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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식 똥, 재래식 똥 - 반짝이는 유년의 강가에서
윤중목 지음 / 미다스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이 책은 유년의 반짝이는 기억들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책을 읽으며 가슴 속에 선명하게 박혀 언제고 꺼내보며 미소짓는,
유년의 뭉게구름 같은 기억과 추억의 조각들을 만나게 된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수세식 똥, 재래식 똥>은 저자의 어릴 적,
초등학교 3학년에서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의 단상들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저자는 16편의 이야기를 쓰면서 자신만의 유년이 아니라 동시대인 모두의
유년을 복원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순수한 유년의 감정들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소중하고 아름답게 빛난다.
책을 쓰는 순간, 저자는 마음의 순수 원형에 다가가는 감동으로 눈물지었다고 한다.
저자는 붓다의 생애를 그린 만화책을 읽고 부처가 출가하여 수행한 것처럼
자신도 고학으로 자수성가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가출한다.
생각과는 달리 후회와 불안으로 거리를 배회하다가 밤이 되어 교회로 들어간다.
다음날, 자신을 찾으러온 부모님을 보며 후회와 반성의,
또한 감사와 안도의 눈물을 흘린다.
과자가 많지 않던 시절, 저자는 1974년에 처음 나온 초코파이의 신묘한
맛에 빠진다.
과자도 아니고, 빵도 아니고, 초콜릿도 아니고 젤리도 아닌 초코파이의 맛을
이태백의 '별천지 따로 있어 인간 세상 아니네'로 비유한다.
(먹을 것이 많지 않았던 그 시절,
남편은 카스테라를 처음 먹었을 때 세상에 없는, 전무후무한 그 맛에 반해
생일이면 쌀을 팔아 카스테라를 사달라고 어머니께 졸랐다고 한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유달산 아래 위치했는데 산중턱에 고아원이 있어서인지
고아들이 유독 많은 학교였다.
내 짝 역시 고아였는데 그 아이가 배급받는 옥수수빵 맛은 황홀했다.
'나도 고아라면 맛있는 옥수수빵을 매일 먹을 수 있을텐데' 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유년의 학창시절, 소풍 전날 과자와 간식거리를 가방에 가득 넣고 내일 아침에
비가 오면 어떡하나 하는 심정으로 밖을 내다보고, 또 보고...
소풍 날 장기자랑에서 저자의 친구 무태는 아리랑을 개사한 '신춘향가' 혹은
'신아리랑'을 부른다.
아리랑 / 춘향이가 / 보리쌀을 씻다가
이도령 / 피리소리에 / 방구를 꼈네.
방구를 / 꼈어도 / 이만저만 아니라
춘향이 / 미제빤쓰에 / 빵꾸가 났네.
저자는 누군가의 입에서 처음 불리다가 꼬마들에게까지 불리게 된 그 시절의
'신아리랑' 가사가 'Made in USA'라는 완력 아래 눌려 지내던 약소국가,
약소민족의 설움을 그려낸 뼈아픈 탄식임을 술회한다.
1, 2, 3학년을 내리 같은 반이던 여자친구의 엄마와 저자의 엄마는
여고 동창생이다.
친구의 집은 수세식 변소가 있고 기사 딸린 코로나 자가용이 있지만
저자의 집은 재래식 변소에 삼천리표 자전거가 있었다.
어느 날, 친구 엄마가 동생을 데리고 집에 놀러 왔는데 동생 녀석이 똥이
마렵다고 했다. 여름이라 구더기가 있었고 수북한 먼저 똥 위에 나중 똥이
또 수북이 쌓인 변소를 보고 기겁한 녀석은 변소에서 뛰쳐 나왔고 그들은
즉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혹시 여고 동창생과의 살림살이 차이로 서글퍼 하셨을지 모를 엄마를
생각하며 저자는 가슴이 아리다.
그는 다시 녀석을 만난다면 말하겠다고 한다.
"이 녀석아! 너 재래식 똥만 똥인 줄 알아? 수세식 똥도 똥이야, 똥!"
초등 3학년 때 고가의 계몽사 백과사전에 끼워팔기 경품인 쌍안경이 있었다.
