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만 해도 300페이지에 가까운, 1094항이라는 방대한 헤이그 판결은 ‘위안부‘ 문제의 집대성, 국제법의 새로운 고전, 페미니즘 사상의 결정판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평가를 받는 훌륭한 내용이었다. 이 판결의 특색은, 우선 첫째로 ‘민중법정‘의 사상적 실천적 의의를 명기한 것이다. "민중법정 같은 건, 어차피 강제력은 없지 않나,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이냐."라는 비판에 "이것은 하나의 판단을 나타내는 것이며, 형을 집행시키거나 국가에게 보상하게 하는 강제력이 없다고 해서 이 판단이 무효인 것은 아니다. 민중의 힘으로 일본 정부에 이것을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민중법정의 사상을 확실히 나타냈다. - P245

지금까지 남성 중심이었던 국제법에 여성의 관점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젠더 정의‘ 사상이 판결문에는 명확하게 들어갔다. 재판관 중에서도 특히 크리스틴 친킨은 국제법을 젠더 관점으로 전면적으로 새롭게 개선하자는 운동을 전개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생각이 판결에 확실하게 녹아들어 갔다고 생각한다. 이제까지의 국제 법정에서는, 전시 성폭력이 피해자 여성의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고, 여성이 속한 집단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라고 간주되었다. 극단적인 경우는 적에게 강간당한 딸을 가족의 불명예라고 해서 아버지가 죽이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전시 성폭력은 피해자 여성 자신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 P247

민중법정의 사상, 젠더 정의에 이어서 최종 판결의 세 번째 특색은, 이 ‘법정‘이 국가의 틀을 뛰어넘는 글로벌한 관점을 가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성노예제의 책임을 일본 정부에만 부과한 것은 아니다. 우익 등은 "왜 일본만 책망하는가?"라고 했는데, 헤이그 판결은 일본 정부에 주된 책임은 있지만, 구 연합국의 책임까지 확실하게 밝혔다. ‘위안부‘ 제도의 존재를 미국이든 연합국이든 알고 있었다. 압수한 일본군의 방대한 자료, 포로가 된 일본 병사와 일본군이 도주한 후에 남은 ‘위안부‘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서, 그들은 ‘위안부‘의 존재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도쿄재판에서 다루지 않았다. - P248

판결의 네 번째 특색은, 이 ‘법정‘이 도쿄 재판의 연장이라고 명언한 것이다. 우선 도쿄 재판에서는 최고 책임자인 천황을 소추하지 않았다. 이것이 전후 책임 문제에서 얼마만큼 마이너스의 영향을 주었는가. 그 때문에 천황의 명령으로 움직인 군인, 병사들의 전쟁 책임의 소재도 결국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때 늦은 정의‘라는 말이 있듯, 도쿄 재판의 결함을 분명히 한 것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P249

헤이그 판결의 다섯 번째 특색은 미래로 이어지는 새로운 사상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전시성폭력의 불처벌을 없애가자.‘는 국제적인 흐름 속에서, 그것을 더욱 전진시키는 데 공헌했다. - P249

그것은 피해자가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낸 것으로 시작된다. 또 가해국 여성이 그 목소리에 부응하여, 피해국만이 아니라 제3국 여성의 지지까지 얻어 정말 글로벌한 여성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국제법을 국가 중심에서 시민의 손으로, 남성 중심에서 여성으로, 현재 중심에서 과거와 미래로 확대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헤이그판결이 역사를 바꾼 큰 발걸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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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개인주의 외 고전의세계 리커버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훈 옮김 / 책세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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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이라는 책에서 인상 깊게 읽은 것도 있고, 주변에 일본 문학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과 나츠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어본 적이 있다. 읽기는 읽었는데, <인간 실격>은 제정신이 아니라 중간에 관두었고, <마음>도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아 중간까지 읽다가 그만두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런 작품을 읽을 때는 먼저 작품 해설을 먼저 읽고, 선이해를 얻은 뒤에야 본문에 들어가는 편인데, 당시 읽었던 번역본들(인간 실격은 더클래식, 마음은 문예출판사였다)은 그런 것이 없어 너무 답답했던 기억이 있다.

