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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 - 긴 호흡으로 인생을 바라보라. 그때 고생은 의미가 된다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동양철학자인 저자는 <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에서 부모 세대,
우리 세대, 자식 세대의 삼대를 통해 각 세대들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고생하면서 살았는지, 살고 있는지 삶의 발자취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부모 세대의 물러설 곳 없는 전쟁과도 같았던 보릿고개 시대의 고생,
변화와 저항의 시대 한가운데 있었던 삼겹살 세대의 고생,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자식 세대 즉, 피자 세대의 고생에 대한 이야기들은
형태는 다르지만 어느 세대의 고생이라도 그 고생이 만만치 않게 여겨진다.
특히, 굶주림으로 고통받던 부모 세대의 지난했던 삶과 절약과 희생으로 일관된
삶은 안스럽고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논어>, <맹자>등의 고전, 현대 소설과 가요등의 대중문화를 아우르는 저자의
해석을 접하며 막연히 피하고만 싶었던 고생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제1대 부모세대는 1900~1950년대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험한 일을
가리지 않던 세대이다.
가을 농사지어 겨울을 넘기고 나면 보리가 익을 때까지 빈 쌀독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다 보릿고개를 넘기던 세대...
저자는 부모세대를 떠올리며 조수미의 '나 가거든'을 듣는다고 한다.
"쓸쓸한 달빛 아래 내 그림자 하나 생기거든 그땐 말해볼까요.
이 마음 들어나 주라고.
문득 새벽을 알리는 그 바람 하나가 지나거든 그저 한숨 쉬듯 물어 볼까요.
나는 왜 살고 있는지.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서 살아야 하네.
이 삶이 다하고 나야 알텐데.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이유.
나 가고 기억하는 이, 나 슬픔까지도 사랑했다 말해주길..."
당신 목에 음식 넘기기가 아깝고 남루한 의복으로 헐벗으면서도 아이들의
의복과 먹을 것을 먼저 챙기고 교육만이 가난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식 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부모세대야말로 희생으로 점철된 세대이다.
자식들을 어떻게든 굶기지 않고 키우고자 했던 부모세대는 <명성왕후>의
슬픈 주제곡과 너무나도 잘 맞아 떨어진다.
부모 세대에게 인생은 한마디로 고생길이었다.
그러나 굶주림의 극한 상황에서 살아난 만큼, 누구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질곡의 세월을 견뎌온 부모 세대는 그래서인지 유독 자기식대로 고집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살면서 무에서 유를 일구면서 터득한 세상살이 이치는 절대적이기에
자기 고집을 내세우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겠지만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관용의 정신이 필요하다 하겠다.
제2대인 우리 세대는 빠르게 변화하던 1960~80년대에 더 나은 삶을 위해
고향을 떠나 살아온 세대, 40~50대의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자)이다.
생존의 위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부모 세대처럼
절박하거나 절실하지는 않았다.
부모 세대가 무에서 만든 유를 키우고 불렸으며 더욱 여유롭게 살기 위해
열심히 뛴 세대이다.
1973~1974년과 1978~1980년의 석유파동, 그리고 IMF를 겪었고 국제 경기의
침체 영향으로 한국의 산업과 개인의 살림살이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험했다.
늘 위기와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현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개혁과 혁신보다는
안정과 수구를 선호하게 만들었다.
민주적인 목소리와 토론을 거쳐 해답을 찾기보다 기업과 정부의 강력한 지도력을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던 사회 분위기는 권위적인 문화를 낳게 했고 자유와 민주를
열망하는 목소리를 누르고 있었다.
특히, 분단 상황과 군사 정권의 장기 집권으로 권위주의가 자리잡게 되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인 흐름으로 인해 사회 각 분야에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변화의
물결이 태동하면서 고도성장의 결실을 맺게 된 것도 우리 세대가 일군 기적이다.
저자는 이제 우리 세대도 기성세대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기성세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여러 가치들을 주도해 나가는 시대가
되었으니 이제 기성세대가 보여왔던 독선적인 자세를 벗어나 미래 세대와 함께
호흡해야 할 것임을 강조한다.
부모 세대가 자식들과 함께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죽어라 땅을 판 반면에
우리 세대에게 인생은 기회의 장이었다.
공교육의 기회가 주어졌으며 고향을 떠나서 대학 졸업장을 받고 능력에 따라
직업과 부를 늘릴 수 있었다. 부동산과 주식, 선물과 환차익 등 때를 맞추어
부자가 되는 기회를 잡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한 푼 두 푼 모아 목돈을 마련하던 부모 세대와 달리 수익률을 쫓아서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빈부 격차와 상대적인 기회 박탈, 그리고 상대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저자는 우리 세대에 어울리는 노래말로 권진원의 '살다 보면'을 예로 든다.
"살다보면 하루하루 힘든 일이 너무도 많아 가끔 어디 혼자서 훌쩍 떠났으면 좋겠네.
수많은 근심걱정 멀리 던져버리고 언제나 자유롭게 아름답게 그렇게.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란 꿈으로 살지만 오늘도 맘껏 행복했으면 그랬으면 좋겠네."
굶주림의 공포에서 벗어났다지만 남과 비교되는 삶은 여전히 무거운 현실이다.
저자는 우리 세대에게 '한 번 뿐인 나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라, 아이들의 인생은
아이에게 맡겨두고 하나씩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나가라고 조언한다.
제3대 자식 세대는 1980~1990년대에 태어나 풍요의 시대를 보내고 있다.
풍요로운 만큼 자식 세대는 재미를 찾고 즐거움을 누리는 것에 당당하다.
게임, 휴대전화, TV, 스포츠, 음악, 팬클럽, 애완동물 기르기 등
자식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한다.
자식 세대는 고통에 대해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해병대 캠프, 국토순례,
봉사 활동, 체험캠프 등으로 고통을 스펙으로 쌓으면서도 사소한 고통과 불편함,
그리고 가벼운 고생마저 참지 못한다.
자식 세대는 정보화, 세계화로 인해 이전 세대보다 훨씬 경쟁이 심하고 짧아진
변화의 주기에 대응해야 한다.
자식 세대에게 인생은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는 넓은 무대이지만 청년 실업 문제는
녹록한 문제가 아니다. 취업을 위해 이전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
어학 연수와 취업을 위한 각종 자격증, 높은 학점 등의 온갖 스펙을 쌓아도
취업문은 바늘구멍처럼 좁다.
인생살이가 각자의 바람처럼 고생아, 없어져라 하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생은 삶의 곁에 있기도 하고 복병처럼 불쑥 나타나기도 하고 잊을 만하면
나타나서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삶이 마냥 고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생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지만 고생 끝에 즐거움과 희열의 순간이 찾아 오는
인생은 저자의 말처럼 "인생은 고생(苦生)과 락생(樂生)이 릴레이하면서
수놓는 자수"와 같을지 모른다.
이 책에서 많은 부분 인용되고 있는 <논어>의 공자를 성인 공자로 키웠던 것은
공자 자신이 정면으로 부딪쳤던 가난과 고생이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공자를 두고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코피를 흘려가면서
하려고 힘쓰는 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맹자 역시 고통이 큰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시련의 일종이라고 간주한다.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커다란 임무를 맡기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그들의 심지를
괴롭게 하고 근육과 뼈를 힘들게 하고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몸을 헐벗게 하여,
그들이 하는 것이 해야 하는 것과 어긋나도록 한다. 왜냐하면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움직이고 성질을 참고 견뎌서 그들이 '할 수 없다' 또는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제로 잘 해낼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 169-170쪽 <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