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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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작은 동네의 바보에게 뭘 하는지 물으면, 그는 늘 “기다려!”라고 대답했다. 모든 사람이 그에게 묻고 또 물었고, 모두 그의 대답도 알고 있었다. 도대체 뭘 기다리는지 물으면 그는 “뭘 기다리는가 하면……”이라고 말하고는, 생각해내려고 한참 동안 애를 쓰다가 “뭐냐 하면…… 뭐냐 하면…… 그냥 기다려”라고 대답했다.....  

....고통으로 인식된 기다림. 하지만 동네 바보는 기다림을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기다림은 존재 자체에 가까웠다. 평생 기다리기, 오로지 기다리기. <41~42쪽> 

작가 페터 빅셀의 말처럼 기다림은 존재 자체에 가까울지 모른다. 우리가 인식하든 그렇지 못하든 '기다림'은 늘 우리와 함께 간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기다리며 살아간다. 출근하는 시간을, 퇴근하는 시간을, 연인과 만날 시간을, 친구와 만날 시간을 늘 기다리며 살아간다. 어떤 기다림은 고통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원히 다가오지 않을것만 같은 무언가를 기다리노라면 인생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기다림의 진리를 동네 바보는 정확하게 이야기해준다. 그냥 기다려. 

스위스의 주간지 <슈바이처 일루스트리어테〉에 기고한 칼럼들을 담은 이번 산문집은 일상에 대해, 그리고 주위의 모든 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해준다. 결코 길지 않은 글들이지만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한 이유는 한 편 한 편 깊이 생각하고 내 자신을 돌아봐야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점점 현대화 되어가면서 속도는 빨라지고, 빨라지는 속도에 대비하여 기다리는 것을 지루해하는 사람들이 더욱더 늘어만갔다. 기다림의 미학을,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잃어버린 것이 요즘의 일상이리라. 저자는 그런 현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들어주고 있다. 예전에 이웃들과 함께 일요일을 보내며 산책을 하던 그 날을, 맥주집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축구 경기를 응원하던 여유를, 연착이 된 기차 안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이야기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는 것이다. 

밀가리 풀을 이용해서 온전히 연을 날릴줄 아는 열두살짜리 소년이나, 혹은 기차 시간표를 모두다 외우고 다니는 지적 장애인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까? 그들은 모두 자신만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일상을 가진 이들이였다. 우리는 어쩌면 세계화라는 이름 안에서 너무나 획일화되어 가는것은 아닐까. 조금은 기다릴 줄 알고, 이웃들을 자세히 볼 수 있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가는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은 아닐지. 페터 빅셀의 글을 읽으며 비로소 나만의 세계에서 삶의 여유를 찾은 것 같아 마음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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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지날 때까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피안 지날 때까지
나쓰메 소세키 지음, 심정명 옮김 / 예옥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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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읽다가 신기한 단어를 발견했다. 고등유민(高等遊民)-직업을 통한 사회활동을 거부하는 고학력의 방관자적 지식인을 뜻하는 말이란다. 나쓰메 소세키가 만들어낸 단어라고 한다. 이 단어야말로 책의 주인공인 게이타로를 분명히 보여주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찾기위해 고군분투하는 게이타로는 어쩐지 일상이 시들해지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렇게 딱히 하고싶은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대학까지 졸업하고 나서 빈둥빈둥 놀고 있자니 자신이 쓸모없어 보인다.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구하지만, 비전있어 보이는 일자리는 없고 전부다 바보같아 보인다. 그래서 같은 하숙집의 모리모토와 한가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하고, 혹은 친한 친구인 스나가의 집에 들려서 쓸데없는 잡담을 주고 받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탐정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게이타로라는 등장 인물을 내세워서 각 인물들의 내면까지 깊고 세밀하게 조사해나가는 것이다. 이런 형식은 처음 접해보는 것이라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 당시나 지금이나 세상살이가 비슷한만큼 게이타로의 주변인물들에 대한 심리변화가 쉽게 이해되기도 했다. 

모험을 즐기며 일반화되는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리모토, 누군가를 부리며 지나치게 관찰하는 다구치, 사람들과의 관계에 얽매여 자신안에 또아리를 튼 스나가, 조카의 죽음을 눈앞에서 관찰한 치요코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어디선가 들어봤을만한 것이다. 그럼에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모두 내 이야기같다는 기분도 든다. 마치 게이타로가 점쟁이에게 들은 '자기 같으면서 남 같고, 긴 듯하면서 짧고, 나올 듯하면서도 들어갈 듯'한 물건이 내게도 있을것만 같은 기분이다. 

