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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커노믹스 - 세계를 열광하게 만든 가장 아름답고 잔혹한 경제학
사이먼 쿠퍼 & 스테판 지만스키 지음, 오윤성.이채린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축구 : 브라질인의 삶>의 저자인 수학자 벨로스는
"이 세계는 혼란 그 자체다. 수학은 이러한 세계가 돌아가는 법칙을 읽어내는 방법이다.
리그 성적표도 마찬가지이다. 아주 간단한 계산만 할 줄 알면 된다. 구구단 3단보다
어렵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사실, 축구 사랑은 숫자 놀음과 관계가 깊다.
경기 결과, 승률, 선수들의 득점과 어시스트 수, 문제의 빅 매치, 리그 성적표,
선수들의 인기 순위, 클럽 선수들의 연봉의 액수 등등.
이 책의 저자 스테판 지만스키는 스포츠 경제학자이다.
그는 자살률, 소득 지출, 국가의 인구 등 축구 경기에 대한 진실을 알려 주는 숫자들과
그에 따른 아이디어를 축구 분석에 도입한다.
스테판은 '파이낸셜 타임지' 기자인 사이먼과 함께 사회학, 지리학, 심리학, 경제학적인
분석의 기술을 축구에 적용해 흥미로운 결과를 내놓았다.
어느 나라가 축구를 가장 사랑하는지 숫자로 증명할 수 있을까?
축구 경기가 사람들의 자살을 막을 수 있을까?
어느 클럽과 어느 나라 대표팀이 미래의 축구를 지배할 것인가?
왜 잉글랜드는 항상 패배하는가? 돈과 우승컵의 관계는?
리그와 토너먼트의 진실은? 왜 가난한 나라는 스포츠를 못할 수 밖에 없는가?
월드컵 유치는 왜? 어떻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가?
등등 축구 경기의 승패에 관한 직접적인 이야기들 이면에 감춰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모든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사커노믹스>의 부제는 '세계를 열광하게 만든 가장 잔혹하고 아름다운 경제학'이다.
부제 그대로 이 책은 자본과 결코 무관할 수 없는 스포츠인 축구에 대해 낱낱이 파헤쳤다.
그동안 치러졌던 경기들의 결과를 바탕으로 축구와 관련된 경제 현상, 사회 현상을
분석하여 수치화시켰다.
비록 통계의 오류와 주관이 개입된 해석들의 오차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축구 경기를
하나의 거대한 이슈로 보고 사회학, 경제학과 연관지어 분석했다는 점에서 우선
흥미롭게 여겨진다.
* 축구 클럽은 적자에 시달리고 주주에게 배당금도 주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000파운드 짜리 좌석에서 경기를 관람하지 않고 TV중계로 본다.
첼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생각하거나 관련 기사를 읽는다고 첼시가 팬들에게 돈을 청구할
수는 없다. 축구 선수의 성공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신문사, 방송사, 기업들이다.
축구계보다도 축구 외부 업계가 더 많은 돈을 번다.
* 패널티 킥은 스포츠계를 통틀어 가장 부당한 경기 방법이다.
현대 축구의 빠른 속도, 얽히고 설킨 다리들과 공, 고도의 속임수 등을 생각하면
심판이 올바른 판단으로 패널티 킥을 선언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승부차기를 포함한 패널티 킥은 수학자와 경제학자들의 관심 분야이다.
무엇보다도 패널티 킥은 실제 세계에서 게임이론(game theory ~ 골키퍼와 킥을 차는
선수 사이에 득점과 방어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행동을
수학적으로 분석)을 이해하는 좋은 사례이다.
*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팬이란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데 능숙한 존재이다.
팬들은 '우리는 잘했는데 심판이 쓰레기였다.'는 식으로 합리화한다.
그래서 매번 지기만 하는 팀도 쉽게 팬을 잃지 않는다.
월드컵 출전 국가의 국민들이 경기에서 진 다음날 아침, 사람들이 우울증에 빠져 삶을
팽개치는 대신 평소 생활로 돌아가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 팬들은 전력 차이가 나는 경기 관전을 좋아한다.
의외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잭 허시라이퍼는 이러한 현상을 '힘의 역설'이라고 부른 경제학자이다.
