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식 똥, 재래식 똥 - 반짝이는 유년의 강가에서
윤중목 지음 / 미다스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유년의 반짝이는 기억들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책을 읽으며 가슴 속에 선명하게 박혀 언제고 꺼내보며 미소짓는,

유년의 뭉게구름 같은 기억과 추억의 조각들을 만나게 된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수세식 똥, 재래식 똥>은 저자의 어릴 적,

초등학교 3학년에서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의 단상들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저자는 16편의 이야기를 쓰면서 자신만의 유년이 아니라 동시대인 모두의

유년을 복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순수한 유년의 감정들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소중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책을 쓰는 순간, 저자는 마음의 순수 원형에 다가가는 감동으로 눈물지었다고 한다.

 

저자는 붓다의 생애를 그린 만화책을 읽고 부처가 출가하여 수행한 것처럼

자신도 고학으로 자수성가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가출한다.

생각과는 달리 후회와 불안으로 거리를 배회하다가 밤이 되어 교회로 들어간다.

다음날, 자신을 찾으러온 부모님을 보며 후회와 반성의,

또한 감사와 안도의 눈물을 흘린다.

 

과자가 많지 않던 시절, 저자는 1974년에 처음 나온 초코파이의 신묘한

맛에 빠진다.

과자도 아니고, 빵도 아니고, 초콜릿도 아니고 젤리도 아닌 초코파이의 맛을

이태백의 '별천지 따로 있어 인간 세상 아니네'로 비유한다.

 

(먹을 것이 많지 않았던 그 시절,

남편은 카스테라를 처음 먹었을 때 세상에 없는, 전무후무한 그 맛에 반해

생일이면 쌀을 팔아 카스테라를 사달라고 어머니께 졸랐다고 한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유달산 아래 위치했는데 산중턱에 고아원이 있어서인지

고아들이 유독 많은 학교였다.

내 짝 역시 고아였는데 그 아이가 배급받는 옥수수빵 맛은 황홀했다.

'나도 고아라면 맛있는 옥수수빵을 매일 먹을 수 있을텐데' 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유년의 학창시절, 소풍 전날 과자와 간식거리를 가방에 가득 넣고 내일 아침에

비가 오면 어떡하나 하는 심정으로 밖을 내다보고, 또 보고...

소풍 날 장기자랑에서 저자의 친구 무태는 아리랑을 개사한 '신춘향가' 혹은

'신아리랑'을 부른다.

아리랑 / 춘향이가 / 보리쌀을 씻다가

이도령 / 피리소리에 / 방구를 꼈네.

방구를 / 꼈어도 / 이만저만 아니라

춘향이 / 미제빤쓰에 / 빵꾸가 났네.

저자는 누군가의 입에서 처음 불리다가 꼬마들에게까지 불리게 된 그 시절의

'신아리랑' 가사가 'Made in USA'라는 완력 아래 눌려 지내던 약소국가,

약소민족의 설움을 그려낸 뼈아픈 탄식임을 술회한다.

 

1, 2, 3학년을 내리 같은 반이던 여자친구의 엄마와 저자의 엄마는

여고 동창생이다.

친구의 집은 수세식 변소가 있고 기사 딸린 코로나 자가용이 있지만

저자의 집은 재래식 변소에 삼천리표 자전거가 있었다.

어느 날, 친구 엄마가 동생을 데리고 집에 놀러 왔는데 동생 녀석이 똥이

마렵다고 했다. 여름이라 구더기가 있었고 수북한 먼저 똥 위에 나중 똥이

또 수북이 쌓인 변소를 보고 기겁한 녀석은 변소에서 뛰쳐 나왔고 그들은

즉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혹시 여고 동창생과의 살림살이 차이로 서글퍼 하셨을지 모를 엄마를

생각하며 저자는 가슴이 아리다.

그는 다시 녀석을 만난다면 말하겠다고 한다.

"이 녀석아! 너 재래식 똥만 똥인 줄 알아? 수세식 똥도 똥이야, 똥!"

 

초등 3학년 때 고가의 계몽사 백과사전에 끼워팔기 경품인 쌍안경이 있었다.