골목 끝집에서부터 훑어가며 대문에 걸린 문패들 보기,
전신주 위에 앉은 참새새끼들 눈깔 보기,
하늘을 나는 전투기와 헬리콥터 보기 등
저자는 목에 쌍안경을 걸치고 높은 곳에 서있으면 오지의 대탐험가나 대장군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지상 최고의 장난감이자, 과학기구이자, 보물 1호였던 쌍안경...
어느 날, 야산에서 쌍안경을 목에 걸고 칼싸움을 하던 저자는 100프로 실력
발휘가 어렵자 쌍안경을 벗어 나뭇가지 끝에 매달아 놓았다.
정신없이 칼싸움을 하다가 어느 순간 나뭇가지를 쳐다 봤는데 가지 끝이
휭, 하니 비어 있었다.
"그날 그렇게 평생 처음으로 간직했던,
이제 막 세상의 온갖 물상들에 꽂히는 나이 어린 호기심을 온몸으로
부축해 주던 보물1호는 사라지고 말았다.
저녁 강가에 가물가물 흩어지는 물안개처럼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나의 조막만한 어린 가슴을, 내 하나밖에 없는 형과의 소중했던 유년의
추억 한토막을 뻥하고 뚫리게 해놓고." ~ 188-189쪽
(저자의 안타까운 마음이 손에 잡혀지지만...
가난한 누군가는 그 쌍안경이 무척이나 탐났을 것이다.
누가 볼까...
얼마나 초조한 마음으로 나뭇가지에 매달린 쌍안경을 슬쩍 가져갔을꼬.
모두가 못살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기억속에서 스윽 나타나 웃음짓게 만드는 유년의 추억들.
내일은 무엇을 하며 놀까?를 고민하며 잠자리에 들었던 어린 시절.
마음 내키는대로 들로, 산으로 뛰어 다녔다.
무척이나 심했던 나는 부두에서 배를 타고 놀다가 강물에 빠지기도 하고
갯벌에서 놀다가 밀물이 되어 허겁지겁 빠져 나오기도 했다.
밤 12시가 되면 오포를 불고 통행금지가 있던 그 시절,
오포가 불기 직전까지 땀에 절어 뛰어 놀았다.
원없이 놀아본 사람은 노는 일에 미련이 없다.
그 시절에 나는 평생 놀 것을 다 놀았다.
놀이의 종류는 끝도 없이 많고 하루 해는 짧기만 했다.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굳이 같은 나이가 아니어도 된다.
3~4살 위아래로 뒤섞여 놀았고 나이보다는 놀이에 있어서의 숙련도가
힘을 좌우했다.
주도권을 가지고 잘 놀기 위해서 밤새워 연습은 필수적인 일이었다.
예를 들면, 공기 줍기를 잘하기 위해 적당한 크기의 돌들을 주워
다시 추리는 작업을 거쳐 고른 돌들로 3개씩, 4개씩, 5개씩, 6개씩
공기를 던지는 높낮이를 고려하며 공기줍는 연습을 했다.
왼손 오른손을 번갈아가며...
공기줍기를 다른 말로 '콩줏어먹기'라고 했다.
내 손톱들의 끝은 사선으로 닳아 있어서 늘 아프고 찢겨 있었다.
놀다가 지치면 만화방에서 만화방이 문을 닫을 때까지 만화를 봤는데
날 찾으러 다니던 오빠가 나를 발견하고 내 머리를 툭툭 치곤 했다.
오빠 손에 이끌려 저녁을 먹기도 했지만 대체로 어린 시절의 나는 노느라
먹을 시간이 없었다.
당연히 나는 빼빼 마른 아이였고 내 손등은 마른 낙엽 쪼가리처럼 갈라지고
터져 있었다.
유년시절의 나를 떠올리다 보면 생각의 끝은 내 아이들에게로 향한다.
아이들에게 참으로 미안하다.
아이들의 유년은 나의 그것처럼 화려하지도, 자유롭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지만 언제고 마음 속에 살아 숨쉬는 유년시절에 대한
그리움, 추억, 기억들이여...
더불어 나의 유년에 언제나 나의 뒤에서 함께 했던 내 아버지, 엄마...
그립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