큰 부족과 작은 부족이 있어서 농사와 전투라는 두 가지 활동에 전력을 기울일 수 있다고
할 때 작은 부족은 모든 자원을 전투에 투입해서 상대의 자원을 약탈해 올 능력을 키운다.
즉, 허시라이퍼는 (수학적 모델을 통해) 경쟁 상황에서 규모가 작은 쪽일수록 가진
자원의 더 많은 몫을 경쟁 활동에 쓴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전쟁과 마찬가지로 축구에서도 약체 팀은 더 열심히 뛰는 경향이 있다.
강팀들은 중요한 경기를 더 많이 치르며 이들에게 하위 팀과의 경기는 실력 차이가
나지 않거나 더욱 강한 팀과의 경기보다 덜 중요하다.
작은 팀들은 수준 높은 팀과 싸울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며 그 경기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그래서 약체는 실력만 가지고 예상한 것보다도 더 자주 승리한다.
이런 이유들로 2002년 우리가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하지 않았나 싶다.
강팀은 비슷한 전력의, 혹은 더 강한 팀과의 경기를 위해 힘을 비축하려는 마음으로
우리와 전투에 나선 반면에 우리는 경기 하나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해 뛰었다.
홈팀의 잇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강한 팀들과의 경기를 거쳐 4강에 들어갔던
다윗 전사들과 국민의 응원 열기가 생각나 새삼 감격스럽다.
* 축구에 대한 애정은 직접 공을 차기, 경기장에 가기, 그리고 TV 중계를 보는 것이다.
이 책의 모든 수치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기준으로 통계치를 분석하여 결과를 내놓았다.
전체 인구 대비 축구인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 1위는 코스타리카,
인구 대비 총 평균 관중 수 1위는 잉글랜드,
TV 축구 중계를 가장 열심히 보는 나라 1위는 크로아티아이고 한국은 9위이다.
저자는 자료들을 종합하여 축구를 가장 사랑하는 나라 1위가 노르웨이라고 말한다.
1940년대 노르웨이에서 시작된 축구 복권과 관련된 경기는 모두 잉글랜드 리그 것이었다.
1969년 이래 토요일의 잉글랜드 축구 중계는 하나의 관습이 되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항상 축구를 하고 있으며 잉글랜드 축구 팀들에게 열광하면서도
국민 27명 중 1명 꼴로 국내 리그 경기장의 단골 팬이기도 하다.
스칸디나비아 지역 사람들은 지나치게 축구를 사랑하는 노르웨이 사람들에게 말한다.
"노르웨이인은 지나치다는 게 뭔지 모른다."
* 한일 월드컵의 유럽 내 시청률은 처참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유럽 시각으로 늦은 아침이나 점심 무렵에 열렸기 때문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숱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2010년 월드컵 개최지로 선정된 것은
요하네스버그가 유럽 표준시보다 한 시간 빠른 곳이라 유럽인들이 TV를 보기에 좋은
시간대에 경기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 국민 통합을 이루는 것은 전쟁과 재앙, 그리고 스포츠이다.
1963년 케네디가 암살 당한 뒤 일주일간 29개 도시에서 자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2001년 9.11 이후 미국인들의 자살 직통 전화 건수가 평소의 절반이자 역대 최저치인
300통 정도로 줄었다.
영국에서는 1977년 다이애나비 사망 사건 이후 자살 사건이 줄었다.
월드컵은 전국민을 한데 모으는 사회적 응집력이 강한 매개체이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자살 위험도가 가장 높은 이들도 이 시기에 전 국민의 대화에
함께 하게 되고 소속감을 가짐에 따라 시즌 기간에는 자살률이 현저히 줄어든다고 한다.
클럽 축구에는 반응하지 않던 많은 여성들도 월드컵에 열광한다. 조이너는 자신의 논문에서
"스포츠를 통한 통합은 대인 관계가 미숙한 사람에게 특히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 저자는 월드컵 개최가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수많은 나라들이 대회 유치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국민을 행복하게 하는 것' 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스포츠 대회 개최가 지역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2002년 월드컵에 한국은 90억 달러, 일본은 260억 달러라는 경제 효과를 예상했다.