골목 끝집에서부터 훑어가며 대문에 걸린 문패들 보기,

전신주 위에 앉은 참새새끼들 눈깔 보기,

하늘을 나는 전투기와 헬리콥터 보기 등

저자는 목에 쌍안경을 걸치고 높은 곳에 서있으면 오지의 대탐험가나 대장군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지상 최고의 장난감이자, 과학기구이자, 보물 1호였던 쌍안경...

어느 날, 야산에서 쌍안경을 목에 걸고 칼싸움을 하던 저자는 100프로 실력

발휘가 어렵자 쌍안경을 벗어 나뭇가지 끝에 매달아 놓았다.

정신없이 칼싸움을 하다가 어느 순간 나뭇가지를 쳐다 봤는데 가지 끝이

휭, 하니 비어 있었다.

"그날 그렇게 평생 처음으로 간직했던,

이제 막 세상의 온갖 물상들에 꽂히는 나이 어린 호기심을 온몸으로

부축해 주던 보물1호는 사라지고 말았다.

저녁 강가에 가물가물 흩어지는 물안개처럼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나의 조막만한 어린 가슴을, 내 하나밖에 없는 형과의 소중했던 유년의

추억 한토막을 뻥하고 뚫리게 해놓고." ~ 188-189쪽

(저자의 안타까운 마음이 손에 잡혀지지만...

가난한 누군가는 그 쌍안경이 무척이나 탐났을 것이다.

누가 볼까...

얼마나 초조한 마음으로 나뭇가지에 매달린 쌍안경을 슬쩍 가져갔을꼬.

모두가 못살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기억속에서 스윽 나타나 웃음짓게 만드는 유년의 추억들.

내일은 무엇을 하며 놀까?를 고민하며 잠자리에 들었던 어린 시절.

마음 내키는대로 들로, 산으로 뛰어 다녔다.

무척이나 심했던 나는 부두에서 배를 타고 놀다가 강물에 빠지기도 하고

갯벌에서 놀다가 밀물이 되어 허겁지겁 빠져 나오기도 했다.

밤 12시가 되면 오포를 불고 통행금지가 있던 그 시절, 

오포가 불기 직전까지 땀에 절어 뛰어 놀았다. 

원없이 놀아본 사람은 노는 일에 미련이 없다.

그 시절에 나는 평생 놀 것을 다 놀았다.

놀이의 종류는 끝도 없이 많고 하루 해는 짧기만 했다.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굳이 같은 나이가 아니어도 된다.

3~4살 위아래로 뒤섞여 놀았고 나이보다는 놀이에 있어서의 숙련도가

힘을 좌우했다.

주도권을 가지고 잘 놀기 위해서 밤새워 연습은 필수적인 일이었다. 

예를 들면, 공기 줍기를 잘하기 위해 적당한 크기의 돌들을 주워

다시 추리는 작업을 거쳐 고른 돌들로 3개씩, 4개씩, 5개씩, 6개씩

공기를 던지는 높낮이를 고려하며 공기줍는 연습을 했다.

왼손 오른손을 번갈아가며...

공기줍기를 다른 말로 '콩줏어먹기'라고 했다.

내 손톱들의 끝은 사선으로 닳아 있어서 늘 아프고 찢겨 있었다. 

놀다가 지치면 만화방에서 만화방이 문을 닫을 때까지 만화를 봤는데

날 찾으러 다니던 오빠가 나를 발견하고 내 머리를 툭툭 치곤 했다.

오빠 손에 이끌려 저녁을 먹기도 했지만 대체로 어린 시절의 나는 노느라

먹을 시간이 없었다.

당연히 나는 빼빼 마른 아이였고 내 손등은 마른 낙엽 쪼가리처럼 갈라지고

터져 있었다.

유년시절의 나를 떠올리다 보면 생각의 끝은 내 아이들에게로 향한다.

아이들에게 참으로 미안하다.

아이들의 유년은 나의 그것처럼 화려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지만 언제고 마음 속에 살아 숨쉬는 유년시절에 대한

그리움, 추억, 기억들이여... 

더불어 나의 유년에 언제나 나의 뒤에서 함께 했던 내 아버지, 엄마...

