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세와 타협 - 임진왜란을 둘러싼 삼국의 협상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 11
김경태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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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탐구란 사건과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적하는 것이 기본 목적이요, 여기에 더해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즉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떠한 방식을 통해 발생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학자에 따라서 ‘왜’와 ‘어떻게’ 중 어느 것에 더 중점을 둘지는 달라지겠다. 이것은 전쟁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전쟁은 왜 일어나는가?’와 ‘전쟁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두 질문의 문제의식은 비슷하고 공유하는 부분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도 있다. 만약 ‘왜’에 더 집중할 경우, 전쟁에 대한 논의는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책임론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원인을 빌헬름 2세와 독일이라는 특정 국가, 특정 개인에게 돌린 프리츠 피셔의 ‘피셔 테제’가 이런 책임론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태 이해와 해결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반면에 후자인 ‘어떻게’에 집중할 경우, 우리는 전쟁을 불러온 핵심 행위자들의 결정을 시계열적으로 파악하게 되고, 개인과 국가 간 상호작용의 연쇄를 바라보게 된다. 구체적으로는 국제관계에서 특정 국가의 유책성, 개인의 행위능력과 구조적 제약의 관계 같은 문제에 주목하여 전쟁을 불러일으키게 한 흐름과 사건의 연쇄를 볼 수 있다. 이것이 임진왜란을 이해하는 데 어떤 유익을 줄 수 있을까? 김경태의 <허세와 타협>에서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임진왜란을 발발 이전부터 전쟁의 종결까지 다룬 책이지만, 저자는 전투의 흐름을 상세하게 기술하기보다는 조선, 명, 일본 사이의 교섭에 초점을 맞추어서 임진왜란을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목차는 1부 <전쟁 전야> 2부 <전쟁과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 3부 <협상 결렬, 다시 시작된 전쟁>으로 구성되었는데, 1부에서는 선조, 도요토미 히데요시, 만력제의 생애와 조일명의 관계사를 간략하게 다룬다. 이런 구성도 국제정치적 접근을 중시하는 저자의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자의 이와 같은 관심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임진왜란에서 실제 전투 대결 기간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가 전면 공격에 나선 1592년 4월 중순부터 1593년 6월 하순 진주성 학살까지 1년 남짓한 기간, 정유재란이 시작된 1597년 5월부터 이듬해 1월 초 울산 전투까지와 조명연합군과 일본군의 전면전이 벌어졌던 8월부터 11월 말까지 약 2년 정도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은 전투가 있었던 기간보다 조선, 명, 일본 사이의 강화 협상과 외교 접촉이 있었던 기간이 더 길었다. 그러므로 임진왜란에 대한 탐구는 이순신이나 김시민 등의 영웅적 행적이 아니라 동아시아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접근할 때, 보다 의미 있는 탐구가 이뤄질 것이며, 이 책을 읽는 우리의 관심도 이 전쟁의 방향과 종결을 둘러싸고 어떠한 논의들이 어떠한 배경에서 행해졌는지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대중적 관심사는 임진왜란이 ‘왜’, ‘누구에 의하여’ 일어났는가였다. 책임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 전쟁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이다. 이런 사실은, 조선이 부당하게 비난받는 것에 반발하여 전쟁으로 인한 피해에서 조선을 면책하고자 하는 견해에 의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한 개인의 위험한 망상과 침략 의지로 일어난 전쟁이었다. 조선이 어떻게 행동했건 이 전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책임론에만 집중하여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을 극도로 단순화한 견해이다. 전쟁 의지로 충만한 개인이 있으면 다른 행위자의 의사결정과 관계없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러한 견해가 얼마나 이론적으로 타당하고 정합성을 가지는지와는 별개로, 이런 견해가 가지는 최대의 문제점은 바로 전쟁의 원인을 한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관점 그 자체에 있다. 과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 의지는 임진왜란에 대한 완정(完整)한 설명이 될 수 있을까? 그보다는 히데요시의 침략적 야망이 어떠한 정세를 만나 결국 동아시아 세계를 전쟁으로 이끌고 갔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최우선이지 않을까? 이것이 개인의 행위능력과 구조적 제약이 국제관계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다.

물론 이 얇은 책은 그 복잡한 질문에 충분한 답을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저자는 역사적 사건에서 추상적인 테제를 이끌어내는 대신 구체적인 사건의 경과를 따라가며 서술할 뿐이다. 중간중간 저자의 평가가 들어가기는 했지만, 이는 극소수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임진왜란 입문서이다. 이것은 임진왜란이라는 국면을 이끌어간 주요 행위자들(선조, 만력제, 도요토미 히데요시, 소 씨 가문, 송응창,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 심유경 등)에 대한 정보와 임진왜란에 접근할 기본적인 관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지만, 이론적 통찰에는 유용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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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8-10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Redman 2022-08-11 17:3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편안한 하루 되시길!!

mini74 2022-08-10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유익하고 좋은 글 고맙습니다 ~ 축하드려요 *^^*

Redman 2022-08-11 17: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미니님~~!

그레이스 2022-08-10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작 축하드려요

Redman 2022-08-11 17: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2-08-10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김민우님^^
기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Redman 2022-08-11 17:36   좋아요 0 | URL
이하라님 매번 감사드립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