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시모토 바나나의 <그녀에 대하여>는 네이버에서 연재되어 480만의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한 소설이다.
열대지방에서만 피는 붉은 바나나꽃을 좋아하여 '바나나'라는 필명을 지닌 저자는
'우리 삶에 조금이라도 구원이 된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문학'이라고 말한다.
표지의 애처로운 소녀 그림이 암시하는 대로 이 소설은 어린 영혼에게 바치는
작가의 따뜻한 위로이자 헌사이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반전이 있었다. 두 번을 찬찬히 읽어야 했다.
처음 읽을 때 쉽게 읽히면서도 안개가 낀 듯 모호한 분위기의 글들은 반전이 있음을
알고 두번째 읽어보니 글의 짜임이 치밀하고 적절한 복선들과 이중의 의미를 가진
단어들의 배열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저자는 후기에서 이 소설이 국내에서 영화 <헤드헌터>로 소개된 다리오 감독의 영화
<트라우마>를 기반으로 썼다고 밝히는데 영화 <식스센스>와 <디 아더스>, 그리고
<사랑과 영혼>이 연상되는 부분이 많았다.
영혼의 구원을 주제로 한 이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다소 의외의 소재들이 등장하는
판타지이다.
마녀학교, 백마녀, 강령회, 집단자살, 클리닉, 저주, 이 대에 걸친 마법의 계승 등이
그것인데 어린 소녀에게 주어진 가혹하고 극단적인 운명을 말하고자 차용했음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우리와 다른 일본 문화의 일부에 속하는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영혼은 과거의 상처들과 마주 하면서 감당하기 힘들었던 운명과 맞닥뜨린다.
인간은 운명이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서 겁을 집어먹게 마련이다.
나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것들의 힘과 기세는 때로 엄청나서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을 슬픔과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순식간에 내동댕이칠 수도 있다.
나름대로 위기 관리에 열심이지만 어느 순간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것이 인간이다.
유리같이 깨지기 쉬운 삶이기에...
이 소설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의 전조들을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어느날 한 순간에
황망하게 닥친 부당한 운명 앞에 설 자리를 잃어버린, 가엾은 영혼의 슬픔을 이야기한다.
잊고 싶은 기억들과 아픈 상처,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속에서도 소녀가 이모와
쇼이치의 사랑과 도움으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멋진 것인지를 깨닫는 결말은
가슴 뜨거운 감동으로 남는다.
줄거리
마녀 학교에서 공부하고 공인된 백마녀가 된 할머니는 이단종교를 만들었다.
강령회 때 모인 사람들이 이상한 암시에 걸려 집단자살하고 이를 옷장 속에서
숨어 보던 쌍둥이 자매였던 유미코의 엄마와 쇼이치의 엄마는 충격을 받고
재활치료를 받는다.
엄마와 이모의 연대가 강했던 것은 입원해 있는 동안 서로만을 바라보며
보듬으며 살아 남았기 때문이었다. 이모는 빈틈없이 처신했고 엄마는
이모에게 의지하며 목숨을 부지했다. 그 시기에 엄마의 마음에 이모에 대한
콤플렉스와 더불어 광기가 뿌리를 내렸고 이모는 훨씬 냉철했기에 같은 기질을
가지고도 일상의 삶에서 행복을 가꾸었다.
엄마는 사업을 확장시켜 나갔고 신비로운 힘과 예언 덕에 벼락부자가 되었지만
할머니의 저주가 되풀이된다.
결국 엄마 역시 강령회를 열었고 악령이 씌었다는 이유로 아빠를 죽이고
엄마 자신도 자살하고 만다.
이층 방에 있던 유미코는 그 충격으로 사건 언저리의 기억을 도통 할 수 없다.
그 이후의 기억마저도...
유미코는 쇼이치를 통해 친부모의 저주를 풀고 어린 시절의 많은 일들이 벌어지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이모의 유지를 전해 듣는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친부모가 건 저주를 풀기는 쉽지 않단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종종 너를 엄습할거야. 그것은 땅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불안에서 오는거야." ~ 24-25쪽
유미코는 쇼이치의 도움으로 과거의 장소와 사람들, 시간들을 마주하면서
고통속에서도 기억 저편에 묻어 두었던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며 상처를 치유해 간다.

엄마, 아빠, 옛 집, 클리닉 등의 장소들, 결국 과거의 시간들과 조우하며 상처를
치유해가는 소녀는 다름아닌 우리 내면의 모습이다.
순간 순간들의 고통과 슬픔에 맞닥뜨려 몸부림치면서도 선(善)하게 좋았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위안을 받는 소녀의 모습을 보며 독자들은 자신의 가슴 속 깊이 묻어 두었던
상처들을 보듬어 안을 것이고 가슴 따뜻한 추억을 들여다보며 위무를 받을 것이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상실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생의 한순간, 영혼이 떨릴 정도의 감격과 기쁨이 있더라도 어느 한부분은 슬픔을
등에 이고 평생을 사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도 삶은 충분히 빛나고 아름답다.
저자는 유미꼬의 입을 빌어 전한다.
"살아 있다는거 이런거잖아. 이렇게 살아도 충분하잖아." ~ 139쪽

좋았던 시절의 엄마에 대한 기억..

멋진 일은 없었지만 나름으로 온갖 것을 느끼며 보낸 자신의 애처로운 소녀시대를
기억하게 된다.

그녀를 변함없이 위로해 주었던 정원..

"떠나온 곳에서의 일은 언제나 그리움으로 빛난다." ~ 47쪽
"토대는 이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힘이에요.
누군가의 품에 안겨 본 경험, 귀염받고 자란 기억, 비 오고 바람 불고 맑게 갠,
그런 날들에 있었던 갖가지 좋은 추억, 부모가 맛있는 음식을 차려 주었던 일,
생각난 것을 얘기하고 받았던 칭찬, 의심의 여지없이 누군가의 자식이었던 것,
따뜻한 이불 속에서 푸근하게 잤던 잠, 자신이 있어도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면서
이 세상에 존재했던 일. 그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으면 새로운 사건과
부딪칠 때마다 그것들이 되살아나고, 또 그 위에 좋은 것들이 더해지고 쌓이고
하니까 곤경에 처해도 살아갈 수 있어요. 토대니까." ~ 148쪽
시간이 흘러갔고...흐르고...흐른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좋은 기억들을 잊어버리고 살게 되는 것일까.
모든 것은 기억속에 묻히지만 어느날, 어느 순간에 우리 내면에 환히 비치는
따뜻한 기억들이 있기에 그 힘으로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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