그립고 사랑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간단 명쾌한 철학 간단 명쾌한 시리즈
고우다 레츠 지음, 이수경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를 고민하던 젊은 시절,

철학은 나를 매료시키는 학문이었고 철학 공부를 하면 시대와 현실을

직시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써클에서 알던 철학과 선배와 함께 커리큘럼을 짰고 얼마의 기간동안 선배와

몇 권의 책을 읽었다.

기초없이 철학자의 오랜 사유의 결과물들을 알려고만 했던 탓일까?

당시의 짧은 공부가 수박 겉핧기 식이기도 했지만 부족한 내 지적 능력으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새삼 알게 되었다.

 

저자에 의하면 철학은 책상 앞에 앉아서 머리를 싸매고 옛날 책을 읽는 학문이

아니다.

저자는 살면서 어느 순간 불안에 사로잡히고 의지할 곳을 잃고 세상에

내던져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삶의 의미를 되묻기, 

당연시되는 상식에 대해 의심하고 우리를 둘러싼 외부세계와 우리 자신의 참모습을

생각하는 것이 철학이 시작되는 순간이며 그러한 사유들이 인생을 훨씬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생활과 삶 속에서 질문을 찾아내고 거기에 답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철학이다." ~ 23쪽

 

시대를 관통했던 철학과 철학자들의 자취, 고대로부터 복잡한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철학의 역사는 실로 광범위하다.

과거의 철학은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오늘날 우리 삶의 지표가 되고 있으며

철학자들의 언어와 사유를 통해 계승되고 발전해 나간다.

어느 시대에 어떤 철학자의 사유와 사상, 사조가 그 시대를 대표했는지의

흐름을 알게 하는 이 책은 각 사상들에 대해 깊이있게 다루지는 못하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철학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다는 미덕을 지닌다.

사실 각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의 태동, 사회 분위기, 그 이전의 철학자로부터

받은, 혹은 후대 철학자에게 미치는 영향 등을 한 권의 책에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책은 철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개론서의 성격을 띤다.

 

철학의 역사

1. 고대 그리스 철학은 '만물의 근원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

'만물의 근원을 묻는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발전해 간다.

대표적인 철학자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

2. 중세 철학은 380년에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기독교 교의를 철학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대표적인 철학자로 토마스 아퀴나스와 아우구스티누스가 있다.

3. 근대 철학의 주제는 신을 향한 시선에서 인간을 향한다.

르네상스와 신대륙 발견, 종교 개혁 등으로 근대의 문이 열리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관계가 철학의 주요 주제가 된다.

대표적인 철학자로 데카르트, 칸트, 헤겔이 있다.

4. 니체로부터 출발한 현대 철학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과학기술의 발전,

잇따른 민족분쟁 등으로 주제가 한층 복잡해졌다.

자신과 세계의 단순한 관계뿐만 아니라 언어와 문화의 구조, 이문화를 통한

만남, 환경 문제 등 전 지구적인 과제 등이 철학의 대상이 된다.

5. 동양 철학은 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한 각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다룬다.

인도 철학은 만물의 근원을 탐구했는데 그것은 서양 철학처럼 논리적.

이성적으로 사물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 고통의 원인을 알고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이다.

이슬람 철학은 가혹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을 결속시킬

종교로 탄생했고 신의 계시인 <코란>의 해석을 둘러싸고 전개된다.

춘추전국 시대에 철학이 생겨난 중국은 제자백가 시대를 거쳐 유교를 국교

이념으로 삼게 된다. 

6. 현대 사회의 철학

- 인류가 유한한 자연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미래 세대와 동식물을

포함한 생물의 생존을 생각하는 환경윤리(환경철학)를 확립한다.

-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묻는 철학, 페미니즘의 대두는 여성의 지위 향상을

가져왔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남녀의 자유와 권리의 보호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이다.

- 의학기술의 발달은 생명 탄생의 과정을 밝혔고 인류는 네가지 죽음에

(인공 임신 중절, 신생아 안락사, 말기 환자의 안락사, 장기 이식)

직면하게 되었다. 이것은 '생명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철학의 근본 물음을 재고하게 한다.

