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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마리 오베르 지음, 권상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12월
평점 :
표지의 색감이 너무 예뻐서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조그만 양장본이라 가방 속에 넣어다니며 시간날 때마다 조금씩 읽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자매 관계인 이다와 마르테의 여러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40대가 된 독신여성 이다가 느끼는 외로움, 사랑 받고 싶은 욕구, 모성애, 미래에 대한 불안함 등의 다양한 감정을 두 자매의 이야기 속에 잘 녹여놓았다.
'어른들', 왜 제목이 어른들일까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조금은 알겠다. 책 뒷표지에 한정현 소설가님이 써놓은 그 글이 정말 이 책을 제대로 설명해놓았다는 생각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든다.
"자매의 모습은 내가, 우리가 숨기고 있던 마음속의 덜 자란 나 자신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내 나이와 비슷한 마흔이 된 이다의 마음이 참 공감된다. 스물다섯에도, 서른다섯에도 주위의 상황말고는 변하지 않는 나에 대한 불안한 마음. 어른이 되면 아주 대단한 내공이 쌓일 것 같지만 어른이 되고 보니 몸만 나이 들었지 마음은 여전히 어린, 어떻게 해야할지 불안해하는 어린이라는 것을 알겠다. 소설 속 이다도 그런 마음이겠지. '어른들'은 완벽할 것 같았지만, 어른도 마음으로는 여전히 어리고, 미성숙한 존재이다. 나이듦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느끼는 감정이 달라진다. 마흔의 이다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공감하면서 읽었다. 마리 오베르 작가님도 이다와 비슷한 상황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심리 묘사가 탁월하다.
마흔이 된 이다가 '나'이다.
"착하고 점잖은 척해봐야 내게 남는 건 없다."
어릴 때 누구보다 착하고 점잖은 척 살아왔던 이다인데. 이렇게 생각하는 이다는 자신의 마음이 닿는대로 사랑하며 산다. 이다의 엄마와 스테인, 마르테와 크리스토페르, 올레아와 함께 이다는 늘 그렇듯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별장에서 여름 휴가를 맞이한다. 이다는 나중을 위해 난자 냉동을 준비하고, 동생 마르텔이 임신 15주라는 반가운 소식을 듣는다.
어릴 때부터 살던 그 집의 침대에 누워서 이다는 생각한다. 친구들도 떠나고, 마르테도 가족이 생겼는데 나는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결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할 그런 고민들. 이다는 다른 가족의 모습을 보며 외로움을 느끼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한다. 자매는 어떤 관계일까? 친구 같으면서 경쟁자이기도 한 이다와 마르테. 여느 집 첫째가 그렇듯 이다는 엄마의 마음을 미리 헤아리는 착한 딸로 살아가고, 마르테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막내로 산다. 첫째의 눈에 그런 동생이 싫었을 것이다. 이다와 마르테는 겉으로는 위하는 듯 보이지만 서로에게 날이 서서 말한다. 임신한 마르테는 남편의 아이인 올레아가 성가시기만 하다. 그런 올레아를 '이다 이모'는 잘 챙겨주는데 그 모습 역시 마르테보다 자신이 더 인정받고 싶어서이다.
오년 전, 십년 전과 다를 것이 없는 삶. 피부는 칙칙해지고, 흰머리가 생기는 것은 달라졌다. 사랑하는 사람도 곁에 없고, 나의 가족은 나 말고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일을 하고 있지만 나머지 시간은 무료하다. 이것이 결혼하지 않은 40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생각이다. 결혼을 했다면 현재 나에 대해 고민할 틈이 없을만큼 하루하루가 바삐 지나가게 되지만. 결혼과 출산, 이 두 가지가 요즘은 각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두 가지중 어떤 것이라도 우리의 삶을 많이 변하게 한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하지 않은 이다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고 느낄 것이다. 나에게 엄마나 아내, 며느리라는 새로운 역할이 생기지 않았으니까. 역할이 많아질수록 많은 변화가 찾아오니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이다가 동생의 가족을 만나면서 나만의 아이를 갖게 된 모습도, 나의 남편을 갖게 된 모습도 느껴보게 된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괜찮아, 우리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짧은 여름휴가는 끝나고, 또다시 별장에서 자매가 만나게 되면 어떤 관계가 되어 있을까?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일상적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르테가 낳은 아기를 만나게 될지...내 마음 같아서 다음 장, 다음 장이 궁금해져서 읽었다. 2편이 나오면 좋겠다. 이다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나갈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