그 정도의 경제 효과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비교적 냉철한 판단으로 개최 효과를 추정했는데
독일 축구 연맹조차도 겨우 20억 달러로 추정했다.
역대 대회 중 방문객이 돈을 가장 많이 쓴 대회였음에도 그다지 돈을 벌지 못한 것이다.
마인츠 대학의 프로이스 경제학 연구팀은 월드컵 방문객의 응답자에게 경비 지출 항목에
대해 상세하게 물은 결과 방문객의 총 지출이 28억 유로인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매년 독일에 쇼핑을 하러 오는 '패리스 힐튼' 족의 1조 유로가 넘는 지출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액수에 불과하다.
경제학자 험프리스가 폴란드에서 유로 2012를 공동 개최하는데 드는 비용을 100억 달러로
추산한다고 하니 투자금에 비해 들어오는 수익이 지나치게 작은 것이 사실이다.
월드컵 이후 거의 사용하지 않을 시설들과 함께 그 경제적인 손실은 참으로 크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들이 2018년 월드컵 유치를 바라고 있다. 대체 왜?
그 이유는 최근 선진 세계에 새로이 떠오르는 '행복의 정치'와 관계가 있다.
그동안 정치인들이 왜 굳이 있지도 않은 경제 효과를 가지고 주장을 포장했을까?
주류 정치인들은 정부의 일이 국민을 부자로 만드는 것이고 소득이라는 객관적 자료로
측정하는 것이 행복 지수를 측정하는 것보다 쉬웠기 때문이다.
유럽 정치인이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겨우 몇 년 전의 일이다.
영국의 '행복' 정치인 캐머런은 "지금까지 영국의 정치인들은 경제 성장이 전부인 양
정치를 이야기했습니다. 이제는 정치가 가족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계와의 관계가 가진 가치를 인식할 때"가 되었다고 촉구했다.
월드컵은 현대 사회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공공 프로젝트이다.
개최국의 국민 사이에는 강한 유대감이 형성되고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커진다.
월드컵 개최가 경제 발전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2002년 월드컵을 치르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무역에서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커졌을 것이다.
직접적인 경제 발전이 아니더라도 간접적인 이익을 남긴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정해본다.
* 히딩크는 현대 축구계에서 주도적으로 서유럽 축구 기술-속도가 빠르고 지칠 줄 모르며
팀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축구-을 전파한 인물이다.
그가 이끄는 러시아는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가 그랬듯이 유로 2008에 나가 그 나라
역사상 가장 훌륭한 축구를 선보였다. 히딩크는 축구 패권의 새로운 판도를 그리고 있다.
2001년 첫 '전도 지역' 한국에 온 그는 학연과 지연에 얽히고 위계질서를 중시 하는
한국 선수들의 병폐를 발견했다.
그는 실력과 재능을 갖춘 선수들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그 체질을 개선시키고 선수들이
노예근성에서 벗어나 자주적이고 지능적인 '네델란드 스타일'의 선수가 되게 하였다.
2002 월드컵에서 한국 선수들은 축구계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열정을 보여 주었다.
대회 직후 한국의 각 도시에서는 히딩크 동상 건립 계획이 나왔고 우표에도 히딩크
캐리커쳐가 등장했다.
* 저자는 미래에 월드컵 챔피언의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일본, 미국, 중국 , 세계 3대
경제 대국을 든다. 이들은 얼마든지 히딩크 같은 감독을 데려올 수 있다. 또한, 미래의
축구 선수들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훌륭한 의료 서비스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저자는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세계 최고의 축구를 접하지 못하는 일은 없으며
오직 가난만이 그 기회를 막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축구는 경제력이 우수하고 축구의 기반시설이 발달한 경우 선수들이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지만 기본기가 있고 조직력을 잘 갖춘 팀이면 언제든지 이변을 일으킬 수 있는 운동이다.
저자가 미래의 월드컵 챔피언으로 한국을 들지 않은 점은 유감이다.
많은 선수들이 해외에 나가 기술을 배우고 있으며 우리에게도 미래의 꿈나무들이 자라고
있는데도 말이다.
축구는 세계를 열광하게 만든 가장 잔혹하고 아름다운 경제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