 

"정보의 파도 속에서 우리는 쉽게 떠밀려가고 편견에 쉽게 좌우된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을 멈추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휩쓸리면 기쁨이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일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삶에 신선한

기쁨과 감동을 준다. 지금까지 알던 세계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이 보이고, 멋지다고 생각하던 것이 빛을 잃는다.

이처럼 철학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 416쪽

 

철학은 스스로 묻기를 거듭하고 의문에서 출발, 깊이 생각하는 활동이다.

왜? 라는 질문을 하는 것. 그것이 철학의 출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프닝 - The Happening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해프닝>은 1999년, 29세의 나이로 <식스 센스>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아 

화제를 일으켰던 M. 나이트 샤말란이  2008년 야심차게 내놓은 SF 스릴러물이다.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살갗에 스며드는 공포에 몸서리치게 될 것이라는 그의 장담은

평론가들의 호감을 얻기에 역부족이었지만 충분히 공포스럽다.

그가 곳곳에 장치한 공포의 코드들은 지극히 정교하다.

바람소리, 먹구름, 나뭇잎과 풀들의 흔들림, 나무에 매달린 그네, 측면에서 바라보이는

시계의 움직임, 돌진하는 차 등은 죽음을 예고하는 섬뜩한 느낌을 자아낸다.

 



 

엘리엇(마크 월버그)은 고등학교 과학 교사이다.

수많은 벌들이 사라졌다. 이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는 주제로 토론을 벌인다.

답은? 

'자연현상은 설명할 수 없다. 과학적 지식, 어떤 이론으로도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문답은 영화 후반부 TV 앵커와 과학자의 대화에서 반복된다.

이상한 현상들이 일어났고 아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떼지어 흔들린다.

(바람소리와 함께 한 방향으로 일사불란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풀과 나뭇잎들은

인간에게 위안을 주던 자연의 모습이 아니다. 그저 극심한 공포의 대상이다)

공원을 걷던 사람들, 개를 데리고 산보하는 사람들,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모두 언어와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얼음(멈춤) 상태가 되어 죽는다.

책을 읽고 있던 소녀는 자신의 머리핀을 빼서 스스로를 찌르고,

공사장에서 일하던 인부들은 높은 곳에서 하나, 둘 떨어져 죽는다.

 



 

도로의 운전자들은 차에서 나와 쓰러진다.

이를 제지하던 경관은 자신의 총으로 스스로를 쏜다.

사람들은 이유를 모르고 자살한다.

목을 매서 죽고, 손목에 유리를 그어서 죽고, 전력질주한 차안에서 나무를 들이받고 죽는다.

 

영화의 도입장면은 대단히 충격적이다.

도대체 왜? 무엇때문에?

 



 

사건은 미국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메릴랜드로 확산되고 있다.

엘리엇은 부인 알마(주이 디샤넬), 동료인 수학 교사와 그의 딸(제스(에슐린 산체스)과

함께 펜실버니아행 기차를 탄다.

그러나 기차는 어느 시골 마을에서 멈춰 선다.

그리고 세상 모두와 연락이 끊어진다.

동료는 살아 있을 확률 62%의 아내를 찾아 프린스턴으로 떠나고.

그의 딸 제스, 알마, 엘리엇은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난다.

 



 



 

길 위에서 어떤 사람들은 죽고 어떤 사람들은 살아 남는다.

원인이나 이유를 알지 못하기에 훨씬 공포스럽다.

식물원을 하면서 식물들과 대화를 나누는 어떤 사람의 말은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식물에서 내뿜는 화학물질이 인간을 해로운 존재로 여기고 다른 식물들과

연대해서 사람을 죽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도 길 위에서 죽는다.

 





 

인간은 참으로 왜소한 존재이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바로 다음 순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약한 존재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간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류멸망을 다룬 영화 <2012>에서 티벳의 노스님은

멀리서 밀려드는 해일을 보는 순간 일어나 종을 두드린다.

노스님은 마지막 순간에 매일 아침 저녁 했던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의연하게 종을 치는 모습에 고개가 숙여졌다.

 

만 하루만에 사건은 종결된다.

영화에서 언급되는 재앙의 원인들은 정부의 음모설, 핵 방사능의 유출,

테러리스트의 화학물질 살포, 수질오염,식물들의 반란 등으로 다양하다.

