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배낭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 짙게 깔려 있던 구름이 때마침 걷히면서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정오의 태양이 내 뺨 위의 눈물을 짭조름하게 말렸다. - P165

삶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아니라 살아야 할 이유에 집중해야 했다. - P173

나는 포기하고 한숨을 내쉬며 나무 그루터기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주변의 숲을, 차가운 적막과 어스름 속에 매달린 삶과 죽음의 층을 쭉 둘러보았다.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숲속의 모두가 침묵하고 있었다.
숲 바닥에는 큼직한 바위, 잔가지와 솔방울들 사이로 큼직한 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거대한 황갈색 나무들도 있었다. 그 아래로 수십 그루의 묘목이 생명을 좇아 자라나고있었다. 그중에는 잡초와 쌓인 눈 위로 힘차게 머리를 삐쭉 내민것들도, 아직 내 배 속에 있는 아기처럼 썩어가는 통나무들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것들도 있었다. 혼란함 속에 아름다움이 있었다. - P176

세상에는 슬픔을 넘어서는 슬픔, 펄펄 끓는 시럽처럼 아주 미세한 틈으로도 스며들어 버리는 그런 슬픔이 있다. 그런 슬픔은 심장에서 시작되어 모든 세포로, 모든 혈관으로 스며들기 때문에 그런 슬픔이 한번 덮치고 가면 모든 게 달라진다. 땅도, 하늘도, 심지어 자기 손바닥마저도 이전과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된다.
그야말로 세상을 바꿔버리는 슬픔이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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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둘러싼 세상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느끼며, 내가 평생 걸었던 이 길을, 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방식으로 우리는 함께 걸었다. - P39

우리 농장처럼 아빠도 매일매일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었다. 한때는 강인했지만 이제는 시들어버린 아빠의 팔에 안겨 있으니 마치 허약한 노새를 타고 있는 것 같았다. - P46

어제 그의 눈동자에서 내가 본 것은 생각지도 못한 부류의 남자 한 명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새로운 내 모습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의 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 P100

인간이 담아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어마어마한 슬픔과 죄책감, 사랑, 두려움, 혼란이 이미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P149

도무지 견딜 수 없는 현실을 어떻게든 견뎌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진실을 외면할 순 없었다. 무고한 소년을 포용하지 못할 만큼 이 세상이 잔인하다는 진실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르지 못할 만큼 이 세상이 잔인하다는 진실을. 블랙 캐니언이 월의 깊고 끔찍한 무덤이 되어버린 것은 그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이 마을에 머물렀기 때문이라는 진실을.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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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게 본질을 제외한 모든 것을 비운 삶이야말로 참된 삶이라는 사실을, 그런 수준에 도달하면 삶을 지속하겠다는 마음 외에 그다지 중요한 게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그때 이런 말을 들었더라면 나는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우리를 엮은 끈을 점점 더 가까이 잡아당겼다. - P32

아무리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어도 우리 존재는 탐스럽게 잘 익은 복숭아를 조심스럽게 수확하듯 신중하게 형성되는 게 아니다. 끝없이 발버둥 치다가 그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을 거둘 뿐이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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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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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사는 이 책의 주인공 흑인여성 ‘다나’는 백인남성인 ‘케빈’과 결혼을 하고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줄 집에 막 이사를 마치고 한참 짐 정리에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둘 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기에 이사를 하다가도 떠오른 단편 아이디어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보통의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다나’는 갑자기 현기증과 함께 울렁거림을 느끼고 정신을 잃는다. 눈을 떠 보니 낯선 곳에 백인으로 보이는 어린아이가 강 한가운데에서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 혼란스러움의 대한 질문은 나중으로 미루고 우선 아이부터 구하는 그녀.

그리고 또 다시 나타난 현기증이 그녀를 다시 케빈이 있는 자신의 집으로 되돌려놨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 뒤로도 이어지는 이 믿기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그녀가 현기증에 정신을 잃고 도착했던 그 곳은 자신의 조상이 살아가는 1800년대이다. 그녀는 과거로의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인권 개선을 위한 시민운동이 일어났던 1950~60년대 시기를 지나 인식이 어느 정도(?) 개선의 색을 띄는 1970년대를 살아가는 ‘다나’가 하필 백인들의 ‘물건’이라 불리는 검둥이를 사고 파는 것이 그 시대를 따르는 것으로 여겨지는 최악의 시대로 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시공간을 이동하며 알게 된 것은 ‘다나’가 맨 처음 과거로 돌아가 강가에서 구한 아이의 이름이 ‘루퍼스’이며 그 아이가 자신의 조상이라는 것이다. 흑인인 자신에게 백인의 조상이 있었다니...