어차피 우리는 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모든 일에 주인공이지만, 조금만 돌려보면 세상이라는 거대한 책에 속한 단편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단편들이 모여 책을 이루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모여 한 세대를 이루는 것은 아닐지. 게이타로와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쉽게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안개같이 떠다니는 이야기가 어느 순간 선명한 그림이 되어 나타난 듯한 기분마저 든다. 그것이야말로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의 역량일테지만 말이다. 

창 너머로 바라보는 타인의 이야기-창 너머에 있는 것이 과연 타인일까, 아니면 나 자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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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물에 책이 있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시냇물에 책이 있다 - 사물, 여행, 예술의 경계를 거니는 산문
안치운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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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집을 읽는 즐거움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여다 본다는데에 있다. 평소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란 쉽지 않다.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깊은 대화를 통해 요즘 생각하는바를 알아낼 수 있겠지만, 평소 만나보기 힘든 명사라든지, 작가들은 그 생각을 알아내기 힘들다. 그래서 부지런히 에세이집을 찾아서 읽는 편이다. 요즘, 그들의 생각을 알기 위해. 

연극평론가로 알려진 안치운님의 산문집을 읽으면서 그의 생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책은 크게 '살며, 여행하며, 공부하고'라는 세 가지 주제로 나뉘어있다. 세 가지 주제에 저자가 생각하는 바가 농밀히 담겨있다. 

뭐든지 빠르게 해치워버리는 요즘 세태를 아쉬워하며 느리게 걷는 삶을 예찬하기도 하고, 자전거가 일상이 된 다른 나라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허리가 아파 누워 있으면서 절망하기 보다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듣게 된 것에 감사하고 어느 늦은 봄 밤에는 안치환의 노래를 읊조리기도 한다. 

<걷는 일은 내게 세상과 삶을 다시 연역할 수 있는 계기였다. 배워서 걸은 것이 아니라 걸으면서 많은 것을 다시 배울 수 있었다. 걸은 적이 있는 길을 다시 걷더라도 부질없다고 여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요즘 걷기의 즐거움에 푹 빠진 내게 이 문장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어차피 모든것은 걷고 듣고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던 차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걷기와 자전거를 타는 부분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는 공감할 부분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많이 아쉬웠다. 남의 생각을 읽는것도 좋지만, 공감할 수 없는 생각을 읽어가는 것도 큰 힘이 든다는 걸 조금은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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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비>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리틀 비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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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속담에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리틀 비에게 한다면 그녀는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렇게 뜨고 내게 이렇게 물을 것만 같다. 그럼 당신도 내 상황을 보고 모르는 척 할건가요? 다른 사람들처럼?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세상이라고 다급하게 변명하고 리틀 비에게서 눈을 돌리는 나는, 얼마나 비겁한가.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내가 얼마나 비겁한 사람인지 마주하고 또 마주해야만 했다. 

영국에서 '닉시'라는 잡지를 발행하는 편집장으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새라는 남들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을 가진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는 행복하지 않다. 그녀는 결혼하고는 금세 결혼생활에 진저리냈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불륜을 저질렀다. 이제 그녀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불행한 결혼생활로 끝낼 것인지 다시 시작할 것인지. 그래서 그녀는 남편과 함께 나이지리아로 떠난다. 다시 시작하기 위한 출발. 

하지만 그것은 또다른 불행이였다. 다른 좋은 휴양지를 두고 왜 하필이면 나이지리아로 떠났는지 묻는다면, 그건 새라 역시 자신에게 수천번도 더 질문했던 항목이리라. 마침 공짜 티켓이 새라에게로 왔고, 남들이 다가는 휴양지를 싫어했을 뿐이라는 뻔한 답을 하지만, 결국 그날 일어났던 일에는 적절한 답이 되지 못한다. 그날, 그 밤 호텔 구역 바깥의 해변을 산책하던 새라와 앤드류는 남자들에게 쫓기는 아프리카 소녀 두 명을 만난다. 그리고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소녀들은 석유 전쟁속에 휘말려서 모든 것을 잃고 도망치던 중이였다. 남자들은 그런 그녀들을 죽이기 위해 쫓아온 것이였다. 달빛에 번뜩이는 칼날을 휘두르며. 안전하고 보호받는 치안시설에만 익숙한 새라 부부는 모든것이 꿈같이 느껴지지만 번뜩이는 칼날아래 곧, 현실을 인정하고 만다. 

남자들은 새라에게 말한다. 이 소녀들을 살리고 싶으면 손가락 하나를 자르라고. 앤드류는 주저하고 새라는 눈물을 흘리며 가차없이 손가락을 자른다. 앤드류가 주저했기 때문에 한 소녀는 죽임을 당했고 새라가 손가락을 자른 덕에 한 소녀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소녀가 바로 리틀비다. 

리틀비는 끔찍한 지옥에서 살아돌아왔다. 그리고 새라앞에 돌아왔다. 새라는 그 동안 잊고 살았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잘린 손가락을 보면서도 애써 부인하고자 했던 그 진실들, 사건들 앞에.  