 

<식스센스>의 놀라운 반전과 각본의 기발함에 찬탄했던 기억이

있던 터라 내심 커다란 반전이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충격과 공포를 안겨 준 도입부에 비해 영화는 싱겁게 끝난다.

반전은 없지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인간들은 과학문명의 발달로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향유한다.

그러나 풍요로운 삶을 위한 노력들이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와 닿아 있다면

행복한 삶은 멀어진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삶.

그것이 우리와 미래의 자손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다.

 



 

각본을 쓰면서 연출을 동시에 하는, 재능있는 인도 출신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독특하고 멋있는 감성을 지닌 그가 앞으로 <식스 센스>를 넘어서는

멋진 영화를 만들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색, 계 - Lust, Caution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두고 두고 마음이 아플 영화 색,계...

<와호 장룡>, <브로크백 마운틴>의 이안감독과

<화양연화>, <무간도>, <해피 트게더>의 양조위,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에 빠지는 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한 신예 탕웨이.

세사람의 조합이 눈부시게 아름답고 절묘하다.

 

<색, 계>는 노출과 높은 수위의 정사 장면으로 중국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고

국내 개봉전에도 논란이 있었다.

 

2007년에 개봉한 영화 색, 계를 며칠전 TV에서 보았다.

양조위의 슬프고, 허무하고, 쓸쓸하고, 종국에는 고통스러운

눈빛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섬세하게 캐릭터를 창조해내는 감독의 연출력에도 기인하지만 무엇보다도

배우 양조위의 눈빛과 몸 전체에서 스며 나오는 외로움 때문이다.

그 외로움에 물들게 된다. 무서운 흡인력이다.

그 눈빛과 외로움을 <화양연화>에서 보았다.

 

친일과 이를 처단하려는 반일세력이 있고 전쟁이 있지만,

감독은 역사와 민족적인 문제에 비중을 두지 않는다.

줄을 서서 식량을 배급받는 사람들과 마작에 열중하는 귀부인들,

신념을 위해 독립운동을 하는 젊은이들이 있지만

그들 모두는 배경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아무도 믿지 못하는 외로운 인물 이.

(일본요정씬에서 일본의 전쟁 도발에 대한 허무함을 표현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친일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가지는지의 여부도 알 수 없다)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연극부에 가입하면서 뚜렷한 의식 없이

(동료들의 고향선배를 죽이는 잔혹성에 질린 그녀는 단체에서 쉽게 이탈한다)

반일단체에 들어간 왕치아즈.

영화는 그와 그녀에 대해, 그들의 사랑에 대해 묘사한다.

 

영화 속의 사랑은 슬픔에 깊게... 닿아 있다.

 



 
1938년, 홍콩. 왕치아즈(탕웨이)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첫사랑 광위민(왕리홍)의 권유로

연극부에 가입하게 된다. 
영화를 사랑하고 연기에 열정을 가진 그녀는 연극을 공연하면서 관객과 일체감을 느낀다.

 




연극부는 연극을 통해 항일의식을 끌어 내려는 항일단체로 친일파의 핵심인물인

이易(양조위)의 암살을 계획한다.

 



 

그녀는 막부인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이의 아내(조안첸)에게 접근,

마작을 하며 친분을 쌓게 된다. 

그런 와중에 이는 상하이로 발령이 나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1941년 상하이.

그녀는 정부의 고위관료(장관)가 된 이의 암살작전에 다시 투입된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왕치아즈와 이는 서로 그리워했음을 알게 된다.

처음에 이는 그녀를 경계하지만... 점점 더 그녀에게 마음을 연다.

왕치아즈 역시 실제로 그를 사랑하게 된다.

 



 

스파이와 암살의 대상,

영리한 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연기가 아닌 실제로 마음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그럴 필요가 없다.

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그저 마음이 따르는대로...

 



 

일본 요정에서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는 이.

아름다운 장면이다.

마음을 다해 위로의 노래를 부르는 그녀.

차갑고 냉혹한 이의 마음은 그녀에게 향하고.

 



 

그는 그녀에게 6캐러트의 다이아몬드를 선물한다.

