 800 km의 길...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노란 화살표와 조개껍질이 방향을 알려준다.
일정한 간격으로 마을과 도시마다 '알베르게'(순례자 전용 숙소)가 있어 저렴한
비용으로 잠자리와 취사를 해결할 수 있다.
순례의 길을 가려고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동일한 질문이 주어진다.
"왜 스페인에 입국하여 이 길을 걸으려 하느냐?'
이때 '순례를 위하여." 혹은 '자기 자신을 찾고 싶어서..." 라고 답해야만
그 성스러운 길을 걸을 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사막을 건너는 법>, <먼 그대>의 작가 서영은은 66세의 나이로 산티아고를 향했다.
인연의 사슬을 끊고, 권력과 속세로부터 초탈하기 위해 유언장을 쓰고 떠나온 길 위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책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에 엮어 내놓았다.
그녀는 허구적인 것은 단 한가지도 없으며 노란 화살표를 따라 길을 걸으면서 화살표가
가리킨 곳에서 자신을 벗어던졌다고 고백한다.
길 위에서 자신을 바꾸는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도했고 어떤 방향으로 바꾸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으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그 내면적 변화를 이끈 초월적 존재를 보고 만졌기에 독자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고 고백한다.
"영혼의 부름을 따라 걷는 모든 이는 순례자이다.
노란 화살표를 찾아 걷고 있는 세상 모든 성스러운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 401쪽

순례자들의 상징, 크리덴셜 카드.
동행인 '치타'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세번째 걷는다.
저자에게 산티아고 길을 제안하고 안내를 자처한 그녀는 저자보다 나이가 많지만
한때 소설을 배웠던 제자이다.
저자는 많은 부분에서 동행과의 갈등과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기록하였다.
비우고, 내려놓고, 무엇보다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났지만 옆의 사람때문에 불편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가까운 사람을 배려하고 상처주지 않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녀는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 커피를 주는 사람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이라고 칭한다.
길 위의 말과 개, 지나가는 사람들, 풀과 나무에도 감사와 축복의 기도를 하지만
동행에 대해 끝없이 불편하다.
사람의 마음은 온 우주를 품을 만큼 넓지만 때로는 바늘 끝 세울 자리도 없다.
나와 무관한 제 3자는 우주적인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지만 바로 옆사람이 나의 생각과
다를 경우에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다.
혹시, 이 책을 본 치타가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버려야할 것은 이기적인 마음, 오만함, 나를 중심에 놓는 생각들이다.
내가 잘못 이해하는 것일까. 신앙심 깊은 저자의 성령 체험, 꿈과 계시에 대한 글도
몰입이 힘들었다는 점을 고백한다.

복통으로 아픈 뒤에 버린 것들.
저자는 비닐봉지와 이쑤시개, 믹스커피, 1회용 수저와 젓가락 등을 버린다.
계속 걷기 위해 짐의 무게를 덜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가벼워진 배낭의 무게에서, 가장 헐벗고 겸허한 삶을 택했던 수도사들의 청빈한 생활을
이해하며 마음에 쌓인 군더더기를 벗어 놓는다.
길 위에서 그녀는 김동리와의 인연, 부모형제와의 인연을 끊고 과거의 삶과 이별한다.
특정한 사람에 대한 사랑을 지고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없기에.
순례의 길이 그렇다면...
삶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물질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군더더기도 버려야지만 깨끗한 영혼으로 살 것이다.

길 가던 순례자 스스로 카드에 도장을 찍고 잠시 쉬어가는 무인휴게소.
벽에 Aqua(물)와 Sello(도장)란 글씨가 쓰여 있다.

노란 화살표는 나무, 길, 문, 돌멩이 등에 표시되어 있다.
숲이나 길에서 하나의 나무, 하나의 돌에 지나지 않지만 노란 화살표가 그려짐으로써
그 돌과 나무는 신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성스러운 역할을 담당하여 순례자의 마음에서
기도를 이끌어내고 쉼없이 길을 가도록 안내한다.
순례자여권인 크리덴셜 카드에는 알바르게(순례자 숙소)를 지날 때마다 스탬프가 찍혀진다.
마치 '참 잘했어요' 라고 찍혀지는 초등학교 스템프처럼.
스탬프가 하나, 둘씩 찍히고, 순례가 끝나 증명서를 받는 순례자들의 마음에 이는
감동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책 속에는 깊은 의미가 담긴, 아름다운 사진들이 가득하다.
가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오래 머물러 보게 된다.

문 저쪽.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지점에서 우리의 영안이 '있는' 것을 본다. ~ 164쪽
시간을 보낸 흔적 모두는 보이는 세계에 남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에 축적된다. ~ 224쪽
언제, 어떤 일이 내앞에 있을지 모르는 인생길을 생각하노라면...
오히려 800km 정도로 정해진 산티아고 길은 쉬운 길인지도 모른다.
이정표가 있으니 쉬엄쉬엄 걸어가다 보면 끝이 보이는 길이다.
물론 한달이 넘게 발이 부르트고, 적게 먹고, 좁은 침낭 속에서 새우잠을 자야 하고,
눈.비와 마주치고, 여러 갈래의 길이 있어도 확실한 목적지로 안내하는 화살표가 있으니
견디면 될 일이다.

앞서간 사람의 눈발자국.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의 길.
저자의 발자국을 따라 내내 걸었다.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보다 더 깊이, 더 많이 산티아고를 느낄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 숲 속의 공기, 사람들의 웃는 모습, 하늘, 바다, 바람,
진한 커피 향, 비와 눈, 길가에 떨어진 호두와 밤, 무화과, 박물관의 그림들과
성당의 예수님, 가게의 풍경까지...
'저질체력'이라고 아들은 놀리지만 언제고 갈 것이다.
왜 산티아고를 가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나 자신에게로 향하는 길이다.
"산티아고는 내게 순례의 종착지가 아니다.
그것은 내게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문이자 화살표이다." ~ 367쪽
"나는 나 자신이 아주 소박한 나무십자가가 되어 거기에 그렇게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시원始原의 고요와 하나 되는 충만함. 비어 있음의 충만함으로 내 영혼이
기뻐 노래하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걸어왔다.
내 안으로 열어놓은 길. 거기에 사랑이신 하느님이 계셨다!" ~ 375쪽

순례자들이 버리고 간 나무지팡이들...

산티아고는 길이며, 숲이고, 낙엽이며, 바람이다.
길과 숲과 낙엽과 바람이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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