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긍정 철학 - 선악을 뛰어넘는 강인한 삶
헨리 해블룩 엘리스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니체와 동시대를 살았던 저자 헨리 해블록 엘리스는 괴테 이후로 가장 위대한

정신력과 지성을 갖춘 인물이 니체라고 주장한다.  

그는 <니체의 긍정철학>에서 젊은 니체와 만년의 니체, 사상의 변화, 니체의

저서들을 통해 살펴본 니체 철학의 본질과 핵심에 대해 논하고 있다.

한 권의 책에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서구 철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니체의 사상 전부를 담는 것은 역부족이지만 저자의 세세한 묘사는

니체의 철학에 대한 열정적인 삶에 대한 이해를 보다 쉽게 만든다.

아버지가 일찍 죽었던 니체가 음악가 바그너에게 느꼈던 우정 이상의 감정,

우연히 헌책방에서 만난 쇼펜하우어의 책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가

청년 니체에게 끼쳤던 영향, 루 살로메에게 청혼했지만 거절당한 일,

평생에 걸쳐 심취하고 읽었던 랄프 왈도 에머슨의 책, 존경해 마지 않던

셰익스피어 등의 이야기들을 통해 니체의 성장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점 등은

이 책이 주는 잔잔한 재미이다.

 

오랜 세월 그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친, 30년 연상의 음악가 바그너와 

결별하게 된 것은 <니벨룽의 반지>상연을 보고난 후였다.

위대하지만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는데 모든 것을 이용하는 노회한 바그너가

작품안에서 지극히 민족적인 이교신앙을 구현한 점에서 자신과는 다르다는,

매우 강렬한 자신에 대한 깨달음에 이른다.

젊은 니체는 자신의 철학적 근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했다.

그는 인생 자체가 가장 숭고한 예술이라고 믿었다.

"나에게는 자기훈련이 필요했다. 바그너와 쇼펜하우어 그리고 근대의 삶을 포함해

나의 마음을 강하게 움직인 모든 대상과 내 안에 병적인 모든 것에 반대할 아군이

필요했다. 그리고 철학자의 눈으로 가능한 한 먼 곳에서 혹은 한없이 높은 곳에서

세계를 볼 필요가 있다." ~ 46-47쪽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는 그의 성장에 많은 영향을 끼쳤지만 니체가 진정으로

그들에게 동화된 것은 아니었다.

니체는 비관주의자도, 민족주의자도 아니었으므로.

그럼에도 대철학자의 마음 깊은 곳을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오랜 시절 의지하고 존경하던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를 마음으로부터 떠나 보내면서

얼마나 큰 심적인 절망을 겪었을지 짐작이 간다. 

 

니체 철학의 핵심은 근대 종교와 도덕에 대한 니체의 관점이다.

그는 사물간 상호관계의 본질을 날카롭게 감지했으며 독일 문화, 그리스도교,

현대 도덕과 관련된 모든 것을 철저하게 분석했다.

그리스도교 성직자 집안 출신인 니체는 평생 그리스도교에 대한 정열을 유지했다

그의 "신은 죽었다"는 단순한 종교적인 공격이 아니라 서구의 지성사를 궤뚫고

유럽 문명의 종말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선언인 셈이다.

"부처가 죽은 후 사람들은 몇 세기에 걸쳐 한 동굴 안에서 부처의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그림자를 가리켰다 - 신은 죽었다. 그러나 사람의 세상인지라 아마 몇 천 년에 걸쳐

신의 그림자가 가리키는 많은 동굴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시 이 신의

그림자와 싸워 이겨야먄 한다.!" ~ 84쪽 <즐거운 학문>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칭하고 있지만, 정반대인 것 앞에서 인류는 엎드려 절한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배후에 놓인 모든 것이 '교회'의 개념으로 신성한 것이라고

단언되었다. 그리스도교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십자가 위에서

못박혀 죽었다. '복음'은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 ~ 77쪽 <안티크리스트>

니체는 그리스도교의 구원에 대한 가르침이 마음이 약한 사람을 비탄과 절망감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마약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니체는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을 위한 종교에 공감하지 않았다.

그는 증오를 담아 <안티크리스티>의 끝을 맺는다.

" 나는 그리스도교에 유죄 판결을 내린다. 나는 그리스도교 교회에 대해,

예전의 고소인이 말할 수 있는 고소 중 가장 무서운 고소를 행하려는 사람이다. 

나는 그리스도교 교회란 세상에서 가장 부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니체의 교회에 대한 비판은 그리스도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곡해하고 몰이해하는 교회에 대한 비판이다.

올바르지 못한 교회는 동굴 속에 있는 신의 그림자일 뿐이다.

저자는 <안티크리스트>에서 죽음을 앞둔 니체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고

강조한다.

그가 올바른 정신상태였다면 그리스도교에 대해 달리 말했을지 자못 궁금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예술가로서의 기질이 발휘되었고

그의 독자적인 언어가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다.

후세에 길이 남을 작품임에 분명하지만 만년에 니체는 과대망상으로 인해

"나는 인류에게 , 인류가 가진 가장 깊이있는 책, 나의 차라투스트라를 보냈다."

고 말한다. 이후 자기찬미적인 성향이 더욱 강해져 자신을 인류의 천재라 여겼다.

저자에 의하면 니체가 분투한 이유는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데로 도덕 세계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였다. 그래서일까. 너무 많은 노력을 쏟은 니체의 뇌는

소모되어 무너지고 말았다. 1889년 회복할 수 없는 정신착란이 찾아오고

그는 완전히 미치고 말았다.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와 같은 기질을 지닌 니체는 철학이 책과 학문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근대 일반 철학자와 달리 철학을 삶 그 자체로 여겼다.

니체는 철학이 '진리'보다 완벽한 삶의 본질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여행과 풍경, 시와 음악, 도시를 사랑했고 사람들을 사랑했으며 무엇보다

고독을 사랑했다.

"어쩔 수 없이 말을 해야 할 때만 말해야 한다. 그것도 극복한 것만을 말해야 한다.

그 외의 것은 모두 쓸데없다." ~ 124쪽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가 얼마나 도덕적이고 자신에게 단호했는지 알게 하는 말이다.

 

저자는 니체의 사상이 니체 자신의 고통에서 생겼다고 한다.  

"고뇌와 병조차도 철학자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큰 고통이야말로 긍극적인 정신의

해방자다. 말하자면 살아있는 장작으로 우리를 불태우는 오랜 시간에 걸친

고통이야말로 말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고통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를 의심한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깊이 있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 124-125쪽

니체는 파스칼, 스위프트, 루소와 같이 비운을 겪었고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러나 니체가 미쳤다는 사실로 니체의 삶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니체는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정신력과 도덕 관념을 제시한 소중한 인물이다.

 

"사람은 나름대로 삶을 긍정해야 한다. 인생 최대의 문제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 문제의 답을 다른 사람에게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삶을 긍정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긍정이다.

단지 그것이 자신의 것이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피와 뇌를 가지고 천천히 조용히

성장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을 긍정한 다음에야 비로소, 인생이라는 계곡을 지나가는 동안에 우리를

격려해 줄 아군을 찾을 수 있다." ~ 뒤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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