모든 난민들을 받아주다보면 끝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안전하게 거주하고 있던 내 집까지 침범받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리틀 비의 동그란 눈을 보고도 그런말을 할 수 있을까? 별 것 아닌 석유 때문에 집과, 고향과, 부모님과, 언니까지 처참하게 잃어버린 그 자그마한 소녀에게.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없는 것들을 내놓으면서 선심쓰듯이 말한다. 하지만 리틀 비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쓸모없는 물건이 아닌, 진심어린 시선이 아니였을까. 불법체류자라고 무조건 쫓아내는게 아니라, 그녀가 처한 현실을 똑바로 바라봐주는 것-그것이 아니였을까. 

<내 심장은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난 생각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내 마음만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어. 더 이상 달아날 필요가 없는 마음. 세상 돈 전부를 합친 것보다 소중한 나의 마음. 그 마음의 진정한 고향은 바로 인간이야. 이런 나라, 저런 나라에 살고 있는 인간을 말하는 게 아니야. 내밀하고 저항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야말로 바로 내 마음의 고향이었던 거야.

이제 리틀비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러면서 나에게 한 가지 숙제를 내주었다. 불편해도, 힘들어도 진실과 마주하라고. 나는 그 외침을 가슴 속 깊이 담아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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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케옵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토탈 케옵스 - 마르세유 3부작 1부
장 클로드 이쪼 지음, 강주헌 옮김 / 아르테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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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라고 하면 아름다운 항구도시,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늘 그렇듯 내가 실제로 살고있는 곳이 아니라면 어느 것에든 환상을 갖기 마련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장소든. 장 클로드 이쪼가 그리는 마르세유는 머리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몽땅 바꿔버렸다. 관광객들이 수없이 다녀가는 곳이지만 더이상 미래가 없는 곳, 여러 나라에서 여러 인종이 몰려오는 인종 전시장, 희망 따위는 찾아 볼 수 없는 암울한 곳-그곳이 바로 마르세유라고. 

그래서일까. 어려서부터 함께였던 세 친구는 암담한 현실앞에 꿈을 잃고 여러 곳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누구는 어두운 뒷골목의 범죄세력 속으로, 누구는 국제적인 범죄자로, 누구는 모두가 피하는 경찰로. 떨어져 있어도 늘 서로를 그리던 세 친구는 결국 '죽음' 앞에 다시 만나게 된다. 맨 처음 마누가 처참히 죽었고, 마누의 복수를 위해 우고가 죽었다. 세 친구 중에 파비오만 살아남았다. 파비오는 이제서야 죽음보다 더 처절한 현실앞에 마주서게 된다. 친구들의 죽음 앞에서 진실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어떠한 꿈도 꾸지 못하던 파비오였다. 그래서 경찰직에서도 한직으로 쫓겨났고 사랑하는 여자들도 떠나보냈다. 홀로 낚시를 하며 하루하루 견뎌낼 뿐이였다. 그런 파비오에게 '토탈 케옵스(대혼란)'이 찾아온다.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다. 그저 친구들을 위해, 진실을 위해 대혼란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수 밖에는. 

마약과 폭력으로 얼룩진 도시. 폭력단과 폭력단이 세력을 잡기 위해 하루가 멀다하고 전쟁을 벌이는 곳. 그곳에서 친구들은 살해당했고, 젊은 라일라는 강간당하고 처참히 살해됐다. 세 친구의 연인이였던 롤 역시 행방이 묘연하고 사건을 파헤칠 수록 파비오는 수렁속으로 빠지는 느낌을 받는다. 결코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 

파비오는 결코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똑똑한 탐정도 아니고, 강인한 남자도 아니다. 그 역시 현실속에 번뇌하고 고민하며 현실을 살아가는 남자일 뿐이다. 하지만 친구들의 죽음으로 인해, 사랑했던 라일라의 처참한 죽음으로 인해 드디어 대혼란 속으로 걸어들어갈 용기를 얻었다. 자신의 삶에 조금은 더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고자하는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파비오가 변해가면서 사건 역시 조금씩 베일을 벗어내게 된다. 

세상만사 그런 거지.  

하루의 삶도 코미디, 인생도 코미디. 

어떤 노래의 한구절처럼, 어쩌면 인생은, 세상은, 한토막의 코미디와 같을지 모른다. 고통당하고 버림당해도 결국은 씁쓸하게 웃게되는 코미디같은 것. 그렇게라도 씁쓸하게 웃으며 끝내야 인생이 조금은 덜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파비오는 모든 사건의 마지막에서 그걸 깨달았을지 모른다. 그가 마침내 대혼란속에서 걸어나왔다. 앞으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건, 비단 나뿐만은 아닐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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