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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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때에, 이 책을 잡은 것은 실수였다. 실수였다고 말하고 싶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내 나이를 담담이 받아들였을 내년이나, 혹은 그 다음해에 이 책을 잡았다면 물 흐르듯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나이를 한 달 앞둔 이 시점에서 책을 집어든건 정말 실수였다. 에브리맨의 '그'처럼 내 가슴을 치면서 책을 읽어내려갔으니 말이다.

이 책의 줄거리를 말하라면 단 한 줄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라는 남자가 태어나서 죽음을 맞을때까지의 이야기다. 그만큼 평범하다. 제목이나(에브리맨) 이름이 없는 '그'의 이야기 모두 주변에서 흔히 듣고 관찰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결코 평범하게 지나칠 수 없는 '그'의 이야기에서 심장을 꿰뚫는 진실을 발견하는 것은 결코 나만이 아닐거라 생각한다. 찬란한 젊음을 지나 유약한 노년에 접어들면서, 인간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져내릴 수 있는지, 혹은 외로워질 수 있는지 심도있게 그린 소설은 거의(혹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제 한 해도 입원 없이 지나가지 않았다. 장수한 부모의 아들이고,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에서 공을 들고 뛰던 때와 마찬가지로 변함없이 건강해 보이는 여섯 살 위의 형을 둔 동생이었지만, 그는 아직 육십대에 불과한데도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몸은 늘 위협을 당하는 것 같았다. 그는 세 번 결혼했고, 애인들과 자식들과 성공을 안겨준 흥미로운 일자리를 가졌지만, 이제 죽음을 피하는 것이 그의 삶에서 중심적인 일이 되었고 육체의 쇠퇴가 그의 이야기의 전부가 되었다. (p.76)
 

누가 노년을 아름답다고 했던가. 불안한 젊은이보다는 삶의 지식이 충만한 노인들이 더욱더 빛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을 피하는 일이 전부다. 고통과 친해져야 하고, 외로움에 익숙해져야 한다. 나이가 들 수록 부모와 형제가 하나둘씩 떠나가고, 혹은 삶의 동반자인 배우자마저 먼저 떠나보내야 한다. 사랑하는 모든 것이 악몽처럼 쓸쓸이 사라질 때 혼자 남은 노인은, 과연 어떤 꿈을 꾸며 잠이 들련지.

'그'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였다. 젊고 활기찼을때는 자신이 완전한 인간이였음을 확신했던 보통 사람-하지만 늙고 병들고 나서야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언제까지나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줄 알았던 그는, 이제 홀로 남아 노년의 씁쓸함을 곱씹고 또 곱씹고 있다. 내가 나이드는 것을 두려워 하는 이유 역시, 그가 노년에 느끼는 그 감정과 마찬가지겠지. 다른 사람의 사랑이나 관심따윈 필요 없어도 나 혼자 완벽히 아름다운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었지만, 나이들고 매번 수술과 입원을 반복하면서 일상을 이야기할 사람들이 그리워지고 과거의 아름다운 내가 절실히 필요해지는 그것-바로 그것이 노년의 악몽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나이 드는것을 두려워하는 걸거다. 영원히 지금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하고픈 덧없는 희망을 꿈꾸고 또 꿈꾸는 것....

"그냥 오는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 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

이 문장에서 구원을 찾았다고 하면 너무나 큰 과장이라고 비웃음을 살까? 상관없다. 가슴치며 책을 읽다가 이 문장에서 넋놓고 비로소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나도 '그'처럼 보통 사람이니 살면서 수많은 실수를 할 것이다. '그'처럼 불륜을 저지를수도 있고, 결혼생활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이혼할 수도 있겠지. 어쩌면 노년을 나혼자 쓸쓸이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생을 다시 받아들일 수 있는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내가 선 자리에서 버티고 서서 그냥 받아들이는 것-그것이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어쩌면...모든 삶이 저 문장안에 들어있는게 아닐까 싶다.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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