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부른 일상 이야기>
“ 엄마, 나 택배로 시킬 거 있는데 혹시 필요한 거 있어?“
” 봄동이랑 오이랑 상추랑 깻잎. 묵무침이나 해 먹을까?“
” 왜? 또 아빠가 묵무침 해달라고 했어? 묵 쑤느냐고 괜히 엄마 힘만 드는데 그냥 두지......”
나는 안다.
어차피 엄마는 마음속에서 이미 며칠 전에 냉동실에 자리차지나 하고 있는 녹말가루로 묵을 쑬 계획을 세웠다라는 걸. 그 불을 지피게 한 것은 아빠라는 것도.
(눈치가 조금 없을 뿐. 그저 본능에 충실했을 뿐.)
“ 녹말가루가 냉동실 자리차지나 하고 있어서 그냥 대충해서 먹어치우지 뭐.”
모든 엄마들의 국룰1탄처럼 묻는게 묻는게 아니다. 누군가의 의사 따위는 필요없는 그저 혼잣말을 크게 하는 것 뿐이다.
엄마가 부엌에서 분주하게 이것저것 만들어내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우리집의 쩝쩝박사 아빠는 그저 해맑게 기대와 행복으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 난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이미 벌써 얼굴이 붉그락푸르락 해진다.
(아빠는 엄마가 쉬는 걸 못 견디는 유전자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내방으로 들어오는 그릇 달그락 달그락 소리들로 내 귀가 상당히 괴롭다.)
둘다 저렇게 웃어가며 꽁냥꽁냥 맛나게 해 먹겠다는데 뭐가 그렇게 안 내켜서 나는 불만인걸까. 심보 참 고약하네.
휴...할말하않...
굉장히 안 내킨다.
우리집에 엄마들의 국룰 2탄 ‘대충해서 먹어치우기’ 가 선포되면 응답하라 1988 덕선이 엄마가 강림하시고 맛있게 딱 한번만!!먹고 깔끔하게 잘 먹었습니다!!로 끝나는 법이 없다.
나는 안다.
분명히 세숫대야만한 거대한 크기의 그릇에서 묵무침이 까꿍 하고 있을거라는 걸. (날 먹어치워줘~~~~냠)
엄마 힘들까봐 염려되서 뭔가 해볼까? 하는 액션만 나와도 일단 정지!!제어부터 들어가는 내가 대단한 효녀인줄.
이렇게 열을 내는 이유는 늘 언제나 남은 녀석들을 먹어치우는 처리자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그래 나도 안다.
이렇게 곁에서 엄마가 해주는 음식 맛있게 먹는 순간 조차가 엄청나게 귀하고 소중한 것이라는 걸.
우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역시나 내 실력 죽지 않았네!! 하면서 얼마 전 나름 요리라고 말하기엔 뭐하지만 내가 만든 찌개가 생각보다 엄마가 만든 찌개보다 맛이 꽤 괜찮게 나와서(지금 생각해도 신기방기)너도 놀라고 나도 놀라 엄마를 당혹스럽게 만든 그 사건이 단순 우연의 헤프닝이 될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그리고 어느하나 당연한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배부른 일상을 보냈다. (여러의미로)
그리고 나는 봤다.
이미 진작에 예고한 거대한 세숫대야 묵무침을.
