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지날 때까지>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피안 지날 때까지
나쓰메 소세키 지음, 심정명 옮김 / 예옥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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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읽다가 신기한 단어를 발견했다. 고등유민(高等遊民)-직업을 통한 사회활동을 거부하는 고학력의 방관자적 지식인을 뜻하는 말이란다. 나쓰메 소세키가 만들어낸 단어라고 한다. 이 단어야말로 책의 주인공인 게이타로를 분명히 보여주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를 찾기위해 고군분투하는 게이타로는 어쩐지 일상이 시들해지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렇게 딱히 하고싶은 일은 없지만, 그렇다고 대학까지 졸업하고 나서 빈둥빈둥 놀고 있자니 자신이 쓸모없어 보인다.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자리를 구하지만, 비전있어 보이는 일자리는 없고 전부다 바보같아 보인다. 그래서 같은 하숙집의 모리모토와 한가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하고, 혹은 친한 친구인 스나가의 집에 들려서 쓸데없는 잡담을 주고 받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탐정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게이타로라는 등장 인물을 내세워서 각 인물들의 내면까지 깊고 세밀하게 조사해나가는 것이다. 이런 형식은 처음 접해보는 것이라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 당시나 지금이나 세상살이가 비슷한만큼 게이타로의 주변인물들에 대한 심리변화가 쉽게 이해되기도 했다. 

모험을 즐기며 일반화되는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리모토, 누군가를 부리며 지나치게 관찰하는 다구치, 사람들과의 관계에 얽매여 자신안에 또아리를 튼 스나가, 조카의 죽음을 눈앞에서 관찰한 치요코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어디선가 들어봤을만한 것이다. 그럼에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모두 내 이야기같다는 기분도 든다. 마치 게이타로가 점쟁이에게 들은 '자기 같으면서 남 같고, 긴 듯하면서 짧고, 나올 듯하면서도 들어갈 듯'한 물건이 내게도 있을것만 같은 기분이다. 

어차피 우리는 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모든 일에 주인공이지만, 조금만 돌려보면 세상이라는 거대한 책에 속한 단편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단편들이 모여 책을 이루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모여 한 세대를 이루는 것은 아닐지. 게이타로와 그 주변인들의 이야기가 쉽게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것을 보면, 안개같이 떠다니는 이야기가 어느 순간 선명한 그림이 되어 나타난 듯한 기분마저 든다. 그것이야말로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의 역량일테지만 말이다. 

창 너머로 바라보는 타인의 이야기-창 너머에 있는 것이 과연 타인일까, 아니면 나 자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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