 

일본 문학과 나는 별 인연이 없다는 마음으로, 그들을 잊고 살다가 우연히 <나의 개인주의 외>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책은 나츠메 소세키의 주요 평문과 강연문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이런 책이면, 나라도 손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이왕에 나츠메 소세키를 이해하기 위한 가이드북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해제에서 소세키의 생애와 그 시대를 읽어보자. 이 부분을 읽고 나츠메가 상당히 일찍 태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1867, 즉 메이지유신이 일어나기 바로 1년 전에 태어났다. 구체제에서 살다가 신체제를 맞이했던 후쿠자와 유키치나 나카무라 마사나오 같은 이들과 달리 나츠메 소세키는 태어나면서부터 구체제의 해체 과정을 직접 겪었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 서양 문명을 가장 일선에서 공부했다.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형식상으로는 천황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근대 체제를 확립시켰다. 이 천황은 기독교적 신과 근대적 주권자의 형상이 결합된 존재로, 일본의 인민을 문명화하고 교화할 지도자이다. 그러나 이토가 사망한 뒤, 일본의 헌정 체제는 이토가 애초에 의도했던 바와는 다르게 흘러갔고, 결국 천황은 문명화의 지도자가 아니라 모든 정신적 가치를 독점하는 살아있는 신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상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때로부터 점점 고조되더니, 나츠메 소세키 말년에 이르러서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주의적 열광은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메이지라는 시대 상황에서 [자신의 생애를] 분리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 소세키는 자신의 생애를 통해 압도적인 열강의 압력에 항거하며 일본의 독립을 유지하고, 더 나아가 세계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자 했다. 즉 그는 메이지 일본의 특징인 국가주의가 인간의 자유와 독립을 억압하는 것에 반대하고 개인주의 도덕의 확립을 과제로 삼았던 것이다.”

 

나츠메 소세키는 국가주의가 만연하던 메이지 후기를 살면서, 일본의 근대화에 회의감을 품었고 일본의 미래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개인의 내면까지 국가가 침투하는 국가주의에 저항하여 나츠메 소세키가 강조한 것은 자유로운 개인의 권리와 의무, 자기본위였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나의 개인주의>라는 강연은 나츠메의 문제의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나츠메 소세키가 말한 개인주의란, 개인의 창조적 자아실현과 능력 및 개성의 발현, 그리고 이를 위한 모든 노력을 가리키며, 개인은 그 무엇도 아닌 자신의 행복을 위해이러한 자기본위의 노력을 기울인다. 왜 그것이 행복을 가져오는가. 개인이 지니고 태어난 개성이 거기에 충돌하여 비로소 안정되기 때문이다. 개인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자신의 개성을 발전시켜야 하지만, “동시에 그 자유를 타인에게도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타인의 자유를 방해하고, 타인을 내 마음대로 지배하려 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이와 반대로, 국가주의적 도덕은 개인적 도덕에 비해 훨씬 등급이낮으며, “개인주의의 기초에서 생각한다면 그 기준이더 높아진다. 따라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국가를 부르짖을 필요가 없고, “국가가 평온할 때에는 역시 덕의심 높은 개인주의에 중점을 두는 편이당연하다. 앞선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나츠메가 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일본의 국가주의적 성향을 비판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점두록>에서는 독일의 군국주의를 낳은 트라이치케의 사상을 비판한다. 트라이치케의 사상은 단적으로 말해 국가를 위해서라면 언제 희생해도 상관없다는 신념이다. 이 국가란, 프로이센이다. , 프로이센의 승리와 번영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청년들을 수단삼아 전투에 내보내 희생시키고, 주변 국가라도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정복한다. 그는 인의박애는 입으로 말할 수는 있어도 정치적으로 행할 사항은 아니라고 믿었다.” 이렇게 독일이 전 세계를 정복한다 하더라도, 과연 인류의 행복, 자유,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가. 타인과 타국을 정복하여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상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인가.

 

이러한 나츠메 소세키의 문제의식과 사상이 어떻게 그의 문학에 반영되었을지는 이제 다음 독서의 과제이다. 평가 좋은 번역본을 골라 읽어봐야겠다.

 

 

마지막으로 참고가 될 수 있으니, 나츠메의 작품 몇 개의 연보도 함께 실어본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905

<도련님><풀배개> 1906

<태풍> 1907

<그 후> 1910

<> 1911

<마음> 1914

<명암>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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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6-02 23: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츠메 소세키를 읽기 전에 읽으면 좋을것 같네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저도 항상 소세키를 읽어보고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실 처음 읽은 책이 딱히 끌리지 않아 어쩔까 했는데요. 이 책을 읽어보면 확실히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

Redman 2021-06-05 16:30   좋아요 1 | URL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ㅎㅎ

scott 2021-07-07 16: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민우님 이달의 당선 축하합니다
오늘 소세키의 책 들고 출근 했는데
행복한 한주 보내세요 ^ㅅ^

Redman 2021-07-07 23:3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scott님!! 저는 이번에 소세키 소설을 구입해야겠습니다 ㅎㅎ

서니데이 2021-07-07 16: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Redman 2021-07-07 23:40   좋아요 1 | URL
매번 감사드립니다 서니데이님^^

그레이스 2021-07-07 16: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변역을 지나는 지하철안에서 격하게 축하합니다.

Redman 2021-07-07 23:40   좋아요 1 | URL
선풍기 바람 부는 제 방 안에서 격하게 감사드립니다 😊

초딩 2021-07-0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민우님
축하드려요~

Redman 2021-07-08 01: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초딩님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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