보석가게 주변은 그를 암살하려는 사람들이 깔려 있다.

그저 반지를 낀 그녀의 손을 보고 싶었다는 이.

불안해하는 그녀에게

"당신을 끝까지 지켜줄게."

그녀는 자신으로 인해 사랑하는 이를 죽게 할 수 없었다.

그에게 피신하라고 말하는 순간, 작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그녀의 떨림과 사랑, 그의 흔들리는 표정.

 



 

이는 자신 역시 감시당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이에 의해 동료들과 함께 사형에 처해진다.

 




이는 그녀가 사랑을 선택하고 후회없이 죽어간 이후에도 살아갈 것이다.

아마도 인생의 가장 아프고 아름답던 시절로 그녀와의 시간들을 추억할 것이다.

여전히 아무도 믿지 않고 어둠을 싫어하면서 고독한 눈빛 안에 자신을 감추고...

사랑, 그 허무함이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전거 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자전거와 나와 길, 그리고 여행.

눈으로 스며 가슴에 남는 조국 산하의 풍경들과 아름다운 사계가 담긴

이 책을 읽다 보니 저자처럼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뭉클 뭉클 솟아난다.

 

<자전거 여행>은 언어의 연금술사 김훈이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자신의 애마

'풍륜'을 타고 강원도에서 섬마을 진도까지 산하 구석 구석을 순례한 길과 땅의

노래이고 이 땅에서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진도 섬마을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노래가락이며 이순신과 이황, 김시습의 삶,

이름모를 무덤과 농부들, 섬진강 분교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 <남한산성>과 <칼의 노래>에서 등장, 땅과 흙의 묘사만큼 가슴 뜨겁게 하던 

민초들, 민중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 산하의 곳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임을 알 것 같다.

한 점에서 시작, 여러 지류로 나뉜 산들과 결국은 모든 흐름을 하나로 합치는

물의 하류가 둘러주는 자연을 배경으로 고난의 세월을 이기고 강인하게

살아낸 우리 민족의 뿌리, 그 뿌리를 그는 길 위에서 자전거 바퀴와 한축이 되어 

길과 하나 되면서 느꼈을 것이다.

그는 이 땅을 찾아 온 철새들, 홍매화와 동백꽃,

농사일을 배우기 위해 얼마의 기간을 맞아야 하는 소,

분교의 어린이들을 따라와 아이들과 같이 집에 가는 개들을 보며

따뜻한 시선으로 글을 써내려간다.

땅에 대한 사랑,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그의 글에서 장엄함을 끌어낸다.

현학적으로 여겨지는 부분에서조차 그 감정에 몰입될 수 있음은

필력의 설득력이 강함이다.

그 강함의 이유를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그의 우리 사람들과 우리 땅에 대한 사랑...

그것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2000년. 1월. 눈덮인 겨울 도마령을 홀로 넘는 김훈.

 



만경강 갯벌의 도요새.

 

도요새는 풍문처럼 와서 풍문처럼 가지만, 그들의 날아가는 생애는 처절한 싸움의 일생이다.

 



구룡포 해안의 바닷가 무덤

 

바다에 나이가 고기잡던 사람들은 죽어서 바닷가에 묻힌다.

물가에 가까운 무덤은 파도에 쓸려가 버렸다. 

 



의풍 마을의 매맞는 소

 

밭일을 처음 배우는 소는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

대가리를 내두르고 뒷발을 엉버티며 주인의 고삐를 따라오지 않는다.

이 소는겨울의 빈 밭에서 일을 배우며 겨우내 매를 맞아야 한다.

 



벼랑끝에 선 두 자전거와 두 사람. 김훈과 이강빈

 

"길은 끝나고, 가을빛 찬란한 저편으로 갈 수 없었다." ~ 250쪽

 



김훈과 그의 자전거 풍륜(風輪)

 

"노령산맥을 넘다 잠시 풍륜에 기대어 쉰다.

인간의 육신은 그와 함께 하는 모든 사물과 정한(情恨)을 나누게 되는가.

긴 여행 끝에 어찌할 수 없이 망가진 풍륜과의 작별,

잘 가거라. 나의 풍륜이여, 나의 늙은 연인이여." ~ 31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