(P. 124) 나는 루퍼스에게 최악의 수호자였다. 흑인을 열등한 인간으로 보는 사회에서 흑인으로서 그를 지켜야 했고, 여자를 영원히 자라지 못하는 아이로 여기는 사회에서 여자로서 그를 지켜야 했다. 내 몸 하나 지키기도 벅찬 곳에서 말이다.

‘루퍼스’가 위협을 느낄때마다 과거 속으로 돌아간다는 패턴을 인지한 그녀는 이 모든 일들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때까지는 그녀가 ‘관찰자’ 혹은 과거를 ’체험하는 자‘에 머물러 있었다. 과거에 일어나는 역사를 바라보고 조금 더 편리하고 차별이 덜 했던 세상에서 살아 본 경험으로 얻은 정보와 지식을 통해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그 곳에서 그들에게 ‘흑인 노예’였을 뿐이다.


‘다나’의 도움으로 매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루퍼스’에게 그녀의 손길과 관심은 절실했다. 자신만의 그릇된 방식으로 관심과 사랑을 갈취해 욱여넣으며 채워 온 루퍼스에게 어떤 상처가 있었을까? 1800년대에 백인의 루퍼스에게 ’상처‘란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받은 상처는 누군가에게 입히는 상처로 갚아줘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자신에게 위로가 되는지 아닌지도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이기심이 그릇된 것인지 아닌지도 알아야 할 필요성이 없다. 자신의 아버지 ‘톰 와일린’에게서 고스란히 물려받은, 노예 소유주로서의 마땅한 태도.
그랬다. 그가 받은 상처에 누구든 값을 치루게 하는 언제나 용서받는 자, 루퍼스.


(P.343) ‘사람을 노예로 만들기가 얼마나 쉬운지 알겠지?‘
(P.354) 노예란 길고 느린 둔화 과정이었다.

책장을 한장, 두장 넘기고 또 넘길수록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갇혀진 방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도망쳐도 다시 제자리로 돌려 놓고야 마는 이 불행의 연속에서 ‘끝’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한걸까? 이런 끝나지 않는 지옥 속에서 그녀는 낯선 곳에서의 일상도 원래 살던 곳에서의 삶처럼 맞춰가며 살고 있었다. 그리고 미워해야 마땅한 루퍼스를 ’애증‘의 감정으로 그느리는 다나.
그렇게 쉽게 노예의 삶을 받아들이는 ‘순종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갔다. 아니, 되어버렸다.
‘다나’는 곧 결심을 해야만 했다.


(P.369) 내 시대에서 있을 자리를 잃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루퍼스의 시대에 더 날카롭고 강렬한 현실이 있었다.
(P.370) 루퍼스의 시대는 나에게 여태껏 요구받아본 적 없는 것들을 요구했고, 그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면 쉽사리 나를 죽일 수 있었다.

과거의 역사에 흠집을 내려 하지 않고, 되도록이면 모든것을 받아 들여왔던 그녀는 ‘흑인노예‘라는 보이지 않는 멍에를 목에 걸고, 누군가의 감시가 없어도 묵묵히 일을 했다.
‘번쩍‘ 하며 자신의 등에 내리 꽂아지는 채찍에도 자신을 고분하게 내어주었다. 어둠이 깔리듯 희미해지는 정신으로 어차피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 그녀가 한가지 뒤늦게 깨달았다.

(P. 388) ‘다시는 참지 않을 것이다.‘


‘시선’에 많이 집중을 하며 읽은 것 같다. 이 책은 주인공인 흑인여성 다나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기에 몰입이 확실히 잘 되고 그녀의 심리상태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에게 집중되어 있는 동안 다나 자신도 미처 파악하지 못 하고 헤아리지 못 했던 것들이 책을 읽는 내게 똑같이 존재했다. 그것은 그녀의 주변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와 감정이었다.


현기증을 일으키는 다나를 끌어 안다가 함께 1800년대, 루퍼스의 시대를 경험(경험이라 하기엔 꽤 긴 시간인 5년의 시간)하게 된 그녀의 남편 ‘케빈‘은 결혼 전부터 다나에게 호감을 보이며 친절했던 사람이다. 아무리 인종차별이 완화 되었다고 해도 흑인과 백인과의 결혼이 그 시절에 뭐 얼마나 환영을 받았겠는가?
루퍼스에게 검둥이와 백인과의 결혼은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저항하는 태도를 취하기는 했으나 ‘케빈’ 또한 흑인의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기에 루퍼스 시대에서 일어나는 상황 속에 ‘다나’와 감정적 마찰이 발생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일은 다나로부터 발생되었고 그녀의 조상과, 더 나아가서는 흑인 인권과 연관되는 일이다. 그렇기에 이 설명하기 어려운 시간여행과 또 다시 자신들이 살던 1970년대, 현재로 돌아왔을때의 혼란스러움을 극복하는데는 사실 다나와 차이가 분명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와도 연관되어지는 일이기에 받아들이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자리잡혔겠지만 케빈은 지켜보는 입장이지 않았는가. 이 둘간의 대립되는 상황에서 다나는 자신의 남편 케빈의 얼굴에서 자꾸만 톰 와일린과 루퍼스를 떠올린다.


나이절, 세라, 캐리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수 많은 흑인 노예들은 영원히 갇혀 지내왔다.
그들은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고 ‘가족끼리 사는 집’의 온기를 알지 못할 것이며 한 사람으로 태어나 억압이 없는,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의 당연함을 겪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노예들에게도 계급이 존재해 밭에서 채찍질과 함께 일하는 이들은 부엌에서 일하는 노예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이런 곳에서 그들은 ’다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을까?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인 와일린가의 사람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에선 ‘보통의 사람’ 이었을지도 모른다. 피부의 색 상관없이 자신이 한 약속은 지켰던 톰 와일린과 도망노예에게 너그럽게(?) 채찍질을 끝으로 다시 일선으로 돌아가게 해 주는 루퍼스. 물론 그들이 보여준 모습들은 혐오스러움이 명치 끝에서부터 묵직하게 올라오게 하지만 그 시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욕하며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었다. (와일드가 사람들의 시대와 분위기를 기준으로)법을 준수하며 도의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저지르지 않고(그들에게 흑인 노예는 말과 밀 포대와도 다를 바 없었기에), 이 사회와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들에 적당히 자연스럽게 녹아든 이 삶으로 누군가가 먼 미래에서 날아와 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며 경멸한다면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일테니까.


루퍼스 시대에서 당연하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들여다보는 것이 마음을 옥죄게 하지만 그만큼 생생하게 이야기를 담아내는 작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낄 수 있다. SF 장르가 나에게 아주 친숙하지는 않아서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이 책에 첫 문장을 읽고 바로 그 고민을 멈췄던걸로 기억한다. 틈나는대로 읽을 때마다 멈춰있던 감정 선이 읽는 순간 다시 살아나게끔 해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굉장히 복잡한 마음이 드는 책이다. 착잡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일들을 바라보는 것이 리뷰를 적어내려 가면서도 수정에 수정을 반복하게 하였다. 내가 ’관찰자‘로써 머무는 사람인 것을 스스로 안다. 나를 포장하듯 단어 하나 하나에도 ‘더 공감하는 자’에 가까운 사람이 되게끔 하려는 의도를 두는 것 또한 안다. 그래서 수정이 필요했었나보다.

많이 개선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흑인인권, 성소수자,계급,성별 등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우리 곁에 존재한다. 눈에 보이는 ‘채찍’은 사라졌지만 아직 우리들의 ’침묵하는 입‘ 과 ’무관심의 돌아서는 등‘에서 차별을 방조하는 구조와 제도에 우리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P.184~185) 우리는 쇼를 바라보는 관찰자였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역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배우였다. 집에 갈 날을 기다리는 동안에 그들과 비슷한 척하면서 주위사람들을 만족시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형편없는 배우였다. 우리는 실제로 역할 속에 녹아든 적이 없었다.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었다.

(P.479) “ 나는 재산이 아니야, 케빈. 말이나 밀 포대가 아니야. 내가 자산처럼 보여야 한다면, 루퍼스를 위해 내 자유에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면, 루퍼스 역시 한계를 받아들여야 해. 나에 대한 태도 말이야. 죽고 죽이는 것보다는 사는게 나아 보일 만큼이라도, 내가 내 삶을 통제하게 해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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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은 텅 빈 TV 화면을 보고 있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여기도 잠시 들르는 체류지처럼 느껴져. 어쩌면 다른곳보다 조금 덜 현실적인......."
"체류지?"
"필라델피아처럼. 뉴욕과 보스턴처럼. 메인 주에 있던 농장처럼......." - P371

"케빈, 한 번에 떠날 수 없는 것처럼 한 번에 돌아올 수도 없어.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제자리에 맞아 들어